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1분여가 지났을 무렵이다.
건물 5층 헬스장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거대한 유리 하나가 깨졌다.
와장창!
유리조각이 아래로 흩날렸다.
그러나 건물 뒤쪽이고 주변이 통제 중이라 우려할 건 없었다.
이어서 소방호스 하나가 밖으로 길게 던져졌다.
휘리릭, 터엉!
소방호스의 끝인 노즐 부분이 지상에 닿았다.
그렇게 다이렉트 라인이 생겨났다.
그 다음 급조해 만든 들것이 5층 창문에 걸쳐졌다.
들것에는 또 다른 소방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태건이 1층으로 내려뜨린 소방호스를 붙들고 레펠 자세 잡았다.
“준비 끝.”
태건이 간략하게 말했다.
그런데 다른 단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들것과 연결된 소방호스를 쥐고 있었다.
그 소방호스는 기둥을 한 바퀴 두른 모습이었다.
꽈악.
두 손으로 말아쥔 오광휘 단장이 창틀에 선 태건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쪽도 준비됐어.”
“타이밍 놓치면 요구조자도, 저도 끝입니다.”
“안다니까 새꺄. 내가 너 죽이겠냐!”
꾸욱.
버럭 소리친 오광휘 단장은 소방호스를 다시금 말아쥐었다.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태건의 계획은 사실 무모한 수준을 넘어선 거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급조한 들것과 로프가 왕성남을 살릴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는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
“흠.”
고수현과 이지성도 똑같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태건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휘이잉.
검은 연기가 많이 걷혔지만 간혹 올라오고 있었다
지상에선 구급차와 구조대가 거리를 두고 대기 중이다.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가 최적이야.’
지금부터 펼쳐질 모습은 성인도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었다.
더 솔직히 말해 딱히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최대한 신속하고 조용히 지상으로 안착하는 것만 생각했다.
태건이 아래를 보며 가늠할 때였다.
왕성남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크윽, 으으으.”
이젠 거의 의식 없이 신음만 흘렸다.
부들부들.
게다가 안색은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고, 팔다리가 경련했다.
태건은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했다.
“3분도 길어.”
안전은 쥐뿔이다.
태건은 다급히 목소리 높여 무전했다.
“다이렉트로!”
-띠릭. 뭐? 이런, 쓰브럴……. 굿 럭이다!
응답 소리와 동시였다.
촤아악!
들것의 하강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기회는 한 번, 살린다. 꼭!”
타앗!
태건도 급속하강으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태건과 들것이 떨어지는 속도가 엄청났다.
이건 추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만큼 지면이 그 속도로 가까워져갔다.
슉슉!
3층, 2층…….
어느새 1층이 코앞이었다.
지면과 남은 거리는 불과 4미터 정도였다.
지금이다.
무전기에 다급히 외쳤다.
“브레이크!”
휙!
소리친 태건은 그대로 무전기를 내던졌다.
이어서 그 손을 뻗어 들것과 연결된 소방호스를 붙들었다.
터억!
한쪽 팔로 떨어지는 건장한 성인이 실린 들것을 제어할 순 없었다.
팔근육이 찢어질 듯 당겨졌다.
“크으으으!”
다른 손으로 동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끼기긱!
태건이 함께 뛴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스스로가 1차 제어장치가 되는 거였다.
양손으로 각각 소방호스를 붙든 상황이다.
위아래로 당겨지는 엄청난 힘에 격통이 몰려왔다.
“끄으, 크윽!”
이를 악문 채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그러면서 속으로 외쳤다.
‘얼른 브레이크, 빨리!’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 해도 태건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다.
위에서 단원들이 소방호스를 당겨 줘야 했다.
어느새 지상이 코앞이다.
더 늦어지면 곤두박질이다.
태건도 섬뜩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발!’
바로 그때였다.
끼기기긱!
들것을 묶은 소방호스의 속도가 급속도로 늦어졌다.
태건은 그 힘에 자신의 힘을 더했다.
“끄으응. 이야아압!”
불룩.
양쪽 팔근육이 급격히 팽창하며 모든 힘을 쏟아냈다.
그 힘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태건이 완벽히 레펠 브레이크를 잡았다.
터엉, 텅.
다른 손에 있는 들것의 로프도 똑같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태건은 양팔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비명을 흘렸다.
“까윽. 으으으.”
그런 태건이 멈춰선 높이는 지면으로부터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때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가 우르르 달려왔다.
구조대는 순식간에 왕성남을 둘러쌌다.
“이대로 들것 들어!”
“바이탈 확인해!”
“IV 연결하고 수액하고 수혈 들어가!”
척척.
구조대가 일치단결해 순식간에 왕성남을 구급차에 실었다.
턱.
뒷문을 닫는 순간 구급차는 쌩하니 현장을 벗어났다.
