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1)화 (81/320)

81화

모두 침묵을 유지했다.

그 어색함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정말 자네들을 해산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

“확인해 본 거야. 내가 이렇게 조이고 밀어붙였을 때, 자네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거든.”

“…….”

“과연 특수소방단다운 대답들이었어. 훌륭해.”

짝짝.

홀로 한 번 더 박수를 쳤다.

그때 이지성의 입술이 꿈틀거리려는 징조가 보였다.

“저 꼰대가 뭐라고 씨불…….”

벌써 투덜거림이 시작됐다.

태건이 반사적으로 팔꿈치로 건드렸다.

툭.

“선배.”

주의까지 줬다.

“…….”

그제야 이지성의 입이 닫혔다.

태건이 그를 막은 이유가 있었다.

‘이건 내가 나설 문제가 아니야.’

스윽.

시선이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태건만의 생각이 아닌 모양이다.

“…….”

“…….”

침묵한 모든 단원들이 시선이 오광휘 단장에게 몰려 있었다.

누가 뭐래도 단장은 오광휘다.

그의 결정은 곧 나의 결정.

그 약속은 언제까지나 유효했다.

오광휘 단장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외면하지 않았다.

단원들의 대표 자격으로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질문했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이 다 저희를 떠보기 위함이었다고 하셨습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저희 바보 아닙니다.”

오광휘 단장이 차분히 따졌다.

그럼에도 우석진 정책과장은 반발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했다.

“불쾌했을 거야. 충분히 이해해.”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만.”

“그럴 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허허.”

우석진 정책과장은 너털웃음으로 무마시켰다.

단원들 모두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동시에 눈빛이 반짝였다.

‘뭔가 있어.’

모종의 이유로 태도를 바꾼 게 틀림없었다.

대체 뭘까.

꿍꿍이가 있는 상대가 가장 대하기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모두 흘려버리면 어떤 대화도 무의미했다.

“…….”

특수소방단원들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스윽.

오광휘 단장이 단원들을 둘러봤다.

“…….”

자신은 더 따지기 어렵단 뜻을 보인 거였다.

꿈틀.

한껏 올라간 눈썹이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걸 본 순간 눈빛을 빛냈다.

‘그럼 마이 턴.’

스윽.

태건은 가볍게 손을 들어 사인을 보냈다.

오광휘 단장은 자연스레 발언권을 넘겼다.

“강 단원이 할 말이 있는 모양입니다.”

“크흠. 뭐지?”

우석진 정책과장은 최대한 수더분하게 권했다.

그 순간 태건이 속으로 뇌까렸다.

‘속 좀 뒤집어드리지요.’

우석진 정책과장이 먼저 말을 뒤집었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태건은 그런 속내를 감추고 태연하게 물었다.

“과장님. 그럼 저희가 잘했단 말씀이십니까?”

“두말할 거 있나.”

“그럼 앞으로도 선 출동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란 말씀이시네요.”

띵!

태건이 노린 한 방이었다.

이후 모든 출동에 대한 제약이 사라지는 결정적인 질문이었다.

직감한 모두가 눈빛을 반짝였다.

“오.”

그만큼 의표를 찌른 질문이었다.

우석진 정책과장도 어느 정도 예상한 질문인 모양이다.

그래도 직접 들으니 미미한 동요가 보였다.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

지금 할 말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순순히 인정하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여유 따윈 주지 않았다.

바로 답을 재촉했다.

“문제가 있단 겁니까, 없단 겁니까?”

“흐음. 당연히 없지. 문제 삼을 게 뭐가 있나. 그렇지만…….”

우석진 정책과장이 뭐라 덧붙여 말하려 했다.

그 전에 태건이 아예 입을 막아버렸다.

“말씀 감사합니다.”

“…….”

“다들 오해가 풀린 거 같으니까 다시 앉을까요?”

스윽.

권유할 뿐 아니라 먼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오해란 말로 얼버무리기까지 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알지만 우석진 정책과장의 확답을 받았으니 더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오광휘 단장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스릉.

“자자, 다들 앉지.”

“네.”

그 뒤를 따라 다른 단원들도 자리했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결국 얻은 게 하나도 없었다.

‘강태건…….’

노려보고 또 노려봤다.

태건이 그 눈빛을 모를 리가 없었다.

“…….”

당당히 마주했다.

빙글빙글.

순박한 미소는 덤이었다.

그러나.

‘약 올라 죽겠지.’

속으론 진하게 놀리고 있었다.

장내가 정돈되었지만 아직 침묵이 감돌았다.

한번 들쑤셔진 분위기가 대번에 안정될 순 없었다.

“…….”

하지만 태건은 아직 반격할 게 남아 있었다.

스윽.

손을 들며 우석진 정책과장을 바라봤다.

“과장님, 저희 헬기는 언제 도착하는 겁니까?”

