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두 사람의 티격태격 덕분에 딱딱한 분위기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변화했다.
서로에게 집중하기 좋은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태건이 이런 분위기를 유도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건 오광휘 단장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입을 열었다.
“각오를 백날 말해 뭐하냐. 우리끼리 파이팅도 들을 사람이 없으면 소음공해인데 말이야.”
“…….”
“그런 의미에서 ‘그걸’ 할 시간이다. 알지?”
“……네.”
단원들이 멈칫하며 답했다.
쉬는 기간 문자로 통보한 걸 말한다는 걸 단박에 눈치챈 거였다.
그 후 오광휘 단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이제부터 각자의 시간이었다.
태건은 곧 책상 서랍 중 맨 위에 칸을 열었다.
드륵.
그 안에는 소방청에서 발간한 다이어리와 각종 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긴 너희 자리가 아니지.”
척척.
모두 꺼낸 태건은 두 번째 칸으로 옮겼다.
그러자 첫 번째 칸은 텅텅 비어졌다.
그 사이 태건은 품속에서 하얀 편지봉투를 꺼냈다.
사락, 사락.
조심스런 손길로 곱게 펼쳐 서랍 속에 내려놓았다.
편지 겉면에 반듯하게 적인 글씨가 있었다.
-유서.
말 그대로 자신이 죽었을 때를 가정해 남긴 편지였다.
“…….”
유서를 내려다보는 표정이 그윽했다.
이 속에 어젯밤 공들여 작성한 내용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다.
늘 감사한 부모님.
원수 같은 형.
깍쟁이 같은 여동생.
그 얼굴들이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그런 가족들을 향한 자신의 진심을 유서에 담았다.
태건은 유서 내용이 떠오르려하자 얼른 흩트려버렸다.
휙휙.
‘……에이, 됐어.’
창피하고 쑥스러운 탓이다.
그렇듯 유서 속엔 태건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말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원들 모두 태건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
숨이 막힐 정도의 침묵이 사무실에 가득했다.
이들이 이렇게 유서를 준비한 이유는 두말할 거 없었다.
내일을 알 수 없었다.
내일 해가 뜨는 걸 살아서 본단 보장이 없었다.
그런 위험한 현장만 찾아갈 자신들이었다.
그걸 위해 모인 ‘라텔’이었다.
* * *
시간이 흘러 늦은 오후가 됐다.
헬기 내부는 각종 출동용품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모두 헬기에 자리해 있었다.
위성 무전기에 손을 댄 오광휘 단장이 비장하게 말했다.
“이거 켜면 이제 라텔 가동이다. 알지?”
“네.”
“켜는 순간 최소 반년은 꼼짝 마라야. 그것도 역시 명심하고 있지?”
그가 재차 물어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단원들 중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저래서 언제 켜.”
“이지성, 몰래 말하려면 속으로 해라.”
“크흠.”
지적당한 이지성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오광휘 단장은 살짝 째려보다 이내 다시 모두를 향해 말했다.
“방해꾼이 끼었지만 어쨌든 이제부터…….”
“…….”
“라텔, 가동!”
탈칵.
동시에 무전기를 켰다.
이 세상 모든 화재와 재난이 사라질 때까지 꺼지지 않을 무전이었다.
곧 무전기에서 여러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청량리 센터입니다. 아까 실종건, 신고자와 연락이 됐답니다. 복귀하겠습니다.
-신영 센터에 알립니다. XX동 XX번지, 구급신고입니다. 구급대 출동하세요.
-잠실 센터, 생태화 공원에 부상자 발생 신고접수입니다. 구조대 출동바랍니다.
들려오는 무전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다.
보통 일반적인 소방차 무전기는 소속 소방서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라텔의 위성 무전기는 좀 달랐다.
서울소방본부 종합방재센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서울시 내에서 119로 들어오는 모든 신고를 각 지역 소방서나 119안전센터로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하루 평균 신고 건수 6000건.
그 많은 신고들 속엔 응급이나 위급을 요하는 상황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무전이 들려올 때마다 다들 멈칫멈칫했다.
“실종자 찾았다고? 휴. 다행이다.”
“구급 신고라는데요?”
“잠깐, 구조대도 보내 달래.”
“우리가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무전 내용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의욕이 충천해 있었다.
그중 조종간을 잡은 유중헌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단장, 시동 켜?”
다급한 마음에 튀어나온 반말일 터였다.
그러나 듣는 오광휘 단장은 울컥했다.
“짜샤. 뭐, 단장? 아주 맞먹어라.”
“그럴까?”
“뭐 새꺄? 너 내려. 내려 인마!”
터억.
오광휘 단장은 유중헌의 어깨를 잡아채며 흥분했다.
분명 과격한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고내용도 대형화재나 재난급 상황이 아니었다.
마음이 급해진 건 계속된 소방관 생활로 생겨난 본능 같은 습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순간 단원들이 가볍게 웃음 지었다.
“후후. 저 정도면 만담이지.”
