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99)화 (98/320)

99화

그때 김을영 소방차장이 안타까워했다.

“쯧, 한 번 출동했는데 이렇게 엉망이라니.”

“죄송합니다.”

“그게 왜 단장 탓인가……. 이보게들.”

묵직한 그의 부름에 간부들이 반사적으로 답했다.

“네. 차장님.”

“이런 걸 챙겨주란 말이야.”

“문제없도록 하겠습니다.”

칼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라텔 모두가 태건을 힐끔거렸다.

‘되네?’

‘진짜네’

일명 ‘우리 꼴 좀 봐라.’ 작전이 통한단 사실에 놀라워했다.

우석진 정책과장과 스케일부터 달랐다.

그건 찰나였다.

오광휘 단장이 더욱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차장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건과 모두가 큰 목소리로 후창했다.

김을영 소방차장 표정은 더욱 부드러워졌다.

“인사성도 밝으니 얼마나 좋은가. 내려가서 음료수 한잔씩들 하지.”

스윽.

그가 먼저 돌아서고 간부들이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라텔이 움직였다.

잠깐 사이.

태건은 앞서가는 오광휘 단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걸음걸이가 약간 어색했다.

그러다 슬쩍 다가가 물었다.

“긴장되십니까?”

“안 되겠냐. 난 저런 높은 양반이랑 어떤 자리를 갖는 게 처음이란 말이야.”

“얘기하다 막히면 저한테 떠넘기십시오.”

태건은 심드렁하게 권했다.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러네. 네가 있었지.”

“그렇다고 막 떠넘기진 마시고요.”

“그건 내 맘이야. 후후.”

오광휘 단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서갔다.

태건은 그 반응이 어째 개운치 않았다.

“괜히 말했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괜히 어깨만 들썩거렸다.

곧 모두가 회의장에 둘러앉았다.

간담회 자리였다.

특수소방단은 기동복차림으로 회의장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

다소 경직된 표정과 모습이었다.

김을영 소방차장이 바로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 거리가 2미터도 되지 않았다.

천하의 천둥벌거숭이들도 이런 분위기에선 위축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결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긴장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속으론 엉뚱한 생각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우리 꽤 괜찮은 애들이에요.’

‘이렇게 저희가 순하답니다.’

본모습을 숨긴 채 성실한 분위기를 가득 풍겼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이 김일우를 찾아간 일에 대해 보고를 마쳤다.

“……그렇게 장례식이 시작된 거까지 확인하고 철수했습니다.”

끄덕끄덕.

김을영 소방차장이 묵직하게 고갯짓하며 격려했다.

“잘들 다녀왔구나.”

“실례란 걸 알면서도 아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거 없어. 뭐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오광휘 단장부터 단원들 모두 예의를 보였다.

그 모습에 김을영 소방차장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 얼마나 예의 바르고 듬직한 모습이란 말인가.”

“…….”

“그저 구조에만 국한되지 않고 직접 찾아가 위로해준 세심함까지.”

“…….”

“모든 소방관들이 마음에 품고 있되 여건상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을 자네들이 시원하게 잘 긁어주는 거 같군.”

칭찬 일색 정도가 아니라 극찬이었다.

한 번 호탕하게 웃을 만했다.

그러나 특수소방단은 그런 유혹을 이겨내며 진득함을 보였다.

오광휘 단장이 특히 그러했다.

“사실 저희가 지금도 현장을 누비는 수많은 선배님들에 비해 경력도, 경험도 참 부족한 게 많습니다.”

“흐음. 틀린 말은 아니지.”

“그 부족함을 열정과 패기, 그리고 젊음으로 채워 현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퉁.

가볍게 가슴을 두드리며 각오를 어필해 보였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묵직하게 고갯짓을 했다.

“지금 그 마음 변하지 않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내 부탁을 했으니 상응하는 보답도 있어야겠지……. 원하는 게 있나. 누구라도 좋으니 허심탄회하게 말해봐.”

김을영 소방차장은 엄청난 호의를 보였다.

지금 그가 뭔가를 약속한다면 무조건 이뤄질 터였다.

간부들도 얼른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주변의 움직임을 감지한 단원들도 감을 잡았다.

번뜩!

‘뭐 필요한 거.’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데구루루.

정말 눈 돌아갈 정도로 수많은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런 제안이었다.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휙!

오광휘 단장부터 모두의 시선이 태건에게로 향했다.

‘기회 날리지 말고.’

‘뭐라도 좀 챙겨봐.’

두 눈에 힘을 줘가며 압박했다.

어느새 결정적인 순간엔 태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럴만했다.

태건은 생각해 둔 게 있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감추며 손을 들었다.

스윽.

발견한 김을영 소방차장에 가볍게 가리키며 말했다.

“가장 끝에 앉은 단원……. 이름이?”

“강태건 소방사입니다.”

“강태건이라, 혹시 자네가 ‘더 라스트’인가?”

김을영 소방차장이 묻자 태건은 덤덤하게 수긍했다.

