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그 추측이 옳은 모양이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단상을 두드리며 격분했다.
탁, 탁!
“그게 문제야? 이런 출동을 계획했다면 나에게 보고하는 게 순서 아닌가!”
“자율적인 팀워크 훈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이게 그럴 문제냔 말이야!”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목소리 크고 직위 높으면 장땡이란 뉘앙스로 꽉 차 있었다.
태건은 그런데 있어 순순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척 싫어하는 부류였다.
그래서 더 따졌다.
“제가 제안했으니까 전적으로 제 책임이네요.”
“뭐?”
“그 책임, 제가 지겠단 말입니다. 이상입니다.”
태건은 꿋꿋하게 말을 마쳤다.
한껏 자극한 말투가 앞뒤 없이 전진하는 라텔과 꼭 닮아있었다.
한편, 우석진 정책과장의 볼살은 이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파르르.
이렇게 자신에게 전면으로 반기를 든 아랫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그 피로감을 인내하지 못하고 결국 마주 으르렁거렸다.
“그렇게 원한다면 강 단원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감사합니다.”
“끝까지……. 그깟 몇 마리 개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우석진 정책과장은 끝끝내 강압적으로 질책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결정적이었다.
꿈틀.
“…….”
단원들의 눈썹이 거칠게 움직였다.
눈빛도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이지성이 툭 던져 말했다.
“어이가 없네.”
휙!
우석진 정책과장이 째려봤다.
그의 태도는 태건을 대할 때와 상당히 달랐다.
훨씬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이 단원, 감히 나에게 한 말은 아니겠지.”
“알아서 생각하시고. 저도 주동자 중에 한 명이니까 책임지겠습니다.”
“그 말, 후회 없길 바라지.”
크르릉.
우석진 정책과장은 입술을 들썩이며 괘씸해했다.
그런데 이지성이 끝이 아니었다.
스릉.
황대산이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주동자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주도했습니다.”
그릉.
고수현이 벌떡 일어나 반박했다.
유중헌도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제가 운전하고 갔으니까……. 제가 책임을…….”
꼼지락.
용기와 소신을 보이면서도 소심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 독특했다.
그건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문제도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에게 반기를 든 거였다.
“이 사람들이…….”
불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였다.
“하여간 순순히 ‘네.’라고 하는 애들이 없습니다.”
“오 단장. 이거 지켜만 보고 있을 건가.”
“아니요. 사실은 제가 대빵 주동자입니다.”
텅!
오광휘 단장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엉뚱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
“어차피 저희는 한 팀입니다. 공동운명체라고도 하지요.”
“지금 그 말…….”
우석진 정책과장이 말꼬리를 흐리며 눈빛을 빛냈다.
번뜩!
딴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냔 의미였다.
오광휘 단장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한 팀이 된 이상, 한 명이라도 빠지면 유지할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다들 소방관을 그만두겠단 의미로 봐도 되나?”
“여기서 못하면 태건이 빽으로 미국 가서 소방관 하죠 뭐.”
휘적휘적.
오광휘 단장은 아예 귀까지 후비며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로썬 최후의 카드를 꺼낸 거였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입을 닫았다.
“…….”
자신이 부리려 모은 단원들에게, 자신이 물린 꼴이 된 탓이다.
이제야 제대로 느꼈다.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를 놈들이야.’
확실한 건.
결코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이들이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
결론을 내린 우석진 정책과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들…….”
띠리릭.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꺼내 보니 직속상관인 정책국장의 전화였다.
‘하필…….’
때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의 전화기에 받는 게 우선이었다.
“다들 대기하고 있어.”
척척.
말을 돌린 우석진 정책과장은 휴대폰을 들고 교육실을 나갔다.
교육실 문이 닫힘과 동시였다.
텅.
태건은 곧장 모두를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왜 그러신 겁니까?”
“우리가 뭐 틀린 말 했어?”
“그건 아니지만요.”
태건이 한 발 빼자 황대산이 물었다.
“그럼 너는 왜 그랬어?”
“저야 원래 막 나가는 스타일이잖습니까.”
“그게 아니지!”
버럭!
갑작스러운 그의 외침에 태건은 깜짝 놀랐다.
“네?”
“한 번 한 약속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킨다. 한 번 세운 뜻은 절대 꺾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요?”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 아니겠냐!”
“…….”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결론에 태건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황대산도 아는지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바로 그때 고수현이 벌떡 일어나며 황대산을 타박했다.
“대산 선배, 왜 말을 못 하십니까!”
“…….”
