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75)화 (75/320)

75화

곧 태건이 바위틈에서 나왔다.

한 손에는 진돗개가 안겨 있었고, 다른 손바닥 위엔 새끼들이 꼬물꼬물 뭉쳐 있었다.

태건의 품에 안긴 진돗개의 폼이 은근히 자연스러웠다.

“좀 안겨 본 자세가 나온다?”

…….

진돗개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 진돗개를 향한 태건의 눈빛이 곧 무거워졌다.

일부러 안고 가려는 이유가 있었다.

‘너라고 무사하겠냐.’

그리고 새끼가 가면 어미도 같이 가는 게 당연했다.

더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얼른 가자.”

벌어둔 시간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타다닥.

태건은 조심을 기하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길의 시작은 좋았다.

그러나 시작뿐이었다.

-힉, 힉.

새끼들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게 변해 갔다.

-낑낑.

새끼들을 향한 진돗개의 눈빛과 울음도 우울해졌다.

상태가 다시 급속도로 나빠지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직감했다.

오래 버틸 수 없다.

지금 멈춘다고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들개들을 포획했던 장소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에라이!”

타다닥!

태건은 대번에 속도를 올려 거칠게 산길을 내달렸다.

한편.

등산로 입구에 등산복 차림의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 앞엔 펜스가 설치된 1톤 트럭이 존재했다.

들개들은 적재함에 안전하게 탑승해 있었다.

-끼잉, 끼잉.

앓는 소리 속에 공포심이 가득했다.

이지성이 오광휘 단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 실었습니다.”

“그럼 보내……. 잘 좀 부탁합니다!”

꾸벅.

오광휘 단장이 유기견센터 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내 트럭이 떠나갔다.

부웅.

저만치 멀어지자 오광휘 단장이 등산로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태건이 도착하지 않은 탓이다.

“얘가 늦네.”

“올라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대산이 걱정을 보이자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저었다.

“산속에서 자란 녀석이라 길을 잃진 않았을 거야.”

“도망친 놈들이 떼로 덤비는 거면 태건이라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황대산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와 동시였다.

사삭.

고수현이 잽싸게 나타나 눈에 불을 켰다.

“그게 정말입니까. 강태건, 에이스 자리에 욕심 없다더니 일부러 우리만 내려보낸 거였어!”

“대산 선배 말대로면 올라가 봐야죠. 태건이도 무서울 거예요.”

유중헌까지 다가와 걱정을 보탰다.

웅성웅성.

순식간에 주변이 북적북적거렸다.

오광휘 단장은 한 쪽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귀찮아했다.

“제발 한 놈씩 떠들어 줄래?”

그때 이지성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엇, 저기 옵니다!”

“이번엔 지성이냐? 넌 또 뭔데?”

오광휘 단장은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하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이지성의 반응이 이상했다.

“……대체 뭐야?”

오광휘 단장이 바라보다 똑같이 갸웃거렸다.

“어라? 진돗개를 안고 있고, 손은……. 왜 저러고 있어?”

“왜 저렇게 서두르는 걸까요.”

황대산도 궁금증을 가득 내보였다.

그때 고수현이 절규했다.

“크으. 역시 혼자 전공을 올리려고 남아있던 거였습니다!”

“아씨, 고수현이 입 좀 닫아!”

인상 찌푸린 오광휘 단장이 빽 소리쳤다.

같은 시각.

차자작!

거칠게 하산하는 태건의 눈에도 라텔이 보였다.

동시에 소리쳤다.

“헉헉. 단장님, 다들 빨리!”

“뭔데?”

“빨리 오라니까!”

쿠르릉.

태건의 거친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다들 그제야 심각한 상황인 걸 직감한 모양이다.

오광휘 단장이 움직이며 손짓했다.

“나를 따르라!”

목소리에 아직 여유가 남아 있었다.

태건과 단원들은 플래카드 앞에서 만났다.

“쓰읍, 헉헉. 얘부터!”

태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돗개부터 황대산에게 넘겼다.

“어어엇. 아, 알았어.”

황대산은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오광휘 단장과 다른 단원들 시선은 딴 곳에 가 있었다.

태건의 손바닥이었다.

꼬물꼬물.

위태로운 강아지들이 손바닥에 가득했다.

오광휘 단장은 질문부터 했다.

“히익, 이게 웬 강아지들이야?”

“……상태가 이상한데요.”

고수현이 갸웃했다.

그 사이 유중헌은 단계적으로 놀라워했다.

“어어어. 어어? ……아앗!”

마지막으로 이지성이 눈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비상!”

본 순간 다들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온 모양이다.

강아지들 상태는 그만큼 좋지 않았다.

그때 태건이 거친 숨을 삼키며 소리쳤다.

“흡!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빨리!”

“일단 한 마리씩 나눠!”

사삭.

순식간에 강아지들을 각자의 손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부와앙!

승합차가 스포츠카처럼 도로를 질주하기 했다.

다들 각자 맡은 강아지들을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슥슥.

