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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05)화 (104/320)

105화

예측한 고위험 지역에 도달하는 건 불과 1분여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아직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황대산이 힘찬 목소리로 그 상황을 알렸다.

“햇빛이 쨍쨍해서 모래알까지 반짝이는 게 시야 확보 죽이네!”

“선배도, 모래알이 여기까지 반짝이면 바윗덩어리 아닙니까!”

“수현아, 사내자식이 쪼잔하게 뭘 일일이 따지고 그러냐!”

투덕투덕.

황대산과 고수현의 입씨름이 들려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늘 보던 일상이었다.

“…….”

나머지 대원들이 조용히 쌍안경으로 순찰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A포인트를 넓게 둘러보던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A포인트는 역시 산악 지대네요.”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가 아늑하니 좋네. 안 그래?”

반대쪽을 살피던 오광휘 단장이 당연하단 듯 물었다.

태건의 대답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저렇게 계속 좋아야 할 텐데요.”

“뭐 발견한 거 있어?”

“저걸 좋게 말해서 간벌이라고 해야 하나, 들쥐 같은 것들이 파먹은 데가 좀 있습니다.”

“어디!”

휙.

오광휘 단장은 아예 곧장 쌍안경을 그쪽 방향으로 돌렸다.

역시나 울창한 숲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유중헌의 눈에도 보였는지 쓴 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어떤 잡놈들이 깔끔한 산중에 보기 싫게 땜빵을 만들어놨어!”

“내 말이. 대체 언제 저렇게 해놨는지 알 수가 있나.”

오광휘 단장이 못마땅한 듯 톡 쏘았다.  

태건도 이미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슥슥.

망원경 줌을 당겨 좀 더 확대된 시야로 살폈다.

쓰러진 나무들의 껍질이 벗겨진 정도, 밑둥의 메마름, 잡초의 성장 정도 등등.

주변 가득한 정보를 하나씩 파악했다.

어느 정도 가늠이 되자 입을 열었다.

“전염병은 아닌 거 같고, 올 봄에 자른 거 같습니다.”

“그게 어디로 보여?”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태건이 훗날을 기약하자 오광휘 단장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 그건 차차 강의 듣도록 하고, 문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우려된단 건데 말이야.”

“장마 전선의 직격타만 피한다면 어느 정도는 버틸 거 같습니다.”

“가능성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직격타를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당연히 오광휘 팀장의 짜증 난 목소리가 들렸다. 

“정답 고맙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젠장.”

오광휘 팀장이 연신 투덜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이미 신경을 돌린 태건이 지도를 노려봤다.   

나름 판단은 섰지만 솔직히 별 문제가 없길 바랐다. 

그때 옆에서 조용하던 이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쁘신 중에 실례가 많습니다. 저는…….”

뜬금없는 자기소개의 시작이었다.

다들 의아함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휙휙.

“뭐야?”

“왜 저래?”

그런 모두가 눈을 끔뻑거렸다.

이지성이 누군가와 전화하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의 얼굴이 순간 시뻘게졌다.

푸르르.

황당함과 짜증을 꾹꾹 눌러 으르렁거렸다.

“쟤, 지금 어따 전화질이냐?”

“글쎄요.”

“저 자식은 왜 맨날 혼자 노는 거야!”

울컥.

오광휘 단장이 아예 뒤로 넘어오려 자세를 잡았다.

바라보던 태건이 얼른 만류했다.

“단장님, 급한 전화인가 보죠.”

“급하긴 쥐뿔. 야, 이지성, 내려. 내려서 전화해!”

“지금 고도가 몇인데 내리라고 하십니까.”

태건은 흥분한 오광휘 단장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아, 좀.’

물론 내심으론 한 번씩 이러는 이지성이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였다.  

황대산, 유중헌, 고수현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그때 이지성이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내렸다.

이어서 자신을 향한 시선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왜 그러세요?”

“뭐? 저, 저걸 그냥. 어으윽!”

턱!

오광휘 단장은 울컥함이 과했는지 뒷목까지 잡았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황대산이 얼른 나섰다.

“이지성이, 아무리 급한 전화라도 순찰 중인데 양해를 구했어야지.”

“아, 그거요. 전 또 뭐라고요.”

“그런 불성실한 태도, 썩 옳지 않아.” 

몇 마디 나눈 황대산도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대번에 싸늘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태건이 얼른 나서서 모두를 중재했다.

“전화 한 통에 이렇게 예민해지는 건 좀 이상하잖습니까.”

“…….”

다들 말없이 이지성만 노려봤다.

결국 태건은 이지성을 쿡쿡 찔러 눈치 주며 운을 뗐다.

‘선배, 적당히 급한 일인 척 둘러칩시다.’

쿡쿡.

“크흠. 그래서 무슨 전화였습니까?”

“뭣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리고 그만 좀 찔러.”

이지성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미지근한 대답이었다.

‘아, 이 선배가 진짜.’

분위기 파악 잘 하면서 꼭 평행선을 탔다.

태건은 한 번 더 중재에 나섰다.

찡긋찡긋.

“중요한 확인이었던 모양이네요.”

“눈에 뭐 들어갔어?”

“아, 진짜.”

태건도 결국 울컥했다.

이지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휴대폰을 가볍게 흔들며 덤덤하게 말했다.

“산림청에 문의전화 한 게 이렇게 수선 떨 일인지 몰랐네.”