“그러니까요. 단장님이나 중헌 선배나.”
“중헌 선배는 평소에도 저러면 얼마나 좋아.”
무전 내용에 바짝 올라가 있던 신경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때 또 무전들이 시작되려 했다.
띠딕!
귀를 기울이던 태건이 모두에게 따갑게 말했다.
“다들 조용!”
“…….”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귀를 쫑긋거리며 무전에 청각을 집중시켰다.
-송파 마천센터입니다. 구급출동 결과 가락시장까지 태워달란 내용이었습니다.
-강남 수서센터, 구조출동 결과. 수도관 파열로 인한 단수 문제였습니다.
-서초 방배센터입니다. 화재출동 결과, 경보기 오작동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소 힘 빠지는 내용들이었다.
어느새 다들 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도관 파열은 뭐야. 우리가 수도공사 업체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화재경보기 오작동은 양호하네요. 화재 소리만 나오면 심장이 벌렁거립니다.”
“구급 신고 중에 가끔 저런 분들이 있더라.”
자신들이 경험한 일들을 덧붙여 말하며 씁쓸함을 달랬다.
태건도 살짝 힘이 들어간 몸에 긴장을 내리며 말했다.
“그래도 뭔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119를 찾아주는 건 감사하죠.”
그 소리에 동감하는지 다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그렇지. 우리야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소방관들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럴 겁니다. 월급 받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이 흔치 않으니까요.”
마지막 말은 태건이 흘렸다.
가볍게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
일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을 황대산이 깼다.
“남자가 칼을 빼 들었는데 무라도 썰어야지 않겠습니까. 순찰이라도 한 번 돕시다.”
“대산 선배, 밥 먹고 출발하시죠.”
고수현이 덧붙여 말했다.
그때 태건이 바로 아이디어를 냈다.
“도시락 싸들고 하늘에서 먹는 건 어떻습니까?”
“그거 좋다. 그런 의미에서 네가 만들어 와.”
“단장님?”
“말 꺼낸 사람이 하는 거야. 안 그러냐?”
오광휘 단장이 목소리 높여 공론화 시켰다.
순간 모두 한목소리로 답했다.
“맞습니다!”
“칫.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태건은 툴툴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 * *
잠시 후.
라텔 헬기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노을 지는 서울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태건은 커다란 주먹밥을 유중헌까지 하나씩 나눠주며 말했다.
“헬기에서 먹는 첫 식사입니다.”
“기분 묘하네. 그래도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을 필두로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그냥 먹지 않았다.
척, 척.
쌍안경으로 사방을 관찰하며 주먹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얌얌, 주먹밥 맛있네.”
“이렇게 높은 데서 먹는 점심은 처음이야.”
“퍼스트클래스도 이런 경치는 아닐걸.”
“평화로워서 더 맛있는 거 같아.”
다들 나름의 감상을 말했다.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 정작 먹는 음식이 주먹밥이라니.
그게 아이러니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평화로움 속에 먹는 음식은 뭐든 특별하게 다가왔다.
투두두.
그렇게 헬기는 유유히 서울 상공을 순회했다.
라텔이 가동되고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출동 건수는 놀랍게도 ‘제로’였다.
절망적인 수치라고 비관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출동할 커다란 사건사고가 없었단 의미인 탓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아할 일도 아니었다.
“이거 기다리다 늙어 죽겠어.”
“이러려고 라텔을 만든 건 아닐 텐데.”
다들 표정들이 좋지 않았다.
순찰도, 대기도 하루 이틀이었다.
슬슬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는 모양이었다.
그게 참 이중적인 마음이었다.
자신들이 필요 없다면 좋은 건데, 한편으로는 일터를 잃을까 걱정했다.
그 복잡한 생각 속에 또 하루가 지나갔다.
태건은 그런 모두의 심정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죽상을 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소방관의 특성상 무언가 일이 생긴 후에야 움직이게 된다.
그걸 보안하고자 헬기 순찰이란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곧 태건은 한국의 계절적 특성을 떠올렸다.
이제 여름이 지나간다.
늦여름부터 매년 반복되는 악재들이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장마, 그리고 태풍.
매년 크고 작은 피해를 끼치는 자연재해였다.
이거다.
태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언제까지 기다릴 거야. 우리가 찾아가야지.”
그 말과 동시에 사무실 전화를 들었다.
한 시간 후.
태건은 사무용 프린터 앞에 서 있었다.
지잉지잉.
출력물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 출력물들은 복잡한 숫자 통계나 지도로 이뤄져 있었다.
지나가다 슬쩍 바라본 오광휘 단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까 기상청이 어쩌구 하더니, 거기서 받은 자료야?”
“네.”
“그런데 무슨 자료?”
“최근 20년 동안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이동경로, 그리고 각 지역별 강우량 분석 현황이요.”
태건의 말에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렸다.
“그게 왜 필요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흐음. 오호.”
턱을 쓸어내리는 오광휘 단장은 뭔가 눈치챈 뉘앙스를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