69화
곧 오광휘 단장이 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관악산에 등산객들을 위협하는 들개들이 출몰한다는 거잖아.”
“꽤 됐답니다.”
“등산객들한테 먹을 거 내놓으라고 쫓아가기도 하고.”
“부상자도 발생했다고 하네요.”
태건이 덧붙여 말하자 오광휘 단장은 더 심각하게 말했다.
“이걸 우리가 무슨 수로 건드려?”
“들개들 퇴치. 그건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니까 우리 소관 맞잖습니까.”
태건이 똑 부러지게 말하자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좁혔다.
“우리 출동금지야. 아직 노출되면 안 되는 거 몰라?”
“공식적으로는 금지가 맞습니다.”
“어째 말꼬리 잡고 싶어진 그 뉘앙스는 뭐냐?”
지잉.
오광휘 단장이 깍지를 끼며 호기심과 집중력을 동시에 보였다.
태건은 미소를 싱긋거리며 답했다.
“야유회 회원들이 관악산에 올라갔는데, 어이쿠. 이런. 들개들에게 위협과 습격을 받았지 뭡니까.”
“뭔 소리야?”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들개들을 제압해야만 했답니다……. 라는 스토리로 가잔 겁니다.”
“……그러니까 사복 입고 들개들 유인해서 일망타진하자?”
오광휘 단장이 정리해서 말하자 태건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데츠 롸잇!”
“그래도 되는 거냐?”
“소방관이 하는 일이 뭡니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공무원 아닙니까.”
“얘들 확실히 주인 없는 애들이야? 건드려도 무탈한 애들 맞아?”
오광휘 단장이 가늘게 뜬 눈으로 확신을 바랐다.
그 순간 태건이 멈칫했다.
“에, 그러니까…….”
솔직히 기사로만 접해 확신이 없었다.
태건이 그렇게 난감해할 때였다.
척. 척.
발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림받은 애들 맞습니다.”
“지성 선배.”
태건은 예상 못한 인물의 지원사격에 눈을 끔벅거렸다.
이지성이 자판기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문 열려 있더라.”
그때 오광휘 단장이 이지성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알아?”
“알면 안 됩니까?”
“그건 아니다만……. 아무튼 문제는 없다고?”
“네.”
치직.
시큰둥하게 대답한 이지성이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 타이밍에 태건이 다시 나섰다.
“문제없으면 딱 우리가 나설 일이네요.”
“끈질긴 녀석.”
“더 갇혀 있으면 누군가 사고 칩니다.”
구우우.
태건이 순간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도 멈칫했다.
“틀린 말이 아니긴 한데.”
“그리고 이보다 더 팀워크 훈련에 어울리는 일도 없잖습니까.”
“그것도 사실이지……. 잠시만.”
스윽.
오광휘 단장이 슬그머니 일어나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태건은 갸웃하며 물었다.
“어디 전화하시게요?”
“그쪽 산악구조대. 거기 부대장이랑 옛날에 인사한 적이 있어. 사전 조사는 해야지.”
“굿 아이디어!”
“……거기 얌전히 있어.”
스릉.
당부를 한 오광휘 단장이 휴게실 창문으로 걸어가며 전화했다.
“아이고, 박 부대장.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시고? ……사람 눈치는. 그쪽에 아주 속 썩이는 애들이 있다고…….”
짧은 안부 인사 후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는 듯했다.
태건은 잠깐 여유가 생겼다.
스윽.
자연스럽게 이지성을 바라봤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절로 일어났지만 묻기가 애매했다.
그런데 이지성의 눈치는 백단을 훌쩍 넘는 모양이었다.
대뜸 대답이 들려왔다.
“유기견 센터에 아는 사람이 좀 있어.”
“헥, 어떻게 알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 왜 몰라.”
꿀꺽.
그리고 다시 음료수를 들이켰다.
태건은 얼굴을 양손으로 잡으며 의아해했다.
터덕.
“진짜 쓰여 있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너무 정확히 짚어 낸 이지성의 대답이 놀라워 확인하게 됐다.
이내 오광휘 단장이 돌아왔다.
태건은 그가 앉기도 전에 질문부터 건넸다.
“어떻게 됐습니까?”
“애들 모아라. 한 번 날뛰어 보자.”
“고로췌!”
태건이 환호하며 진하게 미소 지었다.
라텔의 비공식 첫 출동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라텔 단원들은 관악산 등산로에 도착해 있었다.
기동복이 아닌 등산복 차림이었다.
이렇게 보니 색다르고 신선하게 보였다.
그런데 태건과 단원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등산로 입구부터 걸린 플래카드들이 시선을 잡아끌고 있던 탓이다.
-모두의 등산로를 돌려주세요.
-개 조심. 위험한 들개들이 출현합니다.
-안전한 산행은 등산객들의 하나뿐인 소망입니다.
일부만 봤음에도 등산객들의 울분이 느껴졌다.
쭉 둘러본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말했다.
“태건아, 잘 찾았어.”
다소 무뚝뚝한 칭찬 소리였다.
