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98)화 (97/320)

98화

태건은 잠시 기다렸다.

이내 물을 한 모금 마신 김일우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소방관님은 어떻게 편해지셨어요?”

“누가 편하다고 그래?”

태건이 빤히 바라보자 김일우가 오히려 당황했다.

“되게 편해 보이는 거 같은데…….”

“그렇다고 슬픔이 사라진 건 아니야. 조금 더 가슴 깊숙이 끌어내리는 법을 깨우친 거겠지.”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가요?”

김일우의 질문이 어느새 진지해졌다.

태건은 그에 대해 단호하게 답할 수 있었다.

“아니, 내가 살기 위해서.”

“…….”

김일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태건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대신 한 마디 덧붙였다.

“너도 너만의 방법을 찾아.”

“…….”

“그럼 우리 대화는 여기까지……. 이제 오세요!”

휙휙.

태건이 크게 말하며 손까지 흔들었다.

곧 특수소방단 모두가 다가왔다.

전부 김일우를 둘러싸고 걱정부터 보였다.

“어디 얻어맞진 않았지?”

“녀석, 울다니.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데……. 아, 이번이 그 세 번 중에 한 번이네.”

“그런데 화상은 치료했니?”

“힘들 거야. 하지만 축 처져 있으면 안 돼.”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까 끙끙 앓지 마.”

한 마디씩 걱정과 우려, 격려를 건넸다.

김일우는 어안이 벙벙해 했다.

그러다 눈에 습기가 차더니 끝내 눈물을 흘렸다.

뚝, 뚝.

“…….”

울음소리도 없이 그냥 뚝뚝 떨어져 내렸다.

다들 가만히 기다렸다.

저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던 탓이다.

“…….”

“…….”

굳게 닫힌 마음에 이제야 틈이 생긴 거다.

잠자코 기다리던 중이었다.

김일우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습니다.”

“…….”

하고픈 말이 있으리라.

태건과 모두는 그가 편히 말할 수 있게 말을 삼갔다.

김일우는 눈물을 훔치며 이어서 말했다.

“가슴이 아직 아픈데, 솔직히 많이 아픈데……. 이렇게 먼저 찾아와 주셔서 더 아프지 않은 거 같아요.”

“…….”

“아버지 잘 모셔주셔서……. 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납작.

앉은 채로 고개 숙이던 김일우는 끝내 엎드렸다.

“흑흑.”

우는 소리가 들리며 이내 등이 들썩거렸다.

20대 초반으로 아직 어린 나이다. 

너무 큰일을 겪는 중이라 감정적으로 불안했다.

그 와중에 건넨 인사지만 고마움은 확실히 담겨 있었다.

슥슥.

다들 손을 뻗어 김일우의 등을 쓰다듬었다.

“…….”

아무 말도 없는 게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다.

-괜찮아. 실컷 울어.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자.

그 모든 격려의 의미가 등을 쓰다듬는 손길에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장례식이 시작됐다.

첫 번째 조문객은 특수소방단이었다.

고인에게 먼저 예를 갖췄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상주와 마주했다.

스윽.

상주는 당연히 김일우였다.

“이렇게 제일 먼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도 분명 같이 인사하셨을 겁니다.”

슬픔과 아련함이 얼굴에 가득한 점은 똑같았다.

하지만 두 눈에 서려 있던 실의와 허망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김일우에게선 씩씩해지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태건은 그 표정을 보고야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상황종료.”

끄덕.

모두가 똑같은 고갯짓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다들 같은 생각을 했다.

이거다.

지금 김일우의 모습.

그걸 이뤄내는 이들이 바로 자신들이었다.

자부심이 용솟음쳤다.

태건과 단원들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나섰다.

그들 중 오광휘 단장이 통화 중이었다.

곧 휴대폰을 내린 그가 말했다.

“왕성남 씨는 응급수술 들어갔대. 위기는 넘겼는데, 꽤 오래 걸릴 거 같다더라.”

“그렇군요.”

“김유나 씨도 가볍지 않은 부상이라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나 봐.”

오광휘 단장이 간추린 소식을 들려줬다.

다들 가볍게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황대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굳이 번잡스럽게 찾아갈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다시 오기도 애매하네요.”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죠.”

한 마디씩 덧붙였다.

모두의 의견을 취합한 오광휘 단장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이만 돌아갈까?”

“네!”

저벅저벅.

다들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특수소방단은 다시 빌딩 화재 현장으로 돌아왔다.

휘이잉.

모두 철수해 썰렁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태건이 직접 휴대폰으로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전화했다.

“저희 현장에 복귀했습니다만…….”

“헬기 챙겨서 훈련장으로 돌아와.”

뚝.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순간 태건은 황당했다.

“이거 뭐야. 아까 복수야?”

“뭐라는데?”

“복귀하랍니다.”

태건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오광휘 단장도 조금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문자라도 먼저 남기든가……. 얘들아, 헬기 타고 돌아가자.”

