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태건과 모두가 놀랄만 했다.
옥상 가운데에는 주차장에서 확인한 헬기가 떡하니 자리해 있었다.
헬기장 표시도 새로 그렸다.
또 옥상 곳곳 착륙 유도등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주목한 건 헬기 자체였다.
동체 옆면에 큼지막하게 라텔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었다.
-라텔.
-특수소방단.
캐릭터의 위아래에 선명한 글씨로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 놓았다.
한 마디로 특수소방단 전용헬기란 의미였다.
놀라움은 그뿐이 아니었다.
헬기 근처에 널찍한 비가림막이 지어져 있었다.
그 안쪽에 커다란 장비거치대와 산소통, 대형 공기압축기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출동 후 장비를 정비할 전용 공간이었다.
그 정도는 다들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그 옆에 기다란 조립식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저건 뭐야.”
“아무것도 안 쓰여 있는데요.”
“가보자.”
차작.
일제히 걸음을 옮겼다.
한달음에 도착해 문을 열어보니 사무실이자 출동대기장소였다.
오광휘 단장이 놀란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이런, 다들 한 번 쭉 둘러봐봐.”
“네!”
사삭.
단원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그리고 곧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상 엄청 깔끔하네요.”
“여기 칸막이 뒤에 간이침대도 있습니다.”
“이 안쪽에 창고가 있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문도 별도로 있고요.”
마지막으로 들려온 고수현의 목소리에 태건이 얼른 소리 높여 물었다.
“수현 선배, 창고라고요?”
“응. 엄청 많아.”
“잠시만요!”
차자작.
그쪽으로 향하는 태건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보자!”
“창고라니.”
사삭.
그 뒤를 오광휘 단장과 흩어진 단원들이 제각각 쫓았다.
그렇게 거의 동시에 모두가 도착했다.
고수현이 창고 문을 활짝 열고 길을 열어뒀다.
그 안에 들어선 순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꽤 커다란 공간에 철제 선반이 쭉 둘러져 있었다.
그 선반 안쪽엔 셀 수도 없이 다양한 물건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뭐 작은 철물점 수준인데.”
“현장에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종류가 많을수록 좋긴 한데.”
“어어, 다들 저쪽 봐봐. 어서!”
황대산이 한쪽을 손짓하며 굵직하게 외쳤다.
휙!
고개를 돌려본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하나의 선반 아래쪽엔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방화복들로 가득했다.
그에 대해 태건이 대표로 말했다.
“방화복이 대체 몇 개야.”
“우와. 진짜 작정하고 밀어주는 거 같아.”
“이거 놀라다가 하루 다 지나가겠어.”
한 마디씩 더하자 오광휘 단장이 분위기를 다잡았다.
“이 자슥들이 놀러왔나.”
“…….”
“그만 놀라고 현재 뭐가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부터 파악해.”
“알겠습니다.”
사삭.
모두 한목소리로 대답하고 얼른 움직였다.
그때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과장님께 전화드리셔야죠.”
“네가 해.”
“네?”
태건이 갸웃거리자 오광휘 단장이 바로 말했다.
“이거 딱 보니까 사이즈 나오잖아.”
“무슨 사이즈요?”
“네가 차장님과 다이렉트로 선을 만들어준데 대한 보너스. 아니야?”
“뭐…….”
“역시 너도 감이 오지. 그러니까 네가 전화하는 게 맞아.”
툭.
오광휘 단장은 대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태건의 등까지 떠밀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태건은 더 미루지 않고 밖으로 향했다.
옥상으로 나온 태건은 난간 쪽으로 걸어가며 휴대폰을 들었다.
저벅저벅.
곧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나.”
“둘러보기까지 했습니다. 과장님의 화끈함을 몸으로 체감 중입니다.”
“나도 받았으면 돌려줄 줄 알아.”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그럴만 했다.
태건은 군말하지 않고 인사부터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도 차장님께 칭찬받았으니 대충 넘어가도록 하지.”
“좋은 소식이네요.”
태건이 수더분하게 말하자 우석진 정책과장이 나지막이 물어왔다.
“그래서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성과를 빨리 보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럼 그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놀겠단 건가?”
“그러니까 과장님 말씀은 빨리 대형화재가 발생하거나 재난급 사고가 터져야 한단 겁니까.”
태건이 조목조목 짚어 말했다.
그에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돌변했다.
“그건 아니지만, 크흠.”
“저희 최고 성과는 오늘 하루 조용히 넘어가는 겁니다.”
“그거야 옳은 소리긴 하지.”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날아가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거니까요.”
태건이 한결 같은 각오를 보였다.
그 말이 우석진 정책과장에겐 더 부담스럽게 들린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겠지만 자네들 안전도 중요해.”
“저희 목숨 바쳐서라도 요구조자들 구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상황이 그렇다면야, 하지만 맹목적인 희생까지 강요하는 건 아니야.”
그의 논조가 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태건은 듣자마자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국민의 시선과 여론을 의식하는 거였다. 특수소방단의 목적이 특별하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거북함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하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돌아올 터였다.
