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무전이 끝남과 동시였다.
사아악.
한쪽 가득 채워진 토사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토사를 타고 오광휘 단장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 혼자가 아니었다.
촤악, 촤아악.
여기저기 토사가 무너졌다.
그 틈새로 황대산, 고수현이 차례로 등장했다.
수칙 발동 후 고작 몇 초 사이였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태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뭘 더 바라나.’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때 황대산이 품고 온 걸 내보였다.
“여기 담요!”
척.
내미는 손끝에는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끼기기.
무너진 토사로 인해 벽이 더 기울기 시작했다.
감격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태건은 뭉클한 속을 차갑게 붙들며 말했다.
“담요부터 두르죠.”
“오키!”
모두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장장 다섯 명의 장정이 힘을 합친 순간이다.
아무리 임산부라고 해도 담요를 두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삭.
곧 이혜진의 몸이 담요로 뒤덮였다.
“으으으, 안……. 흐으으.”
이혜진 목소리가 흐릿해져갔다.
버티는 데 한계가 찾아오는 거였다.
태건은 그런 이혜진의 복부 위에 엎드렸다.
이번에도 불룩한 배에 닿지 않게 아치형으로 버틴 모습이었다.
“…….”
슥, 슥.
오광휘 단장부터 모두 똑같이 행동했다.
곧 이혜진은 라텔 단원들에 가려져 볼 수 없게 됐다.
그그극.
벽이 쓰러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동시에 무전기에서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릭. 포클레인 원, 투, 쓰리. 벽 부수세요.
-띠릭. 지금 뭐라고……. 당신들 안에 있잖아요!
-띠릭. 부수라면 부숴. 당장!
오광휘 단장이 따갑게 외쳤다.
…….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상식적으로 보면 망설이는 게 당연했다.
그때 태건이 무전기에 대고 강하게 외쳤다.
“중헌 선배!”
갑작스런 부름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중헌의 반응이 들려왔다.
이젠 그의 어투만 들어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가능했다.
-띠릭. 그럴 줄 알고 대기 중이었어. 이 꼴통들아.
“그럼……. 부셔!”
-띠릭. 죽지 마라!
무전이 끝남과 동시였다.
꽈가가가!
포클레인의 버킷이 벽을 파고 들어왔다.
안 그래도 부실한 벽이 금세 부서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 여파로 무너진 벽돌들이 라텔의 등에 직격했다.
퍽, 퍼버벅!
“흐으읍.”
“끄으응!”
아픔이 일고, 무게가 짓누른다.
그로 인해 신음이 터지고 괴로움을 흘렸다.
균형을 잃은 토사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촤아악!
쏟아지는 토사가 벽돌 위를 덮으며 무게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럼에도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버티고 버텼다.
자신들이 구하는 건 비단 한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과 새로운 생명.
그리고 이혜진의 남편까지.
세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거였다.
그에 비하면 이 무게는?
‘이까짓 정도야......’
까득.
이를 악물고 버텼다.
혼자라면 결코 버틸 수 없는 무게다.
그러나 모두가 나누니 어떤 무게도 두렵지 않았다.
우르르.
벽이 전부 무너지며 모두를 삼켜버렸다.
밖에선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폭주한 포클레인이 벽을 부숴버린 탓이다.
그것도 동료들이 그 속에 뻔히 있는 걸 알고 한 행동이다.
아무리 부수라고 했어도, 그대로 행한단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식을 논할 가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상식을 보란 듯이 깨부숴 버렸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뭔 일이야!”
소리침과 동시에 일제히 달려들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포클레인에서 유중헌이 부리나케 뛰어내렸다.
파바박!
“흐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다가선 그는 무너진 벽돌 더미로 뛰어들었다.
턱턱턱.
두 손으로 돌을 걷어내고, 흙을 쓸어냈다.
상처가 점점 늘어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제발, 제발!”
처절하게 외치며 미친 듯이 손을 놀렸다.
무너뜨린 건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라 그런 거였다.
그 속에서 고통받을 단원들을 구하고픈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다.
상반된 모습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유중헌의 양면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런 유중헌의 주변으로 모든 소방관들이 달려와 손을 보탰다.
우르르.
“이상한 놈들만 모아 놨다더니!”
“진짜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냐!”
“이 빌어먹을 놈들아!”
투정과 불평을 마구마구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이 진심으로 나무라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이들도 무전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터덩! 벅벅!
“서둘러!”
그래서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기이잉.
