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01)화 (100/320)

101화

태건이 열독하는 사이 오광휘 단장이 보채듯 물어왔다.

“기분이 어떠신가?”

“수현 선배가 아쉬워하겠습니다.”

“그게 끝이야, 거기 밑에 댓글 안 보이냐?”

“안 봅니다.”

스윽.

태건은 간단히 대답하며 휴대폰을 돌려줬다.

그걸 받아든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렸다.

“왜 안 봐?”

“모든 댓글은 긍정과 부정이 섞여 있기 마련이거든요.”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감사한 댓글도 많은데……. 예상 낭비라느니, 탁상업무의 폐해라느니, 그런 소리도 좀 있긴 하더라.”

쓴 얼굴로 말하는 걸 보니 댓글들을 보느라 집중했던 모양이다.

그걸 본 태건이 씩 웃었다.

“키보드 워리어는 항상 있답니다.”

“자식들이.”

오광휘 단장이 흥분하자 태건은 소주병을 들며 말했다.

“한 잔 받으세요. 그리고 저희는 이제 시작입니다. 보여준 게 없으니 갖가지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요.”

쪼르륵.

“반주니까 반 잔만 채워. 그런데 보여준 게 없진 않지.”

“그건 일부만 아는 사실이고요. 매스컴에 이슈가 된 건 빌딩 화재던데요.”

태건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쨍.

대화하는 사이 가볍게 술잔을 부딪치고 입을 축였다.

이어서 오광휘 단장이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건물이 불타고, 헬기까지 떴는데 소문 날만 하지. 소방차도 엄청 몰려갔고 말이야.”

“그렇죠.”

쩝쩝.

대답한 태건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자연스럽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돌연 오광휘 단장이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입안에 음식을 삼키고 운을 뗐다.

“우리가 유명해지려면 어째야 될지 생각해 봤어?”

“유명세를 쫓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한겨울에 쫓겨나.”

김을영 소방차장이 제시한 특수소방단 유지 조건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야 태건도 조금 진지해졌다.

그럼에도 내뱉는 말은 가벼웠다.

“엄동설한에 밖에서 자면 춥죠.”

“헬기 관광 투어할 것도 아니고 뭔가 부족해.”

“그건 천천히 생각하시고, 집은 내놓으셨습니까?”

“그것도 고민이다. 이걸 어째야 되나.”

오광휘 단장이 다소 가라앉은 얼굴로 둘러봤다.

옛날 구형 아파트였다.

투룸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고 평수는 작은 편이었다. 경기도 권내인데다 위치도 역세권에서 상당히 멀었다.

애착을 보이기엔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오광휘 단장의 시선에는 아련함과 씁쓸함이 공존했다.

그 감상적인 모습에 혹시나 싶은 태건이 물었다.

“여기서 꽤 오래 사셨나 봅니다.”

“뭐, 몇 년 전이긴 하지만 신혼집이었지.”

“……아, 죄송합니다.”

태건은 바로 사과하며 다시 술병을 들었다.

오광휘 단장은 빈잔을 내밀며 쓰게 미소 지었다.

“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그런데 왜…….”

“태건아. 거기까지. 더 파고들지 말고 술이나 채워.”

스윽.

빈 잔을 가볍게 올려 재촉의 신호를 보냈다.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은 있다.

오광휘 단장에겐 결혼과 이혼이 그 속사정이었다.

그래서 태건은 순순히 물러났다.

“이번엔 꽉 채우겠습니다.”

“짜샤. 반주라니까. 술 쳐 먹고 해롱거릴 일 있냐.”

“집인데요 뭐.”

“난 따져.”

쨍.

오광휘 단장은 반쯤 차오른 술잔을 부딪치며 톡 쏘아붙였다.

새치름한 표정을 보니 그냥 하는 소리였다.

태건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조금씩 드십시오. 그리고 출동에 관해선 조만간 머리 한 번 맞대시죠.”

“그래, 아무튼 일단 밥부터 먹자.”

그렇게 합의를 보고야 식사에 몰두했다.

분위기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다소 진지한 얘기들도 오갔지만 밥상 앞이라 조금 가볍게 넘어간 듯 했다.

*  *  *

다음날 늦은 아침시간.

태건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있었다.

띠리릭.

갑자기 울린 휴대폰 소리에 잠에서 깼다.

“으음. 몇 시지?”

터덕.

퉁퉁 부은 얼굴로 발신자를 확인한 태건이 눈을 의심했다.

고수현의 전화였다.

의아함도 잠시였고, 일단 전화부터 받았다.

“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

“얘 대체 왜 이러냐?”

뜬금없는 지칭에 태건이 눈을 끔뻑거렸다.

“얘라니요?”

“내가 너한테 얘라고 하면 누구겠냐.”

스무고개 문제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공통분모가 하나뿐이라 대번에 유추할 수 있었다.

“지성 선배가 거기 있습니까?”

“아침부터 내려와서 사람 불러내고 속 뒤집고, 아으으으!”

“지성 선배가 거기 갈 일이 뭐가……. 혹시?”

태건이 갸웃거리자 고수현이 퉁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개들 보러 왔단다.”

“그 선배 진짜 개 좋아하네요.”

“내 말이. 그건 지 사정이지. 왜 나도 못 쉬게 이러냔 말이야. 좀 너무하지 않냐?”

