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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23)화 (122/320)

123화

당연히 태건의 표정도 부드럽게 변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그때 기사에 첨부 사진 괜찮았습니까?”

“……어?”

태건은 순간 멈칫했다.

소방호스로 레펠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

그게 이강찬 기자의 작품인줄은 몰랐던 탓이다.

반면 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후후. 그 기사 보셨나 봅니다.”

“잠깐이었는데 그 장면이 찍혀서 좀 놀라긴 했습니다.”

“원래 기자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법이죠.”

이강찬 기자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수더분한 대화로 분위기가 한층 좋아졌다.

그 분위기를 이어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강찬 기자는 라텔에 대해 알고 있어 그런지 질문에도 깊이가 있었다.

“우선 어떻게 금산까지 내려오셨는지…….”

“금산T타운 산사태를 어떻게 예측했는지…….”

“입원하신 경위에 대해서도…….”

이어진 질문에 태건은 차분히 답했다.

“소방청의 대응총괄과 분석 자료를 토대로…….”

“산사태 예측은 구조 중 울림이 느껴져…….”

슥슥.

약간의 손짓을 더해 좀 더 풍성하게 설명했다.

대략 20여 분이 지난 후였다.

이강찬 기자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금산에 대해선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뭐가 더 남았습니까?”

“라텔에 대해서요. 창단 때 제대로 인터뷰를 못했잖습니까?”

“그건…….”

태건이 말하려하자 이강찬 기자가 손을 내밀었다.

스윽.

“뭐라는 거 아닙니다. 왜 그러셨는지 모르는 바도 아니고, 저희도 후속기사를 냈으니까요.”

“그럼……. 일우 소식도 아십니까?”

태건이 김일우 이병을 슬쩍 언급했다.

이강찬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장례 끝나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부대에서 걱정하는 거보다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저 혹시 왕성남 씨나…….”

태건이 한 번 더 운을 뗐다.

이강찬 기자는 눈치가 좋은지 바로 알아챘다.

“왕성남 트레이너하고 김유나 씨 말씀이시군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왕성남 씨는 골절이 심해 전신 깁스 중이고, 김유나 씨가 병간호 중입니다.”

뜻밖의 소식에 태건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째 분위기가…….”

“아주 핑크핑크 하죠.”

“잘됐네요. 무사하단 소식이 더 기쁘고요.”

태건은 둘 다 생명에 문제가 없음에 안도했다.

이강찬 기자는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질문으로 연결시켰다.

“사실 라텔에 대해선 그때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본인들을 알릴 자리를 떠난단 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요.”

“짧은 순간이지만 요구조자와 생사의 순간을 함께 이겨낸 사이잖습니까.”

“다른 소방관들은 그렇지 않던데요.”

“그건 오해입니다. 모든 소방관들이 같은 마음입니다. 다만.”

태건이 말을 끊자 이강찬 기자가 말꼬리를 잡았다.

“다만?”

“그분들은 각자 맡은 일이 분명해서요.”

“라텔은 그 부분이 다르군요.”

“꼭 다르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비번일 때 요구조자를 찾아가는 소방관들이 상당하니까요.”

태건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이강찬 기자도 전혀 모르진 않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그럼 다음으로…….”

줄줄줄.

이강찬 기자의 질문이 좀 더 이어졌다.

태건은 아는 한도 내에서 소신껏 대답했다.

다각도로 질문했지만 걸러내지 않았다.

이강찬 기자가 알려준 소식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어느새 한데 모여 단체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개별 인터뷰로 부드러워진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마지막 질문이 들려왔다.

그 질문의 주인공은 이강찬 기자였다.

“라텔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통상적인 질문일 터였다.

그러나 단원들에겐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직은 꺼낼 수 없는 속사정들인 탓이다.

깊은 말을 꺼내기엔 시기상조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내내 잘 이어지던 인터뷰가 서먹서먹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그러던 중 오광휘 단장이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소방관 채용이 더 확충되길 바랍니다.”

스윽.

마이크 뭉치를 옆으로 넘겼다.

받아든 황대산은 어색한 표정만 지었다.

“저는 뭐…….”

휙.

우물쭈물하며 옆으로 건넸지만 받는 단원이 없었다.

태건이 분위기를 보다 속으로 생각했다.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된 거 같네.’

두루뭉술한 끝맺음보다 확실한 게 좋을 일이다.

그렇게 결정을 하며 마이크 뭉치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고수현이 마이크 뭉치를 잡았다.

…….

꾸욱.

뭔가 결심한 듯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지?’

태건은 물론, 모두가 의도를 몰라 갸웃거렸다.

그때 고수현이 굳은 표정을 억지로 풀며 말했다.

“저, 저는 사실 고, 고아입니다.”

“…….”

휘휘휙!

모든 단원의 시선이 고수현에게 집중됐다.

