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22)화 (121/320)

122화

여러 군데에 걸쳐 순회를 마친 태건은 본인 병실로 돌아왔다.

그륵.

문을 연 순간 태건은 코를 킁킁거렸다.

삭막하던 병실에 과일 향이 짙게 풍겨 나온 탓이다.

진짜 과일바구니가 있었다.

“그새 지영이 부모가 다녀갔습니……. 에? 대체 몇 개를 사온 겁니까.”

태건이 들어가다 멈칫했다.

큼지막한 과일바구니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통조림 캔이나 간편 식품들도 꽤 있었다.

놀란 태건에게 사과를 든 오광휘 단장이 말했다.

“T타워 주민들이 보낸 거야.”

“그 집이 평소에 많이 베풀고 살았답니까?”

“그게 아니라, 2차 산사태 피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찾아오셨더라. 지영이 부모도 그때 같이 왔었어.”

와작.

오광휘 단장은 보란 듯이 사과를 씹었다.

반면 태건은 이해 못한 표정이었다.

“금산서장님이 말씀하셨답니까?”

그 대답은 옆 병상에서 통조림을 손에 든 황대산이 했다.

탈칵.

“금산서장님 역시 의리파였어. 남자라면 그런 솔직한 부분이 있어야 하고 말고!”

“대체 뭔 소립니까.”

태건은 계속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스윽.

고수현이 그런 태건의 뒤를 지나며 말했다.

“방송국에서 찾아온데, 얼른 준비해라.”

“네? 어……. 씻으셨습니까?”

“스타는 언제나 빛나야 하는 법. 꾀죄죄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맞을 순 없지. 룰루루.”

슥슥.

거울 앞에 선 고수현은 가르마를 이리저리 넘겨가며 답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붕대를 목까지 가득 감아서 그런지 그의 외모가 전혀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보다 문제는 또 따로국밥이란 부분이었다.

이제 살만한가 보다.

하여간 틈만 주면 각자 딴짓하기 바빴다.

태건은 그나마 원만한 대화가 가능한 유중헌에게 다가가 물었다.

“중헌 선배, 금산서장님은 뭐고, 방송국은 뭡니까.”

“아, 잠깐만 사진 먼저 보낼게.”

까똑.

바로 휴대폰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확인하자 T타운 뒤의 야산 사진이었다.

슥슥.

태건도 궁금했던 차였기에 얼른 확인했다.

추가 산사태는 정말 발생했다.

그만큼 사진 속 모습은 자신들이 떠난 후와 또 달라져 있었다.

마을 왼쪽 비탈길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휘우, 엄청 쏟아졌네.”

“그리고, 잠시만.”

까똑.

또 한 번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이번에 도착한 건 신문 기사 캡쳐본이었다.

-기록적인 폭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사상자를 줄인 금산소방서.

……금산소방서장은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로 특수소방단 ‘라텔’을 꼽았다. 라텔은 급성폐렴과 신부전증을 앓은 채 급류에 고립된 조손,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급류를 건너 병원으로 이송해 다행히 생명을 구했다. 

특히 금산T타워의 산사태 발생 때 임산부 매몰자를 위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으로 전원 들어갔다.

매몰되면 전원 사망할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곳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임산부를 무사히 구출해 순산을 이끌었으며........

기사는 금산소방서장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된 모양이었다. 

그 내용을 쭉 확인한 태건은 적잖이 놀랐다.

“대박인데.”

그러나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유중헌이 다른 걸 보여줬다. 

“이거 봐.”

“뭔데요? 아니 이건!”

거기에는 홍지영과 할아버지를 구하는 장면이 그대로 영상으로 보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흙탕물을 뚫고 강을 건너는 장면이 고스란히 보였다. 

더불어 이혜진을 매몰된 땅속에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흙을 뒤집어 쓴 채 상처투성이 몸으로 이혜진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태건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툭하니 질문을 던졌다.  

“이거 누가 찍은 겁니까?”

“마을 청소년들이 찍었다더라. 어린 친구들이 인터넷에 밝잖아.” 

유중헌이 대답하자마자 홀로 병상에 누워 있던 이지성에게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한산 들개들 건도 알려졌어.”

“에? 그건 좀 지난 일이잖습니까.”

“그땐 누군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 넘어간 거였지.”

“그거야……. 그런데 어떻게요?”

태건이 재차 묻자 이지성이 동여맨 붕대가 답답한지 들썩이며 말했다.

“기자 한 명이 과수원 사장님하고 인터뷰하다가 말이 나온 모양이야.”

“야, 이지성. 그건 아저씨 탓하면 안 된다니까.”

한껏 멋을 내던 고수현이 얼른 비호했다.

이지성은 듣자마자 반박했다.

“제가 지금 아저씨 흉보는 겁니까. 사실을 말하는 거잖아요.”

“어른이 그럴 수도 있지. 뭘 일일이 따지고 그래!”

“선배야말로. 지금 거울이랑 대화하십니까. 목까지 칭칭 감고 있으면서 뭔 멋이야.”

“야, 네가 움직이기 불편해서 시비 거는 거지!”

“아씨. 그때 선배가 내 발 밟았잖아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갔다.

그러자 황대산이 통조림을 거칠게 내리치며 한소리했다.

퉁!

“이 자식들아, 사내 자식들이 뭔 말이 많아. 열 받으면 나가서 한판 뜨고 와!”

“서, 선배. 목소리가 제일 시끄…….”

“아, 진짜. 유중헌이. 목소리 좀 크게 하라니까!”

징징.

병실 속이 따가운 대화로 삽시간에 채워졌다.

