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됐다.
노래방을 나서는 태건의 얼굴엔 술기운 대신 상기된 미소가 가득했다.
“역시 노래는 고음이야.”
내뱉은 목소리가 팍 쉬어 걸걸했다.
그런 태건을 향한 친구들의 두 눈은 가늘었다.
“멱따는 소리에 술이 다 깼네.”
“그 노래 빼달라고 전화할까보다.”
“태건아, 그러다 목 나가.”
쑥덕거렸지만 다들 최애 곡이 하나씩 있기에 강하게 어필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바탕 뛰고 소리 질렀더니 술도 깨고 스트레스도 풀려 있었다.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다.
“잘 마시고, 잘 놀았다!”
“역시 너희들이랑 놀아야 노는 거 같다니까.”
“아, 내일 또 출근해야 하네.”
슬슬 현실이 다시 보이는 듯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해야 할 일이…….”
그렇게 대학가를 벗어나던 중이었다.
“꺄아아아악!”
뒤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태건과 친구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친구들이 경악했다.
“저. 저게 뭐야!”
“아니!”
파르르.
눈동자가 거칠다 못해 정신없이 흔들렸다.
저쪽 골목길에서 누군가 나왔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복부에는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커으으으, 도……. 도와…….”
비틀비틀.
옷을 적시는 걸로 모자라 손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응급상황이다.
번뜩!
흐리멍덩했던 태건의 표정이 일순간 강렬하게 돌변했다.
‘젠장.’
맥 놨던 강태건은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신 소방관 강태건이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피를 흘리는 남자가 비틀거리다 이내 쓰러졌다.
철푸덕!
“커으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아악!”
“꺄아악, 어떻게 해!”
“아씨, 어우씨! 여기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여기요!”
주춤주춤.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저기…….”
“저 사람, 어후!”
상당한 출혈에 본능적인 두려움이 앞서는 모양이다.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바로 그때였다.
휙!
태건이 두 다리를 박차 앞으로 내달리며 소리쳤다.
“따라와!”
타다닥!
친구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새 부상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태건이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쫘악!
“어엇!”
“뭐, 뭐야?”
떠밀린 사람들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건은 부상자와 거리부터 빠르게 좁혔다.
차작!
자세를 낮춘 태건은 얼른 목덜미에 손부터 댔다.
맥박과 혈압이 빨라지고 있다.
투두두, 투두두.
출혈이 상당하단 신호였다.
태건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이 한적한 대학가에서 이런 상해 사건이라니.
사고는 항상 갑작스럽게 벌어진다고 해도 당혹스런 순간이다.
그러나 태건의 표정과 행동은 차분하고 묵직했다.
가장 먼저 의식레벨을 확인해야 했다.
“이봐요. 이름이 뭡니까. 나이는요?”
“끄으으.”
흐릿한 목소리만 흘렸다.
그만큼 상대의 의식이 썩 온전하지 못했다.
주변에선 갑자기 나타난 태건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스윽.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저 사람 누구야?”
“뭐 볼 줄은 알고 저러는 거야?”
못미덥단 반응도 사이사이 숨어 있었다.
그런 그들은 나설 생각은 쉽사리 하지 못했다.
“나도 뭐라도 한 손 거들어야…….”
“야, 가지 마. 저러다 잘못되면 너만 피곤해져.”
“그건 그렇긴 하지.”
마음과 달리 행동은 소극적이었다.
여러 사건·사고의 안 좋은 결과로 인한 폐해였다.
그때 사람들 틈을 비집고 친구들이 나타났다.
“야, 태건아!”
“너, 너…….”
“얼른 이리 나와!”
친구들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다.
태건이 이상한 일에 휘말려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 순간 태건이 친구들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응급처치를 하기에 손이 모자랐다.
마침 다가온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었다.
망설임과 주춤거림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핑!
강렬하고도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어서 내뱉는 목소리는 상당히 차분했다.
“혜랑이는 119에, 유신이는 경찰에, 빨리 신고해. 어서!”
“나오라니까.”
“신고부터 해!”
태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살벌한 눈빛에 친구들이 멈칫했다.
“그래. 그, 그런데…….”
덜덜.
친구들의 손끝이 떨려왔다.
특히 부상자를 향한 시선이 혼탁했다.
보통사람 이라면, 살아가며 이런 부상을 쉽게 마주할 수 없을 터였다.
그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휴대폰조차 쉽사리 꺼내들지 못했다.
태건은 그 모든 걸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부상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친구들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태건은 지체하지 않고 호랑이처럼 거세게 다그쳤다.
