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태건과 이지성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주물주물.
각각 팔과 다리를 부드럽게 자극하며 불렀다.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할아버지.”
“지영아. 아저씨 말 들려?”
그렇게 몸을 자극하고, 또 의식을 깨우려 노력했다.
그 노력이 아예 헛된 건 아니었다.
우선 할아버지가 반응했다.
“슈욱, 으으, 슈욱.”
숨소리 중 자그마한 반응이 있었다.
어느 정도 들리는 모양이다.
태건은 계속 자극을 주며 재차 물었다.
꾹, 꾹.
“느껴지세요. 제가 이렇게 주무르는 거 느껴지세요?”
“슈욱, 으, 으으, 슈욱.”
숨소리뿐이 아니었다.
끄덕.
미미하지만 고갯짓도 함께였다.
뒤에서 이지성의 밝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지영아, 아저씨야. 알아보겠어?”
“흐으, 으으으.”
“그래그래. 이제 다 왔어. 병원에 다 왔으니까 조금만 참자, 아주 조금이야.”
꾹꾹.
그도 계속 자극을 주며 응원했다.
그때 앞에서 유중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군청버스……. 아으씨!”
끼릭.
순간 119구급차가 출렁거렸다.
태건이 얼른 균형을 잡으며 따갑게 소리쳤다.
“선배, 운전 좀!”
“군청버스가 덩치 생각도 안 하고 밀어붙였단 말이야!”
“지나갔습니까!”
“그래, 그쪽도 급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운전은 안전하게 해야지!”
콰아앙!
사실 유중헌의 운전이 과속은 물론 더 과격했다.
태건은 일일이 따질 생각은 없었다.
“중헌 선배, 병원까지 멀었습니까!”
“꽉 잡아, 짜식들아!”
널찍한 도로로 나온 순간 차량 속도도 급격히 올라갔다.
삐용삐용, 깜빡깜빡.
긴급이송 사이렌과 비상등까지.
옅은 물안개를 뚫고 쏜살같이 도로를 내달렸다.
어느새 태건은 금산의 유일한 응급실에 전화했다.
금산 인삼병원 응급실.
구조와 관련된 장소와 연락처 파악은 필수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소방관입니다. 응급환자가 두 분인데…….”
요구조자들의 상태에 대한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그 사이였다.
이지성이 좌우 조손을 번갈아 바라봤다.
“…….”
무거운 시선으로 뭔가를 고민했다.
그러다 둘의 손을 끌어 맞잡게 했다.
터덕.
서로의 온기를 느낀 순간 다급히 맞잡았다.
그와 동시였다.
“후욱, 후욱!”
삐빅, 삐빅.
할아버지의 숨소리가 커지며 ECG 소리도 격해졌다.
반응은 홍지영 쪽에서도 있었다.
“하, 할아……. 버지……. 아프면……. 안 돼.”
몽롱한 눈빛으로 흐릿한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
그건 서로였다.
그 이유를 놓지 않겠단 듯, 두 사람의 손은 꼭 붙들려 있었다.
태건은 두 사람이 아니라 이지성을 보고 있었다.
이지성의 행동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지금? 이지성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도 보고 있었다.
‘대체 저 선배, 뭐지.’
보면 볼수록 의문점만 늘어나는 이상한 선배였다.
15분 후.
금산 인삼병원 응급실 앞.
몇몇 의사와 간호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때 악천후를 뚫고 달려온 구급차가 다급히 멈춰 섰다.
끼익.
의료진들은 신속히 구급차 뒷문을 열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건과 이지성이 곧 모습을 보였다.
태건은 들것을 밀며 소리쳤다.
“잡아요!”
스르릉!
“얼른 붙들어!”
“스트레쳐카 가져와!”
의료진의 대처가 상당히 빨랐다.
들것이 이동식 병상에 닿자 신속히 응급실로 내달렸다.
타다닥.
그 속엔 태건도 함께였다.
“지성 선배, 먼저 갑니다. 차아앗!”
파바박.
누구보다 힘차게 이동식 병상을 밀었다.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의료진도 대기 중이었다.
곧 이지성이 들것을 밀며 밖으로 나왔다.
“홍지영입니다!”
“신장내과입니다. 이쪽으로!”
“갑시다!”
타다닥!
이지성도 의료진들과 다급히 이동식 병상을 밀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30분이 후다닥 지나갔다.
부우웅.
구급차가 빗속을 뚫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태건과 이지성이 각각 경험한 걸 간단하게 알렸다.
태건이 조수석에서 말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응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지영이는 혈액투석 중입니다.”
이지성의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운전하던 유중헌이 조수석과 룸미러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양쪽 다 잘 됐단 거잖아.”
그 추측에 태건이 단서를 달았다.
“현재까지는요.”
“양쪽 모두 좋은 결과가 있어야 잘 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지성이 덧붙여 말했다.
둘 다 옳은 소리였다.
유중헌은 절박감이 약간이나마 사라지자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화풀이했다.
“이 염병할 비. 진짜 이제 좀 그만 내려라. 그만!”