계획 당시부터 각오했다지만 현실로 닥쳐오니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곧 태건이 가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해주신 부분 명심하겠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곧 현장에서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태건이 수더분하게 인사함과 동시였다.
우석진 정책과장 목소리가 살짝 삐딱하게 변했다.
“출동하지 않는 게 이상적인 목표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이 사람이, 지금 날 놀리나?”
우석진 정책과장이 불쾌한 목소리로 따졌다.
그럴수록 태건은 오히려 미소를 더욱 환하게 지으며 말했다.
“긴장 푸시라고요.”
“뭐?”
“긴장은 저희만 해도 충분합니다. 과장님이 만든 라텔입니다. 믿어주십시오.”
“흐음.”
“그럼 더 심기 어지럽히지 않고 이만 끊겠습니다.”
툭.
양해를 구한 태건이 먼저 전화 끊었다.
“헷갈리겠지.”
너무 꼬아 말했으니 얼떨떨할 거다.
태건이 바란 바였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너무 이쪽에만 집중하면 자신들이 오히려 불편해진다.
그럼 자유란 방침이 무색해진다.
그렇다고 통제 없이 멋대로 하겠단 건 아니다.
자유엔 책임이 따르는 법.
그건 불변의 법칙이었다.
스윽.
돌아선 태건이 옥상을 넓게 둘러봤다.
변화한 모습들 덕분에 이 순간이 새로운 시작점이란 걸 십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씩 이뤄가 보겠습니다.”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하는 뇌까림이 아니었다.
스윽.
태건은 넓고 창대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곧 태건은 옥상 사무실에 들어섰다.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어색함이 흘렀다.
“우리한테 전용 사무실이 생길 줄이야.”
“대기실 정도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지원 규모 탓에 기가 눌린 모양이었다.
다른 단원들은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모두를 향해 앉아 있는 오광휘 단장까지 그러했다.
“이거 참, 허허 참…….”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난색을 표했다.
태건은 태연하게 빈 책상으로 다가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 책상은 이번에도 문과 가장 가깝네요. 막내 서러워서 살겠나.”
그릉.
그렇게 마지막 자리를 채웠다.
그런 태건을 향해 오광휘 단장이 바로 물어왔다.
“과장님이 뭐라셔?”
“죽어라 날아다니랍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렇게 말할 거 같긴 해.”
슥슥.
이번엔 손끝으로 책상을 괜히 쓸며 수긍했다.
그때 맞은편에 자리한 이지성이 태건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위에서 까라는데 까야죠.”
“네 성격에? 그 말을 믿으라고?”
구우우.
이지성은 믿지 못하겠단 뉘앙스와 함께 두 눈이 대번에 가늘어졌다.
이지성 옆에 자리한 고수현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나도 네가 순순하게 대답하지 않았다에 한 표.”
“사실 나도 아닐 거 같아.”
태건의 옆자리에 앉은 유중헌까지 믿지 않았다.
“누구보다 라텔다운 강태건이라면 절대 그럴리 없지, 암 그렇고말고.”
황대산까지 단정 지어 버렸다.
태건은 한결같은 단원들 반응에 황당했다.
“전 도대체 어떤 이미지인 겁니까.”
“…….”
다들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스스로 잘 알지 않냐고 되묻는 시선들이었다.
할 말을 잃은 태건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오광휘 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끄덕.
가볍게 사인을 줬다.
오광휘 단장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가볍게 책상을 두드렸다.
탕.
“주목.”
“뭘 또 딱딱하게 그러십니까.”
고수현이 가볍게 넘어가려 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고수현, 밥상 차려주니까 니가 뭐라도 되는 거 같아?”
“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진수성찬 차려준 의미를 몰라?”
“기대가 크다는 걸 겁니다.”
고수현은 쌜쭉한 얼굴로 답했다.
오광휘 단장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걸 아는 놈이 언제까지 칠렐레 팔렐레 할 거야.”
“크흠. 죄송합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줄 꽉 잡아라. 앙!”
으르렁.
오광휘 단장이 모두를 향해 대놓고 이를 드러내 보였다.
그럴 때면 그의 별명이 너무도 생생하게 와 닿았다.
스스슥.
가볍던 분위기가 서서히 무겁게 변해갔다.
“…….”
단원들도 더는 들떠 있을 때가 아님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슬쩍 오광휘 단장의 눈치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태건은 이렇게 딱딱한 분위기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넌지시 말했다.
“이렇게 심각할 거까진 없잖습니까.”
“…….”
“단장님 말씀은 이게 다 국민들 세금이니까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잔 겁니다.”
그렇게 슬쩍 경직된 분위기를 어루만졌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은 뚱한 얼굴로 반박했다.
“아닌데, 진짜 뭐라고 한 건데?”
“단장님.”
“알았다니까. 완전 지가 실세야. 내가 바지 단장도 아니고 말이야.”
오광휘 단장이 뚱한 얼굴로 불만을 흘렸다.
하지만 말투는 상당히 짓궂고 가벼웠다.
그 상반된 모습 탓인지 다들 싱겁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