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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72)화 (72/320)

72화

곧 두 마리의 개가 더 나무에 묶였다.

오광휘 단장은 묶은 개들의 머리를 쓸어 줬다.

“착하지.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돼.”

입마개를 한 들개들은 불쾌한 울음을 흘렸다.

-으르릉.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대뜸 꿀밤을 먹였다.

따콩!

“짜식이. 어디서.”

낑.

결국 한 대 얻어맞고야 들개들은 조용해졌다.

태건은 그런 오광휘 단장을 보며 확신했다.

“개들 다칠까 봐 당하고 계셨던 겁니까?”

“얘들은 좋아서 이러고 있겠냐.”

“위험할 뻔했습니다.”

“알아, 아는데……. 에휴.”

짧은 한숨 소리에 애잔함이 가득했다.

태건은 그 숨소리만으로도 그가 뭘 눈치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장님도 보셨습니까.”

“그래. 몇 날 며칠을 굶었어. 그리고……. 빌어 쳐먹을.”

퐉!

괜히 발끝으로 낙엽을 걷어찼다.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그의 심성이 엿보였다.

태건은 그가 위험했다고 더 잔소리할 수가 없었다.

대신 다른 부탁을 했다.

“개들 좀 한 자리에 모아 주십시오.”

“어디 가.”

“저쪽이요. 가만 놔뒀다간 짜부 되겠습니다.”

쓴 소리를 하며 황대산 쪽으로 움직였다.

뒤에 남은 오광휘 단장은 묶인 개들의 와이어를 붙들었다.

이끄는 손길에 신중함이 느껴졌다.

“우린 저쪽으로 가자. 도망갈 생각 말고. 천천히 가.”

슥슥.

완급을 조절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태건이 추측한 대로 개를 다룰 줄 아는 모습이었다.

태건은 어느새 황대산 쪽에 다가가 있었다.

“대산 선배.”

“칫. 몇 마리를 놓쳤어.”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휘우.”

태건은 낮게 휘파람을 불렀다.

그가 포획한 들개들은 무려 여섯 마리나 됐다.

워낙 저돌적인터라 성과가 돋보였다.

‘이 선배도 보통은 확실히 넘어.’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태건은 크게 주변을 둘러봤다.

고수현 쪽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혼잡한 주변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다들 한데 모입시다!”

태건이 방향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알렸다.

잠시 후.

붙잡힌 들개들이 한 곳에 모였다.

따로 있을 땐 몰랐는데 모아 놓으니 꽤 많았다.

“거의 스무 마리 가까이 되네요.”

“못 잡은 게 열 마리가 넘는단 거겠지.”

오광휘 단장은 수풀 우거진 산을 둘러보며 안타까워했다.

한 마리라도 더 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심정은 태건도 다르지 않았다.

“다 잡았으면 좋겠지만 얘들도 머리가 있으니까요.”

“순순히 사람 품으로 돌아오기 쉽겠냐.”

내뱉는 목소리가 씁쓸했다.

옆에선 고수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낙엽을 휘젓고 있었다.

슥슥.

“칫. 또 졌어. 무려 세 마리나 태건이에게 뒤쳐졌어.”

“남자가 뭘 그런 걸로 의기소침하고 그래. 싹 털어 버려.”

황대산은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그들 옆엔 유중헌이 지친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난 개랑 안 친한데, 막 무섭고…….”

이지성은 좀 달랐다.

응급의약품을 꺼내 들개들을 치료 중이었다.

“그러게 왜 저 무식한 인간들한테 덤벼서 고생이냐.”

자신도 그 무리에 속했단 걸 망각한 읊조림이었다.

태건은 그런 단원들을 쭉 둘러봤다.

“개판은 개판인데…….”

“상 개판이지.”

오광휘 단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의 표현이 꼭 맞았다.

“맞습니다. 분명 오합지졸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야. 아직 부족하지만 말이야.”

“등을 맡겨도 될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태건이 묻자 오광휘 단장이 반문했다.

“네 생각은 어떤데?”

“아직 판단하긴 좀 이른 거 같기도 하고요.”

“확실한 건 최악은 아니란 점이지.”

“그건 인정입니다.”

태건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사박.

태건의 귀에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사박사박.

“음?”

귀를 쫑긋거렸다.

혼자만 들은 게 아닌 듯했다.

오광휘 단장이 산 아래쪽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들 올라오는데?”

“언제 들개들 잡았다고 공문 붙이셨습니까?”

“그럴 시간이나 있었냐?”

만담 같은 대화가 오갔다.

그건 잠시였다.

라텔은 아직 알려지면 안 된다.

그렇기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다급해졌다.

“다들 방화복 벗어요. 어서!”

“누가 올라오니까 최대한 등산객인 척 해.”

부룩.

두 사람이 솔선수범해 지퍼를 열었다.

고수현과 유중헌도 바빠졌다.

“갑자기 왠 등산객들이야.”

“어쩌지. 빨리, 서둘러야 해.”

휙휙.

두 단원의 손이 다급히 움직였다.

그때 이지성이 모두에게 말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방화복인데? 소방관이라고 광고할 일 있냐?”

“다 아는데요, 뭐.”

