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2)화 (82/320)

82화

태건의 화는 조금 지난 후에야 가라앉았다.

그 후에야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차분해진 태건이 먼저 운을 떼기 시작했다.

“이래서 여론이 돌아섰단 거네요.”

오광휘 단장이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과장님이 순순히 물러났겠지.”

“아무튼 이제 해체하네 마네, 그런 소린 안 나오겠어.”

고수현이 말하자 황대산이 덧붙였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면 떼버려야지!”

“선배, 과장님은 이미 두말…….”

“내 상관이지만 남자라고 생각한 적 없어!”

“아, 네.”

유중헌은 이상한 데서 납득을 했다.

*  *  *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들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은 표정들이었다.

태건이 모두에게 말했다.

“어쨌건 과장님에게 전면으로 반박한 건 사실입니다.”

“그건 사실이지.”

“계속 큰소리치려면 우리도 레벨업 해야겠죠?”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이어서 태건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스윽.

모두 시선이 뒤따랐다.

그 시선 끝엔 나지막한 우면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음날.

동이 터오는 새벽녘이었다.

고요한 산의 적막을 깨는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차작, 차작.

이윽고 수풀을 헤치며 특수소방단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산길을 뛰어올랐다. 심지어 등산로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경사면을 달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오광휘 단장과 고수현이 수풀을 헤치며 나타났다.

촤자작!

“훅훅!”

“하악하악!”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붙여 잡고 계속 전진했다.

그다음으로 유중헌과 이지성이 나타났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모습들이었다.

“케헤헥, 헥헥. 더는, 더는, 헤엑!”

“컥헉. 좀만, 잠깐만, 흐헥흐헥!”

움직이는 자체가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른 모습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뒤에서 태건과 황대산이 각각 등을 떠밀고 있던 탓이다.

혼자 달리기도 힘든 산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절대 떠미는 건 멈추지 않았다.

밀고 밀던 태건이 결국 한 소리 했다.

“훅훅. 우리도 힘들, 좀 앞으로, 훅훅!”

“무릎 들어, 앞에 보고, 헉헉, 숨은 고르게!”

터더덕!

황대산도 힘들지만 추임새를 넣어 응원했다.

그렇게 한 명의 낙오자도 허락지 않을 기세를 보였다.

하지만 유중헌과 이지성에겐 곤욕도 이런 곤욕이 없었다.

특히 이지성의 목소리가 따가웠다.

“그만, 허어어억!”

“지성 선배, 훅훅, 얼마 안 남았습니다!”

“헉헉, 난 구급, 헉헉, 이렇게까지, 헉헉, 할 필요가. 켁켁!”

그때 옆에서 유중헌이 똑같이 헐떡이며 반발했다.

“헥헥, 난 운전이야. 헥헥.”

“……헉헉헉.”

이지성은 말문이 막혔는지 거친 숨만 내쉬었다.

그 타이밍에 태건이 힘껏 밀며 응원의 말을 보탰다.

“갑시다, 으자자, 달려, 달려!”

체력은 곧 소방력이다.

그래서 태건이 밀어붙이는 거였다.

두 단원들도 알기에 군소리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특수소방단의 등산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음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상을 찍었다.

처음엔 알이 배어 속도가 느려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빨라졌다.

그만큼 몸에 근육도 붙고, 스트레스도 덜어낼 수 있었다.

“이야아, 호오!”

정상에서 외치는 함성도 잊지 않았다.

오늘도 산을 정복했단 뿌듯함의 신호였다.

*  *  *

그렇게 단원들이 체력단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세상은 아직 관악산에 이슈를 맞추고 있었다.

-관악산 등정 챌린지 유행.

-많은 산악인들 위험이 사라진 관악산으로 몰려.

-관악산 등반의 쾌적함에 모두가 감탄.

기분 좋은 소식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석진 정책과장이 뉴스에 얼굴을 잠시 비추기도 했다.

- 들개를 소탕한 여세를 몰아, 서울시와 협조하여 산불예방에 만전을 기해…….

프레스룸에서 공표하는 우석진 정책과장의 얼굴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그 인터뷰를 본 단원들은 씁쓸해했다.

“이렇게 되면 재주는 우리가 부리고, 이득은 과장님이 다 챙기는 꼴이네.”

“말단의 서러움이 이런 건가?”

“우리 정체가 아직 비밀이래도 이렇게 밀어내고 끝이야?”

공치사를 바란 건 아니지만 언급조차 없는 인터뷰가 언짢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여러 기사로 상황을 조합해본 태건이 이내 가늘게 미소 지었다.

“과장님이 뭔 수를 썼나 보네요.”

“어떻게 알아?”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렸다.

태건은 덤덤하게 추측을 말했다.

“유기견센터는 저희 정체를 알잖습니까.”

“그러네. 그쪽을 찔러보면 뭔가 나올 건데. 기자들이 놔둘 리도 없고 말이야.”

“기자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태건의 대답에 오광휘 단장이 또 한 번 의구심을 보였다.

“그런데 보도를 안 한다고?”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고 비밀유지 시킨 거겠죠.”

