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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11)화 (110/320)

111화

그런 감상도 잠깐이었다.

다급한 정도를 따지자면 이쪽이 더 급했다.

“후우. 선배, 가시죠.”

“그래.”

타다닥!

숨이 가라앉자마자 얼른 다리로 향했다.

잠시 후.

다리 앞에 태건과 이지성이 섰다.

그리고 각각 오광휘 단장과 고수현이 보조역할을 자청하고 있었다.

창백해진 오광휘 단장이 쥐어짜 말했다.

“푸우우. 한방에 훅 가자!”

“출발!”

터억!

이지성과 고수현이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태건도 오른쪽 다리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태건은 출발부터 삐끗거렸다.

불과 한 걸음이다.

내디딘 순간 살짝 휘청거렸다.

“윽!”

턱!

“짜식, 중심 잡아!”

뒤에서 따라붙던 오광휘 단장이 재빨리 태건을 붙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팽팽!

로프가 더 강하게 당겨졌다.

“끄아아아압!”

황대산의 괴로운 비명소리가 반대편까지 들려왔다.

균형을 잡은 태건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왼쪽 다리 생각하고 너무 힘을 줘서 그런 겁니다.”

“내가 업을까?”

오광휘 단장이 떼꾼한 얼굴로 물었다.

척 봐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여기서 할아버지를 업는다면?

무사히 탈출해도 응급실행은 확실했다. 

태건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 단장님이 더 걱정입니다.” 

“나도, 안다고. 흐읍!”

다시 힘을 낸 오광휘 단장이 힘겹게 한발씩 내디뎠다.

턱, 터덕!

태건이 다리에 온 힘을 주며 물살을 헤쳤다. 

등에 업힌 할아버지는 이미 축 쳐진 상태라 더욱 무거워져만 갔다.  

“그륵, 그륵.”

등에 업힌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방화복도 별무소용인 상태로 추측됐다.

‘더 빨리.’

터억, 턱!

태건은 로프에 의지해 거친 유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 따라오던 오광휘 단장도 바짝 긴장한 채 태건의 발걸음만 주시했다. 

여차하면 금방 도와줄 기세였다. 

휘청.

물살은 정말 셌다.

건장한 청년인 태건이 온 힘을 다해도 금방이라도 떠내려갈 듯한 사나운 기세였다. 

로프.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목숨 걸고 건 로프를 잡은 황대산의 손에선 쥐가 날 지경이었다. 

강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래도 태건에게는 아득하게 멀어보였다. 

“이 시간도 지나가리라.”

태건이 이를 악물고 한발 한발 디뎠다. 

뒤에서 따라오던 오광휘 단장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대할까?”

“단장님 몸이나 잘 챙기세요. 휘청거리시지 말고.”

“보이냐?”

“대충은요.”

“자식이.”

오광휘 단장이 민망한 듯이 말문을 닫았다. 

태건 말대도 오광휘 단장도 죽을힘을 다해 물살을 헤쳤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턱.

태건의 두 다리가 마침내 건너편 기슭에 이르렀다.

“허어억! 헉헉!

거친 물살을 뚫고 온 태건은 숨부터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하지만 해냈다.

건너왔다.

“아자자!”

“구조 했으!”

태건에 이어 단원들 모두 힘차게 소리쳤다.

기쁨은 아주 잠깐이었다.

“크르륵.”

“흐으으.”

할아버지와 홍지영의 상태는 악화일로였다.

이젠 의식까지 흐릿해진 모양이다.

“할아버지!”

“지영아!”

양쪽에서 다그쳐 불러도 반응이 미미했다.

태건은 재빨리 단원들에게 외쳤다.

“들것부터 빨리!”

“접이식 들것 펼쳐!”

촤자작!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은 지친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빠릿빠릿하게 행동했다.

문제는 여긴 도로 한복판이다.

길어진 악천후로 인해 차량 통행이 전무했다.

심지어 근처에 인가도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병원까지 광속으로 질주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차가 없다.

태건은 암담했다.

이 폭우와 돌풍 속에서 차가 올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뛰어가야 하나?

가능은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린다.

지금 할아버지 상태를 보면 정말 위험한 선택이다. 

바로 그때였다.

빠아앙!

멀리서부터 경적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단원들 모두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거 119구급차 아냐?”

“진짜, 정말!”

모두가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렸다.

그 사이 119구급차는 쏜살같이 다가와 급정거했다.

끼이이익!

내려간 차창으로 유중헌이 손짓했다.

“야, 타!”

온다더니.

꼭 돌아온다더니.

적시에, 정말 최적의 순간에 도착했다.

오광휘 단장이 울컥한 마음을 억누르며 버럭 소리쳤다.

“……새끼, 뒷문부터 열어!”

유중헌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이었다.

태건이 후다닥 달려가 구급차 뒤를 열어젖혔다.

벌컥!

이어서 손짓하며 소리쳤다.

“다들, 빨리!”

더 외칠 필요도 없었다.

벌써 황대산과 고수현이 들것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강태건, 비켜!”

“들어가서 받아주던가!”

우당탕!

