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자신들을 찾는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
띵!
흐트러졌던 모두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
동시에 오광휘 단장이 얼른 송수신기를 낚아챘다.
팟!
곧장 라텔의 단장다운 진중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여기는 라텔, 상황실, 무슨 일입니까?”
-치직. 제원면 소재 제원섬에서 다리 위에서 한 명이 불어난 물에 고립됐다고 신고.
“고립 신고 확인.”
-치직. 즉시 출동 바랍니다!
“라텔 출동합니다.”
휙휙.
오광휘 단장이 대답하며 머리 위로 손을 휘둘렀다.
그 신호와 동시였다.
사삭.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주요 포인트 외의 지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이다.
그 사이 유중헌은 헬기에 시동을 걸었다.
투다, 투다다다!
이륙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태건이 먼저 허공에 손짓하며 소리쳤다.
휙!
“제원섬, 현 위치에서 동북 방향!”
뒤따라 고수현이 외쳤다.
“직선거리로 대략 10킬로미터 거리!”
속속 검색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내 헬기의 프로펠러가 거칠게 회전했다.
“빨리 뜨자!”
오광휘 단장이 재촉했다.
그때 유중헌이 뭔가 확인하더니 구겨진 얼굴로 오광휘 단장에게 보고했다.
“칫. 기상 악화로 헬기 운행 제한이랍니다.”
“뭐라고?”
“상부에서 절대 이륙하지 말랍니다.”
유중헌의 말에 오광휘 단장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어 물었다.
“중헌아, 헬기 추락해도 우린 사냐?”
“말로는 뭘 못하겠습니까, 살릴 수 있습니다.”
엉뚱한 대답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던 오광휘 단장이 얼른 시선을 돌렸다.
“태건아.”
“네.”
“너 미국에서 헬기 몇 대 해 먹었냐?”
“완파 한 대하고...... 반파 2대니 총 3대네요.”
너무도 담담한 태건 대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고가인 구조헬기 3대.
한국이라면 난리가 나도 진즉에 났다.
가만히 듣던 오광휘 단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안 잘렸어?”
“사람은 살리니 그냥 넘어가던데요.”
그 말에 희색이 돈 오광휘 단장이 다시 물었다.
“사람만 살리면 돼?”
“그럼요.”
“좋아. 헬기 추락하면 몽땅 미국 가자.”
“......”
이번에는 태건이 침묵하자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구겼다.
“왜, 안돼?”
“뭐, 이 팀원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태건의 시원한 대답에 오광휘 단장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오광휘 단장은 곧장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라텔, 사람 목숨보다 귀한 건 없다. 고로 우리는 이륙합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수신감도 불량. 통신 끝.”
가볍게 무전기를 끈 오광휘 단장이 씩 웃었다.
“중헌아, 가자. 이륙 금지라, 웃기고 있네.”
“하하. 역시 그렇게 나와 주셔야지. 자, 그럼 떠봅시다!”
투다다다!
본격적으로 엔진을 돌린 헬기가 악천후를 뚫고 떠올랐다.
순간 태건이 씩 웃으며 오광휘 단장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멋집니다.”
“혹시 정말 추락하는 거 아냐?”
걱정스런 오광휘 단장의 말에 태건이 짤막하게 되물었다.
“경험자로 말씀드릴까요?”
“그래.”
오광휘 단장이 바짝 붙자 태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확률 좀 됩니다.”
“야, 인마.”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팍 구겼으나, 태건은 이미 다른 곳에 시선이 가 있었다.
순간 오광휘 단장이 주춤거리며 변명에 나섰다.
“이거 추락하면 그 시간부로 라텔 해산이야.”
“아차 하면 국립묘지가 먼저일 걸요.”
“.......”
태건의 말에 오광휘 단장이 침묵했다.
다른 단원들도 침묵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개죽음은 당하기 싫었다.
헬기는 어느새 금강 위를 날고 있었다.
콰과과!
아래쪽을 내려다본 고수현이 목소리 높여 외쳤다.
“물이 엄청나게 불었습니다!”
“죄다 흙탕물이야. 유속도 무척 빨라!”
황대산이 심각한 상황을 덧붙여 알렸다.
그 사이 태건은 준비한 자료를 보며 씁쓸해했다.
“여긴 그리 위험 지역 후보가 아닌데…….”
예측과 전혀 무관한 지역이었다.
그간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실망스런 분위기였다.
그에 대해 오광휘 단장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어디다 비 쏟을 진 하늘만 아는 거지, 사람이 어떻게 알아.”
“요구조자들부터 구조하고 다음에 생각해. 그래도 늦지 않아.”
동시에 선배들이 훈훈한 말들을 건네왔다.
그런데 그건 위로하려고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모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다.
어설픈 위로 따위는 라텔의 그 누구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 침묵을 휴대폰 알림소리가 깨뜨렸다.
띠링, 띠링.
모두 일시에 울렸다.
확인하니 재난 문자였다.
짤막하게 전해진 정보에 모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금산군 금강 일대 홍수경보, 관측 이래 최고 강우량 돌파. 돌풍 주의보 발령.
