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다음날.
태건은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소방학교 동기인 김도환이었다.
그는 이름으로 인해 저절로 따라붙은 이미지가 있었다.
“어이, 김도환이. 구역 관리는 잘 하고 있냐.”
“놀리려고 전화했는데 선수 치냐!”
“놀리긴 뭘 놀려?”
태건이 갸웃거리자 김도환의 짓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뉴스 탔더라. 특수소방단 공문 내려온 건 봤는데, 네가 거기 있을 줄은 몰랐어.”
“너 대전에 있다고 그랬지?”
“응, 그런데 왜?”
“금산이 코앞인데 전화하냐. 빨랑 안 튀어와?”
태건이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말투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받아치는 김도환의 목소리도 차졌다.
“입원한 주제에 말이 많아. 진짜 프로는 어떤 현장에서도 끄떡없이 털고 나오는 거야, 짜샤.”
“웃기고 있네. 그래서 진짜 안 온다고?”
“장마가 이제 시작인데 가긴 어딜 가냐.”
툴툴거리는 김도환 목소리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건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퇴원하면 며칠 쉬는데, 내가 갈까?”
“와 봐야 못 놀아 준다. 이 형님이 바쁘셔서.”
“놀고 있네.”
“바쁘다니까. 그보다 짜샤. 너 좀 멋있어졌더라!……. 그렇게 계속 멋지게 살아, 짜샤.”
김도환의 투박한 목소리 속에 잔잔한 떨림이 느껴졌다.
어제 뉴스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든 모양이다.
지난 시간, 태건이 힘듦을 알고 있는 동기들 중 한 명인 탓이다.
아픔을 털어내고 씩씩하게 잘 지내는 걸 봐서 좋단 의미였다.
태건은 불쑥 들어온 동기의 말에 괜히 가슴이 말랑거렸다.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퉁명했다.
“갑자기 전화해서 이상한 소리 하기는.”
“갑자기 뉴스에 얼굴 도장 찍은 네가 할 소리냐.”
“이상한 소리 할 거면 끊어.”
“안 그래도 끊을 거야. 그리고 애들이 단톡방 들어오라더라. 초대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뚝.
갑자기 전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카똑.
곧장 단톡방 초대 메시지가 날아왔다.
“뭘 또 번거롭게.”
그러면서도 슬쩍 터치했다.
동기 단톡방에서 나온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나온 이유는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 사건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까똑, 까, 까, 까똑.
메시지 알림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확인하자 동기들의 메시지가 줄줄이 띄워져 있었다.
-감도환 : 태건이 들어왔다!
-박준규 : 이욜. 뉴스에 나온 유명 인사잖아.
-이수광 : 형이다, 인마. 잘 살았냐?
-신지아 : 건아, 오랜만이야. 우리 언제 얼굴 봐?
다들 어제 연락했던 거처럼 반겨줬다.
떠난 1년이란 시간이 없던 거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짜식들.”
같이 훈련 받고, 또 기합 받고, 울고 웃었던 추억들이 절로 떠올랐다.
이래서 유명해져야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 감상은 뒤로하고, 태건은 슬슬 타이핑을 시작했다.
토도독.
그렇게 오랜만에 동기들과 길게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또 반가운 연락이 왔다.
이번엔 문자 메시지였다.
다름 아닌 조규찬 팀장이 보낸 문자였다.
-다들 네 소식에 반갑고 또 안타까워했단다. 몸은 괜찮지? 무탈하게 회복해라. 그리고 다들 의욕 백배다. 우리도 좋은 소식 전할게. 답신은 하지 마라. 언젠가 웃으며 얼굴 보자.
분명 조규찬의 문자였다.
그러나 최정균, 서순영, 표인철, 선배들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자를 보냈을 거다.
어떤 선배들인지 잘 알기에 태건은 감히 추측할 수 있었다.
“꼭 웃으며 얼굴 봐요.”
꾸욱.
휴대폰을 진하게 감싸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런 축하 인사 속에 빠진 이들이 있었다.
가족들이었다.
부모님도, 강태영도, 강주미도 연락이 없었다.
왜 그런지 태건은 예상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찾아 봬야지.”
그럼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마침 곧 휴가기에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건강하게 퇴원하기 위해 조금 더 휴식에 치중했다.
이틀 후.
드디어 태건과 단원들은 환자복을 벗었다.
그런데 기동복이 아니라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금산소방서장이 흡족해 했다.
“시장표인데 이렇게 테가 좋은가.”
“서장님 안목이 뛰어나신 거죠. 퇴원 선물 감사합니다.”
“휴가인데 기동복 입고 나가면 의미가 있나. 멀리까지 와서 고생들 많았어.”
금산소방서장이 흐뭇한 얼굴로 칭찬했다.
대표로 오광휘 단장이 힘을 줘 말했다.
“언제든, 저희가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당장 날아오겠습니다.”
“나 또한 부탁하지.”
“신세 많이 졌습니다.”
“누가 할 소리.”
꾸욱.
서로 손을 맞잡으며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소방관들끼리 통하는 진한 울림이 눈빛 속에 녹아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부웅.
렌탈 승합차 한 대가 금산 인삼병원을 벗어났다.
그 속엔 라텔이 타고 있었다.
“나오기 전에 요구조자분들 한 번 더 뵙길 잘했습니다.”
“안 보고 출발했음 구박 받을 뻔했지.”
“지영이 할아버지가 주신 요구르트가 이렇게나 많습니다.”
종이봉투 속에 한 가득이었다.
