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6)화 (86/320)

86화

헬기는 삽시간에 고도를 높였다.

이어서 산 아래 화재훈련장을 향해 신속하게 날아갔다.

투두두두!

화재훈련장이 가까워지자 다들 눈을 부릅떴다.

“불 난데가 저기, 저기…….”

“그럼 더미가 있는 방은 확률적으로…….”

다들 뚫어지게 바라보며 구조에 대한 최단거리 루트를 가늠했다.

적당한 경쟁은 확실히 사람을 의욕적으로 변하게 했다.

태건도 뒤쳐질 생각은 없었다.

‘어디보자……. 음?’

살피던 태건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해갔다.

현재 헬기 고도는 화재훈련장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뒤쪽으로는 서초동부터 시작해 강남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태건은 단원들을 둘러봤다.

모두 화재훈련장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서 저기로…….”

“난 그럼 반대쪽에서…….”

중얼중얼.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기 바빴다.

너무도 몰두하고 있는 모습에 태건은 갸웃거렸다.

‘별 거 아닌가?’

그렇게 관심을 접으려 했다.

그런데 이내 태건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그 아래쪽에서 시뻘건 불길도 설핏 보이는 거 같았다.

아니, 보였다.

그 순간 태건은 확신했다.

이건 화재다.

눈을 크게 뜬 태건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비상, 화재 발생!”

“알아. 그래서 출동하잖아.”

“저기 보라고요, 저기!”

휙휙.

태건이 연속해 저 먼 곳을 삿대질했다.

그때 유중헌의 보태는 말이 뒤따라 들려왔다.

“단장님, 화재 맞는 거 같습니다.”

“뭐!”

그제야 다들 놀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검은 연기를 확인함과 동시였다.

찌잉!

느슨한 분위기가 단숨에 쨍쨍하게 조여졌다.

“우왓, 저 연기 뭐야.”

“어어. 불이 뭐 저렇게 빨리 올라와. 벌써 두 배는 커졌어!”

“저 정도면……. 꽤 큰 건물 아니야?”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결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저 아래 소방차들 간다. 화재 맞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건이 외쳤다.

“중헌 선배, 기수 돌려요!”

“……에라이, 지금 모의훈련이 문제냐!”

투다다다다!

급격히 방향을 전환한 헬기는 곧장 검은 연기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거기에 아무도 반대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거취가 결정될 중요한 모의훈련이다.

하지만 저쪽은 사람 목숨이 오가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헬기는 그대로 방향을 돌려 교대역 쪽으로 날아갔다.

투두두!

다들 말이 없어졌다.

“…….”

가까워지는 화재 현장을 파악하려 모두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긴장감도 돌았다.

가장 훈련에 비중을 많이 둔 게 화재 현장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실전이 찾아올 줄 몰랐다.

불이 두려워서 긴장한 건 결코 아니었다.

‘한 분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침묵의 시간이 길어져선 안 된다.

화재출동의 경험자들은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잘 알고 있었다.

먼저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을 들었다.

“네, 과장님. 기수를 돌린 건 다름 아닌…….”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최소한의 상황설명 중이었다.

그 사이 태건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저기면 우면 관할이야.”

최근 가깝게 지내는 소방관에게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사이렌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에에엥, 에에엥.

역시 우면 센터도 출동 대상인 모양이다.

그 소리를 배경 삼아 다급하고 긴장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태건아, 지금 우리 출동…….”

“저희도 가는 길입니다!”

“오고 있……. 어어어. 저기 헬기, 보여. 봤어!”

“김위영 선배, 현장 상황이 어떻게 됩니까?”

태건은 다짜고짜 물었다.

정식으로 지원 받고 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무작정 출동이었다.

그래서 아는 게 없었다.

통화 상대인 김위영은 다른 걸 먼저 언급했다.

“너희 오늘 모의훈련이라며.”

“지금 그딴 게 중요합니까!”

“차장님하고 정책국장님도 오셨잖아.”

“알게 뭡니까.”

태건의 대답이 한결같았다.

김위영도 얼추 알고 있던지 약간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성질은. 현대스포츠센터라고, 근처에서 꽤 유명한 복합 상가에서 화재 신고접수가 들어왔어.”

“현대스포츠센터요.”

태건은 일부러 곱씹으며 고수현을 가리켰다.

스윽.

그 신호를 본 고수현은 바로 눈치챘다.

“현대스포츠, 현대스포츠…….”

토도독.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검색에 들어갔다.

그 사이 태건의 귀에 김위영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신고는 3분 전에 접수됐고, 약 10분 전에 화재가 발생한 거 같다고 해.”

“겨우 13분 만에 저렇게 불이 올라왔다고요?”

이해 불가의 상황이었다.

그에 대해 김위영이 좀 더 덧붙여 설명해줬다.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라는데, 천장에 무슨 공사하다가 합선된 거 같아.”

“그래도 스프링클러가 있을 텐데……. 설마.”

안 좋은 예감에 태건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 추측이 맞았는지 김위영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쪽에선 아니라는데, 아무래도 공사하느라 꺼놓은 거 같아. 초기 진압 시기를 놓쳐서 불이 번졌을 거야.”

“푸우우, 지금 어디어디 출동 중입니까?”