“난 라텔이 마음에 든다, 난 우리 단원들이 좋다, 왜 말을 못하냔 말입니다!”
“그건 좀 쑥스러워서.”
긁적.
황대산은 벌게진 얼굴로 볼을 긁적거렸다.
두 사람의 훈훈한 모습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돌연 얼음물을 끼얹은 이지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일주일 됐는데 뭐가 좋고 마음에 든단 건지.”
“그럼 넌 왜 태건이를 감쌌어?”
유중헌이 오랜만에 선명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만큼 확신이 있어야 나오는 자신감 가득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이지성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답했다.
“제가 태건이를요? 착각이 너무 심하십니다.”
“…….”
유중헌은 답 없이 가만히 바라만 봤다.
그 담백한 눈빛에 오히려 이지성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
스윽.
결국 말없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졌음을 시인하는 거였다.
“히히.”
유중헌은 자신이 이겼단 의미로 실없이 웃으며 V자를 내보였다.
이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쭉 지켜보던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물었다.
“어째 미국에 단체 소방관광 패키지로 가야할 거 같은데?”
“이 정도야 까딱없습니다.”
으쓱.
태건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답했다.
그 반응에 오광휘 단장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쩐 일이냐, 싫단 소리를 안 하네?”
“출동해 보고 느꼈는데요.”
“뭘?”
“우리 은근히 좀 잘 맞는 거 같습니다.”
태건의 말에 모두 멈칫했다.
“…….”
누구도 아니란 말을 하지 않았다.
태건이 느꼈듯이, 다른 단원들도 같은 느낌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정작 질문한 오광휘 단장이 순간 비틀거렸다.
“어엇.”
턱.
단상을 짚기까지 하자 태건이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내 앞날이 깜깜해서.”
“네?”
“니들 사이가 좋아질수록 난 피곤해진단 말이다……. 안 되겠다. 싸워. 다들 주먹 들고 한 번씩 때려, 어서!”
탁, 탁.
오광휘 단장은 단상을 두드리며 협박했다.
하지만 다들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같은 느낌을 받았단 사실에만 주목하고 있었다.
‘아직 깊이 친해진 건 아니지만.’
‘더 가까워지면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겠지만.’
‘안심하고 내 등을 맡길 순 있을 거 같아.’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을 속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길어졌다.
다들 슬슬 답답함을 느꼈다.
태건이 퉁명하게 한소리 내뱉었다.
“굳이 기다릴 거 있습니까?”
다소 과격한 질문이었다.
단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동조했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면, 내가 움직이는 게 남자다운 거야.”
“최고의 스타 소방관이 될 몸이 너무 얽매여도 좋지 않지.”
황대산과 고수현이 이럴 땐 늘 적극적이었다.
그릉그릉.
뒤따라 일어났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마침표를 찍었다.
“이렇게 된 거. 에라이, 우리가 먼저 때려치우자!”
“단장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한목소리로 외쳤다.
일치단결한 모습에 오광휘 단장이 어이없어했다.
“……니들은 꼭 이럴 때만 단장 찾더라.”
“네. 단장님.”
“됐어. 니들 맘대로 하셔.”
휙휙.
귀찮단 손짓으로 밀어내 버렸다.
결정이 나니 차라리 개운했다.
쭈욱!
몸을 펴며 찌뿌듯함을 날렸다.
마치 특수소방단이란 족쇄를 풀어낸 느낌이었다.
“아흐, 괜히 시간만 버렸네.”
“그럼 우리 이제 진짜 미국으로 가는 거야?”
“역시 스타는 할리우드지. 할리우드 스페셜 파이어맨. 크으, 짜릿하네.”
오가는 담소가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때였다.
끼익.
교육실 문이 열리며 우석진 정책과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
일순간 모두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반면, 우석진 정책과장은 담담한 얼굴로 단상으로 향했다.
저벅저벅.
…….
장내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내 단상에 도착한 우석진 정책과장이 쭉 둘러보며 물었다.
“하던 말은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나?”
“…….”
다들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얼른 끝내버리고 자유가 되잔 마음들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짝짝짝.
우석진 정책과장이 느닷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역시 자네들을 잘 뽑았어.”
“…….”
“자네들의 각오와 열정. 모두 내가 생각하는 거 보다 훨씬 단단해. 앞으로도 그 굳은 심지에 변화가 없길 바라지.”
“…….”
다들 갑작스러운 우석진 정책과장의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해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건은 조금 과한 생각까지 들었다.
‘제정신인가?’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진지하게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