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20)화 (119/320)

120화

태건은 한쪽에서 전화 중이었다.

“……그렇게 서두르면 산사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요구조자가 더는 없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스윽.

태건이 휴대폰을 건네자 오광휘 단장이 받아들었다.

“네, 금산서장님……. 네, 그럼.”

탁.

간단히 통화를 마친 오광휘 단장이 넌지시 말했다.

“바로 전 인원 투입한단다. 너무 늦진 않을 거야. 믿고 맡기자.”

끄덕.

태건은 고갯짓만 했다.

그 시선의 끝엔 이혜진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속으로 응원했다.

병원이 머지않았음을 아는데도 아직은 멀게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금산 인삼병원 응급실.

쾅!

라텔 모두가 동시에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태건은 오늘만 두 번째 방문이었다.

잔뜩 쉰 목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응급환자입니다!”

“응급환자요!”

“의료진 어디 있습니까!”

뒤따라 단원들도 외쳐 목소리를 더해줬다.

그 외침이 잦아들기도 전이었다.

“갑니다!”

그릉그릉.

미리 연락받고 대기 중이던 의료진이 쏜살같이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후.

“비켜 주세요!”

“응급환자입니다!”

그르릉.

이혜진을 태운 스트레쳐카가 후다닥 떠나갔다.

그 뒤를 남편 박종민이 함께했다.

이내 라텔의 주변이 한가해졌다.

그제야 다들 바짝 올라간 어깨가 살짝 내려갔다.

“후우우.”

“제발 순산하세요.”

“이렇게까지 버텼는데, 더는 문제없을 겁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구한 요구조자인만큼 무사하길 한 번 더 진심으로 빌었다.

그런데 그들은 응급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태건이 천천히 둘러보더니 이내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스륵.

“휴, 이제 살만하네.”

“삭신이 쑤시네.”

오광휘 단장도 옆에 앉더니 모두에게 손짓했다.

그에 맞춰 단원들이 순서대로 의자에 앉았다.  

“아이고, 이제 등 펴네.”

“아. 좋네요.”

한시름 놓은 목소리가 함께였다.

동시에 모든 단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야 고통이 온몸으로 밀려온 탓이다. 

“윽.”

“허리가 안 펴져.”

“난 팔이 안 움직여.‘

바로 그때였다.

표정을 굳힌 의사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차자작.

“여기서 뭐하시는……. 허억!”

의사가 깜짝 놀랐다. 

라텔 단원들의 기동복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흐른 피와 울긋불긋한 팔을 이제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광휘 단장부터 반응이 달랐다. 

“출산 어때요?”

“순산하나요?”

“문제없어요?”

다들 이혜진 걱정만 늘어놨다. 

물론 의사는 입장부터 달랐다. 

놀란 의사가 뒷걸음질 치다 소리쳤다. 

“e, emergency!”

그때부터 응급실은 급작스럽게 출현한 환자들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금산 인삼병원의 6인실.

다른 병실과 달리 보호자 없이 환자들만 가득했다.

환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팔다리부터 몸까지.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 있단 점이었다.

그들은 응급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라텔이었다.

조용해야 할 병실 속에서 괴로운 신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으으으.”

“끄으으.“

의사의 말이 절로 떠올랐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겁니까.

각자 그런 부상이라 꼼짝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서로 눈이 마주치면?

“끄흐흐. 꼴, 꼴 좋다.”

“누가 할……. 끄응. 소린지.”

서로 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들의 입가엔 놀랍게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괴로운 미소.

아이러니한 표정이다.

그건 이들이 걸어가는 길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얼굴이기도 했다.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어제 하루종일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다.

그러나 장맛비가 끝난 건 아닌지 하늘에는 아직 먹구름이 가득했다.

밤새 라텔의 병실에 달라진 점이 있었다.

괴로운 신음소리가 사라졌다.

강력한 진통제란 요술약이 일군 쾌거였다.

어느덧 점심시간.

여섯 명의 단원들 모두 식사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붕대가 감겨 있어 움직이기 불편해 보였다.

그런 자신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풍 같은 식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아구 아구, 찹찹.

“여기 밥 진짜 끝내주는데?”

“맛보다는, 쩝쩝. 배고파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제 아무것도 못 먹긴 했죠. 아, 밥 좀 많이 주지.”

빠르게 비어가는 식판에 아쉬움을 가득 내보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드륵.

병실 문이 열렸다.

그러나 식사에 진심이라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척.

양복 입은 누군가 안으로 들어오며 첫 마디를 꺼냈다.

“연락받고 서두르길 잘했어. 다행히 때맞춰 온 모양이야.”

낯익은 목소리에 다들 멈칫했다.

이 목소리?

휙.

고개를 들어보니 우석진 정책과장이 서 있었다.

화들짝 놀란 오광휘 단장이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아직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픔은 없지만 근육이 제멋대로였다.

“일동 차렷, 으윽!”