“현재는 우면, 잠원, 서초까지 총 3개 안전센터.”

“그럼 저희는 옥상으로 투입하겠습니다. 출동 인원하고 투입 차량 정리해서 저희 단장님에게 보내주십시오.”

태건은 빠르고 간략하게 정리해 말했다.

다른 센터였다면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실례였다. 하지만 우면 센터 소방관들은 라텔에 대해 알고 있어 말할 수 있었다.

김위영도 딱히 불만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다른 의미로 굳어져 있었다.

“저 연기를 뚫고 옥상 침투라니. 너무 무모하잖아.”

“그러니까 라텔이죠.”

“다들……. 젠장. 안전이다. 안전!”

“썰, 그럼 물 좀 예쁘게 쏴주십시오. 라텔.”

경례 구호를 외친 태건은 휴대폰을 내렸다.

다들 그런 태건을 주시하고 있었다.

태건은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수집한 정보를 전달했다.

“우면, 잠원, 서초 센터 출동, 화재 발생 후 대략 13분경과 상태, 원인은 공사 중 합선으로 추정.”

“…….”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들을 말이 남은 탓이다.

기다렸단 듯이 고수현이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며 조사한 걸 말했다.

“제일빌딩, 지하 3층 지상 7층.”

“층별로는?”

“1층부터 3층까지 상가, 4층하고 5층은 스포츠센터, 6층하고 7층은 사무실인 거 같습니다.”

고수현의 보고가 끝났다.

그때 유중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공 접근, 20초 전!”

“어디!”

휙!

모두 재빨리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 사이 검은 연기가 더 굵어지고, 또 짙어져 있었다.

태건은 인상을 푹 찡그렸다.

“젠장, 연기가 알을 까는 거야 뭐야!”

“건물 면적이 상당해 보이는데?”

고수현도 심각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불쑥!

황대산이 다급히 앞으로 손가락을 뻗으며 말했다.

“다들 저기. 벽면 따라 불길이 번지고 있어!”

“보입니다. 진작부터 보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빨리 번지는 게 이상하잖아요!”

“자재 문제일 가능성이 커. 드라이 비트라든지 말이야.”

황대산은 의외로 그쪽에 지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불길은 건물 벽면을 따라 빠르게 번지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손가락으로 다급히 옥상을 가리켰다.

척.

“지금 자재가 문제냐……. 저기!”

거기엔 피신 온 사람들이 두 손을 휘저으며 헬기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요구조자들이다.

태건은 그들 수부터 파악하고 또 현장 상황을 예측했다.

“대략 50명에서 60명 정도. 그럼 비상구로 탈출이 불가능하단 건가?”

“도착 10초전!”

“……다들 레펠 장비하고 로프까지 죄다 쓸어 담아요. 빨리!”

태건이 다급히 소리쳤다.

다들 바로 반응했다.

우당탕!

“챙겨!”

“뭘 꽁꽁 싸매. 일단 부둥켜안아!”

“이지성, 구급상자 여분까지 챙겨.”

“이미 챙겼습니다!”

헬기 안은 일순간 난리가 났다.

그런 가운데에도 유중헌은 날카롭고 거친 목소리로 카운팅 했다.

“도착 5초 전……. 4초…….”

그 사이 태건은 슬라이드 문을 열었다.

“도어 오픈!”

스르릉!

“좌측 개방.”

“로프 내려!”

스릉. 촤라락!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리며 로프가 두 개씩, 총 4개가 길게 늘어졌다.

그 끝이 옥상에 닿은 걸 확인함과 동시였다.

“단장님!”

“연기고 불길이고 죄다 물어뜯어!”

“오케이, 우리가 라텔이다!”

촤아악!

네 개의 로프에 단원들이 각각 매달려 옥상으로 하강했다.

태건을 비롯한 라텔은 순식간에 옥상에 안착했다.

차자작!

“강태건 도착, 로프 분리!”

“오광휘…….”

“황대산…….”

각자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며 재빨리 로프와 멀어졌다.

그와 동시였다.

우르르.

옥상 가득한 요구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살려주세요!”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모두 한목소리로 절절하게 애원했다.

사방을 꽉 채운 사람들은 태건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다른 단원들도 상황은 같았다.

“이런.”

“이거 참.”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밀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태건은 우선 두 손으로 손짓부터 하며 진정시켰다.

“한 분도 빠짐없이 구해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진정하시고 불편하시더라도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최대한 차분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겐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조를 언급하자 오히려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부터 구해주세요!”

“새치기 마요, 내가 먼저 왔어요!”

터덕.

사람들은 자신을 가리키며 앞으로 밀려왔다.

서로 밀고 또 밀리며 분위기도 험악해져 갔다.

살고자 하는 강렬한 바램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오죽할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모습은 혼란만 야기할 뿐이었다.

“…….”

태건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뚝!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방에서 밀고 있지만 조금도 떠밀리지 않았다.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하겠단 게 아니다.

지금까지 반복한 수많은 연습 중에 이런 상황도 포함되어 있었다.

각자 역할을 분담을 했기에 나서지 않는 거였다.

태건뿐이 아니었다.

“…….”

“…….”

황대산과 고수현도 이 순간만큼은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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