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73)화 (73/320)

73화

결국 태건은 결정을 내렸다.

“먼저 내려가십시오.”

“잡아보려고?”

“가능하면요.”

태건은 부정하지 않았다.

오광휘 단장은 좀 걱정하며 답했다.

“아쉬운 건 매한가지니까. 그럼 먼저 내려갈 테니까 무리하지 마.”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오냐.”

스윽.

오광휘 단장은 싱겁게 답하며 움직였다.

이내 오광휘 단장부터 모두가 철수하기 시작했다.

양손에 한 마리씩 줄을 잡은 모습이었다.

“자, 얘들아. 이제 가자!”

“천천히, 힘주지 말고.”

툭툭.

줄을 가볍게 당기고 방향을 인도하며 멀어져 갔다.

다들 저만치 내려갔다.

태건은 거기까지만 지켜보고 몸을 돌렸다.

스윽.

돌아선 태건은 푸름으로 가득찬 산속을 크게 둘러봤다.

“이거 망망대해도 아니고.”

드넓은 산속에서 들개 한 마리 찾기란 사실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쫓는 건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도 어쩌랴.

진돗개의 상처, 그리고 처연한 두 눈이 계속 밟혔다.

“일단 좀 올라가 보자.”

척. 척.

이내 일행들과 반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적막한 산속에 태건의 발소리만 울렸다.

사락사락.

“오히려 좋지.”

인기척이 나야 어떤 들개라도 반응을 보일 터였다.

기왕이면 진돗개가 반응하길 바랐다.

그렇게 태건은 태연하게 올랐다.

산은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였다.

그리고 자신은 스모크점퍼 출신이다.

산속에서 행동 요령은 누구보다 빠삭했다.

뽀각, 뽀각.

중간중간 길을 잃지 않게 표시도 해 놓았다.

그렇게 좀 더 산기슭을 오르던 중이었다.

흔들흔들.

저 앞에 수풀이 자그맣게 흔들렸다.

“음.”

척.

자연스레 태건의 걸음이 멈췄다.

하얀 털이 설핏 보인 탓이다.

잠시 서서 기다리니 곧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진돗개였다.

“우리 뭔가 통한 거 같다, 그치?”

…….

진돗개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머쓱해진 태건은 자세부터 낮췄다.

이어서 손등을 내밀었다.

“나쁜 사람 아니야. 냄새 맡아봐.”

핸들러의 경험을 살려 정중한 첫 인사를 시도했다.

들개라면 대개 경계하거나 도망갈 터였다.

그런데 진돗개는 달랐다.

착, 착.

조심스레 한 걸음씩 다가왔다.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평범하지 않았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

마치 태건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는 듯했다.

태건은 아직 어떤 의미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머니 속을 뒤적였다.

“인사가 아니야? 그럼 간식 줄게. 간식.”

스윽.

몰래 슬쩍 챙겨온 육포 간식을 하나 내밀었다.

진돗개는 바로 관심을 보였다.

-헥헥.

그런데 다가오다가 머뭇거렸다.

척.

뭔지 모를 짙은 망설임이 느껴졌다.

반면 태건은 가까워진 만큼 살펴보기 좋았다.

‘역시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 그런데, 어?’

관찰하던 태건의 두 눈이 살짝 굳어졌다.

진돗개는 다른 개들에 비해 털이 유독 푸석푸석하고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퀭하고 거무죽죽한 눈두덩이는 극심한 영양결핍을 의심케 했다.

거기에 뱃살도 조금 늘어져 있었다.

“쏘리. 암컷이었네……. 잠깐, 암컷?”

싱겁게 사과하던 태건의 표정이 돌연 심각해졌다.

그때였다.

멈춰 있던 진돗개가 먼저 몸을 돌렸다.

…….

뒷모습을 보여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힐끔, 힐끔.

자꾸 고개 돌려 태건을 반복해 바라봤다.

뭔가 의미 깊은 행동이었다.

…….

파르르.

단지 서 있는데도 몸이 떨리고 좌우로 미미하게 흔들거렸다.

정작 태건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진돗개의 뒷다리에 가득한 혈흔이 보였다.

털과 흙이 뒤범벅되어 엉망이었다. 혈흔의 시작점을 따라 올라간 태건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너, 너 설마……. 새끼 낳았어?”

제대로 뒤처리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할 수 없었던 듯했다.

