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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14)화 (113/320)

114화

하지만 태건도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터억!

오광휘 단장의 손을 다시 붙잡았다.

“단장님.”

“너, 이 새끼!”

순간 노려보는 오광휘 단장의 눈빛이 이상했다.

이성을 잠시 멀리 떠나보낸 듯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휘익!

흙이 가득한 두 손을 진짜 뻗어왔다.

너무도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긴장하고 있던 태건은 다행히 그 손길에 반응할 수 있었다.

터덕!

재빨리 그의 두 손을 낚아챘다.

둘 다 손이 막힌 상태다.

태건은 비장의 수를 과감하게 꺼내들었다.

“정신, 차려요!”

빡!

둘의 이마가 강하게 충돌했다.

일명, 박치기.

얼마나 강하게 부딪쳤는지 진짜 박을 친 듯 머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으. 더럽게 돌 머리네.”

부르르.

아찔한 통증에 태건은 몸까지 떨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의 삐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으씨, 머리에 철판 깔았냐!”

그 소리에 얼른 바라봤다.

오광휘 단장이 팔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태건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얼른 물었다.

“정신 드십니까?”

“차리고 있었거든!”

“…….”

태건은 말없이 바라만 봤다.

때론 침묵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법이었다.

오광휘 단장도 지금 그랬는지 움찔하며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튼 뭐, 왜!”

“산사태가 끝난 게 아닌 거 같습니다.”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오광휘 단장이 믿지 못할 때였다.

쿠르릉.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산에서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확연히 커진 소리라 이번엔 다들 멈칫했다.

“뭐야.”

“뭔 소리야?”

그 와중에도 30대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벅벅!

“으아아아. 아아아!”

눈물을 흘리고 악을 쓰는 처절함만이 가득했다.

오광휘 단장은 이제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강태건, 이, 이거 어떻게 해야 돼.”

“…….”

“2차 산사태라니. 아주 지랄도 쌍으로 하네.”

오광휘 단장이 크게 당황한 얼굴로 변했다.  

지금까지 화재 진압이 주요 업무였다.

그런 오광휘 단장에겐 너무도 낯선 순간일 터였다.  

“요구조자 구조도 아직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

황대산과 고수현, 유중헌까지.

다른 단원들도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나마 경험이 있었다.

머리 복잡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빠르게 이성을 챙길 수 있었다.

휙휙.

태건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옹벽은 거의 무너졌고, 여기도 역시 위험하고……. 어?’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사실 주변을 관찰한 건 지금이 처음이다.

30대 남자와 이웃들까지 도와 앞부분은 꽤 걷어낸 상태였다.

‘그런데 흔적도 없어.’

매몰된 장소가 여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

태건은 지금 양쪽 모두 신경을 써야 했다.

산사태와 매몰자.

그래도 둘 중 택하라면 매몰자 파악이 먼저였다.

태건은 처음으로 30대 남자의 손을 붙들었다.

턱.

“이보세요.”

“하아악, 놔아!”

30대 남자는 거칠게 반발하며 뿌리치려 했다.

태건은 더욱 꽉 붙들며 이성을 차리도록 질문을 유도했다.

“특수소방단 강태건입니다. 제가 누구라고요?”

“하아아아. 이혜진아, 꼬물아!”

아내 이름과 태명인 모양이다.

태건은 그 이름을 과감하게 입에 올렸다.

“그래요. 이혜진씨와 꼬물이. 두 사람을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아아악!”

“정신 좀 차려 봐요!”

“흐아아아!”

30대 남자는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때였다.

오광휘 단장이 떡하니 나타나 다짜고짜 머리로 들이받았다.

쿵!

“커윽, 이 분도 엄청 단단하네.”

“단장님.”

“충격요법은 이게 직빵이더라. 크으.”

벅벅.

오광휘 단장은 경험에 의한 소감을 말하면서도 계속 머리를 문질렀다.

두 번째 충격이라 더 여운이 오래가는 모양이었다.

단원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하여간.”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오광휘 단장에 대해 몰랐다.

“어, 어머나.”

“저런, 어이고.”

보고도 믿지 못하겠단 시선으로 가득했다.

태건은 자신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다른 방법도 있는데…….”

“네가 나한테 그렇게 했거든!”

“그건 손이 막혀서 그런 거고요.”

태건은 과격한 오광휘 단장의 행동을 타박했다.

그때였다.

“으으. 으음.”

30대 남자의 신음소리가 줄어들었다.

그런 그의 비명이 처음으로 멈췄다.

기다렸단 듯이 오광휘 단장이 흘겨보며 한소리 했다.

“이거 봐. 효과는 확실하잖아.”

“거 참.”

스윽.

태건이 흘겨보자 오광휘 단장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

“단장님, 현장이 쑥대밭입니다. 계속 이렇게 두실 겁니까.”

태건은 무겁게 자극했다.

그 자극은 확실히 통한 모양이었다.

