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다행히 미용사는 딴죽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단장님이라고 하셨네요.”
“그렇죠. 아, 그리고 멋대로 휘젓고 다녀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 숙이며 사과의 말도 건넸다.
미용사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아니에요. 다들 너무 진심이시라 가만히 있었어요.”
“그렇게 보였습니까?”
“네. 실은 소방관님들인 줄 알았다니까요. 어처구니없으시죠? 호호.”
미용사는 자신이 말하고도 민망한지 웃어 보였다.
“후후. 그러네요.”
태건도 맞장구쳐 웃어 보였다.
그리고.
스윽.
몸을 돌린 순간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티가 나나?”
등산복으로 감춰도 소용없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태건은 회복실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전 수술이 끝난 진돗개가 배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회복 중이었다.
-헥헥, 끼잉……. 끼이잉…….
꿈틀꿈틀.
진돗개는 앓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이제 태건은 진돗개의 행동에 대한 의미가 읽혔다.
정신이 들자마자 새끼를 찾는 게 분명했다.
정말 대단한 모성이었다.
탈칵.
회복실 문을 연 태건은 한층 건강해진 새끼들을 품에 안겨줬다.
-이이잉.
-이잉, 이잉.
새끼들은 엄마 냄새에 이끌려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아파서 아직 안 돼.”
스윽.
태건은 얼른 진돗개의 얼굴 쪽으로 새끼들을 옮겼다.
조금 전 수술로 태어난 새끼까지 모두 6마리였다.
그리고 이어서 진돗개에게 말했다.
“네 새끼들 다 여기 있어. 얼른 봐봐.”
꿈틀.
진돗개의 귀가 가볍게 움직였다.
그리고 실눈을 떴다.
…….
아직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도 새끼들부터 확인했다.
애잔한 눈으로 새끼들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진돗개가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다 태건을 바라봤다.
…….
스윽.
지켜보던 태건은 시선이 마주치자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6마리 맞잖아.”
…….
진돗개는 어리둥절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할짝.
이내 새끼들을 핥기 시작했다.
6마리 모두,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핥고 또 핥았다.
태건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때 수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아직 몸도 가누지 못할 텐데, 모성이 엄청난 아이네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습니다. 저야 돈 벌고 좋죠.”
수의사가 심드렁하게 말을 받았다.
세속적인 성격인 모양이다.
계산 깔끔한 게 나쁜 건 아니었다.
“수술비부터 입원 치료비까지.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러실까 봐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스윽.
그는 복사용지를 내밀었다.
그런 수의사도 엄청 평범해 보이진 않았다.
세상에 별별 사람 많다더니.
태건은 싱겁게 미소 지으며 받아들었다.
이내 청구비용을 확인한 태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에? 뭔가 이상한데요.”
“하, 응급수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5마리를 집중관리 해야 했고요. 그런데 비싸다고요?”
“아니요. 너무 저렴해서요.”
끔뻑.
태건은 눈까지 깜빡거렸다.
그냥 저렴한 게 아니라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무뚝뚝한 수의사는 미동도 없이 말했다.
“돈 많으신가 보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됐고. 영세 병원이라 입금은 빨리 부탁드립니다. 그럼.”
휙.
할 말을 마친 수의사는 그대로 멀어져 갔다.
그런 그의 중얼거림이 덧붙여 들려왔다.
“관악산 들개라며, 입양한 애도 아닌데 그렇게 들고 뛰고 난리를 부려.”
그 소리조차 퉁명함이 가득했다.
태건은 수의사가 일부러 흘리고 간 말임을 눈치챘다.
스윽.
다시 한 번 청구비용을 확인했다.
역시나 저렴했다.
“이러니 돈을 못 벌지.”
토도독.
휴대폰으로 바로 계좌이체를 했다.
청구비용에 상당한(?) 플러스알파까지 더한 금액이었다.
‘그런 마음씨면 더 받아도 돼.’
태건의 지론이 그러했다.
* * *
어느새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라텔 전원은 교육실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 출동에 대해 복기하기 위함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고 있었다.
탁, 탁.
“대산이하고 수현이, 니들 왜 튀어나가!”
“…….”
“여기, 여기. 구멍이 생기니까 다른 단원들까지 위험해졌잖아!”
휙휙.
오광휘 단장은 가느다란 지휘봉을 휘둘러가며 설교했다.
“…….”
황대산과 고수현은 모두 옳은 말이라 찍소리도 못했다.
태건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잔소리 들을 만 해.’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 잔소리를 할 수 있었다.
화재나 재해 현장이었다면 어떤 사고로 이어질지 모를 행동들이었다.
물론 두 사람도 알겠지만 경각심을 제대로 심어주는 건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한참 설교하던 오광휘 단장이 마무리를 지었다.
“자신의 돌발행동이 다른 단원들에게 미칠 영향부터 생각하고 움직여라, 알았나!”
“네.”
“그럼 잔소리 끝. 그래도 전체적으로…….”
