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추모를 마치고야 태건이 몸을 돌렸다.
이내 둘러앉은 단원들이 보였다.
“조금만 먹자. 한 입만이라도 좀 먹어주라.”
“울어. 더 크고 씩씩하게 좀 울어. 살려달라고 찡찡거리란 말이야.”
“이 순간만 넘어가면 돼. 그럼 정말 다 괜찮아질 거야. 진짜야.”
걱정, 근심, 애잔함 등등.
그곳엔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휘몰아치고 있었다.
태건의 눈엔 이제야 그 모습들이 보였다.
아!
이 사람들 진심이다.
생명을 향한 집착이 강렬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낯선 강아지에게도 이토록 진심이었다.
사람에게는 어떨까.
“더하면 더하겠지.”
절대 이보다 못할 거라 생각되진 않았다.
그걸 느낀 순간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라텔.
결정적인 순간 빛이 나는 소방단원들이다.
위기의 순간, 하나가 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저들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갈등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사라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저들이라면 함께 할 수 있다.
처음으로 믿음과 신뢰란 게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였다.
태건은 스스로 반전을 걸었다.
‘내 등을 맡길 정도는 아니야.’
그건 실력에 관한 문제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실력은 키우면 된다.
그러기 위한 팀워크 훈련 중이었다.
‘스모크점퍼 급까지 훅 치고 올라갑시다.’
번쩍.
태건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라텔의 훈련 메뉴는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태건은 이내 머릿속 생각을 털어냈다.
여유로운 생각을 하기엔 아직 새끼들이 안정을 찾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어, 어어어!”
“맞지, 지금 먹는 거 맞지!”
그 소리에 태건의 귀가 크게 꿈틀거렸다.
‘먹어?’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타닥!
단원들 틈바구니로 끼어 들어가며 얼른 물었다.
“왜요. 뭐가 어떻게 되고……. 아!”
재촉하던 태건의 말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한껏 찌푸린 미간이 점점 부드럽게 펴져 갔다.
새끼들이 초유를 먹기 시작했다.
뚝, 뚝.
이지성이 주사기로 방울방울 초유를 흘리고 있었다.
그 초유가 입에 닿은 새끼는 앙증맞은 주둥이를 움찔거렸다.
-이이잉, 이이이.
-에엥, 에에엥.
입이 허전한 새끼들은 울고 또 칭얼거렸다.
기운을 되찾은 거다.
저체온증이었단 게 확실히 증명됐다.
이지성의 추측이 정확했다.
‘역시 구급단원.’
그의 존재가 갑자기 커 보였다.
까칠하고 도도한 줄만 알았는데, 응급처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모두를 향해 얼른 소리쳤다.
“얘들아, 뭐하냐. 강생이님들 배고프시단다!”
“그럼 먹어야죠. 얼른 먹이겠습니다!”
모두가 힘차게 외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초유가 담긴 주사기들이 다시금 대거 등장했다.
불쑥!
“여기 다 준비해 놨습니다!”
황대산이 우렁찬 목소리로 알렸다.
그의 준비성에 모두가 감탄했다.
“오오. 황대산이!”
“황 선배, 완전 굿입니다!”
감탄은 잠깐이었다.
“우쭈쭈, 울 아기 이리와.”
“맘마 먹자.”
턱, 턱.
다들 각자 담당하는 새끼들을 다시 들어 올렸다.
태건도 가장 약한 새끼에게 초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천천히, 오래오래 먹자.”
스륵, 스륵.
이번에도 주둥이에 가져가 조금씩 흘려 넣는 방식이었다.
옆으로 흐르던 초유가 이번엔 주둥이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오물오물.
몇 방울 마신 새끼는 곧 주둥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이잉.
심지어 더 빨리, 많이 달라고 칭얼거렸다.
살아나고 있단 증거였다.
뭉클.
가슴이 저릿하며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그런 태건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더 먹어. 얼마든지, 네가 먹고 싶은 만큼 먹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새끼다.
그 무엇도 아깝지 않았다.
잠시 후.
새끼들의 배가 빵빵하게 부풀었다.
그리고 다시 온열기 앞에서 뒤엉켜 잠들어 있었다.
…….
고요함이 감돌았다.
기분 좋고도 흐뭇한 고요함이었다.
그 모습을 다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스윽.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야 서로가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
“…….”
오가는 시선들이 그윽했다.
매일 따갑고 날카롭던 시선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때였다.
