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71)화 (71/320)

71화

태건의 손이 그대로 멈춰 있었다.

말라뮤트는 시간이 지나도 아픔이 없자 실눈을 떠 바라봤다.

그리고.

꿈틀꿈틀.

태건에게서 빠져나가려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띵.

태건의 복잡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라뮤트를 어이없단 표정으로 바라봤다.

“틈을 주니까 바로 튈 궁리부터 하냐?”

“…….”

움찔.

말라뮤트는 태건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다시 얼음이 됐다.

“눈치 장난 아니게 빠르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태건은 등에 멘 가방부터 풀었다.

그 속엔 목줄과 와이어, 입마개 등등.

여러 용품들이 담겨 있었다.

“일단…….”

차릉.

태건이 목줄과 와이어를 꺼내들며 뇌까렸다.

그런 태건의 뒤는 무방비였다.

그 틈을 노리는지 셔틀랜드쉽독과 믹스견이 돌격했다.

-멍멍!

-까앙, 깡!

앙칼진 소리였다.

‘왜 내 친구 괴롭혀!’

‘당장 놔줘!’

마치 그런 느낌으로 들려왔다.

지척까지 다가온 두 마리 개는 그대로 태건을 공격했다.

쌔앵!

뛰어오른 그 모습이 용맹해 보이기까지 했다.

태건은 곁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타이밍에 맞춰 뒤로 팔을 힘차게 휘둘렀다.

퍼벅!

그 손짓에 얻어맞은 개들이 옆으로 붕 날아가 자빠졌다.

-깽!

-끼잉.

앓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태건은 그 개들을 묵직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뇌까렸다.

‘순서 기다려.’

스윽.

경고를 던진 태건은 다시 말라뮤트에게 집중했다.

눈 깜짝할 사이가 지나갔다.

태건은 손바닥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탁탁.

“그럼 됐고, 다음!”

곧장 가방을 챙겨 들고 주변의 다른 개를 향해 내달렸다.

그렇게 태건이 떠나간 자리엔 말라뮤트만이 남아 있었다.

목줄에 입마개까지 한 모습이었다.

-끼잉!

턱, 턱.

도망가려 용을 써 봤지만 튼튼한 와이어가 용납하지 않았다.

…….

풀썩.

몇 번 반항하던 말라뮤트는 금세 포기하고는 배를 깔고 엎드렸다.

한 대도 맞지 않은 데 대한 혼란도 느끼는 표정이었다.

한편.

태건은 또 한 번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공격했던 셔틀랜드쉽독과 믹스견을 어느새 나무에 묶어 놓았다.

“간단하네.”

휙!

태건은 싱겁게 미소 지으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의외로 태건의 주변은 한산했다.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 주변엔 다수의 들개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짜식들이 순서 지켜서 덤비라니까!”

“오지 마. 저리 가!”

둘 다 소리치고 있지만 썩 위협적이지 않았다.

-크르릉.

-으르렁, 컹!

둘러싼 들개들이 계속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쪽에선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황대산이 몇 마리의 개들과 혈투 중이었다.

“우어어어, 정의의 주먹을 받아랏!”

훙훙!

묵직한 주먹을 연신 휘둘렀지만 효과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그래도 영 허탕은 아닌 모양이다.

몇 마리의 개들을 나무에 묶어뒀다.

그 근처에선 고수현이 나무를 끼고 셰퍼드와 술래잡기 중이었다.

더 놀라운 건 고수현이 쫓는 입장이란 거였다.

“이리와, 너만 잡으면 5마리로 내가 선두란 말이다!”

-헥헥!

쫓기는 셰퍼드는 긴장했는지 혀를 늘어뜨렸다.

그러다 결국 셰퍼드는 멀리 도망쳤다.

파바박!

쏜살보다 더 빠른 속도는 사람이 절대 쫓을 수 없었다.

고수현은 바로 타깃을 바꿨다.

“에이씨, 그럼 너다. 너 이리 와!”

파바박!

근처에 있는 다른 개를 향해 돌격했다.

태건은 제각각의 단원들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개판이 다 있어.”

바로 그때였다.

자박.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 가까운 거리였다.

들개!

핑!

눈빛을 굳힌 태건이 힘을 줘 팔을 휘둘렀다.

“흡!”

그런데 휘두른 팔에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었다.

후웅!

허공을 가르자 태건이 멈칫했다.

“어?”

분명 뭔가 있었는데.

의아하게 생각할 때였다.

불쑥.

아래에서 뭔가 솟구쳐 올라왔다.

그건 들개가 아니라 이지성이었다.

그는 간담 서늘한 표정으로 퉁명하게 쏘아붙였다.

