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3)화 (83/320)

83화

태건은 곧 세리와 인사를 했다.

꾸욱.

양쪽 볼을 가볍게 감싼 태건이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조만간 만나러 갈게. 애들 얼마나 잘 컸는지 꼭 보여줘야 해.”

…….

할짝.

세리는 불시에 태건의 얼굴을 핥았다.

그 애정 세례를 당한 태건이 크게 움찔거렸다.

“야, 이건 아니지.”

-헥헥.

세리는 또 모르는 척이었다.

“얘 사람이라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태건은 새끼들을 바라봤다.

그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배가 불룩하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털도 풍성해졌고 윤기가 흘렀다.

“이젠 한 손에 못 담겠네.”

새끼들의 성장에 괜히 아빠 미소가 흘러나왔다.

태건의 작별 인사가 길어지자 강태영이 한 소리 했다.

“저기요. 동생 손님씨. 택시 불러 놓으시고 이렇게 시간 잡아먹으면 안 되거든요?”

“어머니한테 전화 드릴게.”

“야, 이 쒝. 이제 그런 협박 안 한다며!”

강태영이 찔리는 게 있어 울컥 소리쳤다.

태건이 어이없이 바라봤다.

“출발했다고 연락드린다고.”

“크흠. 진작 그렇게 말해야지.”

“사람이 이래서 죄를 짓고 살면 안 된다니까.”

절레절레.

태건이 고개를 저었다.

강태영은 붙들린 약점이 불만인지 툴툴거렸다.

“시끄러, 이제 갈래.”

“가라.”

“문 닫아야 가지.”

역시 오가는 대화가 빼박 형제였다.

태건은 문을 닫기 전 세리와 한 번 더 인사했다.

“잘 지내고 있어.”

“얼씨구, 여친임?”

강태영이 꼬투리 잡았단 듯이 빈정거렸다.

참 유치한 발상이었다.

태건은 고개를 저으며 뒷문을 닫았다.

탁.

그와 동시에 강태영의 차가 출발했다.

“…….”

슥슥.

태건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강태영의 차가 주차장을 막 나설 때였다.

지잉.

뒷좌석 창문이 아래로 내려갔다.

이어서 진돗개가 고개를 내밀더니 씩씩하게 짖었다.

-멍! 멍!

고맙단 의미일까.

애들 잘 키우겠단 의미일까.

사람의 귀로는 해석할 수가 없는 짖음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마음으로 느꼈다.

“그래, 너도 건강해. 짜샤.”

투박한 말투 속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본가에 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헤어짐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며칠 후.

띠링.

어머니가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갑자기?”

의아한 태건이 재생해봤다.

마당에서 아버지가 망치를 들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자꾸 찬데서 자고 말이야, 아주 못 쓰겠어!

텅, 텅!

투박한 소리와 함께 거친 망치질이 이어졌다.

그 아래에선 기존의 개집이 더욱 튼튼하고 널찍하게 리모델링 되고 있었다.

그게 동영상의 전부였다.

태건은 반전 어린 아버지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반대하셨네. 아버지가 더 마음 주실까봐. 하하.”

예쁨 받고 있어 다행이었다.

부모님도 활기가 생긴 거 같아 더더욱 좋았다.

*  *  *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그 시간만큼 관악산 소식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특수소방단의 하루는 변함이 없었다.

매일 산행이 거듭됨에 따라 우면산에는 새로운 등산로가 생겨났다.

쭈욱!

정상까지 일자로 쭉 이어진 신개념의 등산로였다.

특수소방단의 훈련 성과를 가장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만큼 모두의 체력이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유중헌과 이지성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태건은 알게 모르게 단원들의 변화를 계속 체크했다.

‘확실히 유 선배랑 이 선배의 몸이 많이 커지고, 지속력도 늘었어.’

단원들의 발전은 늘 환영할 일이었다.

어느새 팀워크 훈련기간의 반이 흘러갔다.

‘이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인데.’

태건이 턱을 쓸며 고민했다.

그런데 때마침 전용 헬기와 추가 방화복이 도착했다.

딱 적기였다.

“좋아!”

딱!

손가락까지 튕겼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특수소방단의 훈련은 전면적으로 달라졌다.

교관은 태건이 담당하기로 했다.

결정이 된 순간 태건은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님들, 스모크점퍼가 될 시간입니다.”

번뜩!

태건의 눈빛이 진하게 빛났다.

이후 모든 훈련은 헬기를 통해 진행됐다.

태건만큼 반색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유중헌이었다.

평소에는 존재감도 없었지만 헬기 조종간을 잡자마자 급변했다.

투다다다!

“크하하하. 바로 이거지!”

그의 헬기 조종은 운전만큼이나 거칠었다.

휘이익!

우면산 상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태건은 그런 그의 과격한 조종 실력을 격하게 환영했다.

“아주 좋습니다. 딱 좋아요!”

“역시 네가 뭘 좀 안다니까!”

“선배, 바로 부탁드립니다.”

“까짓것 가자!”

투다다다!

