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곧 유중헌이 다시 앞을 보고 앉았다.
이미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꽈악!
조종간을 옹골차게 말아 쥐며 말했다.
“강하 포인트까지 10초 전!”
터더더!
유중헌은 떨리는 기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향을 돌렸다.
그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사라져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짙은 불안감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태건에게 말했다.
“너 미국에서 헬기 해먹었다는 게 뻥 아니구나.”
“그랬더니 ‘크레이지 건’으로 부르던데요. 단장님도 들으셨잖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여기서 나만 정상이네.”
오광휘 단장은 이 순간에도 골머리가 아팠다.
다들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모양이다.
“크레이지 건은 또 뭐야?”
“지금 그 썰 풀 시간 없어 보이는데요.”
철컥.
태건이 다시 레펠 장비에 로프를 걸며 단호하게 끊었다.
모두 그 말에 수긍했다.
“그렇지. 지금은 때가 아니지.”
“그건 우리끼리 술 안줏거리로 남겨두고!”
“준비합시다.”
휘릭, 철컥.
로프를 더 늘어뜨리고 묵직한 장비 가방을 결속하기 시작했다.
밖은 여전히 악천후에 돌풍으로 살벌했다.
그러나 헬기 속은 차분함으로 가득했다.
풰이잉!
어떤 돌풍이 몰아쳐 와도 덤덤하기만 했다.
그 사이 헬기는 다시 다리에 접근했다.
푸덜덜덜.
변칙적인 돌풍에 헬기가 상하좌우로 요동쳤다.
조종하는 유중헌의 손에 그 진동이 모두 전달되고 있었다.
“젠장. 바람이 너무 제멋대로야!”
헬기를 제어하는 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의 눈을 대신해 모두가 사방에서 소리 높여 상황을 알렸다.
“다리 접근!”
“이지성, 할아버지 상태는!”
오광휘 단장이 소리쳐 물었다.
쌍안경으로 주시하고 있던 이지성이 반사적으로 보고했다.
“지쳤습니다. 금방 떠내려갈지도 모릅니다.”
“저 유속에서 그나마 버티는 게 대단한 거야!”
“왜 저기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이지성이 한숨부터 몰아쉬었다.
물론 다들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태건이 이지성에게 말했다.
“그럼 내려가서 여쭤보죠.”
“정답.“
이지성이 시크하게 답했다.
그 사이 헬기는 어느새 다리의 끝부분에 다다랐다.
“호버링 돌입, 으자자자!”
콰과과과.
우뚝 멈춘 헬기의 엔진소리가 과격하게 변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다 보니 부작용이 헬기에 가중되고 있었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헬기의 진동이 온몸에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위치 좋고!”
“로프 다리에 닿았습니다.”
“끄으으으, 잇 싸람들아! 헬, 헬기 넘어가기 전에 내려가.”
유중헌의 힘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푸들푸들.
조종간을 붙든 두 손이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순전히 배짱으로 버티는 중이다.
시간이 없다.
아니, 항상 부족했다.
이제 와서 특별히 강조할 필요조차 없었다.
스륵.
헬기 양쪽 문은 진즉 열린 상태였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터더덕!
한 발씩 랜딩 스키드(헬기다리)에 얹었다.
그리고 일제히 오광휘 단장을 바라봤다.
태건이 대표로 불렀다.
“단장님.”
오광휘 단장은 모두의 시선을 느낀 순간 반사적으로 말했다.
“이번엔 물이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고고!”
“라텔, 출동!”
촤자작!
외침과 동시에 일제히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모두 로프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촤아악.
도착지는 다리 위.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주변이었다.
태건은 레펠 중에도 눈을 부릅뜨고 주시하고 있었다.
다리 위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나뭇잎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바람도 강해서 허공에서 이리저리 휘날리는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순간이다.
균형을 잃으면 반대쪽 난간까지 눈 깜짝할 사이 밀려날 터였다.
하지만.
‘어쩌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눈엔 난간을 붙들고 온 힘을 다해 버티는 할아버지만 가득했다.
곧 태건이 다리 위에 당도했다.
촤악!
“착지……. 윽!”
보고하던 태건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비틀.
예상대로 강한 물살이 균형을 무너뜨린 거였다.
직접 겪어보니 더 빠르고 강력한 물살이었다.
터덕!
태건은 재빨리 난간을 붙들었다.
무거운 물살이 금방이라도 끌고 갈 기세였기에 한마디로 버티기 만만치 않았다.
‘잠깐만, 이걸 버티고 있었다고?’
얼핏 봐도 노인은 흠뻑 젖은 데다 체구가 작은 편이었다.
