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15)화 (114/320)

115화

반면.

띵!

태건의 눈빛은 일순간 빛났다.

다급함에 재빨리 아저씨의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그럼 여기가 어딥니까. 어떤 장소인 겁니까!”

흔들흔들.

엄청난 힘에 아저씨는 낙엽처럼 흔들렸다.

“어, 어어. 이 사람이, 어지러워요!”

“아차. 죄송합니다.”

태건이 얼른 물러나 사과했다.

아저씨는 고인 빗물에 흙을 씻으며 말했다.

“성질머리하고는. 그보다 여기가 보일러실이고, 그 안쪽이 부엌입니다.”

그 소리에 태건은 귀를 의심했다.

“벽이 하나 더 있고, 부엌이라고요?”

“저기 어디 보면 가스통이……. 에구구. 저기까지 떠밀려갔네.”

아저씨는 엉뚱한 곳까지 떠밀려간 가스통을 발견하고는 씁쓸해했다.

태건은 오히려 반색했다.

“그 와중에 정말 다행입니다.”

“에?”

“폭발할 염려는 없으니까요. 그보다 보일러실, 그리고 부엌이라고요.”

스윽.

태건은 반파된 벽을 빤히 바라봤다.

거의 어깨 높이까지 토사가 쌓여 내부가 꽁꽁 숨겨져 있었다.

슬쩍 엿볼 틈새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중해 둘러보던 태건은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슥, 슥.

위에서 보면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높이 쌓인 토사 위에 올라섰다.

거기도 막혀 있었다.

어지럽게 연결된 전기선들을 보아하니 1층 천장 부분인 모양이다.

‘쯧.’

조금만 틈이 있다면 좋으련만.

아쉬움보다 답답함과 조급함이 더욱 컸다.

매몰자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천차만별이다.

소방관은 최악을 가정하고 행동했다.

그렇기에 무의미하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벽과 조금 더 거리를 좁혔다.

그때였다.

푹!

토사의 일부가 무너지며 발이 쑥 빠졌다.

“엇!”

아차 할 틈도 없었다.

주르륵!

푹 꺼진 토사 아래로 쑥 미끄러져 사라졌다.

한편.

여전히 가스통을 보고 있던 아저씨가 너무 조용해 슬쩍 돌아봤다.

태건이 없자 멈칫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갔어? 말은 하고 가야지!”

저벅저벅.

태건이 먼저 돌아간 줄 알고 얼른 움직였다.

같은 시각.

토사에 쓸려 내려간 태건은 그대로 바닥에 부딪쳤다.  

쿵.

“윽!”

엉덩방아를 찧은 태건은 고통보다 긴장감이 더 컸다.  

휙!

재빨리 고개를 들어봤다.

저 위에 구멍이 보이자 어떻게 된 건지 감이 왔다.

“여기가 비어 있었네.”

반파된 벽면 안쪽이다.

토사가 무너지며 미끄러져 내려온 모양이다.

구멍 사이로 검은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촤아악.

빗물은 덤이었다.

“쳇. 운도 더럽게 없지.”

일단 다시 나가야…….

생각하던 태건이 멈칫했다.

여기 공간이 있다고?

휙!

재빨리 좌우를 크게 둘러봤다.

동네 남자의 말대로 부엌이었다.

산사태로 인한 충격이 강하게 들이친 여파로 각종 조리도구들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4인용 식탁은 넘어져 있고, 의자 중 몇 개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얼핏 봐도 토사는 부엌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혼자 알고 있을 일이 아니다.

휙!

태건은 얼른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였다.

“…….”

멈칫.

손가락이 버튼 앞에서 멈췄다.

‘아니야.’

절레절레.

태건은 얼른 마음을 가라앉혔다.  

빗물을 흠뻑 먹은 토사라 쉽게 무너진다.

일시에 우르르 몰려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약 요구조자가 있다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일단 연락은 보류.”

척.

다시 무전기를 허리춤에 걸었다.

태건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기 밖에 없어.’

역시나 넘어진 식탁 방향이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흐린 날씨 탓에 빛이 충분하지 않았다.

얼른 휴대폰 플래시를 켰다.

팟.

어두침침한 공간이 일순간 밝아졌다.

바로 그 순간.

휴대폰을 쥔 손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걸 본 태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건 피다.

“허억!”

턱.

너무 놀라 휴대폰을 놓치기까지 했다.

플래시가 위로 빛을 쏘아 주변이 선명히 보였다.

바닥은 피가 흥건했다.  

태건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일단 안도의 한숨부터 토해냈다. 

“후. 빗물에 희석된 거야.”

그래서 엄청난 출혈로 보였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아니, 지금 그런 걸 논할 때가 아니다.

일순간 태건의 뒷골이 팍 당겼다.

출혈은 곧 부상을 의미했다.

그리고 피를 흘릴 사람이 있어야 했다.

띵.

임산부!

머릿속에 강한 경종이 울렸다.

“이런!”

휙!

태건은 모든 걸 뒤로하고 식탁 뒤로 다급히 움직였다.