미리 오간 대화가 있었는지 헬기는 우면산 정상으로 향했다.

헬기는 순식간에 우면산 정상 상공에 도착했다.

투다다다!

태건과 단원들은 모두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

이내 태건이 헬기 슬라이드 문을 열었다.

지상까지 높이를 가늠한 태건이 헬멧 무전기로 지시했다.

“다운, 더 낮춰요!”

“오호, 여기서 더?”

“한참 남았습니다. 팍팍 내려가세요!”

“얼마든지!”

경쾌하게 화답한 유중헌이 고도를 낮췄다.

아래는 산이다.

뾰족뾰족하게 자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었다.

매일 정상을 찍었기에 눈을 감고도 그려질 정도로 훤히 알고 있었다.

너무 고도를 낮추면 헬기 조종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자칫 산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휩쓸릴 수도 있다.

그런데 유중헌은 흥분으로 까먹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고도를 더 낮췄다.

슈슈슉.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는 단원들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야, 고도 올려!”

“이러다 부딪치겠습니다!”

“업, 업!”

다급히 방향을 바꾸길 지시했다.

그 모든 의견은 태건의 한 마디로 묵살됐다.

“더 아래로. 나무 끝에 닿을 때까지!”

“뜨악!”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헬기 조종간을 붙든 유중헌은 태건의 의견에 따랐다.

“크하하. 짜릿해, 짜릿하겠어!”

“이 정신 빠진 놈들아!”

오광휘 단장은 갑자기 편두통을 느끼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투두두.

아무리 소리쳐도 헬기는 태건의 지시대로 고도를 낮췄다.

이윽고 헬기가 호버링했다.

정말 손을 뻗으면 나무의 끝이 닿을 높이였다.

아니, 태건이 보란 듯이 나무 끝을 쓸었다.

스스슥.

“나무 꼭대기 만지는 느낌은 역시 좋습니다!”

“너만 좋아, 너만!”

“다 같이 좋아야죠. 우선 반대쪽 슬라이드 여시고요……. 빨리 열어요!”

다들 미적거리자 태건이 결국 목소리 높였다.

그때 유중헌도 한마디 거들었다.

“교관님 말씀 잘 들어야지. 크크.”

“유중헌!”

“단장님, 전 열외 아닙니까. 파이팅. 크크.”

사악한 웃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쪽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드르륵.

지시대로 슬라이드 문을 열고 보니 나무 꼭대기가 바로 발아래 있었다.

그 높이가 대략 20미터 정도 됐다.

상당한 높이로 실제로 보면 아찔함에 눈을 돌리고플 정도였다.

“으아, 젠장.”

단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한 문제였다.

방화복에 레펠 장비를 착용한 모습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뒤에 태건이 다가갔다.

철컥.

“엥?”

이상한 소리에 다들 돌아봤다.

태건이 각자의 등에 등산 로프를 걸고 있었다.

착, 착.

모두에게 로프를 건 태건이 만족했다.

“이제 됐다.”

“이게 뭔데?”

“생명줄이요.”

싱긋.

태건이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은 이유 모를 오한을 느꼈다.

“왜 춥지?”

“저도 으스스하네요.”

슥슥.

팔을 비비기도 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로프 길이는 지면에서 1미터 짧습니다.”

그 소리에 다들 갸웃거렸다.

“짧다고?”

“길어야 정상 아니야?”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뭔데?”

궁금한 시선들이 태건에게 집중됐다.

태건은 자신의 등에 달린 로프를 툭툭 당기며 말했다.

“그건 이제 확인하실 겁니다.”

“어떻게?”

“숙련된 조교 앞으로.”

“누구?”

휙휙.

서로 돌아봤지만 의아함만 가득했다.

태건이 말한 조교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턱.

헬기 끝에 멈춰선 태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술 강하 준비 끝, 뛰어……. 뛰어!”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했다.

그런데 정말 그대로 뛰어내렸다.

촤아악!

태건이 대뜸 헬기에서 뛰어내리자 모두가 경악했다.

“야이, 미친!”

“레펠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태건아!”

사색이 된 단원들이 재빨리 헬기 끝으로 몰려왔다.

같은 시각.

태건은 말 그대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등에 묶은 로프에만 의지한단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또 다른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건 사방에 가득한 나무들이었다.

태건은 뛰어내림과 동시에 나무 꼭대기를 낚아챘다.

“차아앗!”

촤자작!

무게에 쏠려 내려가다 못해 크게 휘어졌다.

더 휘어지면 부러질 거 같았다.

우지직!

아니, 부러졌다.

방화복에 장비까지, 10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를 감당하기에 나무 끝은 너무 여렸다.

태건은 이미 옆에 나무로 몸을 돌렸다.  

후두두둑!

나무를 끌어안자 육중한 충격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떨어졌다.

지상까진 아직 멀었다.

태건은 주변 나뭇가지들을 예리하게 살피며 움직였다.

“타앗!”

터억!

“아자잣!”

타닥!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혹은 나무에서 나무로.

완전무장한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날다람쥐처럼 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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