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74)화 (74/320)

74화

그와 동시였다.

띵!

태건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롭게 되살아났다.

머릿속에 가득했던 혼탁함이 한순간 날아갔다.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그 순간 대뜸 한 마디를 내뱉었다.

“멈춰!”

…….

우뚝.

놀랍게도 진돗개가 그대로 멈춰 섰다.

등을 돌린 모습 그대로였다.

태건은 그런 진돗개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대로 있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대로 있어!”

…….

힐끔.

진돗개가 고개를 돌렸다.

늘어진 새끼가 여전히 물려 있었다.

진돗개의 눈빛.

공허하고 처연함으로 가득한 그 눈빛.

마주한 순간, 태건은 이제야 감이 왔다.

‘남은 새끼들이라도 살려주세요.’

그 속엔 자신조차 없었다.

스스로 짐이 될 걸 직감하고 죽은 새끼와 떠나려 한 모양이었다.

태건은 그걸 분명히 느꼈다.

어떻게?

그건 모른다.

어쩌면 진돗개에게서 죽음의 향기를 맡았는지도 몰랐다.

태건도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그래서 가슴 깊숙이 느껴졌다.  

정작 태건은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도 관심 없었다.

진돗개를 향해 고개부터 저었다.

절레절레.

“가지 마. 그대로 있어. 거기 그대로.”

…….

진돗개도 태건이 전한 마음을 느낀 모양이다.

그 자리에 꿈쩍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제야 태건은 시선을 돌렸다.

다른 새끼들.

상태가 좋을 리 만무했다.

재빨리 가까운 강아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턱턱.

“너도, 너도?”

한 마리씩 들어볼 때마다 태건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이잉.

-끼이이.

울음소리가 희미했다.

배는 홀쭉했고, 발버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체온도 낮았다.

전부 마찬가지다.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제대로 먹지 못한 거 같았다.

이대로라면 언제 또 숨을 거둘지 모른다.

어느새 태건은 마지막 새끼를 들어 올렸다.

움직임이 미미했던 또 다른 새끼였다.

힘이 없어 축축 늘어졌다.

까딱, 까딱.

바동거리는 발짓이 간지럽지도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전화해서 누구라도…….”

태건은 산 아래 있을 전문가들을 떠올렸다.

그때였다.

-히이이, 히이이.

힘없는 새끼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살고자 하는 발악.

최후의 발버둥.

분명했다.

그때 진돗개가 다가왔다.

입안이 비어 있었다.

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숨이 희미한 새끼를 물어가려 했다.

…….

이 강아지도 가망이 없단 행동이었다.

진돗개가 늘어진 새끼를 입에 담기 일보 직전이었다.

휙!

태건이 얼른 손을 옆으로 옮겼다.

“누구 마음대로!”

찌릿!

오히려 진돗개를 째려봤다.

누가 마음대로 죽게 놔둔다고 했나.

태건은 소방관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요구조자를 방치하지 않는다.

그게 꼭 사람이어야 한단 법은 없었다.

지금 요구조자는 진돗개와 갓 태어난 새끼들이다.

그러니 살린다.

결심과 동시였다.

태건은 재빨리 늘어진 새끼의 가슴에 손을 대고 CPR을 시작했다.

슥, 슥.

힘을 줄 수도 없다.

그냥 가볍게 문지르는 수준이었다.

“제발, 제발.”

그것조차도 신중을 기해야 할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손안에 자그마한 생명은 아직 그 노력을 알아주지 못했다.

-힉, 힉.

숨소리가 더 안 좋아졌다.

생명이 꺼져 간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방법?

모르겠다.

이제 더 어떤 방법을 시도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아나, 숨 쉬어!”

간절하게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런 태건은 어느새 차가워지는 새끼의 몸을 문지르고 있었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새끼의 반응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히에, 이이…….

숨이 넘어가려 했다.

죽음이 이미 다가와 있단 느낌까지 받았다.

한 걸음.

죽음까지 거리다.

아니, 반걸음도 되지 않을지 몰랐다.

다급해진 태건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에잇!”

이어서 새끼의 주둥이에 얼른 입을 포갰다.

인공호흡이다!

“스으으.”

숨을 최소한으로 억눌러 흘렸다.

그렇게 숨을 불어넣은 후엔 다시 CPR이었다.

그게 반복됐다.

한 번, 두 번…….

계속 반복됐다.

태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데려가는 건 아니잖아요!’

어미 젖 한 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힘차게 한 번 울어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차갑게 식어갈 순 없었다.

