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한편.
세련되게 꾸며진 방.
침대 위에 정연미가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우와와와!
-강태건 소방관님…….
지금 SNS에 핫한 태건의 동영상이었다.
“…….”
정연미의 두 눈이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스윽.
화면 가득한 태건의 얼굴을 쓸려다 멈칫하며 내렸다.
그때 동영상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까똑.
-손미주. 연미야, 자?
정연미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전화를 걸었다.
“미주야. 이 시간까지 안 자고 왜?”
“너 봤지.”
“……응.”
“태건 선배 멋지더라. 너도 알지, 내가 예전에 선배 좋아했던 거 말이야.”
친구의 도발 가득한 목소리에 정연미가 발끈했다.
“얘,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렇게만 떠봐도 그렇게 화를 내면서. 넌 밉다고 해도 태건 선배밖에 없다니까.”
“…….”
“선배가 소방관 준비할 때 네가 얼마나 응원했니. 그래 놓고 지금은 왜 그래.”
“몰라, 끊어.”
뚝.
정연미는 휴대폰을 멀리 옮겼다.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푹 묻었다.
“나호 내 마흐흐 모흐게허.”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풀썩풀썩.
괜히 두 다리로 푹신한 매트리스를 괴롭혔다.
* * *
다음날 아침.
태건은 훈련장 옥상에서 경찰과 통화 중이었다.
어제 일에 대한 경위를 설명했다.
“……그렇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저희가 확보한 진술과 모두 일치합니다. 아침부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도울 건 도와야죠. 그보다 범인은 아직 모르는 겁니까?”
태건이 안타까워 묻자 경찰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피해자가 깨어나면 알 수 있겠죠. 그보다 어제 일로 하룻밤 사이 UCC스타가 되셨던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네, 그럼 고생하십시오.”
태건이 수더분하게 인사하고 휴대폰을 내렸다.
그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대관절 무슨 원한인데 그렇게까지.”
안타까워하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태건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더 파고들지 않는 게 옳았다.
태건이 난간을 집고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
“뉴스나 안 나면 다행이지.”
그 중얼거림과 동시였다.
때르릉.
거짓말처럼 휴대폰이 울려 바라본 태건이 화들짝 놀랐다.
-이강찬 기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전화한다더니.
놀란 가슴을 붙들고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기자님. 안, 안녕하십니까.”
“왜 간 떨어지는 목소리십니까. 여기저기 축하 전화가 너무 많이 오나 보네요.”
“뭐 그렇다고 해두고, 기자님도 놀리려고 전화하신 겁니까?”
태건이 가볍게 묻자 이강찬 기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아니고요. 혹시 고기 사들고 가면 거기서 같이 구워 먹을 수 있습니까?”
“식사는 핑계 같고, 저희 대기 장소가 궁금하신 모양이네요.”
“지금 SNS 검색어 1위가 특수소방단입니다. 그 정도면 제대로 인터뷰 한 번 하셔야죠.”
이강찬 기자가 변죽 좋게 권했다.
태건은 거절하려다 멈칫하더니 마음을 돌렸다.
“좋습니다. 단장님과 상의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쉽게 희망의 문을 열어 주실 줄 몰랐는데요.”
“그럼 좀 튕길까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단장님께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이강찬 기자가 변죽 좋게 아부를 했다.
태건도 넉살 좋게 말했다.
“고기는 한우로. 아시죠?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슥.
다시 휴대폰을 내린 태건이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 길로 오광휘 단장에게 물었다.
“단장님…….”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오광휘 단장이 힘차게 소리쳤다.
“한우면 콜!”
“역시.”
태건은 진하게 미소 지었다.
남이 사주는 고기는 더 특별한 법이었다.
몇 시간 후.
우면 훈련장 옥상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금산에서 인터뷰 후 일주일만이었다.
이번엔 인터뷰 목적이 약간 달랐다.
찰칵찰칵.
사진 기자들이 사무실이며 기자재 창고 등 다양하게 촬영했다.
그렇듯 특수소방단에 대해 심층취재 중이었다.
“여기가 저희 사무실이고…….”
소개 역할은 고수현이 맡았다.
훤칠한 외모 덕에 사진기자가 일부러 앵글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태건과 이강찬 기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강찬 기자가 힐끗거리며 떠봤다.
“고 단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는 거 같네요.”
“가장 필요하니까요.”
“보통 이렇게 물으면 아닌 척 하기도 하시던데, 강 단원은 솔직한 입담이 매력입니다.”
이강찬 기자가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태건은 그가 슬쩍 깔아두는 밑밥이 훤히 보였다.
“무슨 질문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목표하시는 게 있다면?”
쓔욱.
이강찬 기자는 얼른 직업정신을 발휘해 질문했다.
태건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수더분하게 말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금산의 일로 가족들과 지인들이 많이 걱정하시더군요.”
“아하, 아픈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 이렇게 잘 차려놓고 산다, 이거 말씀이시군요.”
