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91)화 (91/320)

91화

내부의 모습을 한눈에 담으며 문부터 닫았다.

탁!

역시나 샤워실이었다.

그때였다.

번쩍번쩍!

여기저기서 휴대폰 플래시가 태건의 눈에 직격했다.

“윽!”

“엇, 소방관이다!”

격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태건은 눈을 손으로 가린 채 부탁했다.

“죄송한데, 빛 좀!”

“아아, 방향 돌려요, 어서!”

“죄송합니다!”

휙휙.

사과의 소리와 함께 눈을 자극하던 빛이 옮겨갔다.

그제야 태건도 손을 내려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솨아악!

모든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샤워기가 일으킨 물보라가 연기를 일부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불은 아예 접근도 못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향하는 모든 창문이 열려 있었다.

상쇄시키지 못한 연기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빠져나갔다.

무엇보다 사람들 모습이 놀라웠다.

모두 수건이나 옷을 적셔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수는 대략 20여 명에 이르렀다.

태건은 바로 무전기 버튼을 누르며 힘차게 외쳤다.

띠릭.

“강태건입니다. 요구조자 다수 발견, 다들 무사하십니다!”

이 말이 외치고 싶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모진 고생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토록 외치고 싶은 말이기에 힘차게 외쳤다.

그 간절함은 태건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태건의 외침이 샤워장 가득 울렸다.

그와 동시였다.

모든 요구조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살았다!”

“이제 살 수 있다!”

“와아아!”

모두 두 손 번쩍 들어 올려 소방관과 조우한 감격을 진하게 내보였다.

그러던 중 고수현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여자 탈의실도 전원 샤워장에서 발견. 경미한 부상자만 몇 분 계십니다!

-띠릭. 단장이다. 남탕, 여탕. 양쪽 다 당장 버틸 수 있다고?

그의 질문에 태건이 먼저 답했다.

띠릭.

“남탕, 여유 있습니다.”

-띠릭. 여탕도 이하동문입니다.

고수현의 무전이 뒤따랐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다.

-띠릭. 5분 내로 사다리차 설치된다. 그때까지 황 단원이 최단 거리 탈출 루트만 확보하도록.

-띠릭. 황대산, 송신!

황대산의 목소리가 한층 안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마음에 걸렸던 부분까지 모두 해소됐다.

“휴. 이제 진짜 탈출이네.”

혼자만 알고 있을 일이 아니었다.

얼른 돌아서 모두에게 알렸다.

태건이 전한 내용에 샤워실은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야호!”

“이제 곧 탈출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정말 잘 견뎌냈어요!”

턱턱.

서로 손을 붙들고 격려하고 또 그렁그렁한 눈물도 엿보였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두 성인이었다.

그렇다고 울지 말란 법은 없었다.

서로 의지하며 공포를 이겨낸 만큼 감정이 들끓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태건도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누군가 빠르게 다가왔다.

태건이 그 상대를 먼저 발견했다.

멈칫.

절로 주춤거려졌다.

20대 초반의 까까머리 청년이다.

처음 그를 본 순간 짐작하고 있었다.

‘아들이다.’

얼핏 본 사망자의 이목구비와 비슷했다.

알아봤으면서도 모른척했다.

여기서 그 부고를 알릴 순 없던 탓이다.

그런 태건의 추측이 역시 옳았던 모양이다.

다가온 청년이 다급히 물었다.

“혹시 오시는 길에 50대 중반 아저씨 못 보셨습니까?”

“…….”

“저희 아버집니다. 불 꺼야 된다고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만 돌아오지 않으십니다.”

“흠.”

태건은 할 말이 없어 묵직한 신음을 흘렸다.

청년은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다.

“밖의 상황이 안 좋은 건 저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한 번만 찾아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걱정돼서 머리가 돌아버릴 거 같습니다. 아니, 저도 같이 찾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훅훅.”

청년의 호흡이 불안정했다.

그만큼 다급한 심정이 엿보였다.

그런 청년은 센터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사항이 있었다.

팔과 다리 곳곳에 화상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건으로 가려져 이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상이 꽤 심각해 보였다.

번지기도 했고 진물도 나오고 있었다.

청년은 그런 자신을 개의치도 않은 채 다급함만 앞세우고 있었다.

가장 특이한 건 딱딱한 말투였다.

태건은 혹시나 하는 뉘앙스로 말을 흘렸다.

“말투가 혹시…….”

“군인입니다. 100일 위로 휴가 중입니다.”

청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대답이 태건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흐으읍!’

흐트러지는 호흡을 얼른 삼켰다.

꿀꺽!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잃은 고통이 어떤지 아는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 사이 청년은 태건의 붙든 팔을 당겨가며 재촉했다.

“같이 계시다 제가 화상을 입어서 얼른 불 끄고 병원 가야 된다고 하시며 나간 지 좀 됐습니다.”

“…….”

