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24)화 (123/320)

124화

그러나 고수현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만류했다.

“이러지 마세요……. 야, 태건아. 너 뭐하냐. 안 말려?”

고수현은 괜히 태건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태건도 미간을 가득 좁히고 있었다.

“제가 왜 말립니까.”

“아, 진짜.”

“동료라면. 아니 생판 남이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태건이 딱 잘라 말하자 오광휘 단장이 열을 강하게 뿜었다.

“그렇지. 절대 안 되지!”

“그러니까 오늘 확 묻어버리면 됩니다!”

“바로 그거란 말씀, 고고!”

“우어!”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의 흥분이 남달랐다.

정말 이지성에게 위해를 끼치고도 남을 분위기였다.

터덕.

고수현이 다시 막아서더니 크게 외쳤다.

“지성이는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순간 모두가 멈췄다.

우뚝.

“뭐, 뭔 소리야. 걔가 어떻게 알아!”

“평소에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왜 감싸고 그래.”

당연히 말도 안 된단 반응이었다.

그런데 태건에게 일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기억이 있었다.

“아, 그때 그 전화.”

딱!

손가락까지 튕기자 오광휘 단장이 힐끗 흘겨봤다.

“뭔 전화?”

“퇴소하고 다음날 수현 선배가 전화했었다고 했잖습니까.”

“아, 지성이가 개들 보러 그 동네 갔었……. 어라?”

오광휘 단장이 멈칫했다.

그 사이 태건은 황대산과 유중헌에게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랬었습니다.”

둘 다 한풀 꺾인 분위기로 말했다.

“진짜 알고 있었단 건데, 그럼 그 녀석은 왜 얘기 안 한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래도 아직 의아함은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그에 대해 고수현이 덧붙여 말했다.

“그게 뭐 대수냐고 했습니다.”

“…….”

“고아원에도 잠깐 들러서 애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줬고요. 정말입니다.”

고수현은 필사적으로 이지성을 비호했다.

다들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지금 누구 말하는 거야?”

“지성이 말하는 거 같긴 합니다만.”

“그럴 애가 아닌데…….”

쉽사리 믿지 못하는 뉘앙스로 가득했다.

“진짜라니까요.”

고수현이 답답해했다.

그 반응을 보며 잠시 생각하던 태건이 선배들에게 말했다.

“수현 선배가 지금 굳이 없는 말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 이렇게나 민감한 일이면 더더욱.”

“일단 그런가보다 하죠.”

태건이 권하자 오광휘 단장이 곧 결론을 냈다.

“모레 퇴원인데 병원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지 않냐.”

“…….”

“일단 조용히 넘어가자. 대신 또 신경 자극하면 그땐 니들 마음대로 해.”

오광휘 단장은 모든 걸 틀어막지 않았다.

빈틈을 일부러 만들어줘야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성격들 탓이다.

황대산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크흠. 우선 지켜봅시다.”

그만큼 오광휘 단장의 제안이 적절했는지 더는 과격한 행동을 삼갔다.

이내 모두 병실로 돌아왔다.

스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지성이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

조용한 걸 보니 잠든 모양이다.

아니면 이지성도 괜히 부딪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크흠.”

“흠흠.”

괜히 헛기침을 하며 각자 자리로 향했다.

…….

동시에 이지성을 끝까지 주시했다.

다행히 이지성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병실은 고요함이 감돌았다.

태건은 등 돌린 이지성을 잠시 바라봤다.

‘대체 뭔 생각인지.’

라텔의 미스터리 중 하나임은 확실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다.

뉴스 시간이 도래하자 병실 TV를 켰다.

팟.

“어떻게 편집이 됐을라나.”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다니, 정말 좋긴 하네.”

싱거운 말을 흘리며 기대감을 에둘러 표현했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곧 뉴스가 시작됐다.

첫 번째로 떡하니 특수소방단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수해 지역에 산사태를 막고, 요구조자 구조에 온몸을 던진 소방관들이 화제입니다.

화면이 바뀌며 엉망이 된 금산T타운을 비췄다.

이름 모를 기자의 내레이션이 함께 들려왔다.

-장마 첫날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충남 금산군의 신축 전원주택 단지입니다. 산사태로 일부 집이 무너지며 산모가 매몰 됐고, 특수소방단이…….

라텔의 활약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 추가 산사태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옥상정원의 인터뷰도 방영됐다.

-저희는 마땅히 해야할 일을…….

대답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고수현이었다.

자막도 큼지막하게 달렸다.

-특수소방단 단원 고수현.

그 외에 오광휘 단장부터 태건까지.

모두 짤막하게 얼굴을 비쳤다.

그래도 단연 분량이 많은 건 고수현이었다.

다들 그 부분에 어떤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넌지시 칭찬을 했다.

“확실히 인물이 좀 되니까 화면발이 잘 받네.”

“소방관은 다 대산 선배처럼 우락부락하단 이미지를 벗기에 적격입니다.”

태건의 말에 황대산이 울컥했다.

“강태건이. 거기서 왜 내가 나와!”

“선배도 보셨잖습니까.”

“뭐, 수현이가 좀 더 화면발이 잘 받긴 했지만. 크흠, 그래도 남자라면 나 같이 듬직한 맛이 있어야지!”

퉁.

매트리스까지 두드리며 반발했다. 

곧 첫 번째 뉴스가 끝났다.

“뭐, 나쁘지 않네.”

“얼굴 도장은 확실히 찍은 거 같습니다.”