고수현의 푸념이 들려왔다.

태건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지성.

대체 차가운 건지 아니면 따뜻한 건지.

‘속을 모르겠단 말이야.’

양면 모두 진심이라 더 헷갈렸다.

그때 고수현이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야, 태건아, 듣고 있냐?”

“그럼요. 그래서 개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까?”

“……니가 더 해. 끊어, 새꺄!”

뚝.

정말 끊어버렸다.

태건은 휴대폰을 향해 불만을 흘렸다.

“잘 지낸다고 말하면 되지. 뭘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

가만 보면 고수현의 성격이 더 삐딱한 거 같았다.

아무튼 개들이 계속 잘 지낸단 소식에 기분은 좋았다.

그러고 보니 진돗개와 새끼들이 떠올랐다.

“한 번 가서 보긴 봐야지.”

물론 부모님을 뵈러 가는 목적이 첫 번째였다.

그 우선순위는 절대적이었다.

어느날, 휴대폰이 울렸다.

-다음 주 월요일, 우면 훈련장으로 집결바랍니다.

오광휘 단장이 먼저 운을 뗐다.

“다시 우면인가.”

“지리적으로 나쁘지 않죠.”

“뭘 얼마나 준비했을까.”

“저도 기대가 됩니다.”

번뜩!

두 사람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새롭게 시작될 라텔을 머릿속에 그린 듯 했다.

*  *  *

정식 출범날이 밝았다.

우면훈련장 주차장.

태건과 오광휘 단장, 그리고 단원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일자로 늘어선 모두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

침묵한 채 훈련장 건물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커다랗게 걸린 플래카드 탓이었다.

-특수소방단 발족, 콜사인 ‘라텔’

플래카드 위로 옥상에 주차된 헬기 프로펠러와 상부가 설핏 보였다.

어느 순간, 모두가 진지해졌다.

구우우.

공기까지 무거워지는 듯 했다.

곧 오광휘 단장이 짧게 입을 열었다.

“내가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

“나도 포함, 모두 초심을 잃지 말자.”

“네!”

“그럼 문 열자!”

척. 척.

모두 각오 서린 눈빛으로 움직였다.

줄곧 머물렀던 장소라 따로 안내 받을 필요는 없었다.

크게 달라진 게 하나 있었다.

-특수소방단 ‘라텔’ 전용구역.

 관계자 외 출입금지.

자신들만의 공간이라 못 박아준 거였다.

소규모 소방단으로썬 특별한 대우가 확실했다.

그러나 단원들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진지함부터 와장창 깨져버렸다.

삐딱한 얼굴로 한소리씩 투덜거렸다.

“여기 격리 구역이야?”

“동물원 느낌인데요.”

“라텔이 동물이긴 하니까요.”

얼굴에 불만이 한가득 쌓였다.

반면, 태건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건 성급한 거 같습니다.”

“안쪽도 형편없으면?”

“우선 들어가 보고요.”

척, 척.

태건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달라진 게 없더라도 원래 사용하던 장소니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편안하게 호의호식하려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헬기와 지원품이 얼마나 빵빵한지 였다.

그때부터 구석구석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휴게실이 ‘쉼터’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전에는 자판기와 테이블이 있는 전형적인 사무형 휴게공간이었다.

지금은 상당히 달라졌다.

“부엌을 만들었어?”

“냉장고는 업체용이네요.”

“컵라면은 박스로 쌓여 있습니다.”

“이거 보세요. 소파에 TV, 안마의자까지. 이욜!”

둘러보는 단원들 표정이 서서히 밝아졌다.

실망이 다시 기대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 장소는 숙소였다.

커다란 방을 칸막이로 나눠 자그마한 6개의 별도 공간으로 만들었다.

프라이버시까지 배려해준 거였다.

다들 바로 눈빛이 돌변하며 제 자리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난 안쪽, 원래 스타는 신비로운 법이니까!”

“저도 구석으로, 눈에 띄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전 아무데나 좋아요.”

“이야. 여기 좋네.”

풀럭. 풀럭.

각자 성격대로 자신이 원하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태건은 입구에서 가까운 오른쪽 방으로 향했다.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수납장.

은은한 조명까지.

“이거 슈퍼 럭셔리 고시원이네.”

예전에 잠시 기거했던 고시원에 비해 몇 배나 좋았다.

아무리 봐도 오래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써준 정성이 곳곳에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그 외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 샤워실 한쪽에는 커다란 탕이 만들어져 있었다.

또 회의실은 운동기구와 탁구대 같은 여가활동 용도로 바뀌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놀랄 정도였다.

“이게 일주일 만에 가능한 거야?”

“사람 손이 무섭다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소방서에 비해 완전 호텔이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남았죠.”

태건은 밉지 않게 딴죽을 걸었다.

그 소리에 호기심 가득하게 둘러보던 모두가 멈칫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지원품 현황이었다.

“모든 출동 관련 용품은 옥상으로 이전했답니다.”

“그럼 옥상으로 가야지.”

“갑시다!”

우르르.

다들 바삐 움직였다.

잠시 후.

첫 번째로 도착한 태건이 멈칫했다.

“허, 와…….”

기가 막힌단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뒤따라 도착한 단원들 표정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이게 다 뭐야.”

“이건 진짜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야…….”

탄성도 간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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