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울화 가득한 교육실에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
다들 착잡한 모양이었다.
태건도 같은 심정으로 쓰게 뇌까렸다.
“어떻게 해야 되지.”
그때 황대산이 격하게 책상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콰앙!
“구조는 구했다고 끝이 아니야! 요구조자를 의료진에게 확실히 인계하는 거까지가 구조란 말이야!”
“대산 선배, 그걸 누가 모릅니까.”
“야, 고수현. 안다, 모른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손 놓고 있음 안 된단 거잖아. 책임을 져야지. 책임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그걸 오광휘 단장이 묵직한 목소리로 만류했다.
“샤따 마우스.”
“…….”
“둘 다 옳아. 구한다고 끝이 아니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야. 그런데 우리끼리 목소리 높이지 말자.”
“죄송합니다.”
둘 다 쓴 얼굴로 잘못을 인정했다.
다시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때 태건의 눈빛이 돌연 번뜩거렸다.
띵!
이지성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지성 선배, 그 녀석들 실외견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까?”
“너도 개에 대해서 좀 안다며.”
“제 추측과 같은지 확인 받고 싶어서요.”
구웅.
태건이 굳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이지성도 보통 질문이 아님을 직감한 모양이다.
“…….”
말없이 골똘히 생각했다.
곧 결론을 내렸는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당장은 어려워. 그리고 교육을 해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애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애들로 나뉘기도 할 거야.”
“그래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죠?”
“아마도.”
이지성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건 들개들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탓일 터였다.
태건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질문한 이유가 있었다.
“잠시 실례.”
스윽.
몸을 돌린 태건은 바로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네, 어머니……. 그 아랫집 진수네요. 개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아, 입양했대요. 잘됐네요. 이따 다시 연락드릴게요.”
스르륵.
호기롭던 시작과 달리 흐물흐물하게 마무리됐다.
휴대폰을 내린 태건이 쓰게 읊조렸다.
“한 마리라도 어떻게 해볼까 했는데.”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태건이 씁쓸해할 때였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조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 나야. 아부지, 혹시 주변에 개 키우고 싶어하는 분이…….”
“유기견인데, 아픔이 있어서 치료 중입니다. 혹시…….”
“이모, 오랜만이죠. 전에 실외견 말씀하셨던 거…….”
웅성웅성.
사방에서 비슷비슷한 내용이 들려왔다.
태건은 얼른 돌아봤다.
모두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 중이었다.
역시 다들 위기에 강했다.
위기가 봉착하자 어느새 똘똘 뭉쳤다.
그런데 훈훈함은 안타깝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노력에 비해 결과가 썩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싫대.”
“안 된대.”
“무섭대.”
씁쓸한 말이 툭툭 내뱉어졌다.
태건의 표정도 역시나 쓰게 변했다.
“뭐, 이해는 하지만요.”
사람을 공격한 개.
그건 언제든 상황이 악화되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단 단점이 될 수 있었다.
아무리 들개들 사정이 딱해도 그 위험을 안고 입양하라고 할 순 없었다.
다시 침울함이 감돌 때였다.
통화하던 고수현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진짜요? 아저씨 진짜예요! ……저도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갑작스런 사랑 고백에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설마?”
“정말?”
의문을 가득 담아 고수현에게 집중했다.
그때 휴대폰을 내린 고수현이 모두에게 외쳤다.
“애들을 전부 데려가겠단 분을 찾았습니다!”
“우와아. 그런데 전부?”
“고향에서 과수원하시는 분인데, 매년 야생동물들 피해가 심하답니다.”
“경비견으로 세우겠단 말이네. 걔들 활동력으로 보면 딱이지!”
오광휘 단장은 호쾌하게 끼워 맞췄다.
태건도 기뻤지만 한 가지를 집고 넘어갔다.
“수현 선배, 더 알아보겠단 건 뭡니까?”
“애들 훈련 받으면 문제없냐고. 아무래도 그 부분은 확실히…….”
고수현이 이어서 말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이지성이 외쳤다.
“조용!”
“뭐?”
고수현이 팩 고개를 돌려 째려봤다.
그런데 이지성은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 통화 중이었다.
“……그런 상황이라. 네네, 알겠습니다.”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이지성이 고수현을 향해 말했다.
“유기견센터에서 과수원으로 직원을 파견 보내 준답니다. 애들이 적응할 때까지요.”
“야, 너 그걸 벌써 알아봤어?”
“시간 끌 거 뭐 있습니까. 물론 시설에서 충분히 교육하고 보낼 거랍니다.”
이지성이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평소 삐딱하던 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처음이었다.
모두의 관심은 들개들에게 쏠려 있었다.
태건이 목청 크게 고수현을 띄워줬다.
“수현 선배, 이번 출동은 선배가 다 한 겁니다!”
“……정말?”