삽시간에 도착한 그들은 들것을 다급히 밀어 넣었다.

태건은 벌써 구급차 안에 올라타 있었다.

쑤욱!

할아버지가 실린 들것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크으으.”

순간적인 흔들림에 할아버지는 신음소리를 흘렸다.

옆으로 길게 마련된 좌석엔 홍지영이 누운 들것이 자리했다.

“흐으으.”

둘 다 의식이 희미했다.

태건은 그들의 차이점을 판단하고 즉각 행동에 나섰다.  

“할아버지는 호흡부터!”

턱턱.

태건이 재빨리 인공호흡기를 준비했다.

두 손이 너무도 바빴다.

그런데 해야 할 응급처치가 너무도 많았다.

태건은 바로 선배들을 찾았다.

“대산 선배, 전자혈압계 설치 좀요!”“알았어.”

터덕!

황대산이 우람한 덩치를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대번에 좁아졌지만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수현도 찾았다.

“수현 선배는 지영이 바이탈 체크!”

그때였다.

스르릉!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며 이지성이 들어왔다.

“그건 내가!”

“어서!”

턱, 턱.

재촉한 태건의 두 손은 어느 때보다 신속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말 시간 싸움이다.

의식이 흐릿한 요구조자가 무려 둘이다.

한시라도, 단 1초라도 빨리 응급실에 도착하는 게 최선이었다.

서둘러 이동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앞에서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의 대화가 들려왔다.

“헬기는 어따 팔아먹고, 119구급차야?”

“기상이 지랄이라 헬기는 금산소방서 야산에 떨궈놓고, 이건 그냥 보이는 거 아무거나 잡아타고 왔습니다.”

“이쪽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왼쪽 다리가 그 지경인 걸 봤는데 그리 가겠습니까.”

유중헌이 어이없는지 퉁명하게 대답했다.

필요한 대화긴 했다.

그러나 지금 예민해진 태건의 귀엔 딱 걸렸다.

‘지금 대화할 정신이 있어?’

이제 보니 구급차 안이 단원들로 북적거렸다.

모두가 도움을 줘 할아버지와 홍지영의 응급처치가 어느 정도 진행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응급처치는 준전문가의 영역이었다.

태건은 과감하게 외쳤다.

“다들 내리세요. 저랑 지성 선배만 같이 가겠습니다.”

“둘만 가겠다니!” 

선배들이 멈칫했다. 

그때 유중헌이 외쳤다.

“곧 군청 버스가 올 겁니다!”

“뭐어?”

“오는 길에 전화해서 지랄 좀 떨었습니다. 바로 지원품이랑 보낸답니다.”

유중헌은 쿨하게 말했다.

듣는 오광휘 단장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너, 이 쉑. 내가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만 우선 상황종료부터 때리고 다시 얘기하자!”

“빨리 내리기나 해요!”

“내리고 있잖아……. 이지성, 강태건, 두 사람 끝까지 잘 모셔라. 이상!”

휙휙휙.

오광휘 단장이 강렬하게 지시한 후 구급차에서 재빨리 내렸다.

동시에 황대산이 트렁크를, 고수현은 슬라이딩 도어를 닫았다.

터더덩!

119구급차의 모든 문이 일시에 닫혔다.

그 순간 태건이 힘차게 외쳤다.

“선배, 고고고!”

“간다. 꽉 잡아!”

콰아앙!

119구급차가 굉음을 토하며 급출발했다.

그 내부는 히터가 강하게 틀어진 상태였다.

태건과 이지성은 두 손을 바삐 움직이는 중이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응급처치를 하느라 몸에서 김이 날 지경이었다.

팔이 후들거렸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각자 할아버지와 홍지영을 한 명씩 맡았다.  

그중 태건은 할아버지의 팔에 IV를 연결하고 추가할 앰풀을 살폈다.

달그락.

“혈압강하제, 강심제……. 이런, 기관지확장제 없습니까?”

“이게 우리 차냐, 내가 어떻게 알아!”

이지성의 톡 쏘는 말이 정답이었다.

태건은 아차 하며 앰풀 중 하나를 챙겼다.

“그럼 혈압하고 맥박부터 잡아야 되니까, 강심제!”

“투여량은 최소로!”

“압니다. 바이탈 변화를 보면서 다음 약을 추가할 겁니다.”

쭈욱.

태건은 얼른 주사액를 IV에 추가했다.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영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너무 땀을 많이 흘려. 거기다 어지러운 모양이야.”

“젠장. 우리가 만성신부전 환자 응급처치까진 어려운데!”

텅.

태건이 조수석 목받침을 두드리며 안타까워했다.

맞는 말이다. 

만성신부전에 관한 건 전문의료인들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번뜩!

갑자기 눈빛을 반짝인 태건이 어딘가를 뒤적였다.

그리고 꺼낸 건 파란 담요였다.

“선배, 이거!”

“그래. 119구급차는 이게 있어야지!”

풀럭!

태건과 이지성이 동시에 이불을 펼쳐 조손을 각각 감쌌다.

그러나.

“슈욱, 슈욱.”

“흐으으.”

벌써 좋아진 반응을 기대하긴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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