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그런 태건을 가득 주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은 선의로 도와주는 거잖아.”
“이거라도 찍어놔야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어.”
그렇게 심성 좋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진 않았다.
“우와, 대박.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냐.”
“저 피 어쩔. 어후. 이거 영화촬영 아닙니다. 실화에요.”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홀로 말을 읊조리기도 했다.
SNS에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하는 모양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강한 의구심을 내보였다.
“응급처치하는 저 사람 대체 뭐야?”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지?”
“그런데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응. 이상하게 낯이 익어.”
다가올 생각 없이 우려만 가득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박유신이 커다란 비닐봉투를 안고 지나갔다.
그 다음으로 정혜랑이 지나치며 그들에게 물었다.
“특수소방단 강태건 모르세요?”
“누구요?”
“금산 산사태 사건 때 임산부 구한 그 특수소방단 말입니다…….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후다닥!
정혜랑은 비닐봉투를 바짝 안아들고 태건에게 달려갔다.
그가 흘리고 간 말은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어? 그 특수소방단?”
“마, 맞아. 저 사람 강태건!”
척.
누군가 모바일 기사 속 태건의 얼굴을 찾아 내밀었다.
놀란 반응과 함께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우와, 씨. 나 응급처치하는 거 처음 봐!”
“소방관이잖아. 저 사람 저렇게 피 흘리는데 저기서 응급처치하는 거야?”
“우리 학교 출신인가 봐. 이건 알려야지. 알려야 해!”
의구심이 빠르게 지워져갔다.
그 빈자리를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신뢰로 채워졌다.
거기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세까지 더해졌다.
태건은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친구들이 사온 응급처치 용품에만 집중했다.
“일단 물!”
콸콸!
생수를 그대로 복부에 쏟아 1차로 세척했다.
그다음은 과산화수소였다.
“그리고 이거!”
촤아아악!
혈액과 만난 과산화수소가 하얀 거품을 일으켰다.
그 거품을 깨끗한 티셔츠와 양말로 닦았다.
빠른 세척으로 상처 부위가 깨끗해졌다.
그것도 잠시였고, 다시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태건은 재빨리 복부를 조이던 자신의 티셔츠 쪼가리를 풀었다.
스륵.
압박을 거두자 출혈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런데 처음보다는 약간 줄어 있었다.
“이제 지혈제를 쏟으면……. 연고?”
튜브형 지혈제를 든 태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혜랑이 아차하며 말했다.
“몰라 있는 대로 다 쓸어왔어!”
“그렇다면……. 좋아. 이거면 가능해.”
처억.
비닐봉투 속에 다행히 거즈가 있었다.
태건은 거즈를 꺼내 그 위에 지혈제 연고를 짰다.
원래 분말지혈제를 뿌리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일일이 갖춰가며 응급처치할 상황이 아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을 동원하는 게 옳았다.
그렇게 지혈제 연고 가득한 거즈가 완성됐다.
태건은 인정사정없이 거즈를 상처 속으로 과감히 밀어 넣었다.
푸욱!
“허읍!”
친구들의 두 눈에 강한 진동이 일었다.
태건은 어떤 동요도 없었다.
“음. 그리고 이거.”
얼른 그 위에 습윤밴드를 부착했다.
마지막으로 탄력붕대를 되는 대로 둘둘 감았다.
요즘 편의점에 상비약이 잘 갖춰져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응급처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건은 곧바로 의식이 흐릿한 부상자의 목을 받혔다.
터억.
이어서 진통, 해열, 지혈 효과가 있는 경구약을 물과 함께 먹였다.
“이거 먹어야 합니다. 삼켜요!”
“그륵, 으으읍.”
꿀떡.
부상자의 목울대가 크게 울리며 입속이 깨끗해졌다.
그렇게 응급처치가 끝났다.
그러나 태건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슥슥.
붕대를 한 번 더 점검하던 중이었다.
정혜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건아, 이제 괜찮은 거야?”
“몰라.”
“그런 말이 어딨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빨리 병원에 이송해서 상태를 봐야 뭔가 답이 나오겠지.”
태건의 말이 진중했다.
“…….”
정혜랑도 더 묻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태건의 말이 십분 옳았다.
“왜 안 와.”
압박을 느끼는지 휴대폰만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그때였다.
에에엥, 삐용삐용.
사이렌 소리가 다양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119구급대에 신고했던 정혜랑이 울리는 휴대폰을 들었다.
“엇, 전화 왔다! ……네네, 거기요. 맞아요. 빨리 오세요!”
그 외침에 태건의 귀가 꿈틀거렸다.
“왔네.”
그제야 굳은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시간을 확인해 봤다.
신고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 빠를 순 없을 터였다.
곧 경찰과 119구급대가 다급히 달려왔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요구조자 어디 계십니까!”
사삭.
뒤에서 나는 소리에 사람들이 좌우로 비켜섰다.
그렇게 열린 길을 따라 경찰과 119구급대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파바박!
경찰들은 곧장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며 탐문에 들어갔다.
“자자, 조금만 물러나 주시고요. 어떻게 된 건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좀 비켜 봐요. 잘 안 보이잖아요.”
슥슥.
사람들은 통제하는 경찰 사이사이로 휴대폰을 내밀기 바빴다.
같은 시각.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바닥에 흐른 혈흔에 구급대원들이 더욱 다급해졌다.
