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앞서서 물살을 가르는 황대산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10여 미터, 서둘러!”
“부유목 육안으로 확인,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일행의 뒤를 맡은 이지성의 외침도 강렬했다.
그 두 단원이 모두의 장비 가방을 도맡아 옮기고 있었다.
태건부터 이지성까지.
일렬로 난간을 붙든 모두가 온 힘을 다해 물살에 저항하며 움직였다.
“끄으응!”
“아으윽!”
앓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솔직히 포기하면 편하단 말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만큼 거센 물살이다.
강한 체력으로 단련된 태건마저도 힘겨웠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요구조자를 위험하게 할 수 없다.
물론 자신들의 생명도 마찬가지다.
그 무엇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을 거스르는 힘겨운 한걸음, 한 걸음을 필사적으로 내뻗었다.
“서둘러. 나무가 곧 와.”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가 절절했다.
태건은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하여 거센 물살을 거슬렀다.
잠시 후.
모두가 다리 밖으로 나왔다.
“허어억!”
터덕.
태건은 일순간 다리가 풀려 비틀거렸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그중 가장 심각한 건 할아버지였다.
거의 쓰러지듯 바닥에 몸을 낮췄다.
“허으으, 으으.”
얼마나 지쳤는지가 한눈에 읽혔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앙!
부유목이 다리를 강타했다.
푸와아아!
거친 물보라가 다리 밖까지 몰려왔다.
“……헉!”
모두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고작 몇 초 차이였다.
조금만 지체했어도 누군가는 필시 위험해졌을 터였다.
등골이 서늘해진 태건이 고개부터 저었다.
“저 다리는 안 돼.”
왼쪽 다리를 얼른 외면했다.
사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떠내려갈 듯한 상태였다.
이쪽으로 건널 생각은 머리에서 깡그리 지워버렸다.
태건이 목소리 높여 물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다행입니다. 끙차.”
살며시 묵직한 아이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렸다.
촤아악.
쏟아지는 빗줄기는 여전했다.
그런 태건의 귀에 빗소리를 뚫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방관 아저씨에요?”
“…….”
휙!
태건은 얼른 고개를 내려봤다.
그러자 품에 안은 아이가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눈이 맑은 아이였다.
태건은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태연하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 아저씨는 강태건이야.”
“안녕하세요. 저는 5살이고 홍지영이에요.”
“지영이구나. 무서웠지?”
태건이 머리를 쓸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홍지영은 티끌만큼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랑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으음, 그래.”
태건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어정쩡하게 답했다.
‘이렇게 의지하는 애를…….’
태건은 그 와중에도 버텼던 할아버지가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홍지영이 덤덤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요. 갑자기 물이 막 올라왔어요.”
“어어, 그랬어?”
“네. 그래서 할아버지가 안전해질 때까지 절대 놓지 말라고 했어요. 할아버지가 다리 건너갈 때까지요.”
“그래서 꼼짝 않고 조용히 있었구나. 잘했어. 훌륭해.”
태건은 기특하단 투로 칭찬했다.
또한 단편적인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물이 불어났다면 할아버지도 손쓸 방도가 없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빠져나올 기회가 한 번은 있었을지 모른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걸까?
‘후, 모르겠다.’
모두가 무사한 걸로 일단 복잡한 머릿속을 가라앉혔다.
이내 태건은 자연스럽게 홍지영을 내렸다.
“자, 이제 내려줘야지.”
처억.
허리 숙여 홍지영의 두 다리를 질퍽한 땅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손을 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풀썩.
홍지영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덥썩.
동시에 태건이 거의 반사적으로 홍지영을 잡았다.
덕분에 쓰러지는 건 면했지만 물기 가득한 땅에 엉덩이가 닿긴 했다.
그럼 그렇지.
얼마나 긴장했을까.
아이라 그걸 숨긴 모양이었다.
태건은 얼른 자세를 낮춰 물었다.
“괜찮니?”
“헤헤, 또 어지러웠어요.”
해맑게 웃는 얼굴과 그렇지 못한 말의 조합이었다.
태건의 머릿속이 순간 띵하고 울렸다.
“몸이 안 좋니? 아차.”
반사적으로 질문해 놓고 움찔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홍지영의 반응이었다.
전혀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먼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요. 여기가 고장 났대요.”
툭.
홍지영이 무심히 짚은 건 등허리였다.
척추의 문제일까?
그러나 곧 태건은 홍지영에게서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얼굴이 상당히 부어 있었다.
이제와 일깨운 거였지만 체온도 꽤 높은 편이었다.
‘그럼 저 위치는…….’
척추가 아니다.
신장이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게……. 그럼?’
예상외로 흘러가는 상황에 태건의 두 눈이 흔들렸다.
그때 홍지영이 두 손으로 땅을 딛고 일어나려 했다.
“끙, 흐읍.”
바들바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거칠게 흔들렸다.
아차 한 태건이 얼른 손을 뻗어 도움을 줬다.
“지영아. 잡아.”
“고맙습니다. 휴우.”
“왜 일어났어?”
