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그때 모두의 귀를 울리는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분들이 보자보자하니까, 이게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
우뚝.
요구조자들의 아우성이 일순간 멈췄다.
그만큼 옥상을 진동시킨 강한 울림이었다.
모두가 침묵하자 오광휘 단장이 이어서 외쳤다.
“전부 무사 탈출 시켜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좀 기다리세요!”
“그럼 저부터…….”
중년인이 슬쩍 손을 들며 자신을 어필하려 했다.
가만히 있던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게 변해 갔다.
고요함이 깨지려는 징조가 보였다.
눈치챈 오광휘 단장이 한 박자 빨리 대처했다.
“탈출 순서는 부상자, 아이, 여성, 남성 순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누가 정했냐고요!”
휙.
모든 요구조자들이 강압적인 오광휘 단장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 인원이 수십 명이었다.
오광휘 단장은 그들의 몰아침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우선 탈출할 분들부터 선정하겠습니다. 거기, 그리고 거기…….”
휙휙.
오광휘 단장은 한 손으로 사람들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손을 까딱거렸다.
다른 단원들에게 흩어지란 신호였다.
그런 오광휘 단장은 혼자가 아니었다.
근처에 자리 잡은 이지성이 구급상자를 펼치며 외쳤다.
“부상자들은 우선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그그. 나, 나 좀…….”
터덕터덕.
운신이 어려운 이들이 이지성에게로 향했다.
걸음이 불편하거나.
이마에 피를 흘리거나.
또는 어깨를 붙든 사람 등등.
혼란에 휩쓸려 다친 사람들이 꽤 존재했다.
그렇게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이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그 사이 태건은 저 멀리 옥상 문으로 향했다.
타다닥.
달리던 중 옥상 문에서 까만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모습을 발견했다.
칠흑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연기 양이 아직 적은 편이야.’
그러나 안심할 정도도 아니었다.
가늠한 태건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불의 확산세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때 고수현이 다가와 나란히 달리며 말했다.
타다닥.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다가 연기가 올라와서 옥상으로 온 거래.”
잠깐 사이 요구조자에게 정보를 얻은 모양이다.
태건은 반사적으로 질문했다.
“몇 층에 계셨던 분들이랍니까.”
“6층하고 7층.”
스윽.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태건이 고개 돌려 바라봤다.
몰려든 이들과 달리 오광휘 단장과 거리를 둔 몇몇 요구조자들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침착한 모습이었다.
‘저런 분들이 계시기 마련이지.’
그 몇몇 사람들 덕분에 대략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시 시선을 옥상 문으로 돌릴 때였다.
헬기에서 유중헌의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라텔에 전파. 현재 불길이 거세 진입에 난항을 겪는 중!
-띠릭. 5층까지 불길이 번짐, 건물 외관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
-띠릭. 밑에서 굼벵이를 구워 먹나. 젠장.
짜증 어린 푸념까지 들려왔다.
역시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게 틀림없었다.
그 사이 태건은 필요한 정보만 쏙쏙 귀에 담았다.
그리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수많은 화재출동 경험으로 건물 내부 상황을 유추하는 거였다.
오광휘 단장은 현재 발이 묶인 상태였다.
이럴 땐 태건이 단원들을 지휘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르르. 띵!
이내 결론이 섰다.
태건은 곧장 옥상 문을 가리키며 고수현에게 물었다.
“선배, 저기로 진입 가능하겠습니까?”
“저 정도는 가뿐하지.”
“그럼 6층까지 요구조자 수색 부탁드립니다.”
태건이 나지막이 권했다.
그 소리에 고수현은 이상함을 직감했다.
“나 혼자 돌아다니기에 상당히 넓지 않아?”
“아마도요.”
“다들 올라온 거 같은데, 6층까지는 그대로 패스 아니야?”
연달아 묻는 표정이 진지했다.
태건은 짤막하게 답했다.
“혹여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빠져나왔다고 단정 짓는 건 좀 아니긴 하지.”
고수현의 말이 슬쩍 돌아섰다.
겪어보니 고집 강한 스타일이 아니다.
거기에 태건은 그의 열의를 자극할 말을 덧붙였다.
“그런 위기에 봉착한 분들을 선배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면 어떨까요.”
그 소리와 동시였다.
번뜩!
고수현의 눈빛에 강한 이채가 스쳐지나갔다.
“오오옷, 드디어 떠오르는 차세대 소방계의 슈퍼스타…….”
“수현 선배.”
“알았어. 짜샤. 대신 넌 내려오지 마……. 여러분 제가 갑니다. 이 고수현이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
파바박!
고수현은 대번에 속도를 높여 옥상문으로 내달렸다.
한편.
태건은 자리에서 멈추며 무전기로 말했다.
띠릭.
“수현 선배, 호흡기 커버 착용부터 하세요!”
-띠릭. 오브 코스다!
휙휙.
