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그 원인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떨어진다.
그저 상상이 아니라, 곧 현실이 될 일이었다.
피할 공간도 여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식탁 위엔 무방비의 임산부가 있었다.
태건은 생각보다 본능이 앞섰다.
꽈악!
뒷덜미를 붙든 이혜진의 손부터 재빨리 떼어냈다.
“끄응!”
꿈쩍도 하지 않았던 손이지만 상황이 다급하니 억지로 뗄 수 있었다.
자유가 된 태건은 이어서 허리를 굽혀 식탁을 집었다. 그러나 혼자 몸으로 이혜진을 모두 감쌀 수 없었다.
직감한 태건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터억!
“젠장……. 지성 선배!”
상부 수납장이 뒤틀리는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우지직!
이지성은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역시 눈치가 예술이었다.
“이런, 뭐 같은!”
터덕!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내던지고 태건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렇게 이혜진의 위로 아치형 터널이 만들었다.
그와 동시였다.
꽈직!
결국 상부 수납장이 떨어졌다.
그 수납장은 태건과 이지성의 등을 직격했다.
꽝!
“커으윽!”
“크윽!”
두 사람의 비명이 좁은 공간을 가득 울렸다.
태건과 이지성은 이를 악문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쓰읍, 쓰읍.”
“푸우우, 후우우.”
등에 가해진 충격이 상당했다.
그 충격을 이겨내려 악다문 이 사이로 숨을 흘렸다.
두 팔에 있는 대로 힘을 줬다.
‘버텨야…….’
‘……산모가 다치지 않아.’
후들후들.
팔이 가늘게 떨렸지만 절대 그 이상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버티는 모습은 비장함을 넘어 어쩌면 처절했다.
그그극. 텅!
등을 가격한 상부 수납장이 굴러 떨어졌다.
무게는 가벼워졌지만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아픔에 잠시 그대로 있어야 했다.
이내 태건과 이지성이 허리를 폈다.
찌릿!
등에서 울리는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크으윽.”
“윽!”
떨어지는 수납장을 등으로 받았으니 괜찮을 리가 없었다.
방화복이면 조금이라도 충격을 흡수했을 터였다.
흠뻑 젖은 기동복 차림은 아무런 보호 능력이 없었다.
당연히 아픔이 몇 배나 더 했다.
그럼에도 둘 다 자신은 개의치 않았다.
“이혜진 씨!”
“괜찮으십니까!”
사삭.
얼른 이혜진의 상태를 확인하고 묻기 바빴다.
그러한 그들의 희생에도 이혜진은 다시 고통을 호소했다.
“하으으, 배가 아, 아파요. 하아으으으.”
꾸욱.
두 팔로 배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빠르게 창백해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갔다.
절대 일반적인 통증이 아니다.
그걸 직감한 태건은 얼른 이지성을 쳐다봤다.
“그래서 뭐랍니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진통이 시작될 수 있대.”
“그걸 왜 이제 알려준 답니까!”
태건은 이지성이 아닌 통화 상대를 탓했다.
“그……. 일단 여길 나가야 돼.”
이지성이 하려던 말을 감추고 다른 말로 돌려쳤다.
태건의 눈동자가 좁아졌다.
뭔가 하지 못한 말이 있다는 건 직감했다.
냉소적인 이지성이 감춘단 건 산모가 들어 좋을 게 없단 의미였다.
이유 없이 감출 성격이 아니다.
그건 확실했다.
태건도 당장 문제 해결보다 산모의 통증에 더 치중했다.
그래서 얼른 질문을 바꿨다.
“진통제 투여하면……. 엇, 그거.”
“진통제 희석한 거,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더라.”
이지성은 어느새 준비한 주사기를 들어보였다.
스윽.
그 주사기가 이혜진의 살을 파고드는 순간이었다.
“흐으으. 안, 안 돼요!”
착!
격통에 꼼짝 못 하던 이혜진이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태건이 얼른 이혜진을 설득했다.
“진통제를 희석한 거라 태아에 문제없답니다. 병원에서 알려준 겁니다.”
“흐으, 흐으으!”
도리도리.
이혜진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존경스런 모성애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진짜 괜찮다니까요. 이혜진 씨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 아기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싫. 싫……. 흐으으. 안……. 견딜 수…….”
휙휙.
이혜진은 고집 정도가 아니라 집착에 가깝도록 고개 저었다.
너무도 완강했다.
이지성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치잇!”
“선배는 또 왜 그래요!”
“…….”
이지성은 외면한 채 입을 다물었다.