“엉덩이가 축축하고 차가워서요.”
너무도 명쾌한 대답에 태건이 오히려 어색해졌다.
“그러네. 아저씨가 잘못했네.”
“아니에요. 그런데 병원 갈 시간인데……. 앗, 할아버지다. 할아버지!”
슥슥.
홍지영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 말대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으쌰!”
얼른 홍지영부터 안아들었다.
바들바들.
안는 손길부터 힘겨워했다.
그런데도 축축한 소매로 얼굴 가득한 빗물을 쓸어주며 안타까워했다.
“쯧쯧, 홀딱 젖어서 어쩌누.”
“괜찮아. 그런데 할아버지, 오늘은 병원 안 가도 돼?”
“가야지. 가야 하고말고.”
할아버지가 똑 부러지게 답했다.
그 소리에 홍지영의 얼굴이 살짝 우울해졌다.
“안 가는 줄 알고 좋았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 까먹었누?”
“윙윙이 안 하면 몸이 막 아프다고 했어. 나 아픈 거 싫어.”
푸욱.
홍지영은 할아버지 품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저었다.
태건은 그 말을 쉽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신장이 아프단 말과 연관 짓자 병명까지 짐작됐다.
만성신부전.
그럼 윙윙이는?
‘혈액투석.’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아이 시선에서 표현한다면 그럴 수 있었다.
흔들.
눈동자가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할아버지가 기를 쓰고 다리를 건너려 했던 이유가 이거였다.
“…….”
스윽.
태건의 시선이 할아버지에게로 향했다.
할아버지도 느낀 모양이다.
“흠.”
무거운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태건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투석이죠?”
“........”
“말씀해 주셔야 도울 수 있습니다.”
“휴, 오늘 꼭 가야하는데........”
할아버지의 깊은 푸념이 귓전을 때렸다.
태건은 그 말속에서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동시에 느꼈다.
촤아악.
“비라도 좀 그치지.”
괜히 쏟아지는 빗방울을 타박했다.
그때였다.
“쿨럭, 쿨럭.”
할아버지가 격하게 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홍지영의 눈썹이 축 쳐지며 걱정했다.
“할아버지 아파?”
“아니야. 괜찮아.”
“아프면 안 돼. 할아버지 아픈 거 싫어.”
“그럼.”
짧게 오간 대화 속에 서로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건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급해도 이대로 움직일 수 없다.
조금이라도 쉬면서 요구조자들이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특히 홍지영이 신장에 문제가 있다면 이 빗속에 움직이는 건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다.
우선 몸부터 녹이고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어디 쉴 만한 곳이.’
둘러보던 태건이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선배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벌써 행동에 들어가 있었다.
버려진 창고 문을 억지로 여는 중이었다.
“끄응.”
“에잇!”
“아자자!”
꽈직!
모두 힘을 더하자 부서지듯 문이 열렸다.
바로 돌아선 오광휘 단장이 오라는 손짓을 해왔다.
휙휙.
‘빨리 와.’
신호를 본 태건은 할아버지와 손녀를 바로 이끌었다.
“일단 비 좀 피하시죠.”
창고 내부는 확실히 비를 차단해줬다.
거기에 훈훈하기까지 했다.
화르륵.
캠핑용 가스화로의 위력이었다.
“아, 따뜻하다.”
홍지영은 수건을 두르고 두 손을 내밀어 불을 쬈다.
할아버지는 그 뒤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주변엔 단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건이 파악한 홍지영의 건강에 대해 간략히 전달한 상황이었다.
다들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래도 체력이 떨어진 데에는 먹는 거만큼 특효약이 없었다.
고수현이 비상식량을 홍지영에게 건넸다.
“지영아, 이거 먹어봐. 조금만 먹고 이상하면 얼른 뱉어.”
“아저씨, 고맙습니다.”
바로 옆에서 황대산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을 내밀었다.
“그냥 물이야. 따뜻한 거 먼저 마셔야지.”
“와, 아저씨 최고!”
“흠, 흠흠.”
황대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홍지영이 두리번거리다 누군가를 손짓해 불렀다.
“아저씨, 여기 따뜻해요.”
“됐어.”
“빨리 와요.”
홍지영은 막무가내로 칭얼거렸다.
“됐다니까. 뭘 또 오라고까지 하고 그래.”
이지성은 투덜거리며 못 이기는 척 슬쩍 가까이 다가갔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그 속에 없었다.
촤아악.
창고 문 앞에서 비를 등진 채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엄지를 세우며 기막혀했다.
“이야. 지영이가 아주 휘어잡았네. 다 휘어잡았어.”
“워낙 밝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병이라니.”
오광휘 단장도 들었는지 안타까워했다.
스윽.
강을 바라보는 태건의 표정이 씁쓸했다.
“다리는 막혔고, 어째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기 오래 머물긴 어려워.”
“네. 벌써 저만큼 올라왔습니다.”
스윽.
태건이 강가를 가리켰다.
조금 전에는 확연히 보였던 큰 바위가, 어느새 끝부분만 남겨놓고 물에 잠겨 있었다.
그만큼 수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