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89)화 (89/320)

89화

태건은 자세를 낮춰 신중하게 이동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턱. 우당탕!

“엇!”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놀란 태건은 연기투과플래시로 비쳐줬다.

물건이라 생각한 그건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이 불길과 연기 속에 사람이라니.

무모함에도 정도가 있었다.

태건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얼른 다가갔다.

“소방관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흔들흔들.

외치며 흔들어봤다.

그런데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흐으으.”

귀를 바짝 대자 미약하게나마 숨소리가 들려왔다.

“유독가스중독!”

의식도 소실 직전이다.

누굴 부르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태건은 재빨리 보조호흡기를 요구조자의 입에 댔다.

“숨 쉬어요. 숨!”

“흐으…….”

힉, 힉.

숨을 들이켜는 공기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태건은 재빨리 CPR을 시작했다.

“하나, 둘…….”

쑥쑥.

누르고 또 눌렀다.

조금이라도 더 호흡을 더하려 안간힘을 썼다.

이어서 귀를 바짝 가져갔다.

호흡량을 들으려는 행동이었다.

‘엇?’

그런데 요구조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꼬르르.

입안에서 희미하게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휙!

태건은 재빨리 호흡기를 벗겨냈다.

요구조자의 입 안 가득 게거품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륵, 그륵.

꿈틀.

호흡부전에 이어 경련까지 시작됐다.

두 눈은 흐릿해진지 오래였다.

태건은 그 모든 증상을 파악한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아, 안돼!”

다급 아니, 응급 그 자체의 순간이다.

더, 더더더!

푹푹.

거칠게 CPR을 진행했다.

그런데 손에 닿는 느낌이 이상했다.

최소한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아…….”

태건은 직감했다.

죽음이 이미 그의 손을 붙들었다.

그때였다.

뻐끔, 뻐끔.

생명의 끝에 다다른 요구조자의 보조호흡기가 들썩거렸다.

“…….”

태건의 눈이 차가워졌다.

냉정해져야 한다.

이런 순간일수록 이성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 CPR을 강행하는 게 옳은가.

아니면 그의 마지막이 될 그 말을 듣는 게 옳은가.

…….

파르르.

태건의 손끝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였고, 곧 결단을 내렸다.

“제길.”

휙.

두 눈을 꽉 감고 요구조자의 보호호흡기를 벗겼다.

다시 보니 50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그의 입이 계속 뻐끔거렸다.

태건도 지체없이 헬멧을 벗었다.

슥!

이어서 그의 입에 귀를 바짝 가져갔다.

“하실 말씀 있으면 하세요……. 지금 하세요.”

권하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기력한 자신이, 또 누군가를 구하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때 요구조자의 입이 뻐끔거렸다.

이어서 태건의 귀에 목소리가, 꽉 잠겨 쥐어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 들…….”

“아들이요? 아들 말입니까!”

“미아안……. 살려야……. 으윽!”

스륵.

요구조자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들이 여기에 있다.

그 아들만큼은 꼭 살아야한단 열망이 유언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지만 태건은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휙!

방화장갑까지 거칠게 벗고 맨손으로 가슴에 손을 댔다.

따뜻했다.

온기가 이렇게나 남아 있었다. 

텅텅.

요구조자의 가슴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러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다.  

처음 발견한 요구조자는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다.

그가 남긴 말.

‘아들아, 미안하다. 살아야 한다.’

투박한 그 유언이 가슴을 헤집었다.

태건은 지금껏 수많은 현장에서, 수많은 죽음을 봤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단 말 따위로, 이미 늦었단 핑계 따위로 무마할 수 없었다.

이 순간의 감정은 최악이었다.

“이런, 제기랄!”

텅!

결국 태건은 두 손으로 바닥이 부서져라 내리쳤다.

태건은 넋 놓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여기 있단 건, 다른 요구조자들도 어딘가 있단 의미였다.

그 전에 왜 혼자 떨어졌을까.

그의 손끝이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스윽.

그곳을 따라간 태건의 두 눈에 물기가 스몄다.

-옥내소화전.

흔들리는 검은 연기 사이로 설핏 보였다.

그걸 본 순간 태건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아.”

불을 끄러 온 길이다.

지독한 연기를 뚫고 지척까지 왔다.

불과 몇 걸음이다.

그 몇 걸음이 생사를 갈라놓았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

꽈악.

태건의 속이 미어질 듯 괴로웠다.

그때 귀에서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띠릭, 강태건. 현 위치, 현 상태 보고한다. 강태건, 옥내소화전 찾았어, 못 찾았어!

멈칫.

그 소리를 듣고야 태건의 두 손이 멈췄다.

그 끝에 머무는 미동이 멈추지 않았다. 많은 죽음을 봤다고 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었다.