텅!
운전대까지 내리쳤다.
태건은 차라리 담담했다.
그런 과격한 모습은 이제 익숙했다.
사실 태건도 같은 심정이다.
장마가 한창이다.
하나를 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아픔을 겪는 누군가를 찾아가는 일이 더 시급했다.
다만 연락이 없어서 서성거릴 뿐이다.
태건은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빈 들것에 이지성이 누워 있었다.
“…….”
조용한 게 쉬는 모양이었다.
사실 태건도 기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체력 회복엔 단잠이 최고였다.
‘나도 잠깐 눈 좀 붙일까.’
스르륵.
무거운 눈꺼풀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치지직!
구급차에 비치된 위성 무전기가 울렸다.
번뜩!
“흡!”
태건의 두 눈이 순식간에 떠졌다.
이어서 재빨리 송수화기를 낚아채며 볼륨을 올렸다.
곧 무전 내용이 들려왔다.
-치직. 금산T타운에 산사태, 산사태 발생, 가용한 모든 인원은 즉시 금산T타워로 집결!
무전은 계속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태건은 물론 유중헌과 이지성도 흠칫거렸다.
산사태.
그리고 금산T타운.
태건이 순찰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던 바로 그 마을이었다.
“이런!”
휙!
태건이 재빨리 오광휘 단장에게 연락했다.
바로 무전으로 오광휘 단장의 솟구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락받았지?
“맞습니다. 굳이 번거롭게 모여야 합니까?”
태건이 질문한 의도를 오광휘 단장은 바로 알아챘다.
-그럼 안 모일 거야? 당장 금산T타운으로 튀어와!
“그런데 저희 장비를 챙겨야 할 텐데요.”
-여기 다 있어. 그리고 비공식이긴 하지만 매몰자가 있는 거 같아. 골든 타임 지나면 가봐야 소용없어.
“지나기 전에 도착하면 의미 있게 됩니다. 바로 튀어가겠습니다. 그럼!”
턱.
태건은 바로 무전을 끊었다.
그와 동시였다.
유중헌도 들었는지 눈빛에 살기가 돌았다.
에에엥!
사이렌을 울린 순간 구급차는 스포츠카로 변했다.
“뒤지기 싫음 꽉 잡아!”
“적당히 하세요.”
“일초라도 빨리!”
태건의 말은 가볍게 씹혔다.
콰아앙!
엔진이 터질듯한 굉음을 터트리며 쏜살같이 도로를 질주했다.
쌔애앵!
유중헌이 운전한 구급차는 모든 신호를 무시하며 금산T타운으로 향했다.
얼마 후.
구급차는 넓은 도로에서 새로 정비된 샛길에 접어들었다.
쌔앵!
구급차가 방금 지난 자리엔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금산T타운 1KM.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쏴아악.
비는 아직도 줄기차게 쏟아졌다.
태건은 하늘을 허탈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내립니다.”
“제기랄.”
콰아앙!
유중헌은 구급차를 더욱 가속시키며 마음을 드러냈다.
곧 태건의 시선에 금산T타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흘러나온 첫 마디가 거칠었다.
“개판이네.”
그만큼 두 눈에 가득 비친 금산T타운은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산에서 쏟아진 토사가 마을의 반을 삼킨 상태였다.
대자연의 힘에 전원주택들이 수수깡처럼 부서지고 무너졌다.
거기에 뿌리째 뽑혀 떠밀려온 나무와 커다란 바위도 곳곳에 보였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사뭇 거셌다.
산사태가 일어났으니 그건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태건의 시선을 사로잡는 모습들이 있었다.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우는 사람들.
무너진 집터에서 조금이라도 살림살이를 건져보려는 사람들.
누군가는 토사를 미친 듯이 긁어냈고.
또 누군가는 도와주거나, 만류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아!”
턱!
탄식한 태건이 시선을 돌렸다.
물은 불과 성질이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었다.
통제할 수 있을 땐 생활에 없어선 안 될 만큼 소중했다.
그게 통제할 수 없이 과해지면?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너무도 잔인하고 섬뜩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태건이 쓰게 읊조렸다.
“불이나, 물이나, 젠장!”
태건만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불쑥.
이지성이 고개를 내밀며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둘 다 지질맞다. 지질맞아. 젠장.”
“푸욱, 푸욱.”
유중헌은 거친 숨을 반복적으로 몰아쉬었다.
최대한 운전에 집중하려 마음을 다잡는 눈치였다.
구급차는 곧 마을 입구의 공터에 도착했다.
벌컥!
단숨에 내려 둘러봤다.
마을회관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난리통에 한 부류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부상자였다.
태건은 뒤따라 내리는 이지성을 불렀다.
“지성 선배. 부상자가 안 보입니다.”
“저쪽이겠지. 먼저 간다!”
타다닥.
이지성은 마을회관 쪽으로 냅다 뛰었다.
그런 그의 어깨엔 커다란 구급상자가 메여 있었다.
쉬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준비한 모양이다.
태건은 피식 웃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선배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