다들 그걸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옛날에 시골 갔을 때 생각나네.”
“할아버지는 무조건 요구르트 주셨죠.”
그때 고수현이 활기차게 말했다.
“저희 고아원에도 요구르트 많이 들어옵니다.”
“…….”
순간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 어색해진 분위기에 고수현이 눈을 끔뻑거렸다.
“왜요……. 태건아, 내가 뭐 잘못 말했냐?”
“그건 아닌데요. 그렇게 밝게 말할 건가 싶기도 하고…….”
태건도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몰라 어정쩡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고수현에게 물었다.
“고수현이, 증평이면 서울 올라가는 길에 지나치지 않아?”
“에? 안 지나치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중헌이 시원하게 말했다.
“안 지나치면 지나치게 하면 되지!”
“중헌 선배, 그러려면 중부 타야 됩니다. 서울까지 빙 돌아갑니다.”
“어쩌라고. 억울하면 네가 운전대 잡든가!”
역시 운전대를 잡은 유중헌은 폭군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일방적인 결정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수현이가 어디서 자랐는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단장님의 화끈한 결정을 지지합니다!”
차속이 쩌렁쩌렁 울리는 대답이 들려왔다.
거기에 한 명이 더 동의를 표했다.
“저도 찬성입니다.”
“지성이도?”
“개들 잘 지내는지 봐야죠.”
이지성은 다른 목적을 꺼냈다.
그 말에 누구도 인상 쓰지 않았다.
손가락까지 튕겨가며 동조했다.
딱!
“그러네. 그 녀석들, 사고 안치는지 가서 봐야지.”
“가야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유중헌이, 남자답게 훅 밟아 봐!”
황대산이 목청 높여 보챘다.
“뭘 또 밟으래. 이게 소방찬 줄 아시나. 알아서 갈 테니까 신경 꺼요!”
부웅.
콧방귀를 뀐 유중헌은 규정 속도를 준수하며 달렸다.
그의 안전운전은 놀랍도록 잔잔했다.
의욕을 다졌던 순간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
너무 편한 승차감에 누구라도 할 거 없이 스르륵 잠들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 두 시간이 지나갔다.
도착한 장소는 ‘증평고아원’이었다.
차에서 내려 크게 둘러봤다.
간단히 말해 자그마한 학교 모습이었다.
고수현이 머쓱한 얼굴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제 집입니다.”
“집 엄청 좋네. 뛰어놀 운동장도 있고 말이야.”
오광휘 단장이 천천히 둘러보며 감탄했다.
“십 년 전에 이사했거든요. 원래 폐교였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놨네요.”
태건이 알록달록 칠해진 담장을 보며 말했다.
그때 크고 작은 아이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수현이 형이다!”
“오빠야!”
고수현은 곧장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에구구, 우리 예쁜 동생들. 잘 있었어!”
풀썩.
다가온 아이들과 고수현은 진한 포옹부터 나눴다.
“형 TV 나온 거 봤어!”
“오빠가 제일 멋져!”
“소방관이 제일 따봉이야!”
동생들의 격찬에 고수현의 미소가 지워질 줄 몰랐다.
“봤구나, 그렇지. 내가 제일 멋지지?”
자기자랑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런 고수현의 얼굴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지켜보던 단원들 중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집이 맞네요.”
“저 미소, 저 여유, 집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지.”
오광휘 단장이 끄덕였다.
그때 유중헌이 황대산을 쿡쿡 찔렀다.
“선, 선배.”
“뭔데, 왜 찌르고 그래?”
“그러니까…….”
속닥속닥.
뭔가 비밀처럼 대화했다.
황대산은 어이없이 바라보다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중헌이가 그래도 수현이 동생들인데 같이 밥 한 끼 먹여야지 않겠냐고 하는데요.”
“뭐!”
휙!
오광휘 단장이 다급히 바라봤다.
그 눈초리가 매서웠는지 유중헌이 움찔했다.
“그게……. 제가 너무 성급…….”
“유중헌이, 이 녀석. 아주 굿 아이디어야!”
턱턱.
오광히 단장이 칭찬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혼나는 게 아님을 인지하고야 유중헌은 배시시 미소 지었다.
“히히.”
몸을 슬쩍 꼬기도 했다.
이지성이 그런 유중헌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돼.”
“그게 매력이잖습니까.”
“흥. 매력 두 번 찾다가는 속 뒤집어지겠네.”
이지성은 뚱했다.
그러나 태건은 개의치 않고 시간을 확인하며 또 다른 제안을 했다.
“기왕이면 공놀이도 한 판 당기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거지. 원래 애들은 일단 뛰어 놀아야 쑥쑥 크는 법!”
“그럼…….”
태건이 말을 꺼내려 했지만 황대산은 벌써 뛰기 시작했다.
타다닥.
“얘들아, 공 차자!”
그 모습에 아이들은 놀라 고수현을 붙들었다.
꾸욱.
“형.
“오빠.”
겁먹은 일부 아이들은 고수현 뒤에 숨기도 했다.
황대산도 그제야 자신이 성급했음을 알아챘다.
“아니, 나는.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라…….”
천하장사도 놀란 아이들 앞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태건은 이마를 짚으며 탄식 어린 말을 내뱉었다.
턱.
“어휴. 그러니까 말 좀 듣고 가지. 인사도 안하고 무작정 달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대산이가 그렇지, 뭐. 우리도 가자.”
척척.
오광휘 단장이 앞서고 태건과 단원들이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