“네, 맞습니다.”

“오늘도 그 명성대로 했다지.”

“아닙니다. 옆에 자리한 단장과 선배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태건의 대답이 청산유수였다.

자신의 공을 줄이고 동료를 높이는 자연스런 대답이 사회생활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분명 사실에 기반을 둔 대답이었다.

그런 태건의 겸손함에 김을영 소방차장도 흡족한 모양이었다.

“명성에 비해 참 겸손한 친구로군……. 그래,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뭐든 말씀드려도 됩니까?”

“물론이지.”

“음…….”

태건은 말꼬리를 늘이며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그 반응은 여러 사람 속을 끓게 했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호기심 깊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뒤에 간부진들은 조금 어이없어했다.

“뭘 또 바라는 게 있단 거야.”

“저 나이 땐 내지르고 보는 경향이 있죠.”

“어마어마하게 튀어나오려나.”

꽈악.

내심 긴장하며 펜을 붙든 손에 힘을 줬다.

같이 자리한 라텔 모두는 의아하게 바라봤다.

‘뭔데 폼을 잡아.’

‘쟤도 참 엉뚱해.’

‘최신형 헬기라면 난 찬성.’

‘TV 인터뷰 정도로 해.’

슬쩍 소망을 대신 말해 주길 희망하기도 했다.

자신이 말하긴 좀 그러니, 태건이 대신해주길 바라는 거였다.

그런 그 누구도 우석진 정책과장만큼 긴장하진 않았다.

‘내가 커트한 걸 직접 말하려고?’

예산 문제로 건의 사항을 묵살한 적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분명 문책감이었다.

이내 태건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며칠 말미를 주십시오.”

“원하는 게 많은가?”

“좋은 기회인 만큼 신중하게 상의하고 싶습니다.”

태건은 또렷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이해하는지 수더분하게 허락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럼 후에 정책과장님을 통해 서류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태건은 과하지 않은 예의를 더해 답했다.

그때 의외의 인물이 언급되자 김을영 소방차장이 되물었다.

“정책과장?”

“저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니 정확한 보고체계를 거쳐야 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태건은 똑 부러지게 의견을 밝혔다.

정작 특수소방단은 수평관계라 해당 되지 않았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생각했다.

그러다 곧 뒤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흠, 틀린 말은 아니야……. 정책과장.”

“네, 차장님!”

그릉!

“단원들과 상의한 내용을, 자네가 직접 나에게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우석진 정책과장의 대답 소리에 얼떨떨함이 감돌았다.

태건과 단원들은 그가 뒤에 있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만 들어도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거 같았다.

놀라 벌떡 일어나고, 또 얼떨떨하게 앉고.

‘정신 쏙 빠지겠지.’

자신이 유도한 상황이라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 후로는 간담회란 목적에 맞게 잔잔한 대화들이 오갔다.

30여 분이 빠르게 지나갔다.

간담회도 이제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김을영 소방차장이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선 확실히 해야겠지.”

“…….”

“라텔, 창단을 허락하네.”

투둥.

그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태건과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시적인 운영이란 부분은 아직 유효해.”

“…….”

다들 침묵한 채 바라봤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한 명씩 꼼꼼히 둘러보며 뒷말을 이어갔다.

“대신 언제든 누군가 자네들을 찾게 된다면 계속 이어갈 걸 약속하지.”

“곧 그런 소식을 듣게 되실 겁니다.”

특수소방단의 대답이 비장했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일어났다.

그릉.

“그럼 다음에 또 기분 좋은 일로 만나도록 하지. 멀리 나올 거 없어.”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라텔!”

척.

단원들의 씩씩한 인사를 받으며 김을영 소방차장과 참모들이 떠나갔다.

곧 회의실 문이 닫혔다.

탁.

그와 동시였다.

모두 언제 긴장했냔 듯이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풀썩.

책상에 엎드리거나 기지개를 켜며 한 마디씩 꺼냈다.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으신지.”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호의적이던데요.”

“나름 카리스마도 보이려고 하더군요.”

“옥상에서 화끈한 명령을 듣는 순간 찌릿하긴 하더라.”

황대산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태건도 찌뿌듯한 몸을 펴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요.”

“원래 예정보다 훨씬 오래 있었다잖아. 약속도 미뤄가면서 말이야.”

“그랬죠. 아차, 우리 점심 내기는 어떻게 된 겁니까?”

태건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와 동시였다.

투둥!

순간 모두가 멈칫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상기한 모두가 힐끗거리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거 기준이 애매해졌는데…….”

“요구조자 순으로 하자니 공동전선을 펼쳐서 공정하지 않아.”

“그렇다고 이대로 흐지부지 끝낼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요. 강남의 프리미엄 뷔페를 갈 기회가 어디 흔합니까?”

찌리릿.

주머니를 열지 않겠단 각오가 강해져 갔다.

그 모습이 참 유치했다.

방금 건실한 소방관으로 비쳤던 모습이 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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