“우리가 아는 거지. 그러다 정체 탄로 난다고.”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타박했다.

그런 잔소리에도 이지성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불렀습니다.”

“뭘? 아니, 누구를!”

“아는 유기견센터가 있다고 했잖아요.”

“엥?”

턱.

태건을 비롯해 모두가 손을 멈췄다.

의아한 시선들로 가득했다.

이지성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럼 얘들을 우리가 어떻게 데려갈 겁니까?”

“그, 그건…….”

“태건, 방법 있어?”

이지성이 콕 집어 물었다.

태건의 청산유수 같은 대답도 지금은 턱턱 막혔다.

“그게, 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죠.”

“그래서 불렀어. 사정 설명했으니까 그냥 있어도 됩니다.”

“지성 선배, 대체 언제요?”

“네가 논다고 할 때.”

이지성의 대답에 뒤끝이 담겨 있었다.

태건은 그때가 언제지 떠올렸다.

‘그럼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게…….’

들개가 몇 마린지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하고 있었단 의미였다.

이지성이 다르게 보였다.

분명 삐딱하고 차가운 성격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기치 못한 침착함을 보였다.

얼마 후.

유기견센터 직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묶인 들개들에게 물과 간식부터 챙겨줬다.

-찹찹.

-쩝쩝.

들개들은 긴장하던 애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식탐을 보였다.

“많이 챙겨 왔으니까 천천히 먹어.”

“에그그.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슥슥.

유기견센터 직원들은 들개들을 쓰다듬기까지 했다.

놀라운 건 들개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움찔, 움찔.

순간순간 긴장했지만 위협은 없었다.

-낑낑.

혹시 손이 날아올까 움츠리며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떤 유기견센터 직원이 푸념 섞인 한탄을 흘렸다.

“이렇게 순하고 예쁜 애들인데…….”

공격성을 띨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지켜보던 태건은 어느새 등산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태건이 유기견센터 직원들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척.

“역시 다루는 게 도가 튼 분들입니다.”

“각자 전문 분야가 있는 법이지.”

똑같이 등산복 차림을 한 오광휘 단장의 굳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신경 쓰였던 부분이 많이 해결된 모양이었다.

그때 유기견센터 직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이제 데리고 내려갈까 합니다.”

“괜찮을까요?”

“보시다시피 원래 사람 손을 탔던 애들입니다. 큰 문제 없을 거 같습니다.”

그의 말에 오광휘 단장도 가볍게 수긍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참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사실 몇 번이나 포획 작전을 펼쳤는데도 못 잡았던 녀석들이거든요.”

“어제 저희들 중에 한 명이 용꿈을 꿨답니다.”

오광휘 단장은 무거운 분위기가 싫은지 웃자고 말했다.

유기견센터 직원도 빙긋 미소 지었다.

“그 분께 감사해야겠습니다.”

“내려갈 준비하시죠.”

“그럼.”

스윽.

직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 갔다.

그런 오광휘 단장과 직원 사이에 빠진 대화 내용이 있었다.

태건은 그걸 짐작하고 있었다.

‘너무 허기져 뭐라도 얻어 내려 공격한 거지.’

그게 차마 서로 말할 수 없던 대화의 일부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아쉬움을 보였다.

“싹 잡았음 더 좋았으련만.”

“다들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네요.”

태건의 말에 오광휘 단장이 쓰게 말했다.

그 사이 태건은 산속을 크게 둘러보고 있었다.

‘어디 한 마리라도 더…….’

그러다 한 지점에서 멈칫했다.

수풀 사이에 자세를 낮춘 하얀 들개.

진돗개다.

“어, 쟤?”

“어디……. 아는 애야?”

“흠, 좀 전에 아이컨택한 사이입니다.”

태건이 싱겁게 말했다.

오광휘 단장은 그 싱거운 말을 받았다.

“운명의 상대 아냐?”

“훗.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쟤도 애완견이었네. 목줄이 걸려 있어.”

그가 추가정보를 알려줬다.

태건도 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쟤는 사람을 무서워하기보다 뭐랄까……. 마치 관찰하는 거 같네요.”

“간 보나?”

“진돗개라면 가능하죠.”

그렇게 둘은 진돗개의 영특함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눴다.

그 잠깐 틈에 황대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철수한답니다!”

쩌렁쩌렁.

산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였다.

“알았어! 하여간 목청은 더럽게 크네.”

오광휘 단장이 마주 소리쳤다.

그 소리에 진돗개가 움찔하더니 몸을 돌렸다.

주시하고 있던 태건이 멈칫했다.

뒷다리에 혈흔이 털에 엉겨 붙어 있었다.

상처?

태건의 두 눈이 가라앉았다.

“음.”

사락.

진돗개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타이밍에 오광휘 단장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 ……진돗개, 어라? 갔네. 한 번 불러볼까 했는데 말이야.”

그는 혈흔을 못 본 듯했다.

절묘한 엇갈림이었다.

태건도 힐끗 본 거라 확신하긴 어려웠다.

그런데 계속 신경을 잡아끌었다.

‘눈빛이……. 달랐어.’

그 점이 계속 발을 떼지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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