신기함과 멋쩍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때 태건이 슬쩍 바라보자 고수현이 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수현 선배, 보셨을 겁니다.”

주어는 일부러 생략했다.

고수현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들썩이며 화답했다.

“그렇겠지?”

“그럼요. 조만간 연락 올 겁니다.”

“그래. 고맙다.”

고수현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려 했지만 아직은 어정쩡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이 TV를 끄려고 리모컨을 들었다.

그런데 전원버튼을 누르지 않고 멈칫했다.

-심층취재, 소방관을 향한 오해와 진실들.

눈에 띄는 제목에 저절로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이건 뭐야?”

“우리 인터뷰랑은 관련이 없는 거 같은데요.”

“그래도 일단 보자고.”

스윽.

오광휘 단장이 리모컨을 내렸다.

곧 화면이 바뀌며 어느 전원주택 마당을 비췄다.

마당 한쪽에 엉뚱하게 자리한 흙더미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마당을 배경으로 모자이크에 음성변조까지 한 누군가가 인터뷰했다.

특히 한쪽 다리를 붕대로 둘둘 감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아 글쎄, 날 밀쳐 넘어뜨리고 밟고 지나갔다니까. 소방관이 시민을 폭행하는 게,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아이고, 속이야.

턱턱.

가슴을 치며 억울해하는 모습도 생생히 찍혔다.

그 상대를 본 태건과 단원들 표정이 싹 굳어졌다.

“저 아저씨…….”

“태건아, 그 아저씨 맞지?”

유중헌이 얼른 물었다.

상대의 말투와 행동이 눈에 익은 탓이었다.

무엇보다 마당 한쪽에 엉뚱하게 쌓여 있는 흙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태건도 인상을 찌푸리며 동의했다.

“네. 막말하시던 그분이네요. 두고 보자고 하시더니.”

“저 아저씨 진짜 왜 저러냐.”

“음? 잠시만요.”

태건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인터뷰 화면에 반전이 시작된 탓이다.

우르르.

주민들이 인터뷰 장소로 난입해 단체로 항의했다.

-거기, XX씨. 또 이상한 소리 하는 거야!

-기자님 속지 마세요. 소방관들이 자기 말 안 들어줬다고 거짓말 하는 겁니다.

-세상에. 저기 흙 좀 안 치워줬다고. 얼마나 욕을,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던지.

-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있단 게 수치야. 당장 꺼져!

인터뷰 화면은 거기까지였다.

스튜디오로 화면이 전환되며 앵커와 기자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해 있었다.

-소방관들에 대한 이런 악의적인 날조와 선동, 하루 이틀이 아니라죠.

-맞습니다. 현장에서 폭언 및 폭행 건수도 매년 늘어가고 있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소방관들을 보호해줄 법규가 없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업무의 특성상 이건 되고, 이건 안 된다라고 선을 긋기가 애매하여…….

결국 제도적인 부분을 다시 검토해 피해를 막자는 내용이었다.

그 후에는 다른 뉴스로 전환됐다.

띡.

오광휘 단장이 TV를 껐다.

그러나.

…….

병실엔 침묵이 흘렀다.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건 엄연한 현실인 탓이다.

태건이 어색함을 깨고 다소 밝게 입을 열었다.

“저런 반전이 있었네요.”

“마을에서 쫓겨나는 거 아니야?”

“분위기로 봐선 그럴지도 모르겠던데요.”

“그나저나 낮에 뵀던 분들이 우르르 TV에 나와서 깜짝 놀랐네.”

오광휘 단장이 애써 장단 맞춰 답했다.

인터뷰 중 나타나 진실을 알려준 이들은 T타운의 다른 주민들이었다.

스윽.

단원들 시선이 과일바구니와 병문안 선물로 향했다.

“저렇게 뒤에서 도와주시고.”

“앞에서는 고맙다고 선물도 사주시고.”

“……이런데 그깟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대수야?”

“맞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입니다.”

다들 환자복 입은 자신을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곧 태건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빨리 회복해서, 얼른 출동합시다!”

“오예!”

다들 불끈 주먹을 쥐며 의욕을 다졌다.

그 속에 이지성도 함께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유중헌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저기, 태건아, 그러니까…….”

“중헌 선배, 하실 말씀 있으면 그냥 하시라니까요.”

“그게 말이지……. 우리 퇴원해도 출동 못해.”

유중헌이 어렵사리 말했다.

그 소리에 이지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에이씨, 뭐 좀 하려면 꼭 브레이크 거는 누군가가 있다니까.”

“…….”

끄덕.

이번엔 모두 고개를 끄덕여 이지성의 말에 동조했다.

뭔가 맥이 빠지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태건은 더 기운 빠지기 전에 유중헌에게 물었다.

“우리 몸이 회복되면 끝이지 뭐가 문젭니까.”

“헬리콥터.”

“네?”

“헬리콥터 엔진 내려서 수리해야 된대. 서둘러 작업 중인데도 일주일은 족히 걸린대.”

유중헌은 눈치를 보며 답했다.

그 소리에 다들 입이 턱 막혔다.

“헬, 헬리콥터가…….”

“하긴, 그 돌풍에 폭우를 뚫고…….”

“버틴 게 용하긴 했지.”

슈슈슉.

가슴 가득 부풀었던 의욕이 쑥 꺼져버렸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나, 저러나 좀 쉬긴 해야겠네요.”

끄덕.

다들 고갯짓으로 답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크흐흠. 일단 쉬기부터 하자.”

“네.”

오광휘 단장의 말에 나지막이 답했다.

그 후로 병실엔 고요함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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