멈춰 있던 다른 포클레인들도 덩달아 움직였다.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힘을 합친 순간이다.
짧은 시간 동안 벽돌과 흙을 상당히 많이 걷어냈다.
가장 앞엔 유중헌이 있었다.
팍팍!
여전히 미친 듯이 긁어내던 중이었다.
흙으로 엉망이 된 주황색 기동복이 드러났다.
유중헌이 휘둥그레 뜨며 소리쳤다.
“엇, 여기!”
“다 왔어. 주변을 걷어내!”
“서둘러. 더더더!”
재촉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손길도 더욱 빨라졌다.
이내 주황색 기동복이 곳곳에 드러났다.
들썩.
등이 가벼워져 그런지 꿈틀거림이 확연히 보였다.
“단장님, 태건아, 대산 선배, 수현아, 지성아!”
유중헌이 눈물 콧물 흘려가며 애타게 불렀다.
흔들흔들.
등을 흔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불쑥 몸을 폈다.
푸악!
“푸우우. 나왔다!”
외치는 인물은 다름 아닌 태건의 얼굴이었다.
그가 시작이었다.
불쑥, 불쑥.
오광휘 단장부터 한 명씩 몸을 폈다.
“푸하! 공기 맑네!”
“어푸푸. 흙이 입에 들어갔어!”
“크으. 등짝 쑤셔. 하지만 남자가 이 정도는 까딱없지!”
“……하, 이게 되네.”
제각각 자신만의 표정과 말투로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런 그들의 온몸이 흙과 먼지, 분진으로 뒤섞여 엉망이었다.
그들 모습에 유중헌이 환호했다.
“살았다!”
“선배, 아직 아닙니다!”
“엇, 아……. 맞다!”
타다닥!
날듯이 기뻐하던 유중헌이 갑자기 현장을 이탈했다.
혼자 너무 정신없어 보였다.
그때 태건의 팍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모두가 마주 소리치며 행동으로 옮겼다.
“들어!”
불쑥.
무언가 아니, 담요에 둘둘 말린 들것이 솟아올랐다.
요구조자인 이혜진이었다.
놀랍게도 담요 위는 흘러내린 몇 톨의 흙을 제외하고는 너무도 깨끗했다.
그 길로 벽돌 더미에서 빠져나온 라텔은 마을 어귀로 향했다.
“서둘러. 빨리!”
“다 비켜!”
“나와요. 나와!”
“발 맞춰, 균형 맞춰, 가!”
착, 착, 착.
들것을 들고 발까지 맞춰 움직였다.
저 앞에 유중헌이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었다.
태건과 라텔이 지나쳐갈 때였다.
소방관들의 시선이 저절로 그들을 따라갔다.
“저, 덩치 큰 소방관은 피가 흐르는 거 아니야?”
“야리야리한 소방관은 비틀거려.”
“기동복이 여기저기 찍히고 찢어진 거 같은데.”
당황한 목소리들이 슬그머니 울렸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저 속에 있던 애들이 어떻게 바로 저렇게 움직이는 거야?”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단 표현이 더 정확했다.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두 한 번쯤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극한의 압박을 느끼면 육체적 고통은 까맣게 잊히게 된다.
지금 라텔이 그 상태였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119구조버스가 도로를 거칠게 질주했다.
어디 소속 차량인지도 몰랐다.
그냥 보이는 대로 집어타고 내달리는 중이었다.
콰아앙!
“다 비켜, 비켜!”
두 눈에 불을 켠 유중헌이 고래고래 소리치며 운전했다.
촤아악!
여기저기 도로에 고인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과격한 속도만큼 핸들링도 예사롭지 않았다.
끼기긱.
격한 회전에 차 내부가 요동칠 정도였다.
다행히 들것은 전용 공간에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흐으……. 흐윽, 흑.”
이혜진의 괴로움이 너무도 짙어져 있었다.
숨소리마저 거칠었다.
인공호흡기 등, 응급처치 중임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손을 남편인 박종민이 잡아주고 있었다.
안타까움에 속이 미어지는 그는 지금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혜진아, 이렇게 버티지만 말고 진통제라도…….”
“끄으으.”
절레절레.
이혜진은 진통제란 말만 들어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결국 박종민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내가 미안해. 내가.”
꽈악!
비통한 눈물이 뺨을 적셨다.
라텔은 사방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라도 CPR 할 수 있게 준비까지 해 놓았다.
그만큼 일촉즉발이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 초조하기만 했다.
…….
공기가 묵직함에 짓눌려 가라앉은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