저런 영양 상태로 출산했다면 정상일 수가 없었다.

파르르.

추측한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첩첩산중, 영양결핍, 출산, 새끼…….

머릿속에 단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 단어들이 뒤섞이더니 하나가 됐다.

- 응급.

- 에에엥!

태건의 머릿속에 출동벨이 환청처럼 따갑게 울렸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건이 눈빛을 굳히며 진돗개에게 말했다.

“안내해라.”

상대는 들개다.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분명히 그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척, 척.

진돗개가 기다렸단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힐끔.

몇 걸음 가서 돌아보는 행동까지 했다.

따라오란 의미가 확실했다.

진돗개가 영특하다더니.

이 정도면 거의 사람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았다.

그러나 감탄의 장소로 적합하지 않았다.

뜻이, 마음이, 의미가 통했다면?

“가자!”

타닥.

짧게 외친 태건이 뛰기 시작했다.

진돗개도 그걸 보더니 비틀거리면서도 앞서 달려갔다.

관악산은 괜히 악산이 아니었다.

산길을 오르는 곳곳에 암반 지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탁, 타닥!

앞선 진돗개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딛고 살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태건이 뒤따르고 있었다.

‘안 좋아, 느낌이 안 좋아.’

계속된 불안감이 자꾸만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터덕, 터덕.

“훅, 훅.”

산을 계속 내달린 태건의 숨이 가빠오고 땀도 흥건해졌다.

그러던 중 다른 암반지대에 들어섰다.

차작.

바닥에 마른 모래가 깔려 있었다.

그 모래는 진돗개에 엉겨 붙은 모래와 흡사했다.

“헉헉, 다 왔나?”

뇌까린 혼잣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진돗개가 커다란 바위 앞에서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아래엔 엇갈린 바위틈이 존재했다.

-헥, 헥.

진돗개의 숨소리가 어느새 거칠어져 있었다.

‘개가?’

지칠 거리가 아니었다.

태건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그때 진돗개가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힐끔.

마치 여기란 듯 돌아보는 시선이 키포인트였다.

“오케이.”

척, 척.

알아들은 태건도 자세를 낮춰 바위틈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비릿한 냄새부터 풍겨왔다.

“음? 음…….”

슥슥.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들어갔다.

저 앞에 진돗개가 보였다.

할짝할짝.

고개를 낮춰 뭔가 핥고 있었다.

태건은 좀 더 다가가고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엇!”

예상대로 새끼들이었다.

6마리로 보였다.

새끼들은 전부 깨끗했다.

그건 모성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잉, 이잉.

새끼들은 젖 냄새가 나는지 진돗개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움직임도 활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2마리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진돗개는 태건을 빤히 바라봤다.

…….

경계도 없었고, 울음도 없었다.

서글프고 우울한 눈빛만 가득했다.

태건이 좀 더 다가갔다.

“데려가란 거겠지?”

슥슥.

…….

진돗개는 그저 바라만 봤다.

새끼들을 오늘을 장담할 수 없는 야생의 삶이 아닌, 인간에게 인도한다는 느낌이었다.

이내 태건은 새끼들과 조우할 수 있었다.

“아구구, 귀여운 녀석들.”

조심조심.

부드러운 손길로 움직임이 없는 새끼를 슬쩍 붙잡았다.

그 순간 태건의 손에 느껴지는 건 차가움이었다.

“어?”

떠안아 봤다.

추욱.

새끼는 힘없이 늘어졌다.

순간 태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 녀석……. 설마.”

슥.

얼른 새끼를 귀에 바짝 들이댔다.

…….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생명의 원천이 되는 미약한 박동소리가…….

이 새끼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새끼의 배는 너무도 홀쭉하고 깡말라 있었다.

태건은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

강아지 배에 탯줄이, 그것도 아직 축축한 탯줄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을 터였다.

못 먹어서 죽을 수 있다.

약해서 형제들에게 밀릴 수도 있다.

자연의 법칙이 그러했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이런 법은 없었다.

태건이 얼어붙어 있던 그때였다.

덥석.

진돗개가 축 늘어진 새끼를 물었다.

그리고 돌아서 터덕터덕 밖으로 향했다.

…….

진돗개가 내딛는 걸음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이미 숨을 거둔 자식을 제 손으로 묻으러 가는 길이다.

그 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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