풀썩.

보다 못하겠던지 우석진 정책과장이 손을 들어 만류했다.

“됐어. 환자들한테 무슨 인사를 받나.”

“크흠.”

“그보다 양이 적어 보이는군.”

척.

그는 흡족한 얼굴로 준비한 걸 들어올렸다.

고소한 향기가 병실을 가득했다.

벌름벌름.

코평수를 넓히던 모두가 눈빛을 반짝였다.

“이 냄새.”

“흐음. 치킨 냄새.”

대번에 알아챘다.

정답이었는지 우석진 정책과장이 직접 한 상자씩 전해줬다.

턱. 턱.

“요즘 1인 1닭은 기본이라지.”

“네, 맞습니다!”

“천천히 먹어. 내 담당의사 좀 만나고 다시 돌아오지. 그리고…….”

우석진 정책과장이 말꼬리를 늘였다.

…….

태건과 모두가 갸웃거리며 바라봤다.

스윽.

돌아선 우석진 정책과장이 병실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다들 잘했어.”

탁.

말을 흘리고는 병실 문을 닫았다.

순간 병실 내에 정적이 흘렀다.

…….

그러다 오광휘 단장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물었다.

“방금 뭐, 뭐라고 하고 나가신 거냐?”

“에, 어……. 식사 끝나면 연락하라고 하신 거 같습니다.”

“대산 선배 말에 한 표.”

스윽.

고수현이 손을 들어 동조했다.

그럴 정도로 잘못 들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태건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잘했다잖습니까.”

“오모나, 진짜 그렇게 말한 거야?”

오광휘 단장이 눈을 끔벅거렸다.

“뭐, 수고한 건 사실이니까요.”

이지성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혼란이 가라앉자 두 눈에 치킨 상자가 가득 들어왔다.

솔솔.

고소한 향이 자꾸만 유혹했다.

그런데 누구도 쉽사리 손을 뻗지 못했다.

“이거 우리 먹으라고 사준 거 맞지?”

“저도 그렇게 생각은 드는데…….”

말을 받은 고수현의 목소리가 끝을 맺지 못했다.

그때 이지성이 툭 치고 나왔다.

“저 꼰대가 또 뭔 꿍꿍인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입니다.”

하여간 곱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달각, 달각.

황대산과 유중헌은 괜스레 치킨 박스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다들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 태건은 달랐다.

기세 좋게 닭다리를 들어올려 한 입 크게 물었다.

와삭!

“이거, 이야. 엄청 바삭한데요. 맛있네.”

감탄에 이어 본격적으로 흡입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더 보란 듯이 먹고 있었다.

그런 태건의 행동에 다들 용기가 생긴 모양이었다.

“머, 먹어도 되나 봐.”

“에잇, 먹읍시다. 설마 구경하라고 가져다 놨을까요.”

“오오. 진짜 맛 좋네요.”

바사삭.

바삭한 치킨의 식감에 모두 표정이 환하게 물들었다.

뜻밖의 선물이라 더 끝내주는 맛이었다.

잠시 후.

정돈된 병실 한가운데 우석진 정책과장이 자리해 있었다.

그는 오광휘 단장부터 쭉 둘러보며 물었다.

“어제 많이 힘들어했다던데, 지금은 괜찮나?”

“끄덕 없……. 끄으음. 없습니다.”

“괜찮지 않은 모양이군.”

“…….”

오광휘 단장의 대답이 탁 막혔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금산서장에게 보고받고 참 당혹스러우면서도 자네들답다 생각했어.”

“그러셨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첫 공식 출동부터 모조리 병원 신세를 지게 될 줄이야.”

“…….”

다들 눈치를 보느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우석진 정책과장의 그간 행보를 본 탓이었다.

어디까지가 호의이고, 배려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반면.

태건만이 유일하게 무던히 반응했다.

“저희도 이런 상황에 이르길 원한 건 아니었습니다.”

“응당 그렇겠지. 누가 아픈 걸 좋아할까.”

“그래서 말씀인데…….”

태건이 말꼬리를 늘이자 우석진 정책과장이 묘한 눈빛을 띠었다.

“이제와 위험을 피하겠단 건 아닐 테고.”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뭐지?”

“병원비는 개인 정산입니까?”

투둥.

태건이 묵직한 분위기를 뒤집고 엉뚱한 질문을 건넸다.

그러나 라텔의 그 누구도 헛웃음 짓지 않았다.

“…….”

꾸욱.

눈빛이 더 가라앉고 얇은 이불까지 쥐었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크게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나. 예산에 포함되어 있으니 걱정할 거 없어.”

“그 말씀이 너무 듣고 싶었습니다.”

태건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반면 다른 단원들은 손바닥에 돋아난 식은땀을 털어내야 했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휴, 다행이다.’

똑같이 안도했다.

병원비.

심지어 응급실까지 이용했다.

아무리 수당을 많이 받아도 월급쟁이로선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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