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모든 설명을 들은 수의사가 재빨리 청진기를 진돗개 복부에 댔다.
꿀렁.
“출산을 했는데 반응이 이래? 그렇다면…….”
“저기요. 선생님.”
태건이 조심스레 부르며 대답을 바랐다.
그때였다.
휙!
수의사가 거칠게 청진기를 내리며 소리쳤다.
“당장 응급수술 준비해요!”
“왜, 왜 그러십니까?”
“안에 출산 못하고 죽은 새끼가 있습니다. 빨리 꺼내지 않으면 어미도 위험합니다.”
수의사가 두 눈에 힘을 줘 말했다.
고수현이 얼른 튀어나와 따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확실해요?”
“초음파나 CT로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못 믿겠음 큰 병원으로 가셔도 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요.”
“아니, 무슨……. 오구구, 아니야……. 아이씨, 얘들은 어쩌라고요!”
얼른 새끼를 어르던 고수현이 마저 소리쳤다.
태건도 순간 갈팡질팡했다.
다른 동물병원으로 옮길 시간이 없단 건 스스로가 가장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그럼 당장 수술……. 아니, 새끼들은…….”
갑자기 어미와 새끼들을 두고 저울질하게 된 꼴이 돼 버렸다.
이내 스스로 자책했다.
‘언제부터 그런 저울이 있었어.’
생명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은 없다.
양쪽 다 무조건 살려야 한다.
“…….”
띵!
태건의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였다.
태건은 곧장 수의사에게 부탁했다.
“선생님, 빨리 수술해 주세요.”
“그럼 새끼들을 포기…….”
수의사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건이 잘라 버렸다.
“애들은 저희가 케어하겠습니다.”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오광휘 단장의 눈빛도 반짝였다.
“그래. 우리가 있었네!”
“뭐부터 해야 합니까. 빨리 좀 알려줘요!”
기다리던 고수현도 답답했는지 수의사에게 따졌다.
일순간 변한 분위기에 수의사가 당황했다.
“뭐 이렇게 앞뒤 없이 달려드는 분들이…….”
“저희가 좀 그렇습니다.”
태건이 대답하자 이지성이 시크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라텔이지.”
끄덕.
모두 대답 대신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모두의 동의로 상황은 급전개됐다.
“어미 개, 응급수술 들어갑니다!”
우르르.
수의사의 외침과 함께 간호사들이 수술실로 직행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엔 애견 미용사만 자리하고 있었다.
“…….”
스윽.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 시선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엇, 어……. 전 잘 몰라요. 히잉.”
미용사는 당장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뭔가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그 판단을 내린 태건은 재빨리 모두에게 소리쳤다.
“각자 응급처치 시작하세요!”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은 고수현이 소리쳤다.
“안 그래도 하고 있어!”
슥슥.
두 손으로 계속 새끼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다.
그 옆에선 유중헌이 앉아 있었다.
“얘 어떻게 하지. 막, 막, 뭘 찾는데. 어어…….”
새끼의 간절한 발버둥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렇다고 두 손을 놓은 건 아니었다.
고수현의 행동을 보며 그대로 따라했다.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 또한 아무 데나 일단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다섯 마리의 새끼를 각 단원들이 한 마리씩 전담 마크 중이었다.
태건도 전담하는 새끼를 계속 쓸며 자극했다.
슥슥.
산에서 인공호흡까지 했던 바로 그 새끼였다.
잠시 올라오던 체온이 다시 떨어진 채였다.
-히잉, 이이이…….
울음소리가 흐느낌처럼 들려왔다.
산속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동물병원은 강아지를 케어할 수 있는 용품으로 가득했다.
태건은 재빨리 유일하게 자유인인 황대산을 불렀다.
“대산 선배, 배변 패드하고 온열기 좀 준비해 주십시오.”
“아니야. 황 선배, 초유라고 있을 겁니다. 그거부터요!”
이지성이 툭 끼어들어 외쳤다.
그런 그의 손은 새끼를 문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먹을 게 우선이다.
태건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알았어!”
우당탕.
황대산은 미용사에게 다가가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초유 주세요.”
“그그그, 저도 잘…….”
“에잇, 그럼 나와요!”
휙!
미용사를 젖힌 황대산은 진열장을 뒤적였다.
말이 뒤적이는 거지, CCTV로 본다면 강도라고 오해할 움직임이었다.
우당탕.
그래도 성과가 있었는지 초유를 높이 들어 올려 소리쳤다.
“찾았어, 가져갈게!”
“통으로 어떻게 먹입니까. 소분해서 나눠주세요!”
“그게, 그러니까……. 그렇지. 주사기!”
황대산이 얼른 아이디어를 냈다.
그런 순간적인 응용력과 센스가 나쁘지 않았다.
곧 태건과 단원들은 초유가 담긴 주사기를 받았다.
태건은 새끼 주둥이에 조심스레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똑, 똑.
“자, 천천히 먹자. 급하게 먹으면 안 돼.”
애정어린 한 마디는 응원이었다.
그런데 새끼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히이, 히이…….
앓는 소리만 낼 뿐, 초유를 먹지 못하고 흘렸다.