“얘, 체온이 왜 이렇게 낮아.”

“숨이 거칠어, 얘야, 이러지 마. 숨 크게 들이마셔야지!”

“입을 뻐끔거리는데 줄 게 없어. 미치겠네!

강아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황대산이 진돗개의 혈흔을 닦아주다 놀랐다.

“얘 아직 출혈이 진행 중입니다!”

“뭐라고요? 출산한지 몇 시간은 됐을 텐데요!”

태건이 추측을 소리쳐 답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뭐? 이런 썅, 유중헌이 뭐해!”

“달리잖아!”

“더 빨리, 서둘러 새꺄!”

두 사람은 멱살 잡을 목소리로 따가운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유중헌이 소리쳤다.

“으앗, 방지턱!”

“뭐?”

“에라이, 몰라!”

방지턱을 그대로 내달려 넘어 버렸다.

내부로 충격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왔다.

터엉!

“끄윽!”

“으으으.”

“아윽, 아아. 아니야. 얘 괜찮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손안에 연약한 생명에겐 따스하게 대했다.

그때 이지성이 옆에 둔 휴대폰을 보다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유 선배, 저 앞에 동물병원 있습니다!”

“오케이. 꽉 잡아!”

터엉!

또 방지턱을 달리는 속도 그대로 넘어 버렸다.

그만큼 아무것도 눈에 뵈지 않는 듯했다.

산속에선 다소 삐걱거리던 이들이다.

그런데 진짜 위기가 닥친 순간 돌변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태건은 그걸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제발, 다 왔어. 조금만 힘 내.”

슥, 슥.

유중헌의 몫까지 두 마리 새끼를 돌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멍냥이 동물병원.

도롯가에 위치한 자그마한 규모의 동물병원이었다.

수의사와 간호사들, 미용사까지.

모두가 오늘도 변함없이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의사가 데스크로 나와 텅텅 빈 로비를 둘러보며 물었다.

“오늘은 딱히 예약 없죠?”

“네. 요즘 너무 한가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동물병원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에휴.”

내뱉는 한숨이 땅을 꺼뜨릴 거 같았다.

“…….”

간호사들도 이럴 땐 눈치가 좀 보이는지 조용했다.

그렇게 조용한 동물병원이었다.

그런데 그 고요함이 곧 엄청난 격변을 맞이했다.

출입문이 거칠다 못해 뜯겨질 지경으로 열렸다.

벌컥!

열린 문으로 오광휘 단장이 럭비 하듯 어깨로 밀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수의사, 수의사 나와!”

다급한 부름에 수의사의 얼굴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수의사도 의사였다.

“응급입니까?”

대번에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다.

그때였다.

“의사 선생님!”

“우리 애들 좀 봐주세요!”

“수의사님, 응급입니다!”

우르르.

태건부터 단원들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

병원 식구들은 들이닥친 그들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태건이 얼떨떨해하는 의료진들에게 소리쳤다.

“저기 애 엄마하고 애들 좀 봐주세요, 빨리요!”

“갑자기……. 저, 접수부터…….”

“접수 같은 소리하지 말고, 보기부터 하란 말입니다!”

불쑥!

태건은 물론 단원들이 동시에 강아지들을 내보였다.

당황해하던 수의사 표정이 돌변했다.

“얘들 뭡니까. 도대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한 겁니까!”

“나중에 따지고 뭐라도 해주세요. 빨리, 어서!”

터억!

태건은 강아지를 수의사에게 더욱 가까이 내밀었다.

그 거칠음엔 강아지를 수의사 눈에 넣어버릴 정도의 과격함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황대산의 놀란 목소리가 건물을 뒤흔들었다.

“헤에엑, 이, 이거 뭐야!”

휘휘휙!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바닥에 혈액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히잉, 히이잉.

그의 품에 안긴 진돗개가 흘리는 피였다.

태건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쳐 물었다.

“황 선배, 뭡니까!”

“몰라. 계속 조용했는데……. 갑자기 피를 한 바가지 쏟아냈어!”

휙!

오광휘 단장이 비집고 나와 다급히 물었다.

“니가 물었냐?”

“제가 개를 왜 물어요!”

“아닌데 갑자기 왜 피를 쏟아, 짜샤!”

오광휘 단장은 눈을 부릅뜨기까지 했다.

그때 수의사가 버럭 소리쳤다.

“이 사람들이 지금 병원에서 뭐하는 겁니까!”

“얼른 보라니까!”

“보고 있……. 뭐야. 하혈이잖아. 도대체 당신들 뭐야.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대체 어떻게 다룬 거야!”

수의사가 눈에 불을 켜며 야단쳤다.

다들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을 따질 때가 아니라 넘어갔다.

태건이 얼른 대표로 나서 짧게 설명했다.

“조금 전 관악산에서 발견해 데려온 애들입니다.”

“그 들개들 말입니까? 아무튼 그래서요.”

“처음 봤을 때…….”

줄줄.

태건은 최대한의 정보를 최소한으로 압축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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