풍덩.

태건이 던진 돌이 간신히 잔잔해진 수면에 다시 파장을 일으켰다.

승기가 기울어진 터라 단원들도 건의 사항을 말했다.

“교육 자재도 부족합니다.”

“방화복이 많이 해졌는데, 보충은 언제 됩니까?”

방언이 터진 듯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우석진 정책과장만 골치가 아팠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삼켜야 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어쩌랴.

대답을 피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우선 헬기는 말이지…….”

술술.

진행사항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결국 따지러왔던 자리가 간담회로 급변했다.

잠시 후.

관용차 뒷좌석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올라타 있었다.

차 유리가 내려가 있었다.

일렬로 선 특수소방단이 거수경례를 했다.

“일동 경례, 라텔!”

“라텔!”

처억.

손을 올리는 단원들 표정이 부드러웠다.

반면 우석진 정책과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경례를 받았다.

“라텔.”

“조심히 가십시오!”

부웅.

씩씩한 배웅과 함께 관용차가 떠나갔다.

그 움직임이 우석진 정책과장의 심정을 대변한 듯 조금 거친 느낌이었다.

곧 관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였다.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태건에게 화색을 보이며 둘러쌌다.

“야, 그걸 그렇게 뒤집나?”

선배들도 가세했다.

“강태건이, 임기응변이 좋았어.”

“과장님 뭐 씹은 표정이 아주 볼만하더라.”

칭찬의 연속이었다.

그때 이지성은 조금 독특한 질문을 건넸다.

“그대로 나가면 될 걸 왜 뒤집었어?”

“우린 대한민국 소방관이니까요.”

그 속에 자긍심이 엿보였다.

우석진 정책과장을 위해 소방관이 된 게 아니다.

우린 우리의 길을 가면 된다.

그런 의미기도 했다.

차가운 이지성이 가늘게 웃음을 흘렸다.

“……훗.”

태건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걸로 우석진 정책과장의 불시방문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아직 궁금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대체 갑자기 왜 돌변한 거지?”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이상하긴 하네.”

“누가 뭐라고 했나?”

알 수가 없어 의혹만 가중됐다.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에 알림이 울리자 태건은 무심코 꺼냈다.

어제 봤던 동영상 채널에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온 거였다.

-관악산의 들개들, 최악으로 향하는 국면 속에 등장한 반전 증언들.

타이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툭.

바로 눌러 재생시켜봤다.

동영상을 쭉 둘러본 태건이 눈썹을 들썩였다.

“여기, 다들 잠깐 여기 좀요.”

“왜 뭔데?”

“들개들에 대한 여러 증언이 속속 올라오고 있답니다.”

그 소리에 시무룩했던 모두의 표정이 되살아났다.

“증언이라고?”

“같이 봐!”

사삭.

작은 휴대폰을 가운데 두고 모두가 머리를 모았다.

그리고 잠시 후.

라텔 모두가 묘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등산객들한테 꼬리치고 같이 산행도 했던 녀석들이라고.”

“유기견들이 하나둘 씩 모여서 세가 커진 거라잖습니까.”

“그러니까 먹을 게 적어지고, 사나워졌던 거네.”

지난 사정들이 유추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자 더욱 씁쓸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중헌이 다급히 손짓하며 불렀다.

“이것 좀 보세요.”

“또 뭘 봐. 중헌아, 그냥 말해.”

오광휘 단장이 다소 퉁명하게 권했다.

유중헌은 얼른 휴대폰을 뚫어지게 보며 읊었다.

“들개들이 학대를 받았단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까지 읊은 후였다.

번뜩.

모두가 눈빛을 굳히며 유중헌을 다그쳤다.

“그게 뭔 소립니까. 중헌 선배!”

“중헌아, 팍팍 좀 얘기해라. 목소리 크게!”

황대산은 잡아먹을 듯이 몰아붙였다.

그 강한 기세에 긴장했는지 유중헌이 크게 말했다.

“A동에 거주하는 B씨는 매일 말라뮤트의 비명소리를…….”

줄줄줄.

그가 읽어 내려가는 소리만 울렸다.

그 내용은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태건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르르 떨었다.

들을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다.

결국 폭발했다.

“이런 썩을 새끼!”

욕이 터지며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터덕!

흉흉하다 못해 살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오광휘 단장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야야, 태건이 잡아!”

터더덕!

사방에서 손을 뻗어 잡아챘다.

길이 막힌 태건은 몸을 비틀었다.

“놔요!”

“진정해. 사회면 기사에 얼굴 팔 생각 말고!”

“아으, 개가 뭔 죄냐!”

열불 터진 태건은 결국 버럭 소리쳤다.

그럴수록 모두 태건을 강하게 붙들어 말렸다.

다들 속으론 같은 심정이었다.

사고 칠까 이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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