몸에 힘이 빠져 흐느적거렸다.
너무 체력이 떨어진 거였다.
초유를 먹을 기력조차 없었다.
태건은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다.
“안 돼, 이러지 마. 먹을 수 있어. 조금이라도 먹자. 응?”
똑, 똑.
애원하며 초유를 계속 흘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슥슥.
손가락으로 몸을 문지르며 자극을 더하기도 했다.
태건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곳 동물병원 로비 전체가 중환자실이 되어 있었다.
그만큼 새끼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거 먹어야 돼, 그래야 살아. 짜샤.”
“조금만이라도, 한 입이라도 일단 먹자.”
“얘, 얘야. 안 돼. 정신 차려!”
누가 하는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담당하는 새끼에게 모든 걸 집중하고 있었다.
황대산이라고 구경만 하지 않았다.
사삭.
“배변 패드 필요하다고 했지!”
탁!
“여기 온열기 틀었습니다. 이쪽으로 데려와요!”
혼자 정신없이 움직이며 필요한 걸 즉각 채워줬다.
모두 노력했지만 새끼들의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태건도 마음이 너무 다급했다.
“진짜 미치겠네!”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다.
그때 온열기 앞에 있던 이지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애들 이쪽으로, 어서!”
뜬금없는 소리다.
이유도 말하지 않았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이들에겐 트집 잡기 좋은 외침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선 오광휘 단장이 단호히 소리쳤다.
“모여!”
사삭.
태건과 모두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모두 온열기 앞으로!”
“가잖아!”
그 태도가 다급한 시선만큼 신속했다.
그리고 모이는 그 자체의 행동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가 온열기 앞에 모였다.
이지성은 그제야 이유를 말했다.
“저체온증입니다. 체온부터 올려야 합니다!”
“그러네!”
스윽.
모두 손을 뻗어 새끼를 온열기 앞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온열기의 열이 상당히 강했다.
“으으.”
“아으.”
후끈을 넘어서 화끈함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누구도 손을 빼지 않았다.
그 뜨거움에 질색한 태건이 얼른 소리쳤다.
“애들 통구이 만들 겁니까. 적당히 뒤로 빼요!”
“아차차!”
휙!
다들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새끼들을 뒤로 물렸다.
한 번씩 어수룩한 모습이 확실히 독특했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하나 더 부탁했다.
“배변 패드 깔고 애들 모아. 새끼들은 한데 뭉쳐 놓는 게 더 좋아!”
“맞다. 얼른 모읍시다!”
휘휙.
말이 끝나면 행동은 한순간이었다.
곧 온열기 앞에 새끼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너무 뜨겁지 않을 거리 유지는 필수였다.
새끼들의 울음 소리는 아직 희미하고 움직임도 적었다.
-이잉, 이이…….
-끼이이…….
단원들은 둘러앉아 턱을 받친 채,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고, 이 녀석들아. 기운 좀 차려주라.”
“여기 너무 건조해요. 가습기, 빨리!”
“초유도 다시 가져와. 일단 흘려보자고. 시도는 계속 해야 될 거 아니야!”
하나, 둘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딸랑.
병원 출입문이 예고 없이 열렸다.
후끈한 실내 공기 속으로 바깥바람이 들어왔다.
그걸 느낄 찰나였다.
홱!
일시에 고개 돌려 들어오는 누군가를 노려 봤다.
“쓰벌, 어떤…….”
“누가 문을 벌컥벌컥 열고…….”
“뭐야, 도전이냐?”
으르렁.
이까지 드러내며 살벌함을 흩뿌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사자에게도 시비를 거는 ‘라텔’이 연상됐다.
오죽하면 들어오려던 누군가가 놀라 뒷걸음질 쳤다.
“죄, 죄송합니다!”
턱.
재빨리 줄행랑쳐 도망갔다.
누군지 몰라도 간담이 서늘했을 터였다.
아무도 그 부분까지 고려치 않았다.
스윽.
다시 새끼들을 바라봤다.
잔뜩 성난 표정들이 단숨에 처연함으로 돌변했다.
“에이그, 어째.”
“정신 좀 차려 봐.”
안타까워하는 모습엔 어떤 가식도 없었다.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었다.
출입문엔 어느새 황대산이 다가가 있었다.
“이걸 진작 붙였어야 했는데.”
턱!
그가 붙인 건 큼지막한 복사용지였다.
-응급수술 중.
들어오지 마시오.
촤르륵.
블라인드를 내려 시야도 차단했다.
병원을 아예 봉쇄한 조치라고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누가 찾아와도 의료진이 없으니 진료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문제 될 정도의 무례는 아니었다.
한편.
태건은 홀로 떨어져 있었다.
자그마한 선반에 서있는 목함을 덮고 있었다.
하얀 천으로 돌돌 말린 무언가가 곧 감춰졌다.
그 무언가는 죽은 새끼였다.
탁.
목함을 닫은 태건은 잠시 그대로 있었다.
‘다음이 있다면……. 아니, 다음엔 네가 행복할 곳에서 태어나렴.’
진심을 가득 담아 한 번 더 명복을 빌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