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5)화 (85/320)

85화

그리고 잠시 후.

투다다다.

헬기는 또다시 우면산의 경사면을 따라 이동했다.

이번엔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였다.

드르륵.

태건은 슬라이드 문을 열어젖히며 헬멧 무전기에 말했다.

“자, 뛰시죠!”

“이 자식아, 다른 거라며!”

“다른 장소에서 훈련. 그러니까 다른 거. 밑에서 봅시다.”

휙!

태건은 이번에도 솔선수범해 먼저 뛰어내렸다.

그런 태건의 뒤에 단원들은 원망 섞인 아우성을 내질렀다.

“야 이 천벌 받을 놈아!”

“니가 그러고도 후배냐!”

“극악무도한 놈!”

쌍소리만 제외했을 뿐 욕과 다름이 없었다.

어느새 지상에 안착한 태건은 헬기를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억울하면 내려와서 때리시든가.”

정말 얄밉게 자극했다.

다행히 두 번째 전술 강하 훈련도 성공적이었다.

그제야 고수현이 태건에게 물었다.

“이걸 왜 해야 되는 건데?”

“모든 현장에 로프 떨구고 유유히 내려갈 순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건 조금만 훈련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태건의 이어진 말에 고수현은 역시나 수긍했다.

“인정.”

“그런데 말입니다. 최악의 현장, 당장 손을 뻗어야 할 요구조자, 그런 상황에서 언제 줄 타고 내려갈 겁니까.”

“그럴 시간은 없지.”

어느새 고수현이 작아졌다.

태건의 옳은 소리에 더는 따지고 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간담 서늘한 훈련이다.

하지만 필요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태건이 전술 강하만 강요하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레펠 강하 연습도 했다.

강하 방법은 상당히 다양했다.

“급강하!”

“사선 강하!”

“아래에서 불길 올라옵니다. 서로 밀어내서 거리 벌려요!”

터엉!

태건은 헬기 무전기를 십분 활용해 다양한 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냈다.

특수구조대 출신인 황대산도 놀랄 정도였다.

“진짜 이런 게 쓰여?”

“다 제가 현장에서 해본 걸 알려드리는 겁니다.”

“대체 얼마나…….”

“상상, 그 이상.”

태건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일일이 출동 과정을 말했다가는 남은 훈련기간이 반상회로 끝날지도 몰랐다.

헬기의 활용은 단원들의 하강 연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아직 참여하지 않은 단원까지 태건은 살뜰하게 챙겼다.

“헬기 이상, 조종사 비상탈출!”

“뭐?”

유중헌은 느닷없는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더욱 보챘다.

“기장 탈출합니다. 어서요!”

“야, 내가 떨어지면 조종간은 누가 잡아!”

“제가 잡습니다. 얼른 나오세요!”

태건은 유중헌을 밀어내며 조종간을 붙잡았다.

터억.

“크으윽.”

조종하는 태건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물론 면허증은 있다.

다만 전문 조종훈련을 받은 적은 없었다.

어깨너머로 그리고 응급상황 대처법으로 배운 거였다.

그래서 유연한 조종은 어려웠다.

다만 제자리에 멈춘다든지, 정해진 장소로 이동해 착륙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태건은 빠르게 조종간을 움직여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헬멧 무전기로 다시 훈련상황을 전파했다.

“기체 이상, 조종사 비상 탈출, 교육장 건물 위를 지나는 순간 자유강하!”

“자, 자유강하라니. 난 처음이야, 로프라도 줘. 로프는 걸어야지!”

유중헌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태건에겐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헬기가 떨어지는데 어디다 걸 겁니까. 그냥 뛰라면 뛰어요!”

“내가 헬기 잘 조종해서 위기 탈출, 오케이?”

유중헌은 날벼락을 피하려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양쪽에서 단원들이 어깨를 붙들며 진하게 웃었다.

그동안 당한 걸 갚아줄 기대감에 한껏 고무된 표정들이었다.

터억.

“후후. 님 어서 오고.”

“싫어. 안 돼.”

“선배, 하면 다 하게 되더라고요. 조종사 자유강하 준비 끝!”

고수현이 작정한 듯 외쳤다.

귀로 듣고 있던 태건은 진하게 미소 지었다.

곧 저 멀리 교육장 옥상이 보였다.

그쪽으로 급속도로 이동하며 태건이 타이밍을 쟀다.

“자유강하 카운팅, 쓰리……. 투……. 원……. 강하!”

“으아아아!”

유중헌은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헬기에서 떠밀렸다.

산 정상처럼 엄청 높은 높이는 아니었다.

대략 3미터 정도였다.

방화 장비를 갖추지 않은 활동복 차림이었다.

덕분에 몸을 굴리기 좋았다.

데굴데굴.

정신없이 옥상을 구르다 멈춘 유중헌이 날아가는 헬기에 소리쳤다.

“강태건, 난 아니라며!”

그때 태건의 목소리가 헬멧 안으로 잔잔하게 울렸다.

“헬기 밖입니다.”

“엇? 어……. 이 자식아. 그게 문제냐. 이 나쁜 놈아!”

소심해지던 유중헌은 돌변해 버럭 소리쳤다.

태건은 그 격한 외침에 웃었다.

“하하.”

하지만 웃자고 이런 과격한 훈련을 한 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해야 경각심이 생길 테니까.’

이런 상황조차도 경험의 일부였다.

그 외에도 헬기 훈련법은 다양했다.