카르릉!
“신고하라니까!”
태건의 포효가 친구들에게 작렬했다.
그 기세는 친구들의 시선을 태건에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온몸을 묶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가 잠시나마 밀려났다.
“어? 아, 응!”
터덕.
정혜랑과 박유신이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거기 119죠. 여기…….”
“경찰서죠. 사람이 찔렸어요. 여기…….”
각자 얼른 신고했다.
그 소리를 들은 태건의 눈빛이 깊어졌다.
부상당한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상대다.
그게 뭐 어쨌는데.
소방관에겐 늘 반복되는 순간이다.
살린다.
그게 최우선 명제였다.
어느새 태건은 부상자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눈동자가 흐릿하고 반응이 더뎠다.
“으으으.”
신음을 흘릴 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흐으…….”
“날 봐 봐요. 내 말 안 들립니까!”
태건은 재차 큰 목소리로 부상자를 다그쳤다.
그저 부르기만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시선은 벌써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역시 복부의 출혈이었다.
얇은 여름옷이 흥건할 정도로 젖어 있었다.
그 중 우측 하복부에 세로로 찢어진 부위를 발견했다.
“대체 뭔데…….”
피로 얼룩진 티셔츠를 조심히 끌어올렸다.
스슥.
곧 그 속에 감춰진 상처가 드러났다.
상처였다.
무언가에 찔린 흔적이 명확히 존재했다.
“젠장.”
출혈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일단 지혈부터 해야 했다.
상황파악과 동시에 태건은 재빨리 자신의 티셔츠를 붙들었다.
“흐읍!”
힘을 줌과 동시였다.
찌익!
티셔츠가 길게 찢어졌다.
순간 태건의 단단한 복근이 드러났다.
태건은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터억!
출혈 부위를 일단 손으로 꾹 눌렀다.
동시에 멀뚱히 서 있는 김윤재를 발견하고 재빨리 손짓했다.
“윤재, 이리와. 빨리!”
“나. 나?”
주춤.
김윤재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뒷걸음질 쳤다.
술집에서 자신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헤집은 탓이었다.
태건은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겁먹은 친구를 다독여주고 보듬어줄 상황이 아니다.
“끄륵, 끄르르…….”
부상자의 숨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만큼 이쪽은 생명이 달렸다.
그 다급함에 태건은 더욱 사납게 소리쳤다.
“정신 차려 새꺄!”
“헙!”
“내가 하라는 것만 해. 그것만 하면 돼!”
“어, 어.”
터더덕.
김윤재는 주춤주춤 다가갔다.
아니, 태건의 기백에 이끌려가고 있었다.
곧 김윤재가 도착했다.
태건은 두 손이 지혈 중이라 턱짓하며 말했다.
“여기 허리, 그래. 허리 받혀!”
“끄응. 이렇게…….”
스윽.
김윤재가 힘을 줘 부상자를 살짝 들어올렸다.
허리 아래에 공간이 생기자 태건은 얼른 길게 찢은 티셔츠로 둘렀다.
휘휙, 꽈악!
배가 쑥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묶었다.
그리고 김윤재에게 한 가지를 더 부탁했다.
“가서 응급처치 할 만 한 건 뭐든 사와. 어서!”
“그, 그걸 어디서…….”
“편의점. 최대한 서둘러야 돼. 마, 김윤재!”
태건은 김윤재 눈동자가 흔들리자 다시 소리쳤다.
그때 정혜랑과 박유신이 동시에 다가왔다.
“119에 신고했어. 최대한 빨리 온대.”
“경찰도. 그리고 우리가 다녀올게.”
타다닥!
말을 하자마자 멀어졌다.
다가오며 필요한 물건들을 들은 모양이다.
김윤재가 오히려 당황했다.
“아니, 나도…….”
눈치를 보며 어정쩡하게 일어나려 했다.
태건의 눈엔 이미 김윤재가 없었다.
부상자만 존재했다.
찰싹, 찰싹.
“이봐요. 정신 차려요!”
한 손은 지혈을 압박한 채 다른 손으로 자극을 주며 불렀다.
“으으으.”
부상자의 목소리는 흐릿하기만 했다.
꿀럭꿀럭.
압박 중인 손에서 몽글몽글 솟는 출혈이 느껴졌다.
태건의 두 눈이 더욱 굳어졌다.
“이런, 씨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부상당한 위치와 출혈량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쉽사리 언급하진 않았다.
소방관은 의사가 아니다.
생명에 대해 섣부른 판단은 절대 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