태건은 그걸 지켜보며 지상에 착지했다.
비틀, 꽈당.
“윽.”
팔다리에 힘이 짝 풀려 넘어졌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런 방법은 어떻게 생각한 거야.”
“어? 우면센터장님.”
태건은 그를 알아보고 맞잡았다.
턱.
우면센터장이 힘을 줘 당기며 말했다.
“일어나지.”
“감사……. 으윽!”
“음? 쯧쯧. 그렇게 용을 썼으니. 병원 가야 되는 거 아니야?”
“끄응. 상황종료 떨어지면요.”
턱.
태건은 괴로워하면서도 레펠에 소방호스를 다시 걸었다.
그걸 우면센터장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건 왜?”
“마무리는 지어야죠.”
그 말과 동시였다.
- 태건아, 올린다!
위에서 오광휘 단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쭉. 쭉.
태건은 서서히 위로 솟구쳤다.
우면센터장은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쟤들 대체 뭐야?”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난 모습이었다.
라텔이라더니.
정말 이름값 톡톡히 하는 특수소방단이었다.
한편.
태건은 다시 5층에 도착했다.
고수현이 바짝 다가와 한 소리 했다.
“내려갔으면 그냥 있지. 뭘 기어 올라오냐.”
“단장님은요?”
“김유나 씨 업고 4층. 그쪽은 다들 탈출했대. 아흐, 이제 한숨 돌리나.”
쭈욱.
고수현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나 태건은 아직 긴장을 놓지 않았다.
“아직 화재 진압 중입니다.”
“또 딱딱하게 군다. 이제 거의 다 탈출했잖아. 2층까지 불길 거의 잡았고, 3층도 시간문제라더라.”
“그럼 4층부터 꼼꼼하게 한 번 더 살피면서 옥상으로 올라가죠.”
태건이 제안하자 고수현이 멈칫했다.
“또 돌아?”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그게 제 모토입니다.”
태건은 대답한 후 곧장 움직였다.
“그래. 가자, 가!”
“마무리는 확실해야죠.”
고수현에 이어 이지성까지 같은 목소리를 냈다.
30분 후.
빌딩을 감싼 시뻘건 불길과 검은 연기는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수증기가 채우고 있었다.
푸슈슈.
하얀 수증기는 마치 구름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로 흩어져갔다.
그만큼 빌딩 화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 빌딩 옥상에 육중한 소방헬기가 떡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그 주변에 기동복 차림의 라텔이 있었다.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대자로 누워 있었다.
“…….”
“…….”
벌러덩.
한마디 말없이 고요했다.
지친 몸을 조금이라도 추스르는 시간이었다.
곧 오광휘 단장만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 중인 모양이었다.
이내 휴대폰을 내린 오광휘 단장이 모두에게 말했다.
“상황종료란다. 내려가자!”
“끄응짜.”
스윽.
그제야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내 옥상 문에 다가갔다.
선두로 걸어가던 오광휘 팀장이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다.
휙!
거칠게 몸을 돌린 그가 모두를 향해 한마디 했다.
“차장님 만나러 가는 길이야. 깨진 바가지는 집안에서만 새자.”
“물론입니다.”
너무도 씩씩한 대답이었다.
그런데도 오광휘 단장은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믿어도 되나 몰라.”
“저희 밥줄 달린 일인데, 다들 잘 조절할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럼 출발.”
태건이 적당히 포장하고야 오광휘 단장의 의구심은 일단락됐다.
* * *
잠시 후 빌딩 입구.
오광휘 단장을 시작으로 특수소방단이 하나둘 나타났다.
저벅, 저벅.
걸음걸이가 힘차고 묵직했다.
표정 또한 근엄하고 진지하게 바뀌어 있었다.
옥상에서 티격태격하던 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이제 현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그 밖으로 사람들이 까마득히 몰려 있었다.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통제하는 경찰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다.
사람들도 빌딩을 향해 걱정을 보일 뿐, 절망과 근심은 잦아들어 있었다.
차도를 통제했는지 근처에는 소방차들밖에 없었다.
그 소방차들은 뒷정리 중에 있었다.
주변에는 소방관들이 차량과 장비를 정돈하고 있었다.
동원된 인원이 한눈에 봐도 상당히 많았다.
‘꽤 큰 불이었나 보네.’
이렇게 보고야 실감이 되는 거 같았다.
저쪽 대형천막에서 누군가 나와 손짓했다.
우석진 정책과장이었다.
“다들 어서 이쪽으로.”
“네, 과장님.”
“여기 차장님도 계시고 기자들도 있으니까 매무새부터 좀 다듬으면서 와.”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주의부터 줬다.
주변을 가득 의식한 내용이었다.
격려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인사치레라도 넌지시 해주고 말해도 될 터였다.
그런데 그는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참 인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