태건은 속으로 자책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괜히 질문해 먹잇감을 던져준 게 잘못이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사과를 내리며 따갑게 소리쳤다.

“이 짜식들. 이제 좀 살만해졌지!”

그 외침에 다들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단장님이나 좀 조용히 말해요!”

“귀 따가워 죽겠네.”

단원들의 반발에 오광휘 단장 얼굴이 시뻘게져 갔다.

“이 자식들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대체 언제요!”

“아이씨. 다 시끄러. 입 닫아!”

웅성웅성.

조용해야 할 병실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태건은 어이가 없었다.

어제 그 끈끈했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게 평소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보여준 단합력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견원지간이었다.

‘아, 머리 아파.’

턱.

병상에 누운 태건은 귀를 막았다.

인터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얼른 퇴원이나 했으면.

이 난장판 속에 더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겨날 거 같았다.

*  *  *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때가 되자 약속대로 기자들이 찾아왔다.

인터뷰는 환자들을 고려해서 병실이 아닌 옥상정원에서 진행됐다. 서울의 대형 종합병원이 아닌지라 기자회견을 할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었던 탓이다. 

옥상정원 벤치에 오광휘 단장부터 태건까지 길게 자리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오광휘 단장이 짧게 헛기침부터 날렸다. 

“음. 뭔가 빠진 거 같네.”

“허엄. 이거 참. 첫 인터뷰인데.”

그 말에 다들 토를 달았다. 

기동복 차림에서 그날의 현장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찢어진 기동복 사이사이로 붕대가 보여 애잔함이 가득 흘렀다.

그들 앞엔 대여섯 명의 기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방송용 카메라가 촬영 중이었다.

촬영 기자 한명이 손을 높게 들었다. 

“지금 딱 좋습니다. 생생한 현장감이 확 느껴집니다.”

“그대로 저희 보시고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기자들은 수더분하게 권했다.

그러나 마이크 뭉치를 쥔 오광휘 단장은 낯설어했다.

“이거 참.”

그 모습에 앞에 기자 중 한 명이 미소 띤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카메라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에, 그게. 그렇지!”

스윽.

오광휘 단장이 슬쩍 마이크 뭉치를 옆으로 떠넘겼다.

황대산이 무심코 받아들었다가 움찔했다.

“어? 어……. 여기.”

휙.

그는 얼른 유중헌에게 넘겼다.

“허억, 난…….”

사삭.

유중헌은 아, 뜨거라한 손짓으로 고수현에게 넘겼다.

고수현이라면 이 순간을 즐길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또한 긴장하고 있었다.

“에……. 저, 에잇.”

슥.

이지성은 말도 없이 태건에게 건넸다.

“…….”

턱.

결국 마이크 뭉치는 태건의 손에 쥐어졌다.

‘뭐, 뭐야?’

막내인 자신에게 떠미는 선배들 모습에 태건은 어이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던 기자들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게 마이크지, 뜨거운 감자가 아닙니다.”

“하하.”

웃음이 가볍게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이 어색한 분위기를 살살 녹여줬다.

그래도 선배들의 미소는 아직 어색하고 딱딱했다.

이대로는 온전한 인터뷰가 어려워 보였다.

태건은 잠시 생각하고는 의견을 말했다.

“저희가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냥 저희들 보시고 하시면 되는데…….”

“그러지 마시고, 개별 인터뷰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태건은 부드럽게 제안했다.

기자들도 느낀 모양인지, 빠르게 합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들 하시죠.”

“그럼 선배님들, 따로 자리할까요.”

스윽.

태건이 먼저 일어나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러자고.”

“태건이가 이럴 땐 참 든든하단 말이지.”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은 부담이 한층 줄어든 얼굴로 일어났다.

그러다 슬쩍 태건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말해야 되는 거야?”

“소신껏 하세요. 소신껏.”

“격한 말이 튀어나오면 어째.”

“알아서 거를 겁니다. 긴장 푸시고요.”

태건은 선배들의 굳은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멍석을 깔아줘도 걱정이니.’

생각은 그래도 그런 순박함이 싫진 않았다.

곧 개별 인터뷰를 위해 흩어졌다.

그때 태건을 부르며 다가온 기자가 있었다.

40대 초반에 눈썹이 짙어 상당히 고집스런 인상이었다.

“강태건 단원, 저랑 먼저 인터뷰 하시죠.”

“그러실까요.”

“위치가……. 저쪽이 좋겠네요. 가실까요.”

스윽.

기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안내했다.

그와 이동하는 태건은 어째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아!’

태건은 그가 초면이 아님을 곧 알아챘다.

이내 옥상 곳곳에서 개별 인터뷰가 진행됐다.

태건도 등 뒤로 널찍한 농촌 풍경을 둔 모습이었다. 어두운 하늘이 여름이라는 계절을 선명히 나타냈다.  

찰칵찰칵.

사진기자가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태건과 마주한 기자는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사락.

“카메라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붕대는 CG처리 해주시는 거죠?”

슬쩍 칭칭 감은 오른팔을 들어보였다.

그 말에 기자가 환하게 웃었다. 

“하하. 유쾌하신 분이네요.”

“그보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와 주실 줄은 몰랐네요.”

태건이 꺼낸 말에 기자가 살짝 놀랐다.

“저희가 서울에서 내려왔단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스포츠센터 화재 상황실에서 뵀던 기억이 납니다.”

태건이 대답하자 기자가 조금 기분 좋은 얼굴로 명함을 건넸다.

“이야, 잠깐 뵀는데 기억하고 계실지 몰랐습니다. SBC 이강찬입니다.”

“전 마땅히 드릴 게 없네요.”

“기동복이 명함인데요.”

이강찬 기자의 대답이 호의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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