돌변한 오광휘 단장이 마을 전체를 눈에 담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태건은 단원들에게도 눈짓했다.

그 의미를 간파했는지 고수현이 출동 가방에서 무전기를 하나 챙겨 일어났다.

“내가 올라가 볼게!”

차자작!

산사태로 엉망이 된 산길을 빠르게 박차고 올라갔다.

황대산과 유중헌은 다시 토사를 걷어냈다.

“…….”

휙휙.

다급하기만 하던 손길이 이젠 차분해졌다.

주민들도 다시 돕기 시작했다.

다시 퍼내는 토사의 양은 전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의 혼란이 정리됐다.

그 다음에야 태건은 망연자실한 30대 남자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특수소방단 강태건입니다. 시간 없는 거 압니다. 아는데 꼭 확인할 게 있어서 이러는 겁니다.”

“…….”

끄덕.

듣겠단 고갯짓이 보이자 태건은 이름부터 물었다.

“우선 성함과 부인 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박종민. 그...리고 이혜...진.”

그는 어렵사리 이름을 흘렸다.

그거면 충분했다.

태건은 박종민에게 현재 위치에 대한 추측을 언급했다.

“종민씨, 여기 혹시 현관 아닙니까?”

“…….”

끄덕.

또 한 번 고갯짓을 했다.

태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이혜진씨가 현관에 있는 걸 보셨습니까?”

“……어흑.”

순간 눈물이 울컥한 모양이었다.

태건은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라 재촉부터 했다.

“그거부터 대답해 주세요. 그래야 저희가 더 빨리 찾을 수 있습니다.”

“차, 차에……. 차에 있어서, 곧 나올 때가 돼서…….”

“차에? 설마 저 차요?”

스윽.

태건이 마을 중턱을 가리켰다.

토사에 반쯤 잠겨 있는 소형차가 보였다.

끄덕.

박종민이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건은 그 고갯짓으로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차에 시동 걸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산사태가 나면서 경차를 떠밀어버렸단 건데.’

강도가 약한 산사태라면 가능했다.

지금 집들이 반파된 상황을 봐도 강력한 산사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토사가 빗물에 힘을 잃고 무더기로 떠내려온 거였다.

매몰이란 의미는 꼭 묻힌단 뜻이 아니었다.

어디에 갇힌 경우도 매몰이란 단어로 정의된다.

스스스.

‘그렇다면…….’

다시 반파된 집을 둘러보는 태건의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둘러보는 사이, 태건은 머릿속으로 상상해봤다.

산에서 토사가 쓸려왔을 거다.

그 토사는 집을 부수며 들이쳤을 거다.

그렇다면 위험한 집안에 굳이 버티고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

휙.

고개를 돌려 시선을 넓혀봤다.

가장 가까운 집이 대각선 아랫집이다.

그런데 특이점이 있었다.

집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고 완파되어 있었다.

‘이건 이상하잖아.’

윗집보다 아랫집이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조금씩 들어맞지 않았다.

이내 다시 돌아본 태건은 반파된 벽에 시선이 갔다.

집을 기준으로 뒤쪽이다.

이치상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은 장소일 터였다.

그런데 파괴되지 않았다.

이상해.

느낌 탓인지 시선이 떠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

후다닥.

돌연 태건이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갑작스런 태건의 이탈에 다들 깜짝 놀랐다.

“어어, 쟤 어디가?”

“언젠 말하고 다녔어? 걷어내기부터 계속 해!”

유중헌이 움찔거리자 황대산이 한 마디로 일축시켜버렸다.

단원들과 달리 주민들은 태건이 걱정됐던 모양이다.

아주머니가 반사적으로 아저씨를 떠밀었다.

“우리 동네에 대해 뭘 알겠어요. 얼른 가서 설명도 좀 하고 그래요!”

“알았다니까.”

터, 더덕.

아저씨는 꼼짝 못 하고 떠밀려갔다.

그 사이 태건은 집 뒤쪽에 도착했다.

토사가 켜켜이 쌓여 어깨높이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때 반쯤 파괴된 벽을 보는 태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쩐지.’

반파된 벽 앞에 커다란 바위들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옹벽으로 쌓았던 자재들이다.

그 바위에 막혔는지 떠내려온 나무도 토사에 묻혀 있었다.

이게 벽이 반파된 원인들이었다.

1차적으로는 집에 충격을 줬을 거다.

그 후엔 토사의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으리라 추측됐다.

태건의 생각은 거기서 막혔다.

그 다음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음, 여기가 뭔지 알 수가 있나.”

턱을 쓸며 고민했다.

평소와 달리 혹시나 살아있을 매몰자에게 위험한 행동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타다닥.

동네 사람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4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뭐 좀 알겠어요?”

주민의 등장에 태건은 듬직한 조력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얼른 물었다.

“혹시 이 집 구조에 대해 아십니까?”

“네. 우리 집이랑 똑같더라고요.”

아저씨는 무심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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