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97)화 (96/320)

97화

곧 얘기가 끝난 모양이다.

이젠 태건도 집중했다.

‘그래서, 결과는?’

바로 그 순간 김을영 소방차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다면 그쪽이 우선이지.”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내 설명할 테니 뒷일 걱정하지 말고, 아무 차나 집어타고 가도록 해. 뭐하나. 어서 움직여.”

김을영 소방차장은 재촉까지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대답한 오광휘 단장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단원들만 볼 수 있게 자그맣게 사인을 줬다.

엄지 척.

허락받았단 의미다.

그럼 된 거다.

곧 오광휘 단장이 지나쳐 가며 모두를 이끌었다.

“라텔, 퇴장.”

“퇴장.”

차자작.

순서대로 재빨리 천막을 벗어났다.

천막에서 나온 직후.

모두의 걸음이 빨라져 뜀박질로 변했다.

타다닥!

“아무 차, 아무 차. 저기 화재순찰차다. 타자!”

오광휘 단장이 밝은 얼굴로 한껏 소리쳤다.

바로 태건이 만류했다.

“노노!”

“왜 또 넌 브레이크야!”

“위에서 교통상황 보셨잖습니까.”

태건이 상기시켜주자 오광휘 단장이 아차했다.

“그러네. 지금 차 타고 나가면 저녁까지 발이 묶일지 몰라.”

“기껏해야 뛰어서 5분 거립니다.”

“가깝긴 하네.”

오광휘 단장이 수더분하게 답했다.

바로 그때였다.

“먼저 속도 올립니다!”

파바박!

태건이 선수 쳐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모두의 눈빛이 번뜩였다.

번뜩!

“강태건이, 남자라면 공정해야지!”

“뜀박질 좋지. 화려한 시선들이 또 날 감싸겠어.”

“저기, 나까지 뛸 필요가…….”

“다들 왜 뭐만 하면 체력장이 되는 건지.”

한 마디씩 툭툭 던졌다.

그러나 두 다리는 벌써 땅을 박차고 있었다.

촤자자작!

태건을 선두로 특수소방단은 일제히 내달렸다.

같은 시각.

천막에선 김을영 소방차장이 모두에게 말했다.

“오 단장이 저에게 그러더군요. 요구조자들의 몸은 구했습니다. 그러나.”

“…….”

좌중은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차분히 이어서 말했다.

“아직 한 청년의 마음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청년의 마음까지 구하고 돌아와 상황종료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

“그런 소리를 듣고 보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들이 뭘 추구하는지 알게 되니 그다음도 기대가 되는군요. 허허.”

김을영 소방차장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내 다들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멋진데?”

“간질간질한 걸 긁어주는 느낌이야.”

작은 감탄을 보였다.

이어서 현황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황판에는 사상자의 상세 내역도 적혀 있었다.

거기 김일우 부자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김한석(사망), 아들과 운동차 방문, 아들의 화상에 탈출구 확보하려 옥내소화전을 찾다가 변고.

-김일우, 백일 위로 휴가 중인 군인. 화재 대피 중 아버지 대신 불타는 선반에 깔려 팔다리에 심각한 화상.

천막 내부는 숙연함에 깊이 가라앉았다.

*  *  *

화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형 병원이 존재했다.

강남 세린 종합병원.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명한 병원이었다.

그 세린 병원의 정문 기둥을 짚는 손길이 있었다.

턱.

“헉헉, 1등.”

바로 태건이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승리를 자축했다.

혼자인 시간은 잠깐이었다.

곧 연이어 단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출발부터, 헉헉, 부정이었어.”

“당당하지 못한 승부는 굴복할 수 없는 법, 후욱후욱.”

“하아악, 하아악.”

“헥헥. 징그런 인간들. 헥헥.”

숨소리와 말투까지 비슷한 구석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한 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도착했다.

“후우, 후우, 좋은 뜀박질이었어.”

고수현은 무엇에 만족했는지 숨소리도 크게 거칠지 않았다.

장례식장은 병원 부지 내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 규모가 커서 그런지 장례식장도 엄청나게 컸다.

그 중 어느 빈소에 도착했다.

안은 장례회사 직원들이 장례를 준비 중이었다.

척. 척.

하지만 그 속에 김일우는 없었다.

둘러보던 태건은 곧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옷이 검은 상복으로 변해 있었다.

멍.

벽에 기대앉은 모습에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화상은 치료했나.’

안타까움에 다른 걱정부터 괜히 꺼냈다.

곧 다른 단원들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쯧쯧.”

“에휴, 참.”

쓴 소리들이 툭툭 들려왔다.

태건을 포함한 모두는 쉽게 김일우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 심정이 어떤지 알고 있던 탓이다.

이렇게 우두커니 지켜보려 여기까지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결국 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야야, 같이 가면 될 걸 뭘 혼자 간다고 그래.”

“고인을 제가 발견했잖습니까.”

“어후,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할 말이 없잖아.”

