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오광휘 단장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중헌이는 수신 범위 밖으로 갔는지 무전도 안 되고, 보이지도 않네. 전화해볼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태건은 덤덤하게 빗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꼭 올 겁니다.”
그때 황대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훅훅. 할아버지 쓰러짐, 지영이 상태도 나빠지는 중!”
태건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둘 다 안 좋다고?’
후다닥.
두 사람은 동시에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태건은 폐창고에 도착했다.
“훅훅. 후읍!”
거칠어진 숨을 억지로 달래며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쿨럭.”
“할아버지, 흐으으.”
홍지영의 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조손은 방수포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태건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이지성에게 빠르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
척.
이지성은 대뜸 수첩부터 내밀었다.
빗물에 상당히 젖었지만 마른 종이가 일부 존재했다.
그 부분에 바이탈 사인을 1분 단위로 기입한 기록이 있었다.
“맥박,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어?”
숫자를 살피던 태건의 눈동자가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이건 홍지영의 기록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기록이었다.
체온이 상당히 높고, 맥박과 혈압도 점점 상승 중이다.
그중에서도 산소포화도가 문제였다.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 부분에서 태건이 동요했다.
이지성은 신기하단 표정으로 물었다.
“이것도 알아보나? 대체 스모크점퍼는 뭐하는 인간들이야.”
태건은 그의 궁금증을 단칼에 잘라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그럴 리가.”
이죽거림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러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심각했다.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말을 꼬아서 하는 특이한 성격이었다.
태건의 표정 또한 심각했다.
재빨리 바이탈이 적힌 메모지를 가리켰다.
척.
“이거 진짜 확실합니까?”
그 질문과 동시였다.
“쿨럭, 쿨럭, 캬아악, 으으. 쿨럭!”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이지성은 그쪽을 가리키며 답했다.
“내가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네.”
“진짜 pneumonia이라고요?”
“한국에 왔음 한국말로 해.”
이지성이 핀잔을 주자 태건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게 중요합니까. 급성폐렴이라니. 갑자기 폐렴이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난 그런 말한 적 없어.”
“여기 보면 분명히…….”
태건이 말하려는 찰나 이지성이 끼어들었다.
“네가 판단한 거지.”
“…….”
“짜증나지만 나도 동의하는 중이고.”
꾸깃.
그는 되돌려 받은 수첩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그때 한 번 더 할아버지의 거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쿨러럭, 쿨럭! 컥컥. 카악, 크으.”
“할아버지, 으으으.”
뚝뚝.
홍지영의 눈에서 애잔한 눈물이 흘렀다.
“괜, 괜찮아.”
파르르.
할아버지는 애써 손을 뻗어 홍지영의 얼굴을 조심히 쓸어줬다.
그런 홍지영의 얼굴도 엉망이었다.
시시각각 붓고 있었다.
태건의 표정이 심하게 구겨졌다.
“지영이는 언제부터 저런 겁니까?”
“다음 장에.”
이지성이 차갑게 말했다.
그런데 비해 기록은 확실히 꼼꼼하게 해뒀다.
사락.
뒷장을 본 태건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환장하겠네.”
“지금 갑자기 이런 말하는 게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지성이 뭔가 말을 하려 했다.
그걸 태건이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병원 가야 됩니다. 최대한 빨리요. 그것도 둘 다!”
“동감. 그런데 이대로 움직이는 건 무모해. 그래서 부른 거야.”
응급처치를 같이 하잔 의미였다.
물론 기본적인 응급처치는 되어 있었다.
급격한 이동 시 좀 더 확실한 안전을 위해 도움이 될 태건을 부른 거였다.
태건도 그의 의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첩을 다시 뒤적이며 체크했다.
사락.
“할아버지는…….”
“소염진통제하고 해열제를 주사했어.”
“아직 체온이 안 떨어졌네요. 일단 몸을 조금이라도 말려야 하니까 열기를 더해야겠습니다.”
태건은 캠핑용 가스 화로의 밸브부터 열었다.
화르륵.
불꽃이 거의 한 뼘 이상 올라왔다.
태건이 시선을 돌려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강을 건널 방법을 찾아주세요.”
“뭐?”
놀란 오광휘 단장에게 태건이 다시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단 시간 내에 강을 건너야 합니다.”
“미치겠네. 야, 가자.”
오광휘 단장은 더 이상 반박 없이 나머지 단원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다른 단원들도 별다른 반발 없이 순순히 따랐다.
상황이 급박한 걸 잘 아는 탓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태건은 재빨리 자신의 출동 가방을 열어젖혔다.
부욱!
그 속엔 놀랍게도 방화복이 들어 있었다.
“일단 이거라도.”
휙.
태건은 곧장 할아버지에게 들고 갔다.
“이거 입으셔야 합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끄으응. 끄으으. 쿨럭.”
할아버지는 맥이 쫙 풀렸는지, 별달리 저항하지 않고 태건에게 몸을 맡겼다.
