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떨어지는 속도까지 더해지니 지상에 도착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촤자자, 터엉!
“윽!”
잘 내려오다 무언가에 탁 걸렸다.
1미터 짧은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바동바동.
“끙. 이게 문제라니까.”
살짝 헤맸지만 로프 결속을 풀어냈다.
퉁!
그제야 두 다리가 땅에 닿았다.
결과는?
“썩쎄쓰!”
당연히 성공이었다.
태건은 헬기에 손을 흔들며 헬멧 무전기에 소리쳤다.
휙휙.
“여기 보이죠. 저 보이시죠!”
“허어억. 그게 가능……. 하니까 그렇게 했겠지.”
“나무도 역시 국산이 짱짱하니 탄력도 좋네요……. 그런데 왜 안 뛰실까?”
태건의 목소리가 급속도로 낮아졌다.
시범까지 보인 입장이다.
양보와 배려, 그런 따뜻한 감정 따윈 품고 있지 않았다.
“…….”
헬기에서 반응이 없자 대번에 목소리를 높였다.
“스모크점퍼가 이 정도도 못해서 어디다 써먹습니까!”
“우리는 스모크점퍼가 아니라니까.”
“됐고, 파이브……. 포…….”
태건은 숫자를 역으로 세기 시작했다.
최후통첩이다.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태건이 숫자를 세는 중간 유중헌의 답답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인간들아, 헬기가 무한동력이냐. 빨리 떨어져버려!”
“저 자식이, 니가 여기 서 봐!”
“그럼 단장님이 조종하실?”
“이 새끼들이 옆에서 밑에서 난리네. 좋아, 좋다 이거야. 내가 뛴다. 더러워서 확 뒤질란다. 으아악!”
휘익.
귀가 시끄럽더니 헬기에서 옆으로 튀어나온 오광휘 단장이 보였다.
그 순간 태건은 다그침을 멈추고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아무리 안전 로프가 있다고 해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 탓이다.
사실 상당히 고난도 훈련이었다.
그럼에도 강행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두려움은 한순간, 그걸 극복하면?’
그땐 뭘 느낄 수 있는지 백번 말해도 소용없다.
직접 느껴봐야 그 희열을 진정 즐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 이유로 태건의 두 눈은 뛰어내린 오광휘 단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 오광휘 단장의 나무타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촤작. 촤자작!
“으아, 으아아악!”
태건과 같은 우아한 몸짓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우적거리고 허둥거리기 바빴다.
로프가 등에 결속되어 있어 붙들고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지켜보던 태건의 심정이 여유로운 건 절대 아니었다.
오광휘 단장의 떨어지는 속도가 다급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탄력이 붙으면?
하늘에서 맨몸으로 다이빙한 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태건은 다급함에 반말로 소리쳤다.
“아무거나 끌어안아!”
“아으아!”
“손 뻗어. 손!”
태건의 따가운 외침과 동시였다.
오광휘 단장은 허둥거리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터억!
얇은 나무 끝을 간신히 붙들었다.
방화 장갑 덕에 손도 보호하고 더 강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까지 방화 장갑이 감싸주진 못했다.
“커어어억! 헉헉.”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은 나무들을 빠르게 살피며 다음 경로를 소리쳐 알렸다.
“거기서 오른쪽 2시 방향 아래. 나뭇가지!”
“어어어, 엄마!”
“어머니 뵙고 싶으면 말대로 따라!”
“아으씨부럴, 이야!”
휘익.
오광휘 단장은 옆으로 뛰며 두 손을 다급히 허우적거렸다.
공포와 두려움에 잡아먹힌 거였다.
그 거칠고 불규칙한 손길은 가만히 있는 나뭇가지도 놓쳤다.
후웅.
“허억, 어어어어!”
오광휘 단장의 절망 가득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태건의 가슴이 쿵덕쿵덕했다.
그럴수록 더 목소리 높여 단호하게 소리쳤다.
“왼쪽으로 손 뻗어, 지금!”
“아악!”
터억!
오광휘 단장은 가까스로 꽤나 굵직한 나뭇가지를 붙들었다.
“어흐, 어흐흐흐.”
심장 떨리는 호흡소리가 가득 들려왔다.
태건의 심장도 그리 무사하진 못했다.
‘어후, 심장이야.’
그래도 오광휘 단장은 나름 잘 해내고 있었다.
태건은 그의 놀란 마음부터 달래줬다.
“이제부터는 쉽습니다.”
“쉬쉬쉬, 쉬하겠다, 새꺄!”
“그건 알아서 하시고, 뒤에 나무 아래쪽에 더 굵은 가지 보이시죠.”
“몰라. 안 보여. 봐도 안 보여.”
절레절레.
오광휘 단장은 도리질 치며 부정부터 하고 봤다.
의외로 높은 곳을 무서워했다.
모두가 듣고 있는 무전이지만 태건은 가차 없이 소리쳤다.
“불구덩이도 뛰어들면서 뭘 그렇게 무서워하십니까!”
“불은 새꺄, 이렇게 높지 않아!”
“높은 불도 있으니까 그놈 잡는다고 생각하고 그냥 뛰세요.”
“야, 니 몸뚱이 아니라고 막말하냐!”
오광휘 단장이 버럭버럭 소리쳤다.
태건은 설득을 포기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럼 거기 계시던지. 자, 다음.”
“강태건!”
“저 믿습니까?”
“이 새끼……. 아으씨. 믿어 새꺄! 믿으니까 대책 없이 뛰었지, 새꺄!”
오광휘 단장이 원망 가득 담아 외쳤다.
태건은 썩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은 건넸다.