그 뒤로 다른 선배들도 태건에게 말했다.
“갑자기 웬 개판인가 했는데, 올만 했네.”
“이건 우리만 가능해. 출동 대기도 안 하고, 또 제한도 없으니까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지.”
“태건아, 알아보느라 고생했어.”
“…….”
툭툭.
이지성은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줬다.
차가운 그로선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태건과 단원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가 너무도 한산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는지 잡초가 침범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꽤 심각한 거 같은데.”
“느낌이 썩 좋지 않아.”
태건과 이지성이 좌우를 예리하게 관찰했다.
앞서 걷던 오광휘 단장도 예감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들 방화복 입자.”
“알겠습니다.”
착착.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배낭 속에서 방화복을 꺼냈다.
불도 견디는 질기고 두툼한 소재였다.
개의 이빨을 막아내기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준비하길 잘 했네.”
“강태건이, 너 개에 대해서 좀 아는 거 같던데 말이야.”
황대산이 넌지시 물었다.
태건은 가늘게 미소 띠며 답했다.
“스모크점퍼 훈련과정 중에 핸들러도 있습니다.”
“그거 소방견과 같이 훈련하는 거지?”
“맞습니다.”
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지성이 멈칫하더니 홀로 수긍했다.
“어쩐지.”
그의 반응은 너무 작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내 모두 방화복 차림이 됐다.
“아무도 없는데 뭔 상관.”
“역시 은밀한 맛이 있다니까.”
“이거 입고 뛸 생각하니까 벌써 목이 마른 거 같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안전이 중요해 입고 있다지만 기동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오광휘 단장은 그 모든 걸 일축했다.
“느낌 좋지 않아. 주변 경계 확실하게 하면서 올라가자!”
“네, 단장님.”
단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차작.
어느새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누가 말한 적 없었다.
눈치를 준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알아서 구색을 갖춰 갔다.
위기가 다가오자 소방관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런 하나 된 모습.
처음이었다.
잠시 후.
모두는 등산로를 벗어나 산을 올랐다.
사락사락.
온갖 수풀로 덮인 비탈길을 길도 없이 오르는 모습이었다.
“훅훅.”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산길을 방화복을 입고 오르는데 여유롭긴 어려웠다.
이내 땀을 훔치던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이 강아지들은 언제 나타나는 거야?”
그의 짜증이 끝난 그 순간이었다.
사락.
저쪽에서 수풀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태건과 이지성이 동시에 주의를 줬다.
“쉿!”
“스톱.”
우뚝!
모두가 반사적으로 행동을 멈췄다.
…….
일순간 산속엔 적막이 감돌았다.
태건은 귀를 기울였다.
‘조용해, 너무.’
이 화창한 날씨에 새소리 하나 없었다.
산속 가득 긴장감이 내려앉았단 의미였다.
짐작한 태건이 예리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고수현 표정이 서서히 구겨지더니 끝내 한 마디 했다.
“니들 갑자기 왜 폼 잡고 그러는데?”
“선배.”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 그런데 뭘……. 어, 어어어!”
투덜거리던 고수현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사라락.
수풀을 사이로 뭔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크르릉.
-으르릉.
거친 눈빛과 드러난 이빨.
바로 들개들이었다.
태건과 이지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젠장.”
“당했어!”
그 반응에 오광휘 단장이 들개들을 경계하며 물었다.
“뭘 당해?”
“유인 당했단 말입니다.”
“유인? 얘들이 무슨 사람이야?”
오광휘 팀장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질문이었다.
하지만 태건은 거기에 일일이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하나둘 나타난 들개의 수가 거의 30마리에 달했다.
심상치않아 보인 상황에 태건은 재빨리 손짓했다.
“칫. 영악한 놈들. 다들 모여요!”
“등 맞대고 사주 경계!”
이지성이 덧붙여 외쳤다.
‘유기견센터에 아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인데.’
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핸들러 훈련을 받은 자신만큼 개의 습성을 아는 눈치였다.
그런 생각은 일단 나중으로 미뤘다.
어느새 6명의 단원들이 등을 맞대고 둥글게 모였다.
그 사이 들개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럭, 서럭.
잔뜩 경계하며 나타난 들개들 또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크르릉.
-그륵, 그륵.
이를 잔뜩 드러낸 모습이 너무도 위협적이었다.
태건은 견종부터 빠르게 살폈다.
“롯트와일러, 말라뮤트, 진돗개…….”
“사모예드, 믹스견들도 있고…….”
이지성이 뒤따라 말했다.
그때 불쑥 황대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시바견, 별별 개가 다 있네.”
“다들 이빨을 잇몸까지 드러냈습니다. 경계가 아니라 공격할 분위기니까 긴장 늦추지 마세요.”
태건은 재차 주의를 줬다.
그 소리에 소심한 유중헌이 한 마디 어렵게 꺼냈다.
“이 상황에서 긴장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조용. 강태건, 그래서 이제 어쩌자고.”
휙, 휙.
딱딱한 목소리를 낸 오광휘 단장이 사방을 둘러보며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