‘이건 뭔 소리야.’

‘갑자기?’

개인사정에 대해 몰랐던 터라, 단원들에게는 폭탄 발언이었다.

고수현도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부터 이어갔다.

“30년 전, 충북 증평군의 ‘증평고아원’ 앞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합니다.”

“…….”

다들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끊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고요한 가운데 고수현의 입이 다시 열렸다.

“부모님을 찾고 싶어서, 그래서 라텔에 지원했습니다.”

“…….”

“지금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 번도 원망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럴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꾸욱.

다들 입을 다물고 조용히 경청했다.

고수현도 쉽지 않은 결정으로 한 말이다.

마이크 뭉치가 떨리고 있었다.

파르르.

그래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지 덧붙여 말했다.

“제가 더 멋진 소방관이 되면, 그렇게 알려지면 연락을 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니, 그런 소방관이 되겠습니다.”

“…….”

“그냥……. 그냥 얼굴만이라도. 아니, 밥이라도 같이 꼭……. 꼭…….”

투욱.

고수현은 감정이 차오르는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태건은 그런 고수현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래서…….’

유독 유명세에 집착하는 모습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개운치 않은 끝맺음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건은 철수 준비 중인 이강찬 기자에게 다가갔다.

“이 기자님, 외람되지만…….”

“절대 흠이 되지 않게 편집해서 내보낼 거니까 걱정 마십시오.”

“아니요. 고 선배 사정을 더 부각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태건은 조심스레 부탁했다.

이강찬 기자는 예상외로 환하게 웃었다.  

“당연하죠. 이건 아주 이슈거리로 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부탁, 나도 좀 합시다.”

꾸벅.

오광휘 단장이 불쑥 나타나 같이 인사했다.

그 모습에 이강찬 기자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인터뷰하면서도 느꼈는데 참 끈끈하신 게 보기 좋습니다.”

“끈끈? 이 원수 같은 녀석들이랑요?”

“단장님도 참. 그렇게 포장해도 저희한테는 안 통합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사삭.

이강찬 기자를 필두로 다른 기자들도 썰물처럼 옥상정원을 벗어났다.

곧 옥상정원에는 라텔만 남았다.

오광휘 단장은 이강찬 기자의 말이 맴도는지 툴툴거렸다.

“당신이 얘들을 잘 몰라서 그런 말 하는 거지. 태건아, 안 그러냐?”

“다 보여줄 순 없죠.”

“그건 정답이지. 그보다……. 고수현이!”

휙!

몸을 돌린 오광휘 단장이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 번 그에게 쏠렸다.

그러나 고수현은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평소대로 말했다.

“인터뷰할 때 얼굴 각도가 살짝 안 좋았던 거 같은데.”

“딴소리로 얼렁뚱땅 넘길 생각 말고.”

오광휘 단장이 나무랐다.

그래도 고수현은 대놓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진은 잘 찍혔나. 내가 몇 장 찍어서 보낼까.”

“이 녀석이.”

턱.

결국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짚었다.

그 손길에 고수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아닌 척해도 신경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

고수현은 결국 침묵했다.

오광휘 단장은 그런 그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왜 숨겼어. 짜샤, 숨길 게 따로 있지!”

“뭐,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어물쩍 넘기려는 뉘앙스였다.

지켜보던 태건도 그 소리는 흘릴 수 없었는지 한 마디 했다.

“그래서 유명해지고 싶단 거였습니까?”

“뭐……. 그렇지.”

고수현은 객쩍었는지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에게 유중헌이 다가가 다른 쪽 어깨를 살포시 감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해해서 미안해.”

“쓰읍. 고수현이. 어깨 펴라. 싸나이가 말이야. 네가 잘못한 게 뭔데!”

황대산은 특유의 말투로 기운을 북돋아주려 했다.

그런데 그때 이지성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난리야.”

휙!

차가운 말을 흘리며 그대로 옥상정원을 나갔다.

다들 그 행동에 울컥했다.

“쟤는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감정이 없는 건지, 아니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이번 발언은 태건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하여간 분위기 초 치는데 도사라니까!”

불쑥.

오광휘 단장이 솟아올라 모두를 선동했다.

“안 되겠다. 저 녀석, 오늘 확 묻어버리자!”

“옳소!”

쿵. 쿵.

분위기가 험악하다 못해 살기까지 흘렀다.

태건도 그 속에 함께였다.

‘이건 아니지!’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남의 아픈 가슴에 상처를 주는 건 납득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고수현이 모두의 앞을 막았다.

“모두 스톱!”

그 행동에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토닥였다.

“고수현이, 조용히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면 돼.”

“맞아. 여기 형들하고 태건이가 싹 해결할게.”

“걱정할 거 없어.”

황대산에 이어 유중헌까지 의욕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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