오광휘 단장은 사나운 기세를 순식간에 온화하게 바꿔 칭찬했다.
그런 변화가 어색하지 않은 건 그가 유일할 터였다.
‘놀라워.’
태건도 참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띠링.
칭찬하던 오광휘 단장 표정이 바로 일그러졌다.
“누가 교육시간에 진동으로 안 바꿔 놓고…….”
“접니다. 영상 떴답니다.”
스윽.
이지성이 너무도 덤덤하게 손을 들고 말했다.
그 당당함에 오광휘 단장이 어이없어했다.
“뭔 영상?”
“관악산 말입니다.”
대답이 짧았다.
그러나 다녀온 모두는 바로 알아들었다.
옆에 자리한 태건이 얼른 물었다.
“들개들 구조 영상이요?”
“보면 되지, 뭘 물어.”
“하여간, 내가 뭘 기대해.”
“뭐?”
찌릿.
이지성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태건은 바로 외면하며 오광휘 단장에게 건의했다.
쑥!
“단장님, 같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니까, 손은 내리고 말해라.”
오광휘 단장이 괜히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벌써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었다.
탈칵, 탈칵.
그가 조작함에 따라 화면이 여러 번 바뀌었다.
“찾았다. 플레이!”
그 소리에 맞춰 곧 동영상이 재생됐다.
동영상은 제목부터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속보, 관악산 들개들 포획 성공.
이어서 수려한 관악산의 사진이 떠오르고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그동안 많은 등산객을 공포에 떨게 했던 관악산 들개들이 포획됐다고 합니다.
이어서 거친 화면의 동영상으로 전환됐다.
그걸 본 단원들이 한 마디씩 했다.
“등산로 입구잖아. 트럭도 있고, 내려왔을 때 누가 찍은 모양이네.”
“거기 학교잖습니까. 대학생이 우연히 찍었나 봅니다.”
“먼지만 하게 보이네. 대체 얼마나 멀리서 찍은 거야?”
“우리 작전대로 신원은 비밀에 붙여지겠습니다.”
다들 만족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고수현만 뚱한 표정이었다.
“칫. 얼굴 정도는 보여줘도 되는데.”
“수현아.”
“대산 선배, 저도 안다니까요. 이번엔 비밀이라고요. 정식으로 출동하면 그땐 알릴 거라고요.”
이해한단 대답이었지만 말투는 살짝 삐딱했다.
다들 고수현의 반응에 이젠 그러려니 했다.
그 사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놀랍게도 ‘멍냥이 동물병원’의 전면 사진이 떡하니 떠올랐다.
“에?”
“저기가 왜 나와?”
그 질문에 대답하듯 동영상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피 흘리는 개를 안고 뛰어 들어간 동물병원입니다.
-병원에선 그들이 산악단체라고 했지만 그런 단체는 없는 걸로…….
-병원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내세워 함구 중이며…….
-입원한 진돗개는 당일 아침 출산했지만 영양실조로 인해…….
속속들이 추가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요즘 정보력 장난 아니네.”
“그 잠깐 길에서 뛴 걸 기억했단 말이야?”
“그보다 저 병원 의리가 있어.”
저들 덕분에 정체가 더 밝혀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동영상이 끝을 향해 갈 때였다.
찌르릉.
이번엔 벨소리가 울렸다.
“…….”
다들 동영상에 심취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돌연 이지성이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쾅!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일그러진 표정이 압권이었다.
“…….”
태건을 포함한 모두가 의아해했다.
곧 이지성이 휴대폰을 내리며 모두에게 알렸다.
“들개들 안락사 얘기가 나온답니다.”
그 소리에 조용하던 교육실에 불같은 화가 넘실거렸다.
“그게 뭔 개소리 아니, 쓰레기 같은 소리야!”
“기껏 고생해서 포획했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고맙다며. 감사하다며. 근데 이렇게 뒤집는 건 아니지!”
단원들 모두 황당한 소식에 열을 뿜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분히 물었다.
“지성 선배, 유기견센터에서 연락 온 겁니까?”
“그래. 동영상 뜨고 피해자 가족들이 연락해 오나 봐. 위험한 개들이라 죽여야 된다고.”
“들개들은요?”
“걔들이 뭘 알아. 배 터지게 밥 먹고 늘어져 쉬고 있다는데.”
쿵!
이지성은 속이 끓는지 주먹을 내리쳤다.
태건은 왜 이지성이 격분하는지 알고 있었다.
“배고파서 공격한 겁니다. 지들도 먹을 게 충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겁니다.”
“센터 직원들도 어필 중인데 여론이 좋지 않대.”
“혹시 주인이라고 나타난 사람은……. 젠장. 있을 리가 없지.”
태건은 자신의 질문이 잘못됐단 걸 스스로 깨우쳤다.
그에 대해 이지성도 쓰게 동조했다.
“애초에 나타날 인간들이었음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렸겠어?”
“그래서 센터에선 어떻게 한답니까?”
“수일 내로 뭔가 결정되지 않으면…….”
이지성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뒷말은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