그 소리에 다들 멈칫했다.

“산림청?”

“그래서 뭐래?”

다들 태세 전환이 빨랐다.

이지성은 뜨거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답했다.

“사유지랍니다. 개발 중이고 요주의 지역이라 종종 주인한테 계도는 했는데 지키는 건 그쪽 마음이라네요.”

그 대답에 다들 맥이 쭉 빠지는 거 같았다.

“에휴. 쌔빠지게 돌아다니면 뭐하냐.”

“위험하다고 백날 떠들어도 듣지 않으면 입만 아프지요.”

“누가 개발하지 말래. 좀 안전하게 하자는 거잖습니까. 안 그래요?”

한 마디씩 투덜거리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자연스레 이지성에게 한 소리씩 했다.

“오해한 건 미안한데 말이야.”

“빨리 좀 말하지 그랬냐.”

“괜히 우리만 민망해지게.”

스윽.

선배들은 머쓱한지 시선을 돌렸다.

태건은 그들이 아니라 이지성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일부러 꼬아서 말했어.’

태건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확신을 가졌다.

그 전에는 단지 성격 탓이라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지성은 나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간단한 화법의 차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미움을 자청한다고, 왜?’

그 이유가 당최 감이 오지 않았다. 

이후로는 뭔지 모를 어색함이 헬기 내부를 채웠다.

그렇게 해프닝은 얼렁뚱땅 지나갔다.

그와 별개로 순찰은 계속 됐다. 

슥슥.

개발지를 중심으로 둘러보던 태건의 쌍안경에 곧 전원주택 단지가 비쳤다.

“저긴 새로 만들었나, 정돈이 아주 잘 되어 있네.”

“어디, 저기?”

풀썩.

황대산이 바짝 옆으로 다가와 같은 방향으로 쌍안경을 들었다.

태건은 위치를 알려주며 공유했다.

“저기 산 아래 전원주택 단지요.”

“음……. 어어. 찾았어. 저기 진짜 뉴타운인가 보네.”

“전체적으로 깔끔하네요.”

태건이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황대산은 표정에 불편함을 드리웠다.

“뭐, 저렇게 삐딱하게 지었어. 오와 열을 맞춰야 할 거 아니야!”

“사생활 때문이겠죠.”

“거의 30여 가구 정도 되는 거 같은데, 배수도 신경 좀 쓴 거 같아. 별 문제 없네.”

황대산이 눈으로 살핀 걸 나름 꼼꼼하게 말했다.

그런 두 사람의 귀에 이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산T타운이라네요.”

“선배, 저기를 아세……. 아.”

휙!

놀라 돌아본 태건이 곧 홀로 납득했다.

이지성은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검색하던 그가 고개를 들어 태건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왜, 문제 있어?”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건은 어색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뭐랄까.

스마트한데 얄밉다고 할까.

참 마음 속이 정말 궁금한 선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유중헌에게 지시했다.

“A지역은 이쯤 보고, B지역으로 이동하자!”

“갑시다!”

투두두.

헬기는 바로 방향을 돌려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

태건의 시선에는 금산T타운이 계속 남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전원주택 단지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난개발지역이랑 그렇게 멀지 않아.’ 

마음속에 작은 주름이 지는 느낌이다. 

다음 날부터 하루 두 차례씩 헬기 순찰을 실시했다.

고위험 지역만 둘러보지 않았다.

“기왕 날아오른 거 쭉 둘러보자!”

“에압!”

투다다.

금산군 전역을 순찰 대상에 모두 포함시켰다.

*  *  *

그렇게 3일이 지난 후였다.

쏴아악!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슬비였지만 점점 빗발이 굵어졌다. 

그때, 누군가의 휴대폰에서 뉴스가 재생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

긴급출동을 대비해 헬기 안에서 대기 중인 모두가 귀만 쫑긋거렸다.

“…….”

그 외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가벼운 대화조차 없었다.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단 건 언제 출동할지 모른단 말과 같았다.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 차고 넘쳤다.

이번엔 물과의 전쟁이 펼쳐질 터였다.

쏴아.

장맛비는 상상 외로 많이 쏟아졌다.

대낮인데도 주변이 어둑어둑할 정도로 검은 구름이 가득했다. 덕분에 산의 능선에 걸린 물안개가 뿌옇게 시야를 흐리기도 했다.

지상에 착륙 중인 헬기 속은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고요하기만 했다.

금산소방서도 이미 비상체제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라텔 단원들에게도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무전기 볼륨은 이미 최대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런 탓에 적막함을 유일하게 무전 소리가 흩트리고 있었다.

현재 위치한 지역에 따라 충남 119종합상황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상황실입니다. 금산 군북면 지역대, 침수 신고입니다. 출동바랍니다.

-상황실, 금산 남이면 지역대 통보, 하수구 역류 신고.

-상황실에서 알립니다. 금산 금성면 지역대, 빗길 자동차 추돌사고 발생. 반복합니다…….

대체로 조용하던 무전 소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오광휘 단장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그러네요.”

“젠장. 그냥 넘어가길 바랐는데…….”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다들 무거운 얼굴로 변한 후였다.  

여기까지 와서 며칠 대기한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수고로움이야 생각지도 않았다.

빠르게 늘어가는 각종 사건 사고들, 그로 인해 누군가 아픔을 겪을 거란 사실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치직!

-상황실입니다. 라텔, 라텔 응답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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