“진정한 의미의 구조를 실현시켰잖습니까. 선배, 한 수 배웠습니다.”
꾸벅.
태건은 정중한 태도로 인사까지 했다.
그 순간 고수현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흐, 흐흐.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수현아, 좋으면 웃어라. 다들 고수현에게 박수!”
오광휘 단장이 아예 확정을 지어버렸다.
거기에 동조한 단원들이 박수와 환호로 못을 박아버렸다.
짝짝짝!
“멋지다, 고수현!”
“라텔의 에이스답다!”
“역시 한 방이 있었어!”
그 칭찬에 고수현은 헤벌쭉해졌다.
“하하하. 역시 내가 최고였어. 내가 에이스다!”
확실히 주목받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 * *
깊은 밤.
침대에 누운 태건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뿌듯한 하루였어.”
출동 못했던 초조함까지 싹 사라져 있었다.
오늘은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스르륵.
어느새 눈이 감겼다.
잠든 태건의 얼굴엔 흡족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들개들 일은 정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다들 교육실에서 이론 교육을 진행 중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교관이었다.
“……그러니까 여긴 밑줄 쫙.”
“밑줄 쫙.”
“그렇지. 중요하니까 꼭 외워두고, 그 다음은…….”
늘 하던 교육의 시간이 줄줄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
벌컥!
교육실 문이 격하게 열렸다.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허락도 없이 벌컥벌컥……. 헙, 안전! 아니, 라라, 라텔! 이론 교육 중.”
화들짝 놀라 얼른 거수경례했다.
그 상대는 우석진 정책과장이었다.
척, 척.
빠른 걸음으로 단상으로 향하는 그는 거수경례도 받지 않은 채 나무랐다.
“그런 보고를 해 놓고,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인사할 땐가.”
“왜 그러시는지.”
“난리가 났는데 왜 이러냐고?”
그런 그의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태건은 물론 다른 단원들도 갸웃거렸다.
‘왜 저래?’
저렇게까지 반응이 클 줄 몰랐다.
그때 우석진 정책과장이 오광휘 단장에게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얼마나 곤란해졌는지 아나?”
“왜 곤란해지셨을까요?”
“자네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어 버렸잖아!”
“네?”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우석진 정책과장이 더욱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차갑게 말했다.
“누가 자네들보고 들개 구조하라고 했어. 대체 누구야?”
“…….”
“그중에 한 마리는 수술하고 입원까지 시켰다지. 무슨 자선사업가들인가?”
버럭버럭!
우석진 정책과장은 거칠게 몰아붙였다.
오광휘 단장은 원래 성격대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살짝 잘못 알려진 부분이…….”
“오 단장. 내가 지금 변명 듣자는 줄 아나.”
쿠웅.
우석진 정책과장은 싸늘하게 따졌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오광휘 단장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꾸욱.
억울함에 주먹이 꽉 쥐어져 있었다.
어쨌든 우석진 정책과장은 특수소방단의 전권을 쥐고 있는 상관이다.
‘참자, 사회생활이잖아. 참아야지.’
속으로 참을 ‘인’을 새기고 또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광휘 단장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콜사인이었다.
라텔이란 동물은 결코 참거나 인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상황을 지켜보던 단원들 눈빛이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
들썩들썩.
자꾸 입술이 들썩거렸다.
드러나려는 이를 억지로 감추고 있는 거였다.
단장을 무시하는 건 곧 자신들을 무시하는 거와 같았다.
태건은 단원들 사이에 흐르는 격분을 감지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무조건 터질 상황이었다.
다른 단원들은 우석진 정책과장과 정면으로 맞서 좋을 게 없었다.
유일하게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건 태건, 자신뿐이었다.
어제 그들을 진정 팀원으로 인정했다.
그러니 보호하는 건 당연했다.
‘에라.’
쓰게 뇌까리며 자신이 총대를 메기로 했다.
무엇보다 오광휘 단장을 보호해야 했다.
스릉.
천천히 일어난 태건이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차갑게 물었다.
“교육 중에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뭘 잘했다고…….”
“잘못한 건 뭡니까.”
태건이 딱 잘라 묻자 우석진 정책과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강태건 단원, 지금 이 일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아나?”
“모릅니다.”
“모르면 똑똑히 들어. 지금 국민 여론이 최악이야. 그런데 자네들이 했단 게 알려지면 그땐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라.”
우석진 정책과장이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태건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질문했다.
“특수소방단이 와해라도 된단 말입니까?”
“이제 좀 감이 오나?”
“그럼 저희 신상이 공개됐습니까?”
태건이 딱 잘라 물었다.
그 순간 우석진 정책과장의 눈동자에 설핏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읏, 흠…….”
그걸로 태건은 직감했다.
‘건수 잡았단 거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트집 잡기’였다.
이 일을 핑계삼아 라텔을 수중에 넣고 마음대로 휘두르겠단 의도가 다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