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바로 그때였다.
쿵쿵!
황대산이 거친 걸음으로 다가와 문고리를 잡았다.
“이걸 못 열어? 에잇!”
“어엇, 선배!”
태건이 아차해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황대산은 있는 힘껏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흠, 흐으음!”
끄, 그극.
꽉 막힌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는 모습과 같았다.
그만큼 엄청난 힘으로 당기자 결국 문에 틈이 생겼다.
슈슈슈슉.
공기가 순식간에 문밖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좁은 문틈으로 넘실거리는 화염, 그 자체가 보였다.
태건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안 돼!’
생각할 틈도 없었다.
“선배, 피해!”
“우엇!”
터억.
다급히 몸을 날려 황대산을 온몸으로 밀쳤다.
바로 그때였다.
벌컥!
문이 절로 활짝 열리며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듯 불이 쏟아져 들어왔다.
푸아아악!
백드리프트. 즉, 역류 현상이었다.
그 역류 현상은 방안 깊숙한 곳을 넘어 창문까지 다다랐다.
화르륵.
일시적인 현상이라 불길은 금방 사그라졌다.
하지만 태건은 통구이가 될 뻔한 위기에 숨을 툭 내뱉었다.
“푸허어.”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는 거 같았다.
황대산도 봤는지 두 눈에 경악이 가득했다.
“뭐뭐뭐, 뭐야 이건!”
그 소리와 동시였다.
찌릿!
한껏 째려본 태건이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뭐기는요. 백드리프트잖습니까!”
“헙.”
“제가 훈련할 때 얼마나 강조했습니까. 닫힌 문을 그냥 확확 열면 안 된다고요. 했어요, 안 했어요?”
태건이 으르렁거리며 따져 물었다.
그 순간 황대산의 덩치가 무색하게 쭈그러들며 답했다.
“그랬던 거 같기도…….”
“뭘 그랬던 거 같습니까. 제가 왜 문 앞에 그냥 서 있었겠습니까!”
“난 네가 못 열고 있는 줄 알았지.”
“뭐라고요?”
태건의 눈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말이 되는 핑계를 대야할 거 아닌가.
아무리 특수구조대 출신이래도 실수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을 망각한 잘못이었다.
황대산은 잘잘못에 대한 선이 분명했다.
자신의 잘못임을 인지한 순간 깔끔하게 사과했다.
“미안해.”
“…….”
“경솔했어. 용서해주라.”
꾸벅.
고개까지 숙였다.
태건은 그런 그의 움츠린 모습이 보기 싫었다.
“다음엔 한 방 걷어찰 겁니다.”
“약속하지. 절대 안전.”
“그럼 됐습니다. 이제 밖의 상황부터 살피시죠. 자, 어서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 태건은 손을 내밀었다.
황대산은 한층 더 차분해진 모습으로 맞잡았다.
터억!
“그래. 어서 가자!”
그렇게 아찔한 순간은 묻어두기로 했다.
태건은 이내 열린 문을 바라봤다.
후와아악!
열기가 아니, 열풍이 그대로 몰려와 온몸을 덮쳤다.
“크으!”
“이런, 이렇게 달라?”
황대산은 처음 마주한 화재 현장의 여러 모습에 동요했다.
태건은 얼른 그의 어깨를 잡아챘다.
“선배, 뒤로!”
“그래.”
터덕.
황대산은 거부하지 않고 뒷걸음질 쳤다.
반대로 태건은 앞으로 나아갔다.
화르륵.
방문이 어느새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엄청난 열기만큼 문밖은 온통 불바다였다.
‘이러니 역류가 일어나지!’
스윽.
태건은 팔을 올려 밀려오는 열기를 일부 막아냈다.
그제야 무엇이 불타는지 볼 수 있었다.
여긴 직사각형 구조로 이뤄진 상담실이다.
장소의 특성상 서적이나 잡지가 가득했다.
후룩, 후루룩!
거센 불길의 크기와 뜨거움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벌써 절정이야.’
문제는 내부에 소화기 하나 보이지 않는단 점이었다.
불길이 너무 거세 세세하게 살펴볼 수조차 없었다.
“크으!”
팔로 막았는데도 얼굴에 열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시꺼먼 유독가스들이 몰려왔다.
호흡기 커버를 착용했다고 만사 오케이가 아니다.
“엎드려!”
“에잇!”
터덕!
태건에 이어 황대산이 반사적으로 몸을 낮췄다.
더는 진입이 불가능할 열기와 연기였다.
방화복을 믿고 밀어붙이기엔 다음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다.
“젠장.”
원치 않게 발이 묶이자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그 거친 불길이 쓸모 있는 순간도 있었다.
태건의 가늘게 뜬 눈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저기다.’
출구가 보였다.
불길이 만들어낸 빛이 시꺼먼 연기 속에서도 나아갈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출구는 발견했지만 태건의 몸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다.
