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00)화 (99/320)

100화

그때 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냥 제가 살 테니까 가시죠.”

그 말에 다들 귀를 의심했다.

“네가 산다고?”

“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까 네가 제안한 거였잖아. 그래놓고 이제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다들 억울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태건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제가 산다고요.”

“그, 그래? 그럴래?”

“갈 생각들이 없으신가. 그럼 저야 돈 굳고 좋죠.”

스륵.

태건은 가볍게 한 마디 흘리고 몸을 돌렸다.

바로 회의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몇 발자국 걷기도 전이었다.

쌔앵, 쌩쌩!

좌우에서 단원들이 지나쳐 출입문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문이 닫혀 있어 순식간에 단원들이 몰려들었다.

옥신각신.

“내가 먼저 나갈 거야!”

“고수현이, 나 단장이야!”

“저기, 저부터 좀…….”

“점심값 그거 얼마나 한다고. 좀 나와 봐요. 화장실 좀 가게. 아, 화장실 간다니까.”

이지성까지 난리였다.

그런 그들을 거대한 곰이 나타나 단숨에 덮쳤다.

“우어어, 다 비켜!”

우당탕!

그 난리 통에 결국 황대산까지 합류했다.

태건은 뒤에서 걸음을 멈추고 뚱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나이들은 다 어디 갔어.”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만들어낸 참상이란 걸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특수소방단원들은 휘황찬란한 뷔페 안에 들어섰다.

“이야.”

“우와.”

놀란 표정들이 여기저기서 엿보였다.

사실 태건도 처음이었다.

‘끝내주긴 하네.’

속으로 놀라고 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권했다.

“천천히 많이 드시면 됩니다.”

“다들 먹으러 가자!”

“우와아!”

오광휘 단장이 앞서자 단원들이 흥분 가득한 얼굴로 뒤따랐다.

태건은 그런 그들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봤다.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좋네.”

중얼거린 태건도 곧 그쪽으로 움직였다.

음식 먹는 방법도 참 각양각색이었다.

산처럼 쌓아 놓고 먹기도 하고.

“역시 힘은 고기에서 나오는 법!”

조금씩 담아와 계속 들락거리기도 했고.

“이건 먹어봤고, 다음엔 그 옆에…….”

아예 한 음식만 공략하는 팀원도 있었다.

“여기 뷔페 베이커리가 제일 단가가 높다더라.”

또는 색다른 음식만 심취하기도 했다.

“이거 먹어 보고 싶었는데……. 오오오. 끝내준다!”

각양각색의 팀원들 중 태건은 격식을 갖춰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했다.

문제는 모든 음식에 사용한단 점이었다.

서걱서걱.

“음. 맛이 좋네.”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음식까지도 굳이 사용하고 있단 게 약간 문제이긴 했다.

그렇게 뷔페 하나도 각양각색으로 즐겼다.

*  *  *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됐다.

모두 짐가방을 들고 주차장에 서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굵직하게 말했다.

“그동안 팀워크 훈련하느라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각자 정리할 거 정리하고, 다시 만나자.”

“그때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단원들이 각자의 차로 향했다.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함께였다.

차량 조수석에 앉은 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게 어색한 거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갇혀 있었나봐. 기분이 묘하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모이는 겁니까?”

태건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부웅.

차를 출발시킨 오광휘 단장이 운전하며 답했다.

“몰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될는지.”

“차장님 반응 보면 판잣집은 아닐 겁니다.”

“건물 하나 내달라고……. 아, 맞다.”

오광휘 단장이 아차하자 태건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놓고 오신 거 있습니까?”

“아니. 아까 간담회 때 말이야. 왜 정책과장을 끌어들인 거야?”

“과장님도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태건은 수더분하게 대답했다.

오광휘 단장은 오히려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보고만 우리 대신 해주는 거잖아.”

“차장님에게 다이렉트로요.”

“오호. 얼굴 도장 한 번 더 찍게 해주겠단 거네.”

오광휘 단장은 이제 이해한 모양이었다.

태건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출세는 일단 인맥부터 시작 아닙니까.”

“윗동네도 치열하겠지. 그런 면에선 차라리 우리가 속 편하다니까.”

“그건 동감입니다.”

태건은 흘리듯 대답했다.

부웅.

동시에 사이드미러를 통해 훈련장이 멀어지는 걸 바라봤다.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처음 어색했던 단원들과 만남.

사사건건 시비 걸며 날을 세웠던 시간들.

훈련할 땐 열정적이었던 모습들.

관악산 출동과 오늘 출동까지.

한 번 진지하게 되살린 태건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래도 단원들과 함께할 내일이 기대된단 건 좋은 징조였다.