게다가 아이까지 업고 있다.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단 의미다.
아무리 그래도.
태건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 사이 다른 단원들도 도착했다.
철썩, 철썩!
“으윽. 물살 왜 이래!”
“다들 중심 잡아. 여차하면 하류에서 다시 만날지도 몰라!”
오광휘 단장이 모두의 경각심을 더욱 끌어올렸다.
강한 체력을 가진 라텔 단원들답게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버텼다.
사실 계획은 간단했다.
할아버지를 헬기 로프를 이용해 안전하게 옮기는 거였다.
“레펠 장비부터 준비해.”
“걸면 바로 뜨는 거야!”
다들 서둘러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헬멧 속에서 유중헌의 따가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띠릭, 젠장. 다들 로프 풀어. 빨리!
휙!
모두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봤다.
헬기가……. 헬기 동체가 난리가 났다.
푸더덜, 덜덜.
누가 봐도 추락이 예상될 정도로 불안했다.
문제는 현재 헬기의 위치였다.
다리 위에 떠 있었다.
추락하면 다리를 피하더라도 영향권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건 요구조자들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 자신들도 다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태건이 먼저 로프를 분리하며 소리쳤다.
“일단 분리!”
“에라이!”
“다 왔는데!”
착, 착.
아쉬워하며 일단 로프를 떼어냈다.
모두 결속을 푼 걸 확인한 오광휘 단장이 외쳤다.
“유중헌이, 날아가 버려!”
-띠릭. 다시 오겠습니다. 어떻게든 올게요!
파다다.
헬기가 색다른 로터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그 사이 태건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헬기도 버티지 못하는 돌풍, 거기에 크고 작은 부유목까지 득실거렸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었다.
더 현실을 파악할 것도 없었다.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태건이 외치자 선배들도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위치상 섬이 가깝습니다!”
“움직여!”
촤자작!
모두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며 할아버지에게 접근했다.
이젠 안전장치도 없다.
다들 극도로 긴장한 채 힘겹게 한 걸음씩 옮겼다.
그들 중 가장 먼저 태건이 도착했다.
“으으으.”
할아버지에겐 난간을 붙든 힘이 전부로 보였다.
그나마 간당간당해 보였다.
난간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 금방이라도 놓칠 듯한 모습이다.
사실 말 한마디 여유롭게 건넬 체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턱.
태건은 곧바로 할아버지를 부여잡으며 외쳤다.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어서 섬 쪽으로 이끌었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의 신음 소리와 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으으. 벼, 병원……. 가야…….”
꽉!
난간을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태건의 두 눈이 바로 번뜩였다.
간절한 그 심정이 마음 가득 와 닿은 탓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아예 불가능한 부탁이었다.
마침 뒤따라 움직인 단원들이 다가왔다.
그들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기에 주춤거렸다.
“태건아!”
“돌파합니다!”
태건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지체할수록 위험만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거부해도 강제라도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태건이 막 결심한 순간이었다.
헬멧에서 유중헌의 목소리가 다급히 들려왔다.
“전방 아니, 상류에 부유목 출현!”
부유목.
떠다니는 나무?
휙!
모두가 일제히 상류 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눈이 확 떠졌다.
콰콰콰.
물살의 소리부터 달랐다.
저 멀리서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뽑혀 떠내려오고 있었다.
어른이 한아름에 휘감지도 못할 상당한 두께였다.
사람과 부딪치면 뼈도 못 추릴 덩치였다.
쐐애액.
게다가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태건의 심장이 급격히 뛰었다.
자신들도 문제지만 할아버지와 아이가 위험했다.
이젠 시간 싸움이었다.
“에잇!”
처억!
태건의 두 손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 손길은 할아버지의 등에 업힌 아이에게 뻗어갔다.
그리고 곧 태건이 아이를 안아들었다.
“아이는 제가 데려갑니다!”
파바박!
그대로 몸을 돌려 섬쪽으로 움직였다.
혼자서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까지 안았으니 그 움직임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태건은 인상 푹푹 쓰며 물살을 가로질러갔다.
촤아, 촤아악!
“흐읍, 흐으읍!”
한 걸음을 걸으면, 반걸음이 뒤로 밀린다.
조금만 방심하면 물살에 쭉쭉 떠밀려갔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멈춰서도 절대 안 된다.
같은 시각.
태건의 돌발 행동에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했다.
“이, 이게……. 무슨 경우…….”
“경우가 뉘 집 애 이름인지 모르겠고요, 일단 가요. 어서요!.”
터억!
오광휘 단장이 할아버지를 당겼다.
고수현이 반대쪽에서 재빨리 부축했다.
“빨리, 더더더!”
걸음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다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