이대로 불을 뚫고 나가는 건 밥숟가락 놓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과감한 태건이라도 정도가 있었다.
‘이건 뚫고 가기 어려워.’
몇 번을 가늠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태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출구로 향할 방법을 계속 가늠했다.
요구조자들이 기다린다.
짙은 유독가스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다급함이 태건의 무모함을 자극했다.
거리가…….
대충 가늠한 태건이 눈빛을 반짝였다.
“오케이.”
“오케이라니, 무슨 오케이?”
황대산이 뒤에서 질문해왔다.
휙!
바로 몸을 돌린 태건은 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선배, 저 던질 수 있죠?”
구쿵.
태건의 두 눈에 진심이 가득했다.
현재 자신의 무게는 장비를 포함하면 100킬로그램이 조금 넘었다.
저 멀리 던져달라는 부탁 자체가 무리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황대산은 의외의 답을 내어줬다.
“던지는 거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황대산의 표정이 살짝 어색해졌다.
태건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네. 생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헉, 정말?”
“여기서 벌써 1분 지체했습니다.”
부릅!
태건이 두 눈에 힘을 주며 강조했다.
1분이란 시간은 짧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 1분은 억겁의 시간이다.
황대산도 모르지 않았다.
“……저쪽으로 던지란 말이지?”
“네.”
“진짜 라텔이네. 자세 잡아.”
“얼마든지!”
꽈악.
태건은 바로 온몸에 힘을 줬다.
그와 동시였다.
터억.
황대산이 태건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있는 힘껏 내던졌다.
“츠아앗!”
후웅.
태건의 몸이 붕 떠올라 날아갔다.
‘헐.’
상상이 현실이 되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황대산은 확실히 힘이 장사였다.
화르르!
태건은 불길 위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그 끝엔 반쯤 녹아내린 유리문이 존재했다.
이대로라면 부딪친다.
황대산의 힘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읏!”
사삭.
태건은 재빨리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 순간 유리문에 직격했다.
꽈지직, 쿵!
바닥에 떨어지는 묵직한 소리는 덤이었다.
태건은 몰려온 충격에 고개를 털었다.
“푸르르.”
이내 뒤를 보자 황대산이 불길에 가려져 설핏 보였다.
정말 불길을 넘어왔다.
“헐.”
각오는 했다지만 현실로 이뤄지자 태건도 황당했다.
그때 황대산 목소리가 무전기로 들려왔다.
-띠릭. 괜찮아? 제대로 넘어갔어? 왜 말이 없냐!
태건은 그제야 헬멧과 연결된 무전기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띠릭.
“무사 도착 정도가 아니라 유리문까지 박살냈습니다.”
-띠릭. 안 다쳤어?
“전혀요. 선배는 거기서 대기. 소방용수 끌어오겠습니다!”
-띠릭. 푸우우, 연기 겁나게 밀려오네. 외부 유리창이라도 깨고 있을게!
황대산은 잠깐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 성격은 절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그 답을 듣는 순간 태건은 산산조각난(?) 유리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피부관리실을 나섬과 동시였다.
터덕!
태건의 두 다리가 절로 멈췄다.
스포츠센터 내부 역시 불길이 가득했다.
화르륵, 후룩후룩.
더불어 검은 연기가 짙은 먹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어디가 어딘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하나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팟.
연기투과플래시를 켜봤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태건은 막막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발이 묶일 순 없었다.
‘누가 위치라도 알려줄 수 있다면.’
모두 처음 방문한 건물이다.
건물 내부 사정에 빠삭한 단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태건은 고수현을 떠올렸다.
“그렇지!”
쾌재를 부른 태건은 바로 무전기로 고수현을 찾았다.
띠릭.
“강태건입니다. 수현 선배!”
-띠릭. 고수현 송신, 현재 6층으로 이동 중, 젠장. 비상계단 상태 완전 메롱이야!
짧은 순간 자신의 상황을 알려왔다.
7층엔 더 이상 요구조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최대한 생략하고 꼭 필요한 질문만 건넸다.
띠릭.
“옥내소화전 위치 파악 됐습니까?”
-띠릭. 703호 옆, 711호 옆, 720호 옆, 총 세 군데로 확인.
“그렇게 말하면 제가 어떻게 압니까!”
태건이 울컥하자 고수현이 목소리도 따갑게 들려왔다.
-띠릭. 대체 어딘데!
“피부관리실 앞!”
-띠릭.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똑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서로 틀린 말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층별로 구조가 다를 따름이었다.
그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인물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었다.
-띠릭, 단장이다. 강태건, 피부관리실 등지고 왼쪽으로 벽 따라 이동해.
그는 핵심만 말했다.
가타부타 더 대화를 나누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마 옥상에 있는 누군가 스포츠센터를 자주 이용했던 모양이다.
띠릭.
“롸져!”
짧게 외친 태건은 곧장 왼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