후들후들.

그래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아직 남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했다.

꾸우욱!

이내 으스러지게 무전기를 누른 채 씹어뱉듯 내뱉었다.

띠릭.

“옥내소화전 발견.”

-띠릭. 그런데 왜 목소리가 그지깽깽이 같아!

오광휘 단장은 미미한 변화도 바로 알아챘다.

태건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띠릭.

“사망자 1명 발견. 심폐소생술을 실행했지만……. 죄송합니다.”

-띠릭. 뭐, 너 지금……. 빌어 쳐 먹을!

오광휘 단장의 안타까움이 강하게 들려왔다.

그때 다급히 황대산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황대산이다. 강태건, 내가 갈게. 바로 간다!

그 소리에 태건이 바짝 정신이 들었다.

띠릭.

“태산 선배, 스톱. 그냥 넘어올 불길이 아닙니다!”

-띠릭. 인마. 아직 안 죽었어. 니가 제대로 확인 안 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간다고!

띠릭.

“선배.”

-띠릭. 시끄러, 입 닥쳐. 지금 간다!

황대산의 목소리가 막무가내였다.

그는 한다면 한다.

그 불길을 뚫고 온단 건 말도 안 된다.

태건은 무전으로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띠릭.

“대산 선배, 1분! 딱 1분만!”

-띠릭. 새꺄, 그 시간이면 사람 죽어!

띠릭.

“선배!”

-…….

황대산의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진짜 밀어붙일 모양이다.

태건이 다급해졌다.

“쉣!”

파박!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옥내소화전으로 달렸다.

다시 헬멧을 착용하는 사이 옥내소화전에 도착했다.

벌컥.

문을 열고 밸브부터 최대한 열었다.

얇은 소방호스가 급격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태건은 노즐 부분을 들고 냅다 뛰었다.

파바박, 촤아악!

달려가는 사이 소방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피부관리실 앞에 막 도착할 무렵이었다.

우당탕!

피부관리실 내부에서 무언가 묵직한 게 튀어나왔다.

황대산이다.

그의 방화복에 불길이 옮겨 붙어 있었다.

“크으으으!”

엄습한 열기로 인해 고통 가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푸아악!

태건은 그의 몸에 물을 들이부었다.

물이 쏟아지자 황대산의 방호복 불길은 금세 사라졌다.

“하여간!”

태건의 표정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아무리 라텔이라도 무모의 범주를 넘어선 과격한 행동이었다.

그에 대한 쓴소리를 하기도 전이였다.

“크으, 으윽!”

턱, 터더덕.

황대산은 열기로 가득한 몸을 억지로 이끌며 움직였다.

태건은 그런 그를 본 순간 눈이 가늘게 떠졌다.

‘뭐지?’

구조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가까이서 마주한 두 눈엔 물기가 가득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묵직하게 불렀다.

“선배.”

“어디야, 어디!”

꽈악!

다가온 황대산은 태건의 어깨를 움켜쥐며 버럭 소리쳤다.

“…….”

스윽.

태건은 말없이 뒤를 가리켰다.

터덕터덕.

황대산은 빠르게 태건을 지나쳐갔다.

그리고 곧 그의 절규가 들려왔다.

“눈 떠 봐요. 아저씨, 숨 쉬어, 손가락이라도 까딱 해봐요, 살아야 된다니까!”

…….

망자는 말이 없었다.

그래도 황대산은 부정했다.

“이대로 가면 안 돼. 이렇게 갈 수 없어. 현궁아, 아아악!”

히스테릭한 절규가 뒤를 이었다.

태건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현궁?’

중년인의 이름은 결단코 아니었다.

우연히 터져 나온 이름이라고 하기엔 너무 분명한 발음이었다.

뭔가 있다.

날카로운 눈치가 바로 직감하게 했다.

하지만 황대산의 사정을 여기에 포함 시킬 건 아니었다.

-어떤 현장에서도 개인감정에 흔들려 본분을 잊지 않는다.

서로가 약속한 부분이다.

그러니 이건 황대산의 잘못이었다.

순식간에 다가간 태건은 황대산에게 대뜸 물을 퍼부었다.

푸아악!

“선배, 정신 차려요!”

쏟아지는 물줄기에 황대산이 크게 휘청거렸다.

“크으!”

“젠장. 물 아깝게!”

휙.

태건은 재빨리 노즐 방향을 불길로 돌렸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에잇!”

뻥!

태건은 앞서 선언한 대로 진짜 황대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어억!”

“정신 차리라니까! 선배 사정이 지금 뭐가 중요하다고 이 난리야!”

“…….”

황대산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건 잠깐이었다.

이내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그리고 돌아선 그의 두 눈엔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샤아악.

심지어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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