한 번 저러면 절대 말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태건은 일일이 씨름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에잇!”
허리춤에 무전기를 낚아채 오광휘 단장을 호출했다.
띠릭.
“단장님,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띠릭. 거의 다 왔어, 짜샤!
둥둥둥. 기이잉.
그제야 바닥이 자잘하게 울리고 기계소리도 들려왔다.
그 거리가 상당히 가까웠다.
상부 수납장이 떨어져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태건은 이쪽 상황을 추가적으로 전했다.
띠릭.
“산모 산발적 격통 호소, 빨리 병원으로 가야 됩니다!
-띠릭. 수신 확인……. 도착했는데 뭘 보고 서 있습니까. 흙을 퍼내고, 포클레인도…….
오광휘 단장의 지휘 소리가 무전기 가득 들려왔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그러길 태건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았다.
그그. 꽈직.
멈췄던 벽이 더 기울어져갔다.
그런데 그중에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 있었다.
휴대폰 플래시로 비춰보던 태건은 그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두둑.
시멘트 가루가 떨어졌다.
벽에 균열이 생겨 있었다.
‘이젠 하다 하다 벽까지 말썽이냐!’
태건은 눈을 부릅떴다.
짜증과 달리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단단하게 고정됐을 상부 수납장이 떨어진 게 전조 증상이었다.
사실 지반이 약해져 있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태건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부른 건 자력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현재 상황 탓이었다.
게다가 상부 수납장에 얻어맞은 등이 변수였다.
“크윽.”
욱신거리는 등의 통증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긴장한 상태에서 이 정도는 아픔이 됐다.
긴장이 풀리게 된다면 데굴데굴 구를지도 몰랐다.
이지성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때였다.
이혜진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가. 흐으으. 안 돼……. 끄으, 이 아이는……. 안 돼요.”
누군가에게 소원하는 혼잣말이 더해졌다.
태건은 그 소리에 멈칫했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가 있단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주르륵.
이혜진의 허벅지를 타고 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하혈!”
“몸도 떨어.”
“뭐합니까. 일단 진통제 주사하세요!”
태건이 이지성에게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젠 깡으로 버티기에 이혜진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지성이 주사기를 들지 않았다.
대신 바짝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스윽.
“이런 경우……. 초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해.”
“…….”
투둥.
태건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크게 떠졌다.
아이가 없는데, 첫 임신이 아니다.
그 속뜻이 태건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유산.
동시에 그저 모정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특히 진통제 같은 투약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렇다면.’
이혜진의 필사적인 거부 반응이 조금은 이해됐다.
이해하고 끝낼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그게 이혜진을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인 아픔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소중한 새 생명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이렇게 계속 버티기만 한다면 태아는 물론 이혜진의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마음은 백번도 넘게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졌는데 솟아날 구멍조차 없는 현실이 문제였다.
압박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이 상황이, 처한 현실이.
너무도 막막했다.
압박에 압박이 더해진 그 순간이었다.
피잉!
태건의 분위기가 거칠게 돌변했다.
답답하기만 한 이 상황에 진심으로 분노를 내보였다.
“진짜 엿 같네!”
“어?”
험한 말에 이지성이 놀라 바라봤다.
태건은 살벌해진 눈으로 으르렁거렸다.
“언제까지 이런 빌어먹을 상황에 끌려다녀야 합니까!”
“어쩌려고.”
“……차라리 부숩시다.”
쿠궁.
태건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벽을 부수잔 의미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한다면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순간 이지성이 격하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응수했다.
“뚫을 수 없다면 부순다. 그래야 라텔답지.”
번쩍!
이지성의 눈빛도 날카롭게 빛났다.
결단을 내린 태건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띠릭.
“라텔 투입.”
-띠릭. 뭐? 재송신.
“라텔 하나. 반복합니다. 라텔 하나 상황……. 유중헌을 제외한 모든 단원들은 밀고 들어오세요.”
꽈악.
태건은 딱딱한 목소리만큼 무전기를 으스러지게 쥐었다.
라텔 하나.
그들끼리 세운 단계별 수칙 중 첫 번째였다.
일종의 동원령이었다.
현재 요구조자의 구조가 어려운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다.
누구라도 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이지성이 쓴 눈빛으로 읊조렸다.
“유서 잘 써놨네.”
누군가 희생될지도 모른단 의미다.
라텔의 수칙이 발동할 땐 그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칙을 발동시킬 상황은 최악 중에 최악일 수밖에 없었다.
곧 오광휘 단장의 착 가라앉은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라텔 하나 확인……. 지금 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