그걸 본 이지성이 기가 막힌 얼굴로 변했다.
“이 날씨에 방화복을 챙겼어?”
물론 이지성이라고 쳐다만 보고 있지 않았다.
어느새 홍지영 옆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전자혈압계로 홍지영의 몸 상태부터 다시 확인했다.
“바이탈이……. 하, 혈압이 너무 올라갔어.”
태건이 그 중얼거림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물었다.
“강하제 없습니까?”
“있는데, 얼마나 투여해야 되지?”
“삼분의 일. 그리고 혈당 체크도 해야 합니다.”
척, 척.
태건은 할아버지를 챙기며 말했다.
이지성은 바로 알아듣고는 혈당측정기를 꺼냈다.
“지영아, 좀 따끔 할 거야. 미안.”
꾹.
손가락 끝에 살짝 상처를 내고 맺힌 피를 혈당측정기에 흡수시켰다.
곧 수치가 나왔는지 이지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왜 높아야 할 혈당이 이렇게 낮아. 저혈당이야!”
“스트레스성 저혈당일 겁니다. 초콜릿이나 사탕 없습니까?”
“그걸 가지고 다닐 리가 있냐……. 아, 발포 비타민!”
“그거라도 어서!”
태건이 다그쳐 재촉했다.
이지성의 두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나도 알아!”
그 사이 태건은 할아버지에게 방화복 상의를 모두 입혔다.
이어서 자극이 될 정도로 주무르며 계속 불렀다.
꾹꾹.
“할아버지, 제 말 들리십니까!”
“으, 으으.”
끄덕.
미미한 고갯짓으로 의식이 있음을 표현했다.
“힘내세요. 곧 탈출할 겁니다.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지영아, 조금만 버티면 돼!”
꾹꾹.
태건은 목청 높여 조손을 응원했다.
절대 희망고문이 아니다.
이 순간 다른 단원들이 탈출로를 강구하고 있다.
그들은 곧 최고의 소식을 알려줄 거다.
태건과 이지성이 여기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믿음이 커서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홍지영의 상황은 안타깝게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악화되어 갔다.
“쿨럭, 흐으으.”
“아……. 아파요.”
지켜보는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갈 모습들이었다.
“에라이.”
“젠장!”
이대로 기다리기만 할 순 없었다.
태건은 거칠게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그때 고수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띠리릭.
“선배님, 어떻게 됐습니까!”
-헉헉, 빨리 와. 준비됐어.
“갑니다. 당장 갑니다!”
태건은 크게 답하고 휴대폰을 내렸다.
고수현의 거친 호흡이 신경 쓰였지만 직접 가서 보면 될 일이다.
“지성 선배…….”
“뭐해. 빨리 할아버지 업어!”
이지성은 어느새 가스 화로를 끄고 홍지영을 업고 있었다.
그나마 가벼운 홍지영이라 가뿐한 모습이었다.
태건은?
당연히 할아버지를 업어야 했다.
‘이 인간이.’
생각만 그랬지, 태건도 얼른 서둘렀다.
“할아버지, 이제 병원 갑니다. 버티세요!”
말하면서도 이미 할아버지를 업은 후였다.
잠시 후.
태건과 이지성이 폐창고를 나왔다.
파바박!
“이쪽!”
“가기나 해!”
빗속을 뚫고 내달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여전히 따가웠다.
그런 각각의 등엔 할아버지와 홍지영이 업혀 있었다.
비옷을 걸쳐 최대한 비를 피하게 했다.
그런 반면 태건과 이지성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출동 가방까지 목에 건 모습이었다.
“차아아!”
“츠앗!”
차자작!
여기저기 고인 빗물을 튀기며 쏜살같이 달려갔다.
매일 우면산을 등반한 지구력이 지금 제대로 빛나고 있었다.
태건과 이지성은 앞만 보고 달렸다.
달리고 달린 끝에 오른쪽 다리 근처에 다다랐다.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헉헉헉!”
“헥헥!”
주르륵.
턱을 타고 흐르는 게 땀인지 빗물이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 두 사람은 곧 다리 위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다리 역시 상판까지 잠겼다.
콰과과.
얼핏 봐도 사람이 건너기엔 너무도 빨랐다.
그런 다리에 로프 한 줄이 반대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비너로 요구조자와 로프를 연결해 절대 물살에 떠밀려가지 않는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그 로프를 다리 반대편에서 황대산이 홀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크흡, 츠으읍!”
거리가 멀어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표정만으로도 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상황만 봐도 짐작이 됐다.
분명히 황대산 혼자서 거친 물살을 헤치고 건넌 건 분명했다.
오광휘 단장과 나머지 두 명은 기를 쓰고 버텼으리라.
그 판단이 맞았다.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은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말이 쉽지 급류를 건넌 황대산은 물론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도 미친 짓이었다.
태건과 이지성은 너무 놀라 멍하니 바라봤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대박.”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