*  *  *

한 시간 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아파트에 도착했다.

현관문에 들어선 순간이다.

오광휘 단장이 저돌적으로 달려가 소파에 몸을 날렸다.

풀썩!

“오, 마이 스위트 홈!”

단숨에 소파와 하나가 됐다.

얼굴 가득 행복이 차오르고 있었다.

태건은 아이 같은 그의 천진함이 당황스러웠다.

‘조금 전엔 아쉽다면서.’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이 차라리 오광휘 단장 같기도 했다.

어느새 오광휘 단장은 비스듬히 누워 TV를 시청 중이었다.

비번 때마다 보던 딱 그 모습이다.

“낄낄낄.”

웃는 톤까지 똑같았다.

변해도 너무 순식간에 변했다.

이내 태건이 넌지시 의중을 떠봤다.

“저 지금 필요 없으시죠?”

“쉬어, 쉬어. 낄낄.”

휙휙.

오광휘 단장은 다리를 휘저어 의사표시를 했다.

태건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태건은 곧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툭.

가방을 대충 내린 태건은 잠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바라봤다.

-퇴소했다지. 시간 되면 연락 줘.

오는 길에 받은 우석진 정책과장의 문자였다.

태건은 바로 전화했다.

뚜루루.

곧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집에 도착했나?”

“네. 과장님은 세종에 잘 내려가셨습니까.”

태건은 자연스레 안부를 물었다.

그때 우석진 정책과장 목소리가 조금 묵직해졌다.

“전에는 따지고 반발하더니, 오늘은 왜 호의적인 거지?”

“저는 받은 대로 돌려주는 성격입니다.”

“그거 참,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군.”

우석진 정책과장이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

태건은 싱겁게 답했다.

“간단히 생각하면 간단해집니다.”

“그렇군. 그런데 대체 뭘 요구하려고 그렇게 시간을 번 거지?”

“딱히 원하는 거 없습니다.”

태건의 대답이 너무도 간단했다.

반대로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복잡해졌다.

“그런데도 날 언급하고, 직접 대면보고를……. 허어. 호의라고 봐야 하나?”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봐야하지?”

“있는 그대로요.”

태건의 대답이 짧아서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석진 정책과장도 그런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열어준 기회를 잘 활용해보도록 하지.”

“기회가 왔으면 놓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죠. 저희도, 과장님도요.”

서로의 입장 중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콕 집었다.

그 말은 우석진 정책과장도 동감인 모양이다.

“그래.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 답례로 화끈하게 지원해주지.”

“잘 부탁드립니다.”

“쉬고 있어. 곧 연락줄 테니까.”

뚝.

우석진 정책과장의 다부진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처음으로 깔끔하게 끝난 통화였다.

태건도 곧 휴대폰을 내렸다.

벌렁.

그대로 침대에 누운 태건은 가늘게 미소 지었다.

“굳이 인상 쓰며 살 거 뭐 있어.”

스르륵.

이내 눈을 감은 태건은 오랜만에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저녁.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치지직!

불판에 고기가 노릇노릇 익어갔다.

태건이 고기를 뒤집으며 권했다.

“이제 드셔도 됩니다.”

“…….”

오광휘 단장이 조용했다.

휴대폰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린 태건이 다시 불렀다.

“단장님. 식사요.”

“야야, 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거 봐봐.”

불쑥!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놀랍게도 뉴스 화면이었다.

태건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우와, 뉴스도 보시네요.”

오광휘 단장이 바로 으르렁거렸다.

“적당히 까불지?”

“뭐, 크흠. 대체 무슨 뉴스……. 어?”

기사 머리말을 확인한 태건이 살짝 놀랐다.

-소방청 직할 특수소방단, 라텔 창단.

자신들의 기사였다.

슥슥.

태건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려가며 빠르게 훑었다.

친절하게도 천막 안에서 촬영한 사진도 한 컷 첨부되어 있었다.

그 외에 본문은 익히 아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오광휘 단장 외 5명은 젊은 인재들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단원 개개인의 정보는 딱히 적혀 있지 않았다.

대표인 오광휘 단장만 이름 석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태건이 레펠로 왕성남을 구하는 사진이 압권이었다. 

다만 태건이 라텔 출신이란 걸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소방청에서도 곤란한 문제였다.

창단을 알리기도 전에 라텔이 사고친(?) 탓이다.

공직사회가 늘 그랬다.

서류과 규정에 얽매여 나온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라텔의 활약상은 모든 소방관에게 찬사로 돌아갔다. 

그거면 됐다. 

태건도 충분히 이해했다.

‘곧이야 곧.’

마음속으로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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