끄덕.

다들 동의하는지 처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태건은 김일우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김일우는 누가 왔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

바짝 마른 입술은 열리지 않을 거 같았다.

태건은 오는 길에 하나 집어 들고 온 생수병을 내밀며 첫 마디를 꺼냈다.

스윽.

“부대에 연락은 했어?”

“……누구. 설마?”

목소리에 김일우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로 기억하는지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러나 동요는 잠시였고, 다시 맥없는 모습으로 돌아갔다.

태건은 그걸 보고 직감했다.

‘중증이네.’

스스로 경험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태건은 이내 김일우 옆에 앉으며 말했다.

“좀 앉아도 되지.”

“사과, 흐흑. 사과 안 받을 겁니다.”

“사과하러 온 거 아니야.”

“뭐……. 라고요?”

김일우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사과를 한다고 해도 너한테는 아니야.”

“우리 아버지한테, 나한테 그렇게……. 그렇게 해 놓고 어떻게…….”

“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이, 이씨!”

휘익!

바짝 손톱을 세운 두 손이 태건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얼굴에도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태건은 훤히 보이는 손길을 매정하게 쳐냈다.

탁!

“어딜.”

“악!”

김일우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동시에 태건은 갑자기 한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척.

멈추란 수신호다.

그 손바닥이 향한 곳엔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있었다.

달려오려 잔뜩 폼을 잡은 모습들이었다.

“애 패면서 오지 말라니.”

“장례상에 수저 한 세트 더 올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 이성은 있을걸요. 아마도요.”

다들 쓴 얼굴로 어쭙잖은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마음이 좋지 않아 괜히 던진 농담이었다.

한편.

태건은 쓰러진 김일우를 묵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손부터 뻗는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이익, 크흐흐.”

“우리가 찾아온 건 네가 걱정돼서야.”

“당신이, 크흑. 당신들이, 뭘 안다고, 흐으윽. 아버지이!”

쾅쾅!

김일우는 주먹을 내리쳐가며 오열했다.

태건은 표정 하나,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알아. 아니까 왔지.”

그 말을 꺼낸 바로 그때였다.

휙!

김일우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씹어뱉듯 으르렁거렸다.

“아는 척하지 마. 나 같은 놈 많이 봤으니까 안다고 위선 떨지 마!”

“말 예쁘게 해라. 상주 패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뭘 안다고 아까부터 지껄여. 당장 꺼져!”

김일우의 힐난이 도를 넘었다.

순간 태건도 울컥해 주먹을 들었다.

“이걸 진짜 확!”

하지만.

저 속이 오죽할까.

그 심정으로 다시 내렸다.

“후우. 젠장.”

“…….”

“나도, 저기 저분들도 소중한 누군가를 불 속에서 잃었어.”

태건이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김일우가 처음으로 동요를 보였다.

“그, 그런 거짓말…….”

“소방관 순직했단 소식 들어본 적 없어?”

“…….”

이번엔 김일우의 입이 닫혔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 저렇게 준비하는구나. 난 그분들 장례식에 막판에 가서 제대로 못 봤어.” 

“…….”

“누가 더 슬픈지 따질 거 아니잖아.”

“크흡. 그럼 왜…….”

김일우가 처음으로 이성적인 목소리를 내보였다.

스윽.

그제야 바라본 태건이 입을 열었다.

“너한테 더 늦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려고.”

“왜 이제야, 왜…….”

“지금도 이러는데, 아까 거기서 말했으면 어땠을 거 같아.”

태건이 잔잔히 질문을 건넸다.

김일우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간신히 달싹거렸다.

“아버지부터…….”

“그래. 아버지 뵙겠다고 난리를 부렸겠지. 유독가스 가득한 곳에서 말이야.”

“…….”

“널 살리려고 말하지 않았어. 그게 네 아버지의 바람이기도 했으니까.”

태건이 말하자 김일우가 흠칫했다.

“아버지의 바람?”

“옥내소화전 바로 앞에서 숨을 거두셨어. 탈의실에서 거길 어떻게 찾아가셨는지는 아무도 몰라.”

“…….”

“너도 뒤따라 나갔다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돌아왔다고 했지.”

태건의 기억이 정확했는지 김일우 어깨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독기가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스스슥.

눈빛부터 조금씩 순해졌다.

말투도 달라졌다.

“그랬……. 어요.”

“그런 곳에서 수십 미터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도 불가능해.”

“그럼 말이……. 안 되잖아요.”

김일우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태건은 바로 수긍했다.

“맞아.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불가능한 일인데……. 내가 봤고, 다른 단원도 봤어.”

“…….”

“뭐가 그분을 그렇게 움직였는지 넌 알 거야.”

“흐으음.”

파르르.

김일우의 메마른 입술이 떨려왔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물병을 건네며 말했다.

“자책 같은 거 하지 말고 물이나 마셔.”

“…….”

스윽.

김일우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물병은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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