“확인도 안 하고 주먹질부터 하냐!”

“그런 선배는 다들 고생하는데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나는 겁니까?”

“난 놀았는지 알아?”

휙.

이지성이 뒤를 가리켰다.

태건은 슬쩍 어깨너머를 바라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몇 마리의 들개들이 각각 나무에 묶여 있었다.

“헐, 언제 저렇게.”

스윽.

태건의 황당한 시선이 이지성에게로 향했다.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머리를 써.”

“저쪽부터 해결하고요.”

“저긴 나도 머리가 아니라 몸을 써야겠네.”

이지성은 여전히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자세는 당장 뛰어갈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의 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태건이 먼저 내달리며 말했다.

“유 선배 부탁합니다!”

타다닥!

그런 태건의 뒤에서 이지성의 짜증이 들려왔다.

“저쪽이 더 까다로워!”

“그럼 먼저 찜하셨어야죠.”

인생은 원래 타이밍이다.

당당히 대답한 태건은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태건이 급격히 거리를 좁힐 때였다. 

‘뭐지?’

이상함이 엄습했다.

자신을 어디선가 지켜보는 시선이었다.

휙!

태건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봤다.

저 멀리.

수풀 사이에 하얀 물체가 엿보였다.

“……음, 저 녀석은?”

들개다.

자세를 낮추고 있어 식별이 어려웠다.

눈에 힘을 주고 유심히 살펴보자 진돗개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다가오지도 않고, 공격적인 분위기도 아니었다.

잔뜩 경계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지?”

태건은 갸웃했다.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유인책인가?

‘가 볼까?’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때였다.

“어엇, 어어엇!”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휙!

고개를 돌려본 태선이 미간을 구겼다.

“단장님!”

오광휘 단장의 양쪽 팔을 들개들이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그 앞엔 두어 마리의 들개들이 자세를 낮추고 달려들 준비 중이었다.

“야야야!”

오광휘 단장은 침착하려 했지만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태건의 머릿속에 일순간 진돗개가 싹 지워졌다.

오광휘 단장의 보호가 먼저였다.

“지금 갑니다!”

파바박!

태건은 재빨리 남은 거리를 좁혔다.

태건이 다가가자 추가 공격 기회를 엿보던 들개들이 돌아섰다.

-크르릉!

경계심이 극도로 올라 있었다.

태건은 와락 소리쳤다.

“뭘 째려!”

파바박!

그리고 마저 거리를 좁혀 가까운 들개에게 접근했다.

들개가 먼저 자세를 잡고 있다가 뛰어올랐다.

-크아앙!

휙!

미사일이 쏟아지는 듯 막무가내 공격이었다.

태건은 팔을 들어 막았다.

꽉!

들개가 방화복을 물자 그대로 팔을 땅에 찍었다.

“에잇!”

퍼억!

-깨개갱!

파바박!

비명을 지른 들개는 튕겨져 나가듯 줄행랑쳤다.

태건은 놓친 한 마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광휘 단장이 더 중요했다.

그가 지금 수세에 몰려 당황하고 있단 게 태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저 거리를 좁히며 소리쳤다.

“유기견 많이 잡아봤다면서 뭘 절절 매십니까!”

“짜샤. 걔들은 안 물었어!”

듣고 보니 옳은 소리긴 했다.

그래도 태건은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었다.

“기세부터 제압하면 편합니다!”

“쓰벌, 내 팔 묶인 거 안 보이냐!”

“가만히 있지 말고 휘둘러요!”

태건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 표정이 처연하게 변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더는 버티기 어렵단 걸 인정하고 있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 미안하다, 짜식들아!”

오광휘 단장은 이 순간에도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그래도 팔은 정확히 나무 쪽으로 휘둘렀다.

퍼벅!

나무에 부딪친 들개들이 앓는 소리를 짜냈다.

-깨갱!

-낑!

중형견들이라 그런지 충격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비틀비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그 사이 도착한 태건이 얼른 양손으로 붙들었다.

촤자작!

“세이프!”

“다른 놈들도 있잖아!”

“도망갔습니다……. 니들이 생선이냐, 가만히 있어!”

펄떡, 꾸욱!

태건은 반항하는 들개들을 힘으로 제압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세 마리 튄 거 같은데.”

“얘들 해결이 우선입니다.”

“따지기는, 그대로 있어……. 자자, 옳지. 착하지. 그렇지, 가만히 있어야지.”

마치 아이 다루듯 살살 구슬렸다.

목줄과 입마개를 채우는 손길이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태건은 그런 그를 쭉 지켜봤다.

“…….”

제압한 개들을 묶는 게 우선이라 조용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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