“…….”
헬기 속은 연속적으로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적막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갑자기 헬기가 요통 쳤다.
덜컹!
“크윽!”
유중헌의 거친 신음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나무랐다.
“지금 놀러 가냐. 운전 똑바로 안 해!”
“이런, 끄으응. 돌풍!”
“뭐?”
오광휘 단장이 눈을 크게 뜬 바로 그때였다.
콰과과과!
헬기의 진동이 더욱 거세졌다.
“젠장. 포인트까지 거의 다 왔는데!”
유중헌의 목소리가 힘겹게 들려왔다.
투두두!
검은 구름 사이로 특수소방단 헬기가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짙은 안개와 비를 뚫고 날아가는 장면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내부 사정은 전혀 달랐다.
투다다다!
“엔진 빌어먹을, 이렇게 비 뿌리는데 뭐가 열 받는단 거야!”
“야야, 중헌아. 헬기 계속 운행해도 되냐?”
“날씨 보고 말합시다. 이 날씨에 헬기가 뜨는 게 정상인 줄 아십니까?”
유중헌 목소리에 신경질이 가득했다.
충분히 그럴 상황이라 오광휘 단장은 십분 이해했다.
“차라리 비정상이라, 아흐흐! 차라리 다행이다. 빌어 처먹을!”
“말 좀 시키지 마요. 다 떨어져 뒤지고 싶지 않으면!”
유중헌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날카로웠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은 악천후 상황이었다.
최대한 지상에서 높이 떠오른 상태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복잡한 기류가 문제였다.
휘이잉, 휘잉!
거기에 헬기 로터에도 무리가 가는지 엔진음도 불안정했다.
그때 유중헌의 경고가 들렸다.
“난기류에 돌풍! 많이 흔들릴 겁니다. 뭔가 잡으슈.”
뒤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이 그대로 전달됐다.
덜커덩, 덜덜덜.
기체가 흔들리자 다들 정신 바짝 차리며 외쳤다.
“크윽, 뭐야!”
“아무거나 잡아!”
터더덩.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으려 다급히 손을 뻗어 뭐든 붙들었다.
태건의 몸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미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아.’
아무리 돌풍주의보가 발령됐다고 해도 이렇게 변칙적일 순 없었다.
이상함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휙.
재빨리 조종석 너머 정면을 바라봤다.
주변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고 모두에게 알렸다.
“물안개 등장!”
“이렇게 쏟아지는데 뭔 물안개!”
“양쪽에 산이 있습니다. 거기서 몰려오는 불규칙한 돌풍입니다, 크윽!”
터더덩.
더 과격해지는 흔들림에 태건도 비명을 자아냈다.
그 와중에도 복잡한 기류가 사방에서 몰아쳤다.
또다시 헬기 로터에도 무리가 가는지 엔진음이 불안정했다.
투다, 다다다.
내부는 흔들리다 못해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얼마나 진동이 심하면 꽉 묶어둔 출동 장비들까지 들썩거렸다.
투둥, 덜그럭!
“어어, 저기 출동장비 쏠린다. 막아!”
“크으! 끈 단단히 묶어놓으라고 했잖아요!”
“묶었는데도 저러는 걸 어쩌라고!”
“잔소리 집어치우고 일단 붙들어, 에잇!”
철썩.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조종간을 잡은 유중헌의 신경이 가장 날카로웠다.
“싹 입 다물어. 다 뒤지기 싫으면 나 자극하지 마!”
“…….”
다들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고 아픔까지 꾹 삼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악천후인 데다가 짙은 물안개로 시야까지 방해를 받았다.
그 물안개가 가장 큰 변수였다.
줄곧 날아가던 헬기 앞에 갑자기 산이 떡하니 나타났다.
투둥!
하얗게 질린 유중헌은 재빨리 조종간을 당기며 소리쳤다.
“산 등장, 급상승!”
“왜, 어……. 으아아악!”
우당탕탕!
기껏 붙든 장비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유중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차하면 황천길인데 장비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꽈아악!
조종간을 죽어라 잡아당겼다.
그 사이에도 산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태건이 아른거리는 느낌에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 밖에 펼쳐진 나무 모습에 기겁했다.
“헉!”
그만큼 고도가 낮아져 있었다.
같이 돌아본 모두가 질색했다.
“뭔데, 으헥!”
“얼른 올려. 얼른!”
난리 아니, 여기저기서 비명에 가까운 재촉이 쏟아졌다.
유중헌은 의외로 침착했다.
“자자, 올라갑니다.”
꽈아악.
“야이, 무책임한 놈아. 멈춰, 멈춰!”
“당장 멈추란 게 말이 되냐. 이 무식한 단장아!”
“이 자식이, 아주 친구 먹어라!”
이 와중에도 두 사람의 날선 대화가 오갔다.
급상승의 여파가 안에선 강한 충격으로 느껴졌다.
단원들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위잉.
헬기는 미친 듯이 고도를 높였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급상승이다.
단원들 모두 강한 중력의 압박에 인상이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끄응.”
유중헌의 신음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게 더 공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