“넌 어떻게 그렇게 안단 듯이 술술 말하냐?”

“저도 다 해봤으니까요.”

싱긋.

태건이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매일 산행과 훈련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정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개들이 방송에 나온다고?”

“저녁 6시에 하는 프로 있잖습니까.”

“오오. 그래? 그건 봐야지.”

다들 짙은 관심을 보였다.

그날 저녁.

특수소방단은 오랜만에 모두 TV 앞에 모여 있었다.

곧 해당 영상이 방영됐다.

영상 속 들개들은 몰라볼 정도로 단정하게 변해 있었다.

“우와, 쟤 봐봐. 때깔부터 달라졌어!”

“저렇게 털이 풍성한 애였어?”

“이 정도면 변신 아닙니까.”

다들 환한 얼굴로 한 마디씩 말했다.

그만큼 예쁘고 멋지게 변해 있었다.

과수원 전역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사료도 언제든 먹을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춰 놓았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더니.”

끄덕끄덕.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다.

이어서 과수원 주인의 인터뷰도 들려왔다.

-폭력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길 집으로 여기는지 얼마나 잘 지키는지요. 보물들입니다. 보물, 하하하.

시원한 그의 웃음소리 속에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곧 영상은 끝났다.

동시에 단원들은 서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확실히 인지했다.

알고 있지만 눈으로 보는 건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태건은 벌떡 일어나며 선수 쳤다.

“운동이라도 좀 더 해야겠습니다.”

저벅저벅.

흘리듯 말하고 먼저 움직였다.

그 이유는 이미 모두가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성아, 구급 쪽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대산 선배, 특수구조의 개념을 다시 한 번.…….”

“단장님, 기동도 후방 지원 가능할까요?”

주섬주섬.

서로 부족한 걸 채우려 다른 단원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또 특수소방단은 밤이 늦도록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줬다.

그리고 며칠 후.

멍냥이 동물병원 문이 열렸다.

딸랑.

열린 문으로 먼저 나오는 건 진돗개였다.

그 리드줄을 태건이 잡고 있었고, 한 손엔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끼잉, 끼잉.

바구니 속에서 앙칼진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짜식들.”

태건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움직였다.

그런 태건이 진돗개와 함께 도착한 장소는 근처 주차장이었다.

거기엔 놀랍게도 강태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새끼, 형님을 오라가라하고 말이야.”

대뜸 만나자마자 인상부터 찌푸렸다.

바로 그때였다.

한 발 앞서 있던 진돗개의 눈이 가늘어졌다.

-크르릉.

경고를 보내며 몸을 낮추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강태영이 움찔하며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쟤 내 동생이야. 내가 형인데 그렇게 말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면 알아듣냐?”

태건이 핀잔을 줬다.

그런데.

…….

진돗개가 조용해졌다.

그 변화에 강태영이 손짓하며 따졌다.

“알아듣는데?”

“……난 가끔 얘가 사람 같아.”

태건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짧은 사이였다.

강태영이 자세를 낮춘 채 진돗개를 쓰다듬고 있었다.

“얘 엄청 순한데?”

“너 왜 갑자기 가만히 있냐?”

태건은 어이가 없어 진돗개를 나무랐다.

진돗개는 순수한 눈빛으로 혀를 늘어뜨렸다.

- 헥헥.

그걸 본 강태영이 멈칫했다.

“와, 나 완전 소름. 니가 딱 잡아 땔 때랑 똑같아.”

“나도 소름. 얘 진짜 뭐지.”

태건이 진돗개를 갸우뚱하며 바라봤다.

강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돗개 턱을 쓸어주며 물었다.

슥슥.

“그런데 진짜 집에 데려가도 돼? 아버지는 반대하셨다며.”

“어머니가 이긴다고 걱정 말라셔.”

“그럼 키우겠네. 그나저나 난 뭔 팔자에도 없는 애견 택시를 하는 거냐.”

강태영이 씁쓸해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태건은 확실히 집어줬다.

“싫으면 그냥 이자 줘.”

“아니, 내가 싫다는 게 아니라 이런 일도 있다. 이거지.”

“어차피 집에 가는 길에 데려가는 걸 뭘 또…….”

태건의 말이 길어지려 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강태영이 얼른 리드줄을 낚아채 갔다.

탁.

“자자, 우리 겸둥이. 오빠랑 같이 할머니네 가자.”

“겸둥이 아니야.”

“그래. 세리라더라. 새끼까지 데려오는 요술 공주라고 말이야.”

강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제간의 대화는 언제나처럼 무뚝뚝함만 가득했다.

곧 강태영의 차에 세리와 새끼들이 탑승했다.

놀라운 건 강태영의 준비성이었다.

배변패드부터 시작해 여분의 수건과 물, 간식까지 싹 준비되어 있었다.

태건은 의외로 놀라지 않았다.

세심하고 다정한 성격이 고스란히 엿보인 탓이다.

‘사람은 참 좋아.’

정확히, 사람만 좋다.

사고를 쳐서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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