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70)화 (70/320)

70화

유심히 관찰하던 태건은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뭘 어째요. 싸워야지.”

“진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할 수 없지.”

태건이 씁쓸한 얼굴로 변했다.  

준비해 온 그물로 안전하게 잡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들개들의 야생성이 많이 되살아나 있었다.

아무래도 한 판 푸닥거리를 피할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개들이 당장 공격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이 됐다.

태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먹을 거 없어, 짜식들아.”

들개들의 반응을 보려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

역시 노린 게 먹이였던 모양이다.

기다려도 먹을 게 나오지 않자 들개들의 분위기가 더욱 살벌해졌다.

그리고 이내 우두머리로 보이는 말라뮤트가 자세를 낮추며 짖었다.

-컹, 컹컹!

공격 신호였던 모양이다.

사사삭!

들개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꽤 먼 거리였다.

그러나 들개들 속도로는 지척이었다.

태건은 온몸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온다!”

“막아?”

“우리 라텔입니다!”

“그럼 맞서 싸워. 얘들아 개판 치자!”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펴며 소리쳤다.

그 외침에 단원들도 기다렸단 듯이 들개들을 향해 마주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에라이, 내가 개는 진짜 안 때리는데!”

“니들이 먼저 시작한 거다!”

“이야아압!”

파바박!

순식간에 사람들과 들개들이 한데 뒤엉켰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됐다.

그 모습이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첫 공격은 들개들의 파상공세였다.

거리를 좁힌 들개들은 사방을 둘러싸며 순식간에 뛰어올랐다.

-카응!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날카로운 이빨로 공격해 왔다.

“막아!”

누군가의 외침.

휙!

모두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그 순간 들개들의 이빨이 온몸으로 날아들었다.

텅, 꽉!

큰 충격을 주며 이어서 이빨로 팔, 다리 할 거 없이 물고 늘어졌다.

지독한 아픔이 몰려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사람들.

아니, 라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튼튼한 방화복이 들개들의 이빨을 효과적으로 막아준 탓이다.

태건의 팔에도 셔틀랜드쉽독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목양견으로 유명한 견종이다.

온순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이 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날카로운 이빨의 공격을 받은 상황이다.

그런데 태건의 표정이 일그러지다 멈췄다.

“크윽……. 어?”

아픔이 아닌 뭉뚝한 충격만 느껴졌다.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태건이 눈빛을 빛냈다.

“일단 좀 놔라, 새꺄!”

휙!

태건은 셔틀랜드쉽독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동시에 힘껏 휘둘렀다.

강한 저항에 위기를 느꼈는지 셔틀랜드쉽독은 일단 후퇴했다.

차자작!

-으르릉.

거리를 벌렸지만 털이 곤두설 정도의 경계는 계속 유지했다.

반면, 그제야 팔의 자유를 찾은 태건이 소리쳤다.

“방화복이 생각보다 더 튼튼합니다!”

“겁나게 절감 중이야!”

“이대로 대형 유지하고…….”

태건은 최대한 효율적인 공략법을 공유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게 태건의 생각대로 흘러갈 순 없었다.

태건의 목소리를 잡아먹는 목소리들이 출현했다.

“우오오, 이 열대 맞고 열대 더 맞을 짜식들아!”

“이번엔 내가 무조건 1등이다!”

황대산과 고수현 목소리였다.

차자작!

발소리까지 들려왔다.

태건은 귀를 의심했다.

발소리?

휙!

돌아본 순간 태건은 경악했다.

“허억!”

황대산과 고수현이 자리를 이탈해 들개들에게로 달려든 탓이다.

여섯 명이 원을 그리고 있던 중이다.

두 명이 빠지자 대형이 금세 무너졌다.

유중헌은 당황해 손에 든 나뭇가지를 무작정 휘둘렀다.

훙훙!

“어어어, 오지 마, 저리 가!”

근엄해하던 오광휘 단장은 다각도로 공격을 당하자 주춤거렸다.

“이노옴드을! 오냐오냐 해 주니까……. 야야. 한 놈씩 덤벼!”

소리친 데 비해 방어가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지성도 대열을 이탈한 상태였다.

언제 이탈했는지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돼 버렸다.

태건은 등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인상부터 찌푸렸다.

“젠장. 이게 팀이야, 팀이냐고!”

그런 한탄도 오래 이어갈 수가 없었다.

방금 내던진 셔틀랜드쉽독이 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쌔앵!

-카아앙!

똑같은 공격 루트였다.

태건은 다시금 재빨리 팔을 내밀어 막아섰다.