로프에 결속한 채 상승하기도 하고, 훈련용 건물에 경찰특공대처럼 날아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주로 헬기 이동이 많을 거라 판단한 탓이다.

그렇다고 헬기만 활용하는 건 아니었다.

잠수 도구 착용 훈련, 산림 화재시 행동요령 등등.

갖가지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매일매일 이어갔다.

그 강도는 지금까지와 비교 불가였다.

앞에 2주가 예행 훈련이었고, 뒤에 2주는 강행 훈련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얼마나 힘든지 살이 내리듯이 빠졌다.

그 부작용으로 한껏 부풀린 근육도 조금 가늘어졌다.

하지만 훈련이 거듭될수록 모두의 눈빛은 날카롭고 예리하게 변해갔다.

그건 곧 자신감을 의미했다.

‘우리가 라텔이다.’

처음엔 마음으로만 다졌던 각오가 서서히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태건은 늘 모든 훈련에 가장 앞장섰다.

다시 한 번 몸에 익히고, 또 숙달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서도 훈련을 해내는 선배들에 대해 진심 어린 존경을 보냈다.

‘절대 쉽지 않은데.’

욕을 퍼부으면서까지 해내는 독기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태건은 감히 장담했다.

라텔은 어느 스모크점퍼와 견주어도 절대 뒤지지 않은 소방의 정예들이란 마음이었다.

“우린 어떤 현장도 물러서지 않아.”

어느새 자신감을 넘어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  *  *

팀워크 훈련을 시작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우석진 정책과장의 공표대로 모의훈련을 하는 날이 도래했다.

화재훈련장 앞에는 큼지막한 천막이 쳐져 있었다.

그 속에 주요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노년에 접어든 후덕한 인상의 남성, 그는 김을영 소방차장으로 소방청의 2인자였다.

그 옆에 스트레스로 머리숱이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중년인은 박선웅 정책국장이었다.

“…….”

천막 속은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된 모양이었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짤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라텔의 모의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화르륵.

타이밍 좋게 화재훈련장에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우면산 임시헬기장에 소방헬기가 안착해 있었다.

헬기 안에는 6명의 단원들이 전원 출동준비를 마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

다들 졸고 있는지 헬기 내부는 조용함이 감돌았다.

그때 알람 소리가 울렸다.

띠릭, 띠릭.

그 소리를 듣고야 하나둘 눈을 떴다.

태건도 눈을 뜨더니 저 아래 있는 화재훈련장부터 살폈다.

모락모락.

검은 연기가 오르는 걸 보며 기지개를 켰다.

“흐음. 슬슬 출발해야 할 타이밍이네요.”

그 말투와 행동 속에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화재훈련장에 불 지르고, 그 속에서 더미(인형) 3개 구출해 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그래도 어디 숨겨놨는지는 비밀이라잖습니까.”

“여기저기 쑤셔보면 금방 나올 텐데, 이걸 모의훈련이라고, 차라리 똥개훈련이라고 하지.”

끼릭, 끼릭.

투덜거리면서도 장비는 한 번 더 점검했다.

그 사이 헬기 로터도 돌기 시작했다.

투, 투, 투다다.

이어서 유중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쌔빠지게 훈련했는데 더미가 웬 말이야. 칫, 재미없어.”

“중헌아, 너무 그러지 마라. 그렇다고 사람을 넣어둘 순 없잖아.”

오광휘 단장은 만류했지만 본인도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전체적인 단원들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고난도의 훈련을 이겨내며 자신감도, 자존감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래서 더 모의훈련에 불만인 모양이었다.

태건은 분위기를 쭉 살폈다.

‘이대로는 의욕이고 뭐고 없겠어.’

힘 빠지는 건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힘내자고 말해봐야 들어먹을 단원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왕 하는 거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는 게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뭔가 자극이 필요한데……. 그렇지!’

띵.

자극될만한 걸 떠올린 태건은 지체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점심 내기 어떻습니까. 메뉴는 강남에 있는 프리미엄 뷔페로 하고요.”

“점심 내기?”

다들 눈빛을 반짝였다.

태건은 좀 더 자세한 규칙을 설명했다.

“현장 진입 후 5분 내에 상황종료가 제한 시간이고, 거기에 더미를 구조한 단원은 회비면제.”

“제한 시간 지나고, 더미 구조 못하면?”

“제한 시간 지나면 식당에서 밥 먹는 거고, 더미 구조 못하면 회비 몰빵이죠.”

모든 설명을 마친 태건이 가볍게 찡긋거렸다.

비용을 계산해보던 모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번뜩!

“그거 상당히 구미 당기는데?”

“진정한 남자는 절대 도전을 피하지 않지.”

갑자기 모두 의욕을 불태웠다.

역시 자극을 줘야 불붙는 성격들이었다.

그런데 유중헌은 불만인 모양이었다.

“우씨, 난 해당사항 없잖아!”

“신속하게 데려다주시면 나중에 투표로 정하겠습니다.”

“그 말 듣고는 못 참지. 다들 꽉 잡아!”

투두두두!

프로펠러가 더 힘차게 돌며 헬기가 긴급이륙을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고도를 높이는지 몸이 쑥 내려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다들 어느새 바짝 긴장했다.

더불어 서로를 향한 시선 속에 경계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단원이 아니라 경쟁자가 된 느낌이었다.

협동력을 보기 위한 모의훈련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태건도 예측하기 힘들었다.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독특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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