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그런 태건의 곁으로 또 한 명의 듬직한 동료가 다가왔다.
척.
“태건아, 우리 이제 어, 어떻게 하지?”
유중헌의 조심스럽고 소심한 질문이 들려왔다.
그 순간 태건이 미간을 좁혔다.
‘취소.’
운전할 때만 듬직한 동료다.
그렇다고 유중헌이 있으나 마나 한 존재는 절대 아니었다.
태건은 유중헌에게 얼른 말했다.
“우선 매몰자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 네 말이 옳아.”
“그럼 일단…….”
지체할 시간이 없어 서두르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 잠깐.”
저쪽에서 불러 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휙.
고개 돌려 바라보자 우산을 쓴 50대의 중년 남성이 다가오고 있었다.
깡마른 몸매에 눈매가 매우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느껴졌다.
유중헌이 힐끔 쳐다보고는 얼른 태건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헉, 저 아저씨 화난 거 같아.”
“…….”
태건도 느낌은 썩 좋지 않았다.
당장 엉망이 된 집을 찾아가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 몰랐다.
혹시 이장이라면?
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다렸다.
어느새 바짝 다가온 깡마른 중년인이 대뜸 소리쳤다.
“당신들 말이야. 이장이 신고한 지가 언젠데 지금 오는 거야!”
“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자 태건이 멈칫했다.
“…….”
흠칫.
유중헌도 뜬금없는 외침에 놀란 모양이었다.
중년인은 그런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척.
엉망이 된 마을 중 한쪽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저거 봐.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뭐하다가 이제 나타나서 빤히 쳐다보면 어쩌자고!”
“이장님 아니십니까?”
“뭐야. 이장만 상대한다 이거야? 내가 우습게 보여!”
그의 목소리가 더욱 사나워졌다.
태건은 이제 확신했다.
이재민이다.
한순간 생활 터전이 망가진 그의 마음도 찢어질 터였다.
하지만 매몰자 구조보다 급한 일은 아니었다.
태건은 가급적 좋게 말하려 했다.
“말씀 중 죄송하지만 저희는 지금…….”
“어디서 말대답이야!”
“…….”
“아, 됐고! 저기 제일 부지 넓은 집이 내 집이야. 가서 흙 좀 치우고 정리나 해. 어서!”
스윽.
그 손짓을 따라 태건이 고개 돌려 바라봤다.
순간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꾸깃.
그의 집이 너무도 멀쩡히 서 있었다.
산사태의 직격타를 피한 집들 중 하나였다.
피해라고는 토사가 조금 들이쳐 정원이 망가진 정도였다.
‘저걸 가지고 이 난리야?’
순간 화가 솟구쳤다.
그때 태건의 눈에 더 뒤쪽이 보였다.
산과 가장 인접한 마을의 경계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그 앞도 집터였다.
집은 토사에 가득 뒤덮여 있었다.
드문드문 콘크리트가 보이는 게 반파된 상태로 추측됐다.
그 집 앞.
토사를 맨손으로 긁어내는 누군가가 보였다.
-흐으아아!
절규어린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번뜩.
저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린 모습.
그걸 되찾기 위한 몸부림.
상황상 매몰자가 있는 장소가 분명했다.
태건의 다급함이 순식간에 절정까지 치고 올라갔다.
여기서 발이 묶일 때가 아니다.
“중헌 선배, 서두르시죠!”
한 걸음 옮긴 그 순간 중년인이 태건의 팔을 낚아챘다.
턱.
“어른이 말하는데 싸가지 없게 어딜 내빼!”
그와 동시였다.
찌릿.
태건의 눈매부터 날카롭게 돌변했다.
“이거 노세요.”
“뭐, 놔아? 내가 좋게, 좋게 말해주니까.”
“사람 같지도 않은……. 에이씨, 비켜요!”
지금 한가로이 말다툼할 시간도 아까웠다.
태건은 인정머리를 쌈 싸 먹어 보인 중년인을 옆으로 밀쳤다.
철푸덕.
“어윽!”
그가 넘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물론 태건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태건과 유중헌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타다닥!
“빨리!”
“저기, 그래!”
둘 다 한 곳만 바라보며 내달렸다.
절규하며 땅을 파내는 바로 그 남자였다.
그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리고 달린 태건과 유중헌은 곧 목적지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보니 집은 반파 이상 파손됐다.
지붕은 일부 남아 있었고, 벽면 곳곳은 토사로 파괴되어 있었다.
일부 벽은 너덜거리나마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집안은 떠밀려온 토사와 나무, 바위가 채우고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맨손으로 그걸 걷어내고 있었다.
빠직, 꽈직.
손톱이 다 망가져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토사를 긁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흐어어어. 어어어!”
이성조차 날려버린 채 눈물 콧물로 범벅되어 손을 움직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바가지와 바구니 등으로 같이 걷어내고 있었다.