“뒤따라 나가려 했지만 화상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놓쳤습니다.”

“그 화상은 어쩌다가…….”

태건의 질문이 흐릿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저기 밖에 선반이 쓰러지는 걸 아드님이 막았지 뭡니까.”

“나도 봤습니다. 그 시뻘겋게 달아오른 걸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휙 몸을 날렸지요.”

“내 아들도 아닌데 내가 다 흐뭇합디다.”

중년의 어른들이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휙!

태건이 그들을 쳐다보며 묵직하게 따졌다.

“나간 분을 말리셨어야죠.”

그 소리에 중년인들이 쓰게 답했다.

“말릴 새도 없이 나갔습니다.”

“저 화상 보고 어떤 부모가 눈 안 돌아갑니까.”

“저거 흉지면 내 가슴엔 평생 피멍 듭니다.”

다들 아버지라 같은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태건은 훈훈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후우.”

앞뒤 상황을 들어본 태건은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진짜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다.

화재 현장 속에서 일어난 가슴 쓰린 비극이었다.

그때 청년이 호흡기 탱크를 붙들었다.

턱.

“죄송한데, 이거 빌려주시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스윽.

태건이 슬쩍 몸을 돌렸다.

청년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재차 부탁했다.

“정 안 된다고 하신다면…….”

“여기 계세요. 제가 바로 나가서 찾아보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

끄덕.

태건은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샤워실 내 모든 요구조자들에게 말했다.

“저희가 모시러 올 때까지 여기 조금 더 계셔 주십시오.”

“어디 갈 데도 없수다!”

마음 편해진 요구조자의 수더분한 대답이 들려왔다.

반대로 태건은 다시 밖으로 나선 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환장하겠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태건은 물에 흠뻑 젖은 채 샤워장 밖으로 나왔다.

불타는 락커룸이 벌써 눈에 그려졌다.

그런데 의외로 불길이 잦아들어 있었다.

촤아악!

마침 탈의실 입구에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황대산이 소방용수로 탈출로를 만드는 중이었다.

한층 옅어진 연기로 인해 플래시 빛이 끝까지 뻗어나갔다.

유리창이 보이자 태건은 재빨리 다가가 깨부수며 이동했다.

팡! 팡!

유리가 깨지며 햇빛이 들어오고 또 연기가 더 빨리 빠져나갔다.

태건은 그러면서 황대산과 거리를 좁혔다.

“대산 선배!”

“어. 어……. 면목 없어.”

이성이 완전히 돌아온 황대산이 우물쭈물했다.

태건은 지금 그걸 따질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요. 그보다 로비는 어느 정도 정리됐습니까?”

“아직. 탈출 루트 확보에만 주력하는 중이야.”

“그럼 여기 집중해 주시고,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꼭 지켜 주시고요.”

태건이 당부하자 황대산이 갸웃거렸다.

“이 상황에 누가 밖으로 나와.”

“아들이요.”

“……흐음. 잘 지키고 있을게.”

황대산은 묵직한 표정으로 약속했다.

끄덕.

태건은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지나쳐갔다.

곧 태건은 옥내소화전 근처에 당도했다.

시신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챙겨온 게 있었다.

두툼한 요가매트였다.

시신을 조심스레 감싸며 읊조렸다.

“먼저 모시겠습니다. 아드님에게 소식을 아직 전하지 않았습니다.”

…….

꾹꾹.

요가매트를 겹겹이 감싸며 덧붙여 말했다.

“안전하게 탈출한 후에 알리겠습니다.”

그렇게 읊조리며 정성껏 시신을 갈무리했다.

잠시 후.

태건은 피부관리실 내부의 깨진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지이잉.

아래서 바스켓을 장착한 사다리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바스켓 안엔 방화복 입은 소방관이 존재했다.

얼굴이 상대적으로 조금 긴 편이었다.

곧 바스켓이 창문과 비슷한 높이가 됐다.

태건은 조심스레 요가매트를 상대에게 건넸다.

“위영 선배, 부탁드립니다.”

스윽.

요가매트를 받아든 그가 바로 출동할 때 통화한 김위영이었다. 그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잘 모시고 내려갈게. 아들은 화상을 입었다고?”

“팔과 다리. 꽤 심해 보였습니다.”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알려야겠네. 불이란 새끼, 진짜 엿 같아.”

“이깟 불이 뭐라고 이렇게 지랄 맞은 지요.”

둘 다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며 푸념했다.

그런 시간은 잠깐이었다.

지이잉.

곧 김위영이 탄 바스켓이 아래로 내려갔다.

태건은 바스켓이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지켜봤다.

무사히 안착한 걸 확인한 후에야 무전기로 상황을 알렸다.

띠릭.

“강태건입니다. 요구조자들 구조 시작하겠습니다.”

-띠릭. 고수현 접수!

-띠릭. 황대산 확인.

선배들의 대답이 칼 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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