태건은 마음으로 빌며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다 잠깐 숨을 확인하려 할 때였다.

스윽.

진돗개가 다가와 새끼를 부드럽게 핥았다.

…….

핥짝.

이제 일어나란 듯이.

다소 거칠면서도 섬세하게 핥았다.

자신조차 포기했던 새끼였다.

태건의 행동을 지켜보다 이렇게 나선 거였다.

그건 포기한 새끼를 다시 한 번 살려보겠단 심적 변화를 의미했다.

“그래. 짜샤. 니 새끼잖아. 더해, 더.”

태건은 진돗개를 응원했다.

그리고 지금껏 해온 인공호흡과 CPR도 틈틈이 병행했다.

태건과 진돗개의 행동이 반복되던 중이었다.

새끼의 숨소리가 툭 터져 나왔다.

-키이잉.

꿈틀.

미약한 움직임에 이어 희미한 숨소리가 반복됐다.

-히이, 히이.

작고 약하지만 다시 숨을 쉬었다.

태건은 어느새 새끼를 귀에 바짝 대고 있었다.

톡, 톡.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그거까지 확인하고야 태건의 표정이 환하게 급변했다.

“살았어. 살았어!”

꽈악.

태건은 옆에 진돗개를 반사적으로 끌어안았다.

…….

진돗개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나 진돗개의 시선도 미약한 숨을 내쉬는 새끼에게 향해 있었다.

축축.

눈가가 축축해졌다.

착각이 아니라면…….

진돗개도 기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말 그대로 일단 위기를 넘긴 거였다.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빨리 벗어나 새끼들을 케어할 장소로 가야 했다.

태건은 새끼들부터 얼른 챙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챙긴 건 죽은 새끼였다.

바위틈 입구에 놓여 있었다.

스윽.

“더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하다.”

태건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사과했다.

그리고 경건하게 손수건으로 감싸 등산복 주머니에 조심히 넣었다.

부욱.

지퍼까지 올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게 대비했다.

그때였다.

스윽.

다가온 진돗개가 죽은 새끼가 든 주머니를 바라봤다.

-끼잉, 끼잉.

앓는 소리를 냈다.

이어서 주머니를 핥았다.

버리려 했던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비는 느낌이었다.

태건은 이젠 자연스레 진돗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위로의 손길이었다.

“일단 산 녀석들부터 챙기자.”

…….

진돗개는 태건을 그저 빤히 바라만 봤다.

그 눈빛엔 전에 없던 미묘함이 담겨 있었다.

그 사이 태건은 다른 새끼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두 두 손에 품은 태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단……. 이런.”

새끼들의 입이 너무 말라 있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이대로 거친 산길을 내려간다?

그 충격을 견뎌낼 체력조차 없을 터였다.

진돗개의 젖이?

꾸욱.

살짝 짜 봤지만 말라 있었다.

말라도 너무 말라 물기가 희미했다.

“아…….”

문제는 태건도 먹일 게 없었다.  

주머니에 간식이 있지만 딱딱한 육포였다. 그리고 너무 어린 새끼들이라 설사 씹어줘도 먹을 수 없었다.

태건은 육포를 꺼내 바라봤다.

그러다 눈을 꾹 감고 입에 모두 밀어 넣었다.

“……에잇!”

우적우적.

씹고 또 씹었다.

침을 삼키지 않고 계속 씹었다.

맛?

따지고 생각할 정신은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사람이 먹으라고 만든 건 아니란 점이었다.

어느 정도 입속에 침이 고이자 새끼들의 입에 육즙을 조금씩 흘렸다.

스륵. 스륵.

‘임시방편이야.’

정상적인 육아방법이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당장 어떻게든 영양분을 공급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할짝할짝.

다행히도 새끼들은 잘 받아먹었다.

태건의 방법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끼잉, 잉잉.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티끌만큼 커졌다.

아주 약간 힘이 난 모양이다.

그 약간의 힘이면 내려갈 수 있었다.

‘다행이야.’

임기응변이 통하자 태건도 약간 안도가 됐다.

곧이어 태건의 입에서 육즙 빠진 육포 덩어리가 나왔다.

“이건 너.”

스윽.

옆으로 건네자 진돗개가 기다렸단 듯이 날름 먹었다.

…….

꿀꺽.

게 눈 감추듯 목으로 넘겼다.

배고 얼마나 고플까.

그런데도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태건은 진돗개를 향해 싱겁게 중얼거렸다.

“네가 대단한 거냐, 아니면 엄마가 되면 대단해지는 거냐.”

어느 쪽이든 큰 상관은 없었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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