그렇게 식탁을 돌아설 때였다.

태건은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펑퍼짐한 옷.

불룩한 배.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매몰된 이혜진이 분명했다.

차작!

재빨리 자세를 낮춘 태건이 소리쳐 불렀다.

“이혜진 씨, 이혜진 씨!” 

반복해 부르면서도 동시에 두 눈은 출혈의 시작점을 찾아갔다.

스슥.

‘저기!’

오른쪽 다리에 꽤 깊어 보이는 상처를 발견했다.

그게 출혈의 원인이 분명했다.

다행히 출혈은 어느 정도 진행된 후 약해진 모습이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이혜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설마?”

휙!

얼른 인중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숨 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살랑살랑.

콧김이 아니, 숨결이 느껴졌다.

내친김에 경동맥에도 손을 대봤다.

툭툭.

약간 빠르지만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살아있다.

그건 확실했다.

생사는 확인했지만 그뿐이다.

태건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과출혈 기절인지, 아니면 단순 기절인지 몰라.”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당장 두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갈 수 없다면 도움을 청하면 될 일이다.

턱!

태건은 무전기를 짚었다.

“…….”

그대로 굳어지더니 이내 무전기를 놓았다.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그 길로 태건은 우선 오광휘 단장에게 전화했다.

뚜루루. 탈칵.

“너 어디 갔어. 아저씨가 휙 사라졌다던데.”

“조용히 사람 없는 곳으로. 어서.”

태건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호했다.

오광휘 단장은 뭔가 감이 온 모양이다.

“어? 흠 기다려.”

“…….”

태건은 이혜진을 계속 주시하며 기다렸다.

곧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제 말해.”

“저 지금 반파된 벽 안쪽에 있습니다.”

“재주도 좋다. 거길 어떻게……. 아니지. 혹시 요구조자 찾았어?”

수더분한 그의 목소리가 돌연 바짝 조여졌다.

태건도 진지하게 통화에 임했다.

“네. 이혜진 씨 여기 있습니다.”

“그럼 알려야지!”

“쉿!

태건이 인상을 쓰며 바로 강조해 말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어? 어, 일단 쉿. 그런데 왜 쉿?”

“현재 상황이…….“

태건은 최대한 간략하게 정보를 공유했다.

곧 태건의 목소리가 끝을 맺었다.

“지반이 약해서 지금……그렇습니다.”

어느새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촥 아래로 깔렸다.

“우선 첫 번째. 박종민 씨에겐 끝까지 숨길 거야?”

“…….”

“그리고 두 번째.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올 거야.”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추린 질문이었다.

태건도 생각한 바가 있었다.

“중장비 언제 도착한답니까?”

“중장비는…….”

기이잉!

육중한 엔진소리와 기계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선명해져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다양한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태건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설마 벌써 소방관들하고 중장비 도착한 겁니까?”

“…….”

오광휘 단장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단장님?”

태건이 다시 입을 열어 그를 찾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무전기에서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거기 야유회 나왔습니까? 3인 1조로 빨리 흩어져요. 어서!

-띠릭. 지원 장비가 포클레인 세 대뿐입니까!

태건은 중장비 이름에 눈빛을 번뜩였다.

“단장님, 단장님!”

“아니, 구급은 아래쪽 맡고, 구조는 일단 올라와서……. 어어. 말해.”

오광휘 단장이 답하자 태건은 바로 부탁했다.

“포클레인 한 대 보내주십시오.”

“벽을 뜯어내려고?”

“그게 지금은 최선입니다. 그리고 지성 선배도 불러 주십시오.”

태건은 근심을 조금 내려놓으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내가 들어가는 게 빠르지 않아?”

“지원 인력이 이제 도착했다면서요. 현장 지휘 안 하실 겁니까?”

“나만 대빵이냐? 나보다 경력 짱짱하신 분들 많아.”

뜻밖의 말을 건넸다.

태건의 두 눈이 바로 가늘어졌다.

오광휘 단장은 곧 죽어도 자신의 일을 미루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 순간 태건이 원치 않게 눈치가 발동했다.

띵.

그와 나눈 단편적인 대화들.

엎어진 결혼사진 등등.

이혜진 씨의 임신 소식에 유독 예민하고 날카로운 모습까지.

결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연관점이 있어.’

그게 오광휘 단장의 소신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당장 그게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오광휘 단장의 현장 지휘 능력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단장님, 어깨 한 번 보시죠.”

“내 어깨? 갑자기……. 흠.”

그의 어깨엔 태건과 똑같은 견장이 달려 있었다.

계급장이 아닌 라텔 캐릭터였다.

그 이유를 이제 와서 상기시킬 필요는 없었다.

대신 자극을 주긴 충분했다.

“감당 안 되면 당장 떼십시오.”

“야, 강태건……. 푸우.”

“지금 이 현장에 꼭 필요한 건 유능한 지휘관이지, 사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소방관이 아닙니다.”

쿠궁.

태건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무섭게 질책했다.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잠시 들리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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