갑자기 움찔하며 서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멋쩍고 민망한 모양이었다.
휙휙!
“크흠.”
“어흠!”
괜스레 짜내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입가엔 숨기지 못한 흐뭇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조금 전 태건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못 미더운 구석이 많지만…….’
‘매번 서로 내가 옳다고 목소리 높이기 바쁘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 싫진 않아.’
각자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라텔은 자신들도 모르게 하나가 돼 가고 있었다.
한시름을 덜어내더니 긴장도 조금 풀렸다.
그러나 모든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태건은 카운터에 자리하고 있는 미용사에게 다가갔다.
“혹시 수술 상황이 어떤지 알고 계십니까?”
“잠시만요. 바로 알아볼게요.”
턱.
미용사는 키폰을 들어 수술실에 전화했다.
태건은 괜히 지켜보는 거 같아 시선을 돌렸다.
스윽.
방금 황대산이 난장판을 만든 진열장을 감상했다.
“킹콩이 다녀갔나.”
태건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때 미용사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여기 새끼들은……. 정말이에요? 진짜요?”
그녀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턱턱.
태건의 팔을 치며 시선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
스윽.
의아한 태건이 고개 돌려 바라봤다.
그런 미용사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글썽글썽.
그 모습에 오히려 태건이 놀랐다.
“에? 왜, 왜 그러십니까. 설마…….”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상상하기 싫은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걸까.
머릿속을 헝클이는 생각들에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전화를 끊은 미용사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수술 거의 끝나간대요.”
“벌써요?”
“제왕절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데…….”
미용사가 더듬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나인가.
태건은 마음의 준비를 하며 흘려 말했다.
“후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미용사는 그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고픈 말만 이어갔다.
“뱃속에 새끼가 살아있대요. 살았대요!”
띵.
태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저, 정말입니까?”
“네에! 정말로요. 그리고 수술은 거의 끝났고, 아주 잘 됐대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턱!
너무 기쁜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미용사의 손을 붙들었다.
“어, 어어. 네. 뭐 다행인데…….”
당황한 미용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소식은 태건만 들은 게 아니었다.
“진돗개 살았답니다!”
“새끼도 살았대요!”
“이런 겹경사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환호하며 끌어안고.
손을 맞잡고 겅중겅중 뛰고.
다들 난리가 났다.
듣다 못한 오광휘 단장이 빽 소리쳤다.
“이 시끼들아, 애들 자잖아!”
“…….”
“다 큰 사내놈들이 남사스럽게……. 오구구. 우리 강생이님들, 엄마도 수술 잘 됐대요. 동생도 생겼대요.”
퉁명하게 쏘아붙인 오광휘 단장은 자는 새끼들을 쓸며 흐뭇해했다.
한편 단원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인지했다.
고수현과 이지성이 끌어안고 있었다.
순간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야, 이지성. 너 지금 뭐하냐.”
“선배야말로.”
“나 지금 심히 불쾌하거든. 셋하면 떨어지는 거다.”
“셋.”
이지성은 칼 같이 내뱉었다.
휙!
그 소리와 동시에 둘은 재빨리 떨어졌다.
그들 옆엔 황대산과 유중헌이 손을 맞잡고 있었다.
꾸욱.
황대산이 붙든 손을 내려다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어흐흑. 얼른 놔. 남자끼리 손을 잡다니. 말도 안 돼!”
벅벅!
황대산은 두 손을 옷이 찢어져라 비볐다.
유중헌도 뚱한 얼굴로 손을 털었다.
“으, 찝찝해.”
슥슥.
소심한 성격이라 강하게 항의는 못하고, 조용히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한편.
태건은 작은 목함을 앞에 두고 있었다.
‘너구나, 맞지. 엄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돌아온 거지?’
꾸욱.
목함을 묵직하게 붙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그 헛된 추측이 사실이라 믿었다.
제각각 기쁨을 표하고 있을 때였다.
앞에 있던 미용사가 태건에게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기요. 실례지만 뭐하시는 분들이세요?”
“저희는…….”
“…….”
“라텔입니다.”
태건은 타인에게 처음으로 그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나 미용사에겐 생소한 단어인 모양이었다.
“네? 뭐라고요?”
“아, 저희는 산악단체 회원들입니다.”
태건은 얼른 정정해 말했다.
아직 라텔의 존재가 대외비로 분류된 탓이다.
감정에 취해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