이강찬 기자는 척척 알아들었다.
태건은 거기에 한 가지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제가 한 일은 대단한 게 아닙니다. 모든 소방관들이 지금도 현장에서 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
“저희는 늘 곁에 있습니다. 어려운 일로 찾아주시면 언제든 달려가겠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정돈된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이강찬 기자도 만족한 모양이다.
“오케이, 여기까지.”
탁.
인터뷰 수첩을 기분 좋게 덮었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음료수를 권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모금 하시죠.”
“저야 뭐. 아, 그보다 이거 말씀드려야지.”
그가 뜸을 들이자 태건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금산 개발현장 있잖습니까. 거기 소유주 구속됐습니다. 죄목이야 열거하기 힘든 수준으로 많지요.”
“결국 그렇게 됐네요.”
태건은 예상한 결과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강찬 기자는 자투리 소식을 전해줬다.
서로 이런 인터뷰를 핑계로 만나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그렇다고 모두 반짝 떠오른 인기에 취해 있지 않았다.
그 인기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았다.
곧 사그라질 인기다.
소방관에 대한 이슈는 지금까지 그래왔다.
태건은 거기에 반전을 걸었다.
“이걸 유지하려면 더 많이 노력해야지 않습니까.”
“옳소!”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동의했다.
무엇보다 다시 라텔이 가동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긴장의 끈을 조일 시기였다.
그 부분에 있어 가장 좋은 건 역시 체력단련이었다.
어느날 아침.
태건이 우면산 러닝코스에 나타나며 소리쳤다.
“우면산, 훅훅, 정상 찍읍시다!”
타다닥!
그 뒤로 오광휘 단장부터 이지성까지 줄줄이 나타났다.
“헉헉.”
“헛둘!”
각자 거친 숨을 내뱉고 구령을 외치며 뛰었다.
장마로 비탈길이 질퍽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차자작!
“으윽. 미끄러졌.”
“털고 일어나. 뛰어!”
“으아악!”
미끄러지면 악을 쓰며 더욱 자신을 다그치고 몰아쳤다.
그건 금산T타운의 부상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더 강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중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부상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오광휘 단장이 각오를 소리치기까지 했다.
“이젠 다치지 말자!”
“아아악!”
악에 받친 대답이 울려 퍼졌다.
그만큼 다신 출동불가란 오명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 했다.
출동준비는 우면산 러닝만이 아니었다.
태건은 날짜를 확인하며 미국의 지인에게 전화했다.
방화복을 주문할 때와 다른 지인이었다.
“미스터 크레텔. 나야.”
“오, 더 라스트. 한국에서도 잘 날아다니더군.”
“더 높고도 멀리 날아야지. 그래서 당신 도움이 필요해. 그럼 기대할게.”
뭔가 두루뭉술한 통화였다.
며칠 후.
놀랍게도 미국에서 택배가 도착했다.
항공우편으로 보낸 거였다.
거대한 상자를 열어본 태건의 눈에 각종 소방용품들이 가득했다.
“후후, 이거야.”
태건의 입꼬리가 진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날 바로 단원들과 소방용품 시연 자리를 마련했다.
화르륵.
드럼통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태건은 손바닥보다 조금 기다란 스프레이를 내보였다.
“이게 휴대용 소화깁니다.”
“그걸로 저 불을 끈다고?”
“에이. 그건 뻥이 심했다.”
다들 믿지 못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태건은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치이익.
바로 스프레이를 드럼통에 대고 뿌렸다.
놀랍게도 드럼통의 불이 모두 꺼지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걸 본 모두가 경악했다.
“와우, 저거 뭐야!”
“저거만 들고 들어가도 불길은 다 밀어내겠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기대감을 가득 보였다.
그러나 태건은 스프레이를 흔들며 똑같이 고개도 저었다.
“안타깝게도 그건 어렵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이를 왜 평가절하하고 그러냐.”
“우선 1회용입니다. 그리고 용량이 적어 대형화재에선 큰 쓸모가 없습니다.”
태건이 단점을 말하자 모두가 갸웃거렸다.
“그럼 왜 주문했어?”
“최악의 순간, 그리고 위험한 장소에서 딱 한 번 살길을 열 수 있으니까요.”
“…….”
끄덕.
모두 차분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몇 번 출동해본 경험상 너무도 와닿는 설명인 탓이다.
태건은 곧 또 다른 소방용품을 소개했다.
“이건 소화볼입니다.”
퍼엉!
불속에 공을 넣자 폭발하며 소화가루가 사방으로 퍼졌다.
“와우!”
“저건 내 스타일이야!”
황대산이 유독 좋아했다.
그다음은 원통형 스틱이었다.
“이건 호흡기고 유지 시간은 1분입니다.”
“그것도 위기의 순간에 써야겠네.”
다들 척 보면 딱딱 용도를 알아맞혔다.
그 외에도 새로운 소방용품 시연이 이어졌다.
대부분 최악의 순간, 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용할 용품들이었다.