“어서, 이거 받아요!”
“서두릅시다!”
휙휙.
온몸이 진창이 된 그들이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태건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 확률은 희박해.’
이미 매몰된 후, 시간이 많이 흘러 골든 타임이 지난 걸 알기 때문이다.
그냥 흙 속에 매몰된 거라면 힘들다.
혹시나 압사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숨을 쉬어야 했다.
다음 순간 태건의 눈이 번뜩거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공간 속에 매몰돼 있다면?
살아있다.
그런 경우는 많았다.
백화점 붕괴에서도 공간 사이로 틈이 있어 생존자가 존재했다.
이젠 그런 행운을 바라야 했다.
더불어 그런 행운이 있다면 이제부턴 자신들이 찾아야 했다.
태건은 유중헌과 시선을 교환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명확했다.
특히 유중헌의 눈빛이 강렬하게 이글거렸다..
그가 소심한 건 사람을 대하는 거였지, 소방관으로서는 아니었다.
“…….”
촤자작!
태건과 유중헌은 동시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대로 토사에 손을 찔러 넣었다.
푸욱!
한 움큼 떠지는 흙을 뒤로 내던지며 소리쳤다.
“소방관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꽉, 꽉.
질문하는 와중에도 두 손은 쉬지 않았다.
유중헌은 아예 허리만 숙인 채 미친듯이 두 손으로 토사를 파냈다.
퍼버버벅!
그런 소방관들의 등장에도 30대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흐어어. 허어어어!”
벅벅!
두 손으로 토사를 퍼내고 퍼내길 반복했다.
그를 대신해 도와주던 중년인이 소리부터 질렀다.
“이제 오면 어떻게 합니까. 큰일 났단 말입니다!”
“이이가, 왜 도와주러 온 분들한테 소리를 친데요! 이리 나와요!”
휙.
중년 여인이 얼른 그를 옆으로 젖혀버렸다.
그리고 흙으로 범벅이 된 자신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른 말했다.
“여기 새색시가 안에 있대요. 글쎄, 애까지 품고 있는데.”
“이, 임신 중이란 말입니까?”
“산달이 거의 다 됐다우. 아이고야, 내가 이렇게 떠들 때가 아니지!”
휙휙.
설명해주던 중년 여인은 아차 하며 다시 흙을 퍼 날랐다.
“…….”
태건의 입이 턱 막혔다.
30대 남자에게 짙은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부인과 새 생명까지.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저 이름 모를 남자의 절규가 너무도 강하게 와닿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퍼버벅!
태건의 두 손도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 고수현이 동시에 도착했다.
그들도 들은 모양이다.
거친 숨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헉헉헉, 쓰벌!”
“바로 투입!”
텅, 텅.
묵직한 출동 가방을 내던지고 그대로 이쪽으로 다이빙했다.
다섯 명의 라텔은 나란히 자세를 잡았다.
촥촥촥!
흙을 퍼내는 손길이 맹렬했다.
기동복의 뒷면은 빗물에 흠뻑 젖고, 앞면은 흙탕물로 진창이 됐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었다.
토사만 걷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우지직!
“나무!”
터엉!
“돌 조심!”
그뿐이 아니었다.
“이건 뭐, TV야?”
“아이고, 에어컨.”
꽈직, 퉁!
토사에 망가지고 부서진 가전제품을 걷어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르릉.
산 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미약한 소리였다.
아니,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소리가 더 크고 웅장하게 들려왔다.
쿠르릉!
그 소리에 중년 여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소리람!”
그와 동시였다.
휙!
고개를 든 태건이 산을 바라봤다.
쓸려 내려온 토사로 인해 널찍한 길이 뚫려 있었다.
그 끝엔 처음부터 우려했던 쥐 파먹은 개발 현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
상당히 먼 거리라 자세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산속을 질리도록 누벼봤기에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했다.
‘끝난 게 아니야?’
2차 산사태가 일어날 조짐과 흡사했다.
설마가 현실이 된다면 큰일이다.
다음 산사태의 규모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파르르.
태건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혼자 알아서 될 일이 아니다.
태건은 재빨리 옆에서 정신없이 땅을 파는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
퍼버벅.
듣지 못했는지 토사만 계속 걷어냈다.
태건은 그런 그의 손을 붙들었다.
턱.
“단장님!”
바로 그때였다.
쨍!
오광휘 단장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소리쳤다.
“놔, 새꺄!”
“…….”
휙!
손을 뿌리친 오광휘 단장은 재차 토사를 파냈다.
태건은 일순간 당황했다.
오광휘 팀장에게서 처음 받아본 시선이었다.
그건 바로 살의였다.
이 순간을 방해하면 죽여버리겠단 살의가 분명했다.
“…….”
태건은 그 시선을 마주한 순간 솜털이 쭈뼛 설 정도로 긴장했다.
그렇게 살벌한 눈빛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