“그럼 그냥 두 손 놓으세요.”
“네, 네가 날 죽이는구나. 너구나. 역시 너였구나!”
“아씨, 그럼 밤새 계속 거기 계시던가!”
“내가, 내가 이 원수는 지옥에서 갚아주마. 그래 간다. 가!”
휙!
오광휘 단장은 저주를 잔뜩 퍼부으며 두 손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아래로 추락했다.
주르륵.
“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또 들려왔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단원들도 기겁했다.
“안 돼!”
“태건아. 받쳐!”
“어떻게든 막아!”
아주 난리가 났다.
그런데 반해 태건은 떨어지는 오광휘 단장을 보면서도 심드렁했다.
‘둘……. 하나……. 지금.’
태건이 역카운팅과 동시였다.
텅!
묵직한 소리가 났다.
안전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충격이 오광휘 단장에게 쏠린 거였다.
“커어억!”
아픔이 아닌 놀람에 대한 격한 울림이 들려왔다.
지상과의 높이는 정확히 1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가간 태건이 등의 로프를 풀어주며 말했다.
“이제 내려오세요.”
“엇, 어엇. 어어……. 윽!”
쿠웅!
오광휘 단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그가 지상에 안착함과 동시였다.
태건은 친절하게 일으켜주며 물었다.
“해보니까 할만……. 헐.”
“이, 이 시끼야.”
오광휘 단장은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따졌다.
진짜 무서웠던 모양이다.
토닥토닥.
태건은 놀란 그의 어깨를 말없이 다독여줬다.
‘하긴 나도 그랬지.’
오광휘 단장의 담력이 결코 약한 게 아니었다.
스모크점퍼 훈련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훈련이다.
오광휘 단장의 성공은 다른 단원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역할을 한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황대산이 뛰어내렸다.
“으아악!”
“서두르지 말고, 주변을 봐야할 거 아닙니까!”
“남자는…….”
“이상한 소리 말고, 알려주는 대로나 좀 하라고!”
태건은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며 안전한 하강 루트로 인도했다.
고수현은 앞의 두 사람과 또 달랐다.
“좋아. 여기 딛고, 그 다음은 어디를……. 오케이, 여기 앞에가 좋겠지?”
“수현 선배, 거기 말고 그 아래가 더 튼튼할 겁니다.”
“거기서 보여? 이야, 눈 좋네. 그럼 뛴다. 허이짜!”
“좋습니다. 그런 분위기 계속 유지하면서!”
의외로 즐기는 고수현의 움직임에 태건도 간만에 지시에 활기가 돋았다.
마지막 순서인 이지성도 한 개성 했다.
첫 번째 점프 후 몰래 준비한 로프를 꺼내 다른 나무에 걸었다.
휘릭.
“야, 그거 반칙이지!”
옆에서 먼저 고생해 내려온 선배들이 소리쳤다.
이지성은 움츠리지 않고 마주 외쳤다.
“준비하는 건 내 마음이지!”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억울했는지 고수현이 다가와 태건에게 항의했다.
“저건 아니지 않아?”
“놔두세요. 당해봐야 압니다.”
“뭘?”
“후후.”
태건은 웃기만 했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한 이유가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려 로프가 원하는 대로 날아가지 않았다. 무리하게 시도할수록 나뭇가지에 로프가 꼬이기만 했다.
결국 로프는 실타래처럼 엉켜 무용지물이 됐다.
“이런, 씨이.”
이지성의 짜증이 헬멧 무전기로 들려왔다.
태건은 그 순간을 기다렸단 듯이 이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통할 거면 제가 그렇게 했겠죠.”
“칫. 젠장.”
“꼼수 그만 부리시고 제 말대로 따라 내려오기나 하세요. 자…….”
태건은 차근차근 디딜 곳을 알려줬다.
이지성은 그제야 순순히 따랐다.
꼭 한 번 상황을 꼬아서 멀리 돌아가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새 모두 지상에 안착했다.
투두두.
하늘에 떠 있는 헬기를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이 멍하니 변했다.
“우리가 저기서 뛰어내렸어?”
“나무들이 엉망이 됐네요. 환경보호단체에서 한 소리 하겠는데요?”
“살아있는 게 놀라운 겁니다.”
다들 여러 생각이 오가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태건이 다가섰다.
처억.
“크흠. 주목.”
“…….”
모두 바라보자 태건이 돌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
“역시 우리 라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자식이 뭐라는 거야.”
“스모크점퍼 최고난도 훈련을 한 번에 해냈는데 대단하죠. 정말 훌륭하십니다.”
짝짝.
태건은 격한 칭찬에 박수까지 곁들였다.
진심이었다.
칭찬을 듣자 단원들도 조금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뭐, 조금 헤매긴 했지만 그래도 라텔의 일원으로써 당연히 해내는 게 맞지. 안 그러냐?”
“그, 그럼요. 우리가 누굽니까. K-소방의 혁신이자 자랑 아닙니까.”
“옳소. 뭐든 처음이 힘든 거죠. 그리고 선배들, 막상 하고 나니까 할만하지 않던가요?”
다들 수긍하는 가운데 이지성만 의심을 보였다.
“쟤가 칭찬을? 불안한데.”
태건은 이지성의 의구심을 묵살하고 긍정적인 여론에 힘을 실어줬다.
“자, 그럼 이번엔 다른 걸 해볼까요?”
“그래. 이것도 했는데 이제 못할 게 뭐가 있냐.”
텅텅!
오광휘 단장이 가슴을 치며 당차게 말했다.
“그럼 천천히 내려가서 다음 훈련 이어가시죠.”
태건은 너무도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