“아, 또 7층까지 올라가야 되네.”

척척.

다들 쓴 얼굴로 하나둘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투다다다.

헬기가 굉음을 토하며 솟구쳐 올라 우면산을 향해 날아갔다.

출동은 종료됐지만 아직 남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장평가였다.

*  *  *

잠시 후.

헬기가 훈련장 상공에 접근했다.

투다다다!

기장인 유중헌의 다소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대체 뭐하는 환영단이야?”

환영단?

스윽.

의아한 태건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훈련장 옥상에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누구지?”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데.”

다들 갸웃거렸다.

그때 태건 옆에서 이지성이 말했다.

“차장님하고 간부분들이네요.”

“우와, 선배 눈 되게 좋……. 은 게 아니네요.”

놀라 바라본 태건이 어색한 미소로 변했다.

어디서 났는지 쌍안경을 들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던 오광휘 단장이 빠르게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설마 우릴 마중 나온 거야?”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거 참.”

다들 반신반의했다.

소방차장은 무려 소방청의 2인자다.

그가 몸소 마중을 나왔단 사실 자체가 빅이슈였다.

한편 태건은 턱을 덤덤히 쓸며 뇌까렸다.

‘저런 반응이라면?’

반짝.

뭔가 꿍꿍이가 엿보이는 눈빛이 번뜩거렸다.

이내 태건이 모두를 집중시켰다.

“다들 잠시만요.”

“갑자기 왜?”

“시간 없으니까 짧게 말씀드립니다. 그러니까…….”

태건의 목소리가 헬멧 무전기 속을 울렸다.

중얼중얼.

자신들만 듣는단 걸 알면서도 조심성을 기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듣던 단원들의 표정이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빨리 태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진짜?”

“가능해?”

“얘가 또 혼자 머리 굴리네.”

그런 단원들의 반응을 뚫고 오광휘 단장이 나섰다.

“강태건, 상당히 무모한 시도가 될 수 있어.”

“아까 반응을 보면 가능성은 높다고 봅니다.”

“그렇기는 한데…….”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좁히며 고민했다.

그런 그를 유중헌이 닦달했다.

“결정할 거면 빨리합시다. 슬슬 고도 낮출 타이밍입니다.”

“단장님.”

모두 그를 부르며 최종 결정을 바랐다.

이내 오광휘 단장이 무릎을 내리치며 답했다.

차악!

“에라, 모르겠다. 질러!”

그 확답에 다들 의외로 좋아했다.

“고로췌!”

“난 이런 꿍꿍이 좋더라.”

“진정한 남자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지력도 갖춰야 하는 법!”

다들 가늘게 미소 짓는 모습이 악동 같았다.

태건은 그런 그들을 재촉했다.

“자, 어서 서둘러 준비하시죠. 그리고 중헌 선배, 1분만 끌어줘요!”

“그 정도야 껌이지. 쿠쿠.”

투다다!

유중헌의 웃음소리에 사악함이 가득했다.

1분 후.

서서히 고도를 내린 헬기가 드디어 훈련장 옥상에 안착했다.

투두두. 슈우웅.

시동을 껐는지 소음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헬기 슬라이딩 문이 열렸다.

드륵.

활짝 열린 문밖으로 단원들이 한 명씩 내렸다.

그런 그들은 방화 장비를 모두 갖춘 출동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방화복이 압권이었다.

불똥이 여기저기 튀어 거뭇거뭇한 자국이 가득했다.

특히 태건과 황대산, 고수현의 방화복은 곳곳에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의 방화복에도 검은 먼지가 가득했다.

이내 유중헌까지 도착해 모든 단원이 일자로 멈춰 섰다.

차작!

동시에 탄 내음이 사방으로 가득 풍겨갔다.

앞에 선 오광휘 단장이 김을영 소방차장을 향해 소리쳤다.

“무사히 상황종료 후 복귀했습니다. 일동 경례!”

“라텔!”

처억.

똑같이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군기(?) 최강이었다.

패기 넘치는 구령 소리는 넓은 훈련장 끝까지 퍼졌는지 메아리쳐 왔다.

그 기백에 이끌렸는지 김을영 소방차장도 마주 경례했다.

“라텔.”

“……바로!”

오광휘 단장의 구령에 또 한 번 절도 있게 움직였다.

김을영 소방차장이 모두를 크게 둘러보며 물었다.

“아까는 기동복 차림 아니었나?”

“맞습니다!”

“왜 다시 방화복을 입고 있나.”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한단 게 저희 결심입니다!”

“수미상관이라. 그래서 출동할 때 모습 그대로 복귀한단 거군. 좋은 각오야, 아주 훌륭해!”

김을영 소방차장은 바로 알아들었다.

태건은 기대 이상의 반응에 짐짓 놀랐다.

‘센스 좋으시네. 의미를 아주 콕 짚어주시는 센스.’

그 외에 파악한 부분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다.

‘생각보다 더 술술 풀릴지도 모르겠어.’

태건은 기대를 품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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