“헉. 얼른 들것에 실어. 그리고 응급실 수배해!”
“알겠습니다.”
척척.
구급대원들은 부상자부터 들것에 빠르게 실었다.
그 사이 50대에 가까워 보이는 구급대원이 다가왔다.
포스부터 베테랑 향기가 가득했다.
그런 그의 시선은 태건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태건의 주변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응급의약품이 본능적으로 이끈 모양이었다.
“혹시…….”
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태건이 대뜸 거수경례했다.
척.
“라텔.”
독특한 경례구호이자 콜사인에 구급대원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잠깐이었다.
상대도 얼른 바르게 서 경례했다.
처억.
“안전. 특수소방단 멤버셨군. 나 구급대장이요.”
“강태건입니다. 경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약 5분 전…….”
태건은 발견 시각부터 시작해 응급처치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그 모습에 친구들이 더욱 놀랐다.
조금 전까지 노래방에서 목청 찢어져라 소리친 친구가 맞나 싶었다.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절도 있는 태건은 처음이었다.
그걸 보고야 정신이 좀 들었다.
폭풍 같이 몰아쳤던 시간을 이제 곱씹을 여유가 생겼다.
“태건이는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어.”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야.”
“난 다가가기도 무섭고 망설였는데…….”
친구들이 한 마디씩 흘려 말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윤재의 표정이 어둡고 복잡했다.
곧 태건이 상황보고를 마쳤다.
“……거기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군요. 빨리 가야겠습니다.”
구급대장은 나이를 떠난 존중을 보였다.
물론 태건에겐 대선배였다.
다시 한 번 먼저 경례를 하며 인사했다.
“라텔, 잘 부탁드립니다.”
“연락드리리다. 안전.”
휙, 타다닥!
구급대장은 손을 내림과 동시에 재빨리 뛰어갔다.
곧 119구급차 사이렌소리가 멀어졌다.
에에엥, 에에엥!
그 사이 태건은 경찰과 대화중이었다.
경찰의 태도는 정중했다.
“특수소방관이셨군요. 어이고, 옷이……. 고생하셨습니다.”
“네? 아, 아차차.”
그제야 태건은 찢어진 티셔츠를 인지했다.
단단하게 근육이 자리한 배가 세상에 공개되어 있었다.
스윽.
두 손으로 슬며시 배를 감싸며 낯 뜨거워했다.
경찰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놀리듯 편안하게 말했다.
“몸 좋으신데 뭘 가리십니까.”
“크흠. 그보다 경찰서 가서 참고인 조사 같은 거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내일 저랑 전화 한 통하시면 됩니다. 증거자료가 얼마나 많은데요.”
“많다니요?”
태건이 갸웃거렸다.
그때 경찰이 슬쩍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씀드리는 거보다 쭉 한 번 둘러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둘러보다니…….”
태건은 의아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전부 휴대폰 카메라를 자신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 쪽을 바라보자 손을 흔들며 열화와 같이 환호했다.
우와아아!
“휘이이익. 특수소방단 멋지다!”
“처음부터 다 봤어요. 진짜 끝내줬어요!”
“소방관이 최곱니다.”
“쉬는 날인데도 한순간에 달려오신 모습,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짝짝짝!
엄지를 내밀기도 했고, 박수 소리도 더해졌다.
태건은 주목된 시선에 얼굴이 빨개졌다.
자신을 촬영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소방관을 더 알리고팠기에 이 순간 자신을 내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창피한 이유는 찢어진 티셔츠 탓이었다.
스윽.
“아니, 저기. 찍는 건 좋은데, 이렇게는 좀.”
태건은 양손으로 이리저리 복부를 감싸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아니었다.
“얘가 제 친구입니다! 강태건이 우리 학교 출신이에요!”
“얘들아 보고 있냐. 태건이가 이렇게 잘난 놈이야!”
정혜랑과 박유신이 목청 높여 자랑했다.
그런 친구들 탓에 태건의 얼굴만 더 달아올랐다.
“야, 아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선배님이다! 선배님, 여기 좀 봐주세요!”
“여기도요. 강태건 선배님, 여기요!”
“소방관 선배님 멋져요, 특수소방단 파이팅!”
모든 사람이 보내는 응원의 소리가 깊은 밤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가를 들썩였다.
잠시 후.
태건은 24시간 해장국 집에 들어와 있었다.
아직 태건의 얼굴은 창피함이 가득했다.
“아씨, 화끈거려.”
얼굴에 불이 난 거 같았다.
차가운 물수건으로 얼굴을 식혀야할 정도였다.
그러다 같이 자리한 친구들에게 울컥해 따졌다.
“이 짜식들아, 이 옷을 보고도 그렇게 떠들고 싶냐. 어우씨!”
슥슥.
드러난 복부를 민망하게 쓸었다.
그때 정혜랑이 비닐봉투에서 하얀 티셔츠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있는데 못 봤어?”
“편의점 티셔츠? 빨리 줬어야지!”
“난 네가 즐기는 줄. 흐흐.”
정혜랑이 짓궂은 눈빛으로 미소 지었다.
서둘러 갈아입은 태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이 자식, 내가 쪽팔린 게 즐겁냐.”
“초콜릿 복근 멋지던데. 흐흐.”
“넌 내가 진짜 친구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
태건은 휘몰아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