어느새 저만치 달려간 고수현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어서 달리며 호흡기 커버를 착용하더니 곧 옥상 문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멈춘 태건의 옆에 때마침 황대산이 도착했다.
“쟤 혼자 보내도 되겠어?”
“여기 지성 선배 있잖습니까.”
“여차하면 지원 가능하지. 그럼 우리는 5층으로 갈 건데 , 어떻게 내려가려고?”
황대산이 이어서 질문했다.
태건은 어깨에 두른 로프를 풀며 말했다.
“이걸로요. 그리고 4층으로 내려갈 겁니다.”
“5층이 아니라?”
“불의 허리를 끊어야죠.”
경험에서 우러난 태건의 관점은 확실히 달랐다.
황대산은 반발 없이 수긍했다.
“역시 스모크점퍼는 생각부터 달라.”
“시간 많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얼른 서두르자!”
타다닥!
태건과 황대산이 방향을 돌려 뛰었다.
그 방향 끝엔 옥상의 난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곧 옥상 난간에 두 개의 로프가 연결됐다.
레펠 자세를 잡은 두 사람은 어느새 호흡기 커버까지 착용한 모습이었다.
후룩후룩.
밑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의 양이 늘어난 탓이다.
이젠 지면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 외벽이 힐끗힐끗 보였다.
더 지체하면 그 시야조차 사라질 지경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태건은 빠르게 오광휘 단장에게 보고했다.
띠릭.
“강태건, 황대산. 4층으로 레펠 진입합니다!”
“준비 완료!”
옆에서 황대산이 똑같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곧 무전기가 울리며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투입해.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강태건 강하!”
“황대산도 갑니다!”
촤작!
태건과 황대산은 동시에 건물 외벽을 박찼다.
그리고 높다란 건물 외벽을 얇은 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하강 속도는 신속하단 표현을 넘어섰다.
차악, 차악!
한 번 벽을 박찰 때마다 수 미터씩 쭉쭉 내려갔다.
그만큼 레펠에 있어 발군의 실력자들이었다.
곧 둘 다 4층 창문 앞에 멈췄다.
불투명한 필름을 발라 놓았는지 안이 보이지 않았다.
파악과 동시에 태건이 말했다.
“깨죠.”
“안에 사람 있으면!”
황대산이 깜짝 놀라 반발했다.
태건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있는데 이 난리 통에 지금까지 창문을 안 열겠습니까?”
“아하, 가자……. 지금!”
촤악!
황대산이 외침과 동시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힘차게 뒤로 몸을 날렸다.
후웅!
반동의 끝에 다다른 순간 두 다리를 곧게 폈다.
“이야압!”
“아차자!”
곧 힘을 바짝 준 두 다리가 창문에 직격했다.
쨍그랑!
창문을 산산조각 낸 두 사람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우당탕.
다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내부에 진입했다.
그 소리는 자신이 아니라 황대산이 낸 거였다.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난 태건이 경계하며 신속하게 둘러봤다.
“후욱, 후욱.”
그런 태건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깨끗해.’
이상했다.
건물 전역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여긴 불도 연기도 없었다.
그게 의아하다고 생각될 때였다.
불쑥!
착지가 불안해 넘어졌던 황대산이 솟아올랐다.
민망했는지 소리부터 쳤다.
“강태건이, 역시 화끈한 남자였어!”
“선배, 괜찮으십니까?”
태건은 걱정의 말부터 툭 튀어나왔다.
기우란 듯이 황대산은 굳은 얼굴로 빠르게 답했다.
“겨우 이 정도에 앓는 소리를 하면 쓰나.”
꽤 크게 넘어졌다.
아무렇지 않을리 없었다.
구우우.
긴장감의 아우라가 온몸 가득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거였다.
태건은 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서두르시죠.”
요구조자 발견이 더 시급했다.
이내 태건과 황대산이 좌우를 둘러봤다.
척, 척.
관리용 베드 몇 개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벽 쪽에 여러 종류의 화장품들이 존재했다.
“피부관리실?”
“센터 안에 입점한 점포인가 봐.”
황대산이 짧게 말을 받았다.
더 살펴볼 것도 없었다.
그 정도로 넓지 않은 공간이었다.
여기선 아무런 소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야 할 거 같았다.
우뚝.
문을 향해 가던 태건이 저절로 멈춰 섰다.
아무래도 문제가 없단 게 신경을 잡아끌었다.
‘5층까지 불이 보인다며.’
그런데 여기만 이상이 없단 건 역시나 비정상적이었다.
“…….”
구우우.
외부로 향하는 문을 향한 태건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내 태건은 문 앞에 도착했다.
신중을 기해야 할 타이밍이다.
스윽.
등을 벽에 붙인 채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음.”
턱.
가볍게 당겨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잠긴 게 아니라 바깥에서 잡아당기는 거 같았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
태건의 두 눈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