턱!

“이 자식, 가만히 있어 주니까 내가 가마니로 보이냐!”

얕보였단 사실이 상당히 불쾌했다.

그런데 이번엔 셔틀랜드쉽독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 덩치 큰 말라뮤트가 털을 휘날리며 급격히 거리를 좁혀 왔다.

자타공인 썰매견이다.

커다란 덩치로 달려드는 그 힘은 태건도 추측키 어려웠다.

그 뒤에 제 3타, 제 4타까지.

줄줄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들개들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이다.

불쾌하고 짜증났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했다. 

“쓰벌, 해 보자. 들어 와, 들어 와, 이 새끼들아!”

인상을 팍 찡그린 태건도 이성을 놓고 본능에 집중했다.

태건은 완전히 공격으로 돌아섰다.

팔을 물고 있는 셔틀랜드쉽독은 무시했다.

가벼운데다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말라뮤트는 달랐다.

대형견이 죽자고 달려드는 데 웃으며 반길 여유는 없었다.

온다.

다가온다.

벌써 지척이다.

날아오른다!

타이밍을 잰 태건은 흉흉한 이빨이 닿기 직전 몸을 비틀었다.

“이익!”

휙!

간발의 차이로 말라뮤트의 공격을 피했다.

그게 원통했는지 말라뮤트가 포효했다.

-크어엉!

태건은 그 짖음이 어이없었다.

“내가 만만하냐!”

터억!

팔을 무는 셔틀랜드쉽독을 거칠게 떼어냈다.

그리고 이번엔 태건이 먼저 말라뮤트를 향해 달려갔다.

“이리와, 짜샤!”

파바박!

낙엽을 치닫는 태건의 발걸음이 거칠었다.

말라뮤트는 그런 태건을 피하지 않았다.

-크엉!

파바박!

우렁찬 짖음과 함께 마주 달려왔다.

둘 다 급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일정 거리가 되자 말라뮤트가 사납게 뛰어올랐다.

쩌억!

이번에도 아가리를 벌리고 흉측한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태건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기다렸단 듯이 자진해서 팔을 내어줬다.

꽈악!

태건의 팔이 말라뮤트에게 물렸다.

역시나 방화복 덕분에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

태건의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진하게 변했다.

그리고 뒤에 있는 나무를 향해 그대로 돌격했다.

“아자자!”

퍼억!

말라뮤트의 등이 나무와 강하게 부딪쳤다.

-깨갱!

고통이 심했는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태건의 팔은 자유를 찾았다.

풀썩.

쓰러진 말라뮤트의 두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딱 그런 눈빛이었다.

태건은 쓰러진 말라뮤트를 재빨리 무릎으로 눌러 제압했다.

꽉!

“마이 턴.”

짧게 뇌까린 태건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가리를 향해 유성처럼 내리꽂기 시작했다.

쌔애앵!

공기를 가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봐주는 거 없다.

아니, 당한 만큼 돌려준다.

태건의 주먹엔 분노와 짜증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렇게 태건의 주먹이 말라뮤트에게 닿기 일보 직전이었다.

-끼잉!

말라뮤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태건의 귀를 파고들었다.

우뚝.

내리꽂던 주먹이 말라뮤트를 가격하기 직전 멈춰 섰다.

이어 태건의 두 눈 가득 서린 흥분이 사라졌다.

이성을 차린 태건이 움찔하며 내려다봤다.

…….

말라뮤트는 두 눈을 꼭 감고 다가올 아픔을 대비하고 있었다.

바들바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떨기까지 했다.

태건은 그제야 이상함을 직감하고 말라뮤트를 전체적으로 살폈다.

깡마른 몸.

푸석푸석한 털결.

영양실조의 증상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태건의 시선을 잡아끈 게 있었다.

“상처?”

몸 곳곳에 아문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털에 가려져 있지만 가까이서 관찰하니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무언가에 찔린 듯한 상처도 있었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도 있었다.

상처들 모두 아물 대로 아물어 있었다.

그럼 오래된 상처다.

문제는 산에서는 이런 상처가 날 수가 없단 사실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침과 동시였다.

“…….”

파르르.

엄습하는 최악의 상상에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특정 단어를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이 너무도 확실히 보였다.

적잖은 충격에 태건은 어렵게 뇌까렸다.

“의심부터 했어야 했는데…….”

이 들개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여기서 무리를 이루고 살고 있는지.

왜 사람들을 공격